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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금남정맥, 신원사-천황봉 근처-쌀개-관음봉-동학사

by 여.울.목 2015. 3. 29.

대중교통

언제나 시간 많이 걸리고 불편하다.

누가 빠르고 편리하다고 했는가?

항상 버스를 타면서 느끼는 것이다.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자고 좀 더 솔직해지면 어떨까?

 

 

제 때에 맞춰 올 수 없는 버스를 기다린다. 가끔 이런 기다림도 필요하다.

 

오늘은 장날이라 그런지 신원사 가는 320번 버스 좌석은 모두 찼다. 계룡산 가는 버스를 여러 번 탔지만 오늘처럼 서서가기는 드문 일이다.

잘날 일을 보시고 되돌아가시는 분들... 60대만 되더라도 젊은 측에 속한다. 60대 아저씨께서 내리시려니 연로하신 어르신이 청년을 대하듯 장에서 무엇을 샀는지 물으신다.

버스는 효포지역을 들어서면서 내리시는 분들이 많아 좌석이 급속도로 휑해진다. 나도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 있다 보니,

일거리와 생필품을 안고 계신 어르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내 오늘의 산행이 오늘따라 이렇게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괜히 울컥해질 것 같더라.

 

계룡면소재지를 지나면서 별것도 아닌 일에 갈등이다.

벌써 몇 번째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단돈 2천원 때문이다.

문화재관람료를 내고 들어가느냐, 둘러보지도 않을 것인데 그 돈을 왜 내고 들어가느냐.

 

2천원을 내고 들어선다.

본전생각에 산행은 잠시 미뤄두고 신원사로 향한다. 신원사는 갑사, 동학사, 용화사와 함께 계룡산 4대 사찰이라고 한다. 용화사? 이름이 눈에 익었지만 한 번 찾아가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내 느끼기에 많이 찾는 계룡산의 큰 절 갑사, 동학사, 신원사 중 가장 서민적인 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신원사 입구 안내문. 온통 한자와 한자말로 눈과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년인 651년에 창건된 후 신라 말에서 고려초에 법당만 남아 있던 것을 중창하고, 고려 충렬왕241298년에 중건, 조선 후기인 1866(고종3)에 중수 1887년에 중건해서 新元寺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다시 세우고 고치고... 말이 뭐 이리 어려울까?

중창重創 고쳐 다시 새롭게 지음 > 중건重建 보수하거나 고쳐서 지음 > 중수重修 손질하여 고침

 

안내문을 뒤로하고 사천왕문을 지나자면 죄지은 것도 없는데 무서운 생김새와 몸짓과 사물에 괜히 움츠려든다. 사람에게 붙어 있는 사악한 것들이 이문을 지나면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는 역할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분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통해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지배적인 위치를 다지고자 과장되게 무서운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말씀도 하신다. 두 말 다 일리가 있다.

신원사 대웅전(충남 유형문화재 제80)

사천왕문을 지나 반듯하게 걸어가면 보통의 절처럼 너른 마당에 탑이 있고, 탑 뒤로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좌우로는 작은 부속 건물이 한 채씩 있다.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876(고종 24) 중건되었다고 한다.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는 공사 중이라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안에 있는 향각 불상은 명성황후가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꺽어 중악단 쪽으로 가다보면 벽수선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정감나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여백의 미로 간직한 건물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지붕과 마루 공간을 따듯하게 활용하고자 근대식 건물처럼 유리가 있는 창호로 둘렀다. 마치 가정집 같기도 하구.

나중에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다보니 알게 된 것인데, 이 건물이 국제선원이라고 한다. 여러 나라의 스님들이 이 건물에서 동안거를 행한다고 한다.

 

중악단(보물 제1293)

벽수선원을 지나면 중악단이라는 건물이 나온다.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신원사는 다른 절과 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중악단 때문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

상악 묘향산 중악 계룡산 하악 지리산

나라에서 산신께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 신원사 경내에 지어진 것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고 해서 태조 31394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효종 21651년에 제단이 폐지되고 고종 161879년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상악단과 하학단이 있으므로 중악단이라고 했다.

