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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공주역을 통해 바라본 공주의 어제와 오늘...

by 여.울.목 2015. 5. 20.

공주역을 통해 바라본 공주의 어제와 오늘

 

경부선 개통 100년 만에 공주에 역이 들어서게 되었다는 소식에 휴일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

 


> 공주역 가는 길

네비게이션에 목적지 공주역을 터치해서 찾아가는 길은,

공주 시내를 빠져나와 넓은 4차선을 타고 부여 쪽으로 아픔의 격전지 우금티의 터널을 지나 오른 만큼 내리막에서 힘껏 탄력을 받으려는 찰나 좌회전을 알리는 네비 언니의 목소리.

! 이렇게 가까워?” 출발한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좌회전을 하자마자 이어지는 편도 1차선의 도로를 10분 이상을 달려야 한다. 자가용으로 넉넉히 엑셀을 밟아서 15분이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퍽이나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가는 내내 이어지는 전원 풍경의 잔잔함보다는 길이 이렇게 한산해도 되는지 괜한 걱정으로 굽이굽이 핸들을 조였다 풀었다 한다.


 

> 공주역사驛舍

드디어 높은 제방처럼 쌓아올린 둑방 위로 철길이 보인다. 그 철로가 반듯하게 교량으로 이어져 평지 위로 내달리고, 그 철로 아래로 공주역사가 들어섰다.

하도 사람들이 역설치가 실효성에 대해서 떠드는 바람에 삼등열차가 잠시 쉬었다가는 간이역 수준으로 여겨졌던 선입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국철도공사 대전충남본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남고속선 중 유일한 고속철도 전용으로2015.4.2.개업한 관리역(2) 이라고 한다.

그나마 넓은 주차장 사용에 이용료가 없다보니 볼일 보러가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주차를 할 수 있겠다.




공주시청 홈페이지 공주역 KTX 교통정보

http://tour.gongju.go.kr/tour/sub05_08_09.do

 

역사驛舍는 천안아산 역과 같이 철로 밑에 지어진 구조다. 대합실로 들어서니 한산하다. 상행선 기차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몇 명의 대기 승객과 승차권 파는 곳의 승무원...

기차 타는 곳을 보기 위해서 1인당 입장료 500원을 지불도 마다하지 않았다. 타는 곳은 상행선과 하행선 타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십 여 분 후에 상행선 기차가 지나간다기에 상행선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아직 시간이 안 돼서 그런지 우리 가족 말고는 사람이 없다.

주변에 도시계획이 그려져서 벌써 외지인들에 의해 토지매입이 완료되었다는 지역을 바라본다. 아직까지는 그냥 조용한 시골 동네다.



플랫폼 끝까지 달리기를 하자는 아이의 제안에 따라 두세 번 뜀박질을 했는데도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미안할리는 만무다.

기차가 들어설 시간이 되자 대합실에 있던 사람들 말고도 얼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자리를 잡는다.

기차가 1분 머물다 지나가고 다시 정적이 자리를 꿰찬다.

아이들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엄청난 굉음을 내며 공주역 무정차 기차가 아랫녘으로 내려가는 굉음에 아이들이 몸을 움츠리고 만다. 이 심란한 소리 때문에 철로 주변 소들은 벌써부터 번식을 하지 않고 농성중이란다.


 

철도와 애증어린 ‘100년 동안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보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공주에 대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대해서 접하지 않을 수 없구나.

 



> 어제

엔하위키 미러라는 사용자 참여방식의 사이트에 공주와 철도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첫 문단에서는 평양이나 서울의 경우 대동강과 한강을 끼고 거대 도시로 성장했지만 그에 비해 공주는 금강이라는 충청권 최대의 강을 끼고도 주저앉은 비운의 도시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몰락의 수준으로 표현을 한 것인데, 철도 설치가 빗나가고 도청을 대전으로 빼앗긴 것이 눈이 띄는 쇠락의 대표적 현상과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도청 이전이야 그렇다 치고, 지금 공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보자.

 

구한말 일본이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려고 할 때 양반과 유생들이 극렬하게 반대여론을 주도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 공주가 풍수적인 면에서 돼지에 해당되는데 철도의 모양새가 돼지와 상극인 뱀과 같고 계룡산의 닭과 상극인 지네와 닮았으며, 철도 건설로 지맥이 끊기고 만다는 반대여론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실제 지역민의 극렬한 반대 또는 우리정부의 요청으로 변경된 노선은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 보존으로 인한 '안양-수원' 구간으로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든 유생의 반대가 있었어도 일본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강행했다는 것이다.

1901년 확정된 경부선 노선은 공주를 거치는 노선으로 기존 인구밀집지역을 거쳐 가는 것이었는데, 1903년 수원이남 공사가 본격화 될 때 일본이 러일 전쟁 준비에 들어가고, 빠른 시간 안에 최단거리로 신의주까지 연결하는 철로를 건설하려고 했기 때문에 사설철도회사에 정부예산을 투입해가면서 2년이나 앞당겨 완공을 독촉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주에서 열열이 원한다고 했어도 추진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도청이 아직 공주에 있었기 때문에 호남선과 이어지는 철도를 비롯해서 여러 번 건설을 시도했지만...

