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과 금강철교
금강과 함께 긴 역사를 간직해온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도시, 공주.
그 금강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주의 도심이 있다. 이젠 세월의 흐름에 강 남쪽의 구 도심과 강 북쪽의 신 도심으로 확연하게 갈려졌고, 최근에는 세종시라는 블랙홀이 그나마 온기나마 남아있던 사람들의 인기척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건지 내 맘이 측은한 건지,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마치 가을걷이를 마친 썰렁한 들판에 쓸쓸히 서 있는 허수아비를 같은 기분으로 눈 앞에 덩그러니...
긴 역사를 흘려보내면서 이 땅의 진액을 다 써버렸는지 사람들이 틈만나면 정감 있는 이도시를 등지고 있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한 우둔한 한 사람이 내뱉는 투정일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엎친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덮친 주변의 대도시 개발로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자꾸만 쭈그러드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12월 연말행사를 위해 내 태어난 강남의 본가에서 강북 신관동에 있는 모임자리까지 걷기로 했다.
연일 계속되는 술자리에 가벼운 운동조차 없더 내게 이 도시를 느릿느릿 걸어으며 차분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2월 하고도 중반에 접어들었는데도 날은 그리 춥지 않아 걸음을 조금만 활기차게 내 걸으니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쯤이야 충분히 견디만 하더군.
도심을 느긋하게 걸어 해질녘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뿌옇게 맑은 하늘에 점점 차오르는 달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주산성 공산성 성곽의 선이 참 멋스럽다.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저녁이 되면 비춰주는 조명까지 한데 어우러지니 가던 길을 어찌 아니멈출 수 있겠어.
곰의 동상이 공산성 광장을 지나 공터에 우뚝 서 있다.
어릴 적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크고 나서는 이곳을 이렇게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쳐다본 것은 이 번이 처음 같다.
백제문화제 때 금강을 걸어가기 위해 수십 번은 지났을 터이지만,
수 많은 사람과 이벤트에 가려 시간을 부려가면서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기는 수십년 만이다.
지금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인데, 곰이 바라보는 곳이 해지는 서쪽 말고 동쪽이나 다른 쪽으로 조금 더 힘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웅진탑에서 북쪽으로 꿈틀거리며 자리를 잡아 틀고 있는 성곽을 바라보니 저 달이 여기까지 쫓아와 있는 것이여.
개구쟁이 발걸음으로 걸어도 뛰어도 자꾸만 따라오던 무섭기도 다정하기도 했던 그 노한 달이, 그 달이 이젠 머리털이 숭숭빠지고 있는 내 어른 발걸음까지 뒤꽁무니를 물고 쉬지도 않고 따라오고 있다.
어릴 적에는 금강대교까지 오려면 한참을 걸어왔어야 했다. 지금은 한 30분 걸으면 그뿐인데...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해서 겁대가리를 까먹은 나이에도 이 금강철교를 건넌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갖었어야 했다.
지금은 이리 좁아보이는 다리 위로 "북 → 남"으로 일방으로만 차량이 다닐 수 있던 다리다. 사진으로 보이는 오른 쪽은 자전거와 사람만이 다니는 안전한 공간이지.
그런데 예전엔 이 좁은 다리 위에 노란 중앙선도 없이 차들이 사이좋게 잘도 다녔거든.
그래서 버스를 타고 공주를 벗어날 때 항상 어머니께서는 차창밖으로 손을 내밀면 귀신이 팔을 떼어간다고는 하셨지. ㅋㅋ
마주오는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이 좁아 팔을 내밀면 십중팔구 큰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좁은 곳을 자전거로 또는 걸어서 간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 지금은 물이 많이 말랐지만, 그땐 공산성을 끼고 내려가는 금강줄기는 뭐든 삼켜버릴듯 검푸른 빛갈에 교각 주위에는 물살에 맞는 소용돌이까지 휘감아 돌았지.
차가 지날 때마다 흔들거리는 다리, 난간 사이로 보이는 검푸른 물결, 겨울엔 삭풍까지 몰아치니...
그런 금강철교를 느릿느릿 걷고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이 금강대교다. 금강에 유일한 다리였다지.
지금도 그렇거니와 교통상 중요한 지역(지금도 전국에서 단일 기초자치단체에서 가장 많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인 공주읍과 장기면을 열결하기 위한 시설물로 한강 이남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1933년/등록문화제 제232호) 당시의 철교는 대부분 철도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금강철교는 도로교로 건설해서 그 예가 드물다고 한다. 와렌 트러스 구조의 상현재를 곡현 아치 형태로 굽힌 디자인은 당시 교량 건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상 금강대교 안내문 내용 인용>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들마다 조금씩 해 주신 금강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옛 국립공주박물관 자리에 있는 충남역사박물관에서 글과 사진으로 읽을 수 있다.
금강철교를 2/3 쯤 지나면 기존의 다리에서 조금 툭 튀어나오게 난간을 설치해서 전망대를 만들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둔다.
그 전망대에서 다시금 가파른 절벽을 따라 꿈틀거리는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성곽을 바라본다.
전망대에서 남쪽만 바라보지말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제비의 꼬리의 형세를 했다고 하는 연미산이 눈에 들어온다.
홍수통제소의 LED전광판 아래에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금강대교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금강대교를 따라 계속가면 뾰족하게 솟았지만 끝은 두리뭉실한 봉우리를 바로 만날 것 같다.
두리봉이다.
두리봉 뒤로 저녁놀이 제법 야단스럽게 올라오고 있다.
어느덧 이제는 횡단보도를 건너야할 때다.
도심 속으로 들어가면 곧 잊고 말 공산성과 금강철교를 물끄러미...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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