초석 위에 원형 기둥으로 세워진 다포 양식의 팔작지붕을 한 건물로 소슬 삼문에 좌우로 외여닫이문이 있다. 조선 말기의 건축물로 정문을 지나 중문을 거쳐 들어가는 것이 경복궁에서 본듯한 구조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궁궐 형태를 그대로 축소시켜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상악과 하학은 모두 없어지고 중악단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신라 때는 중사례(中祀禮)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에는 향전(香奠초상집에 부조로 내는 돈이나 물품)을 올릴 뿐이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 측면 3칸의 다포(多包) 팔작집으로 조선 말기 건축 중 우수한 것이다. 우리 나라 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중악단의 경역은 612로 둘레에 축담을 둘렀고 전면에 이중의 내외문(內外門)이 있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작지붕

자형 평면에 구성되는 지붕의 형태로서 가장 완비된 구조물이다. 궁실의 법전(法殿)이나 절의 금당(金堂 : 大雄殿) 등 중요건물의 지붕은 대체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 중에서는 최고의 구조인 셈이다.

 

 *다포양식

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놓고 포작을 짜올린 형태로 목조형식 중 가장 복잡하고 장웅하다.

 

 

신원사 오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제31)

신라석탑의 전통을 이은 고려시대의 탑이라고 한다. 5층의 부분 재료가 상실되었다고 한다. 기단에 비해 탑 몸체가 둔해 보이고 지붕돌의 폭 변화가 거의 없어 하나의 기둥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말을 한 자료에서는 - 탑신과 옥계석 기단 등 독특한 기법으로 단순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준다. - 라고 표현하고 있다. 197512월 이 탑의 보수 공사 때 일층 탑신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어 외대와 내대로 구성된 사리구와 함께 개원통보, 함원평보, 황종통보가 발견되었다.

예전에는 신원사의 중심부가 이 탑을 기점으로 있었다고 안내되어 있다.

 

 

 

 

이제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 산해을 시작합니다.

 

 

해발 440m 고지 근처에 물이 나는 곳이 있네요.

 

 

 

큰서문재다리재 근처는 이런 얌전한 구릉지대가 쾌 넓게 펼쳐져 있다.

아마 이 구릉을 따라가면 탱자나무 넝쿨이 있는 마을 터가 나올 것이다.

이 곳도 그 곳도 예전에는 사람들이 먹고살던 터전이었을 것이다.

나무 뒤로 병풍처럼 뭉뚝하게 서 있는 산이 머리봉이다.

 

온통 겨울 틈바구니에 노란 꽃이 피었다.

누가 밟으면 안되는데 ~

 

왼쪽부터 연청봉 - 문필봉(세 봉우리 무리) - 관음봉

 

 

 

천황봉 근처에서 보면은 머리봉이 꽤 날카롭게 보인다. 그 뒤로는 멀리 향적산.

 

 

 

천황봉이 바로 코 위인데... 넘지마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ㅠㅠ

차마 넘을 수 없어 그냥 되돌아 내려옵니다.

그나마 멀리 보이는 자연성릉과 삼불봉의 잘생긴 모습에 안위를 해본다.

 

 

천황봉이 아니라 천왕봉, 마블링 잘된 것 같은 둥그스레한 저 봉우리가 천왕봉. 더 동쪽으로 가면 치개봉

V자로 파인 계곡이 동학사 지구

 

 

쌀개에서 바라본 (왼쪽부터) 연천봉 - 문필봉(세 봉우리) - 관음봉

 

쌀개는 디딜방아의 방아공이가 이탈됮 않도록 만든 M모향의 홈이다. 이쪽에서 저쪽 끝으로 갈 때지나는 바위문 - 하늘이 보이기 때문에 통천문이라고 한다.

 

 

반대편에 보니 천황봉이 보이네요. 언제쯤 천황봉이 충청인의 품에 들어올 수 있을까?

 

 

 

 

 

메말랐던 모습만 보았는데,

오랜만에 물줄기가 보이는 은선폭포를 만났다.

어릴 적 은선폭포 근처에 산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서 등산객들의 점심터만 되어 있더군.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맑고 깨끗한 계곡물을 감상할 수 있다고.

 

 

도롱뇽도 봄 기운에 기지게를 편다.

 

 

동학사를 지날 즈음~ 거북이 같기도 하고 염소의 얼굴 같기도 하고... 점점 지날수록 모양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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