수촌리 고분군
웅진시대 이전의 지방권력과 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 | 사적 460호
천태산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서 동혈사 입구 고개까지 차를 몰고 올라섰다.
갑자기 내 몸이 산행을 원하지 않는다.
전날 산행이 고단하거나 길지 않았는데 피곤하다는 느낌이 하체를 중심으로 진하게 퍼져온다.
그 피곤함은 오늘도 입은 등산바지의 땀냄새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군. ㅎ
아쉽지만 내 몸에 스트레스만 쌓일 산행은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천태산 가는 길 회전교차로에서 보았던 '수촌리고분군'이정표를 따라 가본다.
사실 수촌초등학교 인근을 지나면서 자주보았던 '수촌리고분군' 안내판이건만 실제 들러보지는 못했던 곳이다.
사실 수촌초등학교 모양새도 참 희한하다.
마치 고구려 유적인 국내성처럼 학교부지가 구릉 정상부체 자리를 잡고 있다. 어쩜 여기도 잘 파보면 무슨 유적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ㅋ
그냥 길가에 흔히 볼 수 있는 줄무덤이나 뭐 그런 고분 중의 하나겠지...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번 길을 지나면서 그렇게 건성으로 생각했던 곳이었다.
우연히 사이버연수를 시청하다 맞닥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되돌아 가기도 애매해서, 별 기대 않고는 뒷짐지고 돌아보기로 한다.
들머리엔 최근 조성된 어리버리한 주차장이 있지만,
분위기가 너무 고즈넉해서 용기를 가지고 수촌초등학교를 끼고 오른쪽으로 차를 몰고 올라간다.
생각지도 않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수촌초등학교 울타리에 맞붙은 역사체험관과 역사교육관이다.
부푼 꿈을 가지고 돈을 쏟아부은 것 같지만 최근들어 사람이 이용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현황도를 바라보니 유적지는 두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안내판마다 1구역, 2구역 또는 Ⅰ구역, Ⅱ구역으로 다른 방식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통일 좀 했음 좋겠구먼.
지형도를 살펴보니 너른 들을 한 눈에 바라보는 언덕배기에 유적지가 자리잡고 있더군.
내가 직접 찍은 사진도 있지만,
발굴 당시의 사진은 대부분 문화재청에서 공개하고 있는 사진자료를 다운로드 받은 것이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이 주는 역사적 의의: 백제시대 한성기 지방 세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내 머릿속은 Only 무녕왕릉만으로 가득했는데,
공주의 옛이야기가 수촌리고분군의 유물을 통해서 한성백제 이전까지 확장이 된다.
2003년 9월에 발굴된 백제시대 한성기 지방 세력의 무덤이다.
고분군은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하는데, 서쪽으로는 넓은 수촌들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천태산과 이어진다.
안내판에 있던 글을 한 번 옮겨 본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널무덤(토광묘 3기,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4기,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3기 등 다양한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와 귀걸이 등 당양한 장신구와 무기, 마구, 馬具말을 타거나 부리는 데 쓰는 도구, 중국제 자기, 백제 토기와 같은 화려한 껴묻거리 副葬品가 출토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제 귀걸이, 구슬 등의 장신구와 중국제 자기는 백제가 한성을 도읍으로 두었던 시기에 지방의 중요 세력에게 주었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이밖에 무기류인 환두대도(자루에 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와 재갈과 등자 등 말갖춤새도 많이 출토되었다.
조사 성과를 기초로 하여 4세기 말에 5세기 중반 백제 시대의 중앙에서 지방사회를 통제하는 방법과 지방사회의 지배충을 중심으로 백제문화를 수용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국립공주박물관을 찾아가보니,
한성백제시대의 모습을 알려주는 고분군이 천안 용원리, 서산 부장리 그리고 공주 수촌리에서 발굴되었다고 한다.
한성백제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편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로부터 지위를 과시하는 위세품을 내려받았다고 한다.