1931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그 철도부설에 대한 추진 동력마저 잃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일본이 만주에서 벌린 전쟁으로 철도는 북쪽에 중점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여러 번의 시도가 무산되고 말았다. 광복 후 일제의 수탈을 위한 호남과 서해지역의 산업기반의 쇠퇴와 더불어 같이 잊혀져갔고, 1960년대부터는 낮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더기 위해 도로 위주의 투자로 공주는 그렇게...

 

 

> 오늘

철도와의 질긴 밀당은 박정희 정부에서 계획했던 행정수도계획에 공주 강북 일대에 초고속전철이 설치되도록 되어있었다고 한다.



호남고속선 분기역을 천안아산역과 대전역으로 해야 할지 논의가 있을 당시, 천안아산역으로 분기점을 삼을 때 공주시 월송동 지역에 공주역이 실제로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전도 천안아산도 아닌 오송으로 정해지면서 충청의 민심을 달래고자 공주에 역을 설치하기로 했다네.

그것도 모지역의 유력 정치인의 입김에 의해 공주(직선거리 13km 실거리 20km), 부여(17km 23km), 논산(15km 17km)의 지도 선상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실제 여러 지장물을 피해 오려면 한참 걸리는 지금의 이곳으로 역이 선정되었다는 것이네. 오송 분기역일지라도 계룡면에 역이 세워졌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고, 반포지역이었으면 대전이나 계룡시의 접근성도 좋았을 텐데... 지금 공주 시내에서 역까지 가는데 15~20분은 소요가 된다.

 

공주에서 서울 가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가격, 우등이 9,000원이다. KTX는 용산까지 25,000원이다. 시간은 버스로 보통 1:30이면 되고, KTX는 가장 빠른 것이 58분으로 보통 1:05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가깝다는 공주에서 역까지 자가용으로 20분은 걸리니...


 

게다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하다보니 나온 이야기

허허벌판 위 황당 공주역’, 철피아 작품?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의 내용이다. 전 정권부터 철도의 민영화와 합리적 운영이 계속 제기되면서 그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기사다.

현 시스템은 철도 정책은 국토부에서 수립하고 철도시설공단에서 철도 등의 기반시설을 세우면, 철도공사는 지어진 시설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러다보니 토지수용이 편리하고 짓기 쉬운 방식으로 도심에서 외진 곳에 역을 건설하니, 실제 운영하는 철도공사의 입장에서는 계속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여러 예 중에 공주역이 한 사례로 소개되었다.

기사에서 철도는 인간이 만든 교통수단 중 가장 위대한 교통수단이라고 소개 한다. 가장 적은 토지를 파괴하고, 대량수송이 가능해서 에너지와 친환경성, 교통혼잡비용 절감, 최고의 안정성...

그런데 단점 Door to Door가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인구 밀집지역에 역이 위치해야 하고 다른 대중교통과 연계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건설초기의 편리성과 경영의 합리성(?)이라는 받아들이기 난해한 잣대로 사업을 추진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철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만, 내가 거기까지 이야기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다만, 100년 만에 들어선 공주역이 본질을 떠나 다른 많은 것들에 의해 뒤틀렸고 꼬여있다고 생각하니 공주에 사는 토박이의 한 사람으로 그저 쓴 입맛만 다실뿐이다.

 


 

> 내일

국가의 성장 동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보다 당장 공주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주어 듣다보니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산성 있는 산업활동으로 도시의 건전재정을 확보해서 체계적인 발전을 꽤해야 하는데, 뚜렷한 동력 없이 두 개 대학의 학생들에 의한 소비로 지탱이 되는 영세한 구조라고 한다. 그러니 두 대학이 하나로 통합해서 세종으로 이전한다니 머리에 띠 두르고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괜찮은 유적지가 많지만 제대로 관리되지도 못하고 있는 것마저 이용할 여력 없어 보이는 것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인 것 같다.

주변에는 대전이라는 대도시와 세종이라는 인구 블랙홀로 젊은 층과 중산층은 밖으로 밖으로...

공주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공을 하려면 공주를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 공주사람들이 지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스스로가 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사통팔달의 편리한 고속도로 교통망에 더해진 이번 KTX의 공주 진입은 편협함을 날려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런 기대를 가져본다. 금강 나루가 철도와 새로 난 국도가 그 기능을 대신하기 전까지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던 것 처럼 말이다.    관련글http://yyh911.tistory.com/176


100년 동안 질기게도 맺어지지 않던 철도와의 인연이었지만, 공주시장의 기념사에서 나온 말처럼 이제라도 한국의 미래의 중심이 될 고속철도 역사에 공주가 편승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앞으로 여러 각도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공주역이 공주뿐만 아니라 인접 시와 군의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백제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와 활용, 다른 지방자치단체와의 합심된 노력이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 마무리를 너무 딱딱하게, 관료적으로, 관념적으로 맺고 만 것 같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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