특히 공주 수촌리 세력은 한성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을 수용했고,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등 최상급의 위세품이 발굴된 점으로 지방의 다른 세력과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세력이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진출처: 국립공주박물관>
수촌리 고분군은 2003년 농공단지 조성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발굴된 것을 보면 자연에 의지하며 살다보니 그렇게 주거지가 겹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은 무덤주인의 신분을 나태는 중요한 유물로, 백제시대 지방사회의 최상급 지배세력이었을 것으로 확인된다고 한다.
이로써 공주 수촌리 고분군은 한성백제가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네.
공주 수촌리 고분군은 조사지역의 지형에 따라 Ⅰ, Ⅱ구역으로 구분된다.
Ⅰ구역은 청동기 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Ⅱ구역에서는 백제시대 고분군을 조사
<사진출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촬영>
Ⅱ구역
수촌리 고분군의 중심에 해당
백제시대 고분군이 집중적 분포되어 있으며, 널무덤(토광묘)에서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백제 한성기(4세기 말~5세기 중반) 공주 수촌리 지역의 지방 사회에서 백제 중앙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한성의 무덤 양식인 굴식 돌방무덤을 받아들여 지방 사회의 무덤 양식이었던 널무덤에서 굴식 돌방무덤으로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무덤양식의 변화와 더불어 백제 중앙으로부터 받은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환두대도, 중국제 장기 등이 많이 묻혀 있어 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백제 지방사회의 최고 권위자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굴식 돌방무덤인 4호분(남자)과 5호분(여자)에서는 ‘하나의 옥을 반으로 나누어 매장한 부절*이 출토되어 백제시대 사람들이 재회를 기원하며 나눈 마음의 증표를 확인할 수 있다.
*부절: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물건에 글자를 새겨 다른 사람과 나눠 가졌다가 나중에 맞추어 증거로 삼는 물건
↓ Ⅱ구역에서 바라본 수촌 들녘
↓ 발굴 당시의 Ⅱ구역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 출토 유물과 무덤의 주인 <
금동관모와 금동으로 만든 장식품은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유물이다.
금동과모 2점(1호분 움무덤, 4호분 굴식 돌방무덤)
금동신발 3쌍(1호분 움무덤, 3호분 돌덧널무덤, 4호분 굴식 돌방무덤)이 출토되었으며,
3호분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에는 사람의 발 뼈가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같은 유적 내에서 2점의 금동관모가 출토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는 수촌리를 중심으로 한 지방세력이 오랜 시간 동안 백제의 중요한 거점 세력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덤의 양식이나 부장된 유물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수촌리 고분군은 한성 시기 백제의 중앙 문화를 받아들이고 중앙으로부터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은 지배 세력의 무덤군으로 추정된다.
2구역 1호분 금동신발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복원된 유물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2구역 1호분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출토 당시의 금동관모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2지점 4호분 출토 금동관모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2지점 4호분 출토 토기 및 자기류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중국제닭머리모양장식토기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사진출처: 국립공주박물관>
2구역 고분 출토 등자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사진출처: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촬영>
Ⅰ구역
수촌리 고분군의 북쪽 구릉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덤이 발견되어, 우리 조상들이 사용한 무덤의 변화 모습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고 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초기 철기 시대로 추정되는 움무덤(토광묘, 적석목관묘)이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칼(세형동검, 칼자루 장식품, 검파두식, 창, 도끼, 끌)과
철로 만들어진 도끼가 출토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에서 청동 유물과 철기 유물이 함께 출토
→ 청동기 시대 이후 초기 철기 시대 움무덤의 모습과 부장 유물의 변화상을 알수 있음
Ⅱ구역에서 바라본 Ⅰ구역 전경
Ⅰ구역에서 바라본 Ⅱ구역 전경
Ⅰ구역 유적 앞에 평지에 공원처럼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발굴당시의 Ⅰ구역 모습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1지점 초기 철기시대 토광묘 출토 청동류 <문화재청 홈페이지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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