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로 가는 길
2010.07.03.
갑사로 가는길
공주에서 9:30분 버스를 타고 갑사에서 15:10분 버스를 타고 나왔다.
번개 치다
갑사로 가는 길을 생각하면서, 혹시 모를까 산좋아에 번개 한 번 쳐볼까? 했는데 우짠 일로 2명이나 답신이 왔다.
아침이다
정말 이 사람들 가긴 가는 건가? 문자를 두 번 보냈다. 연락이 없다. 전화를 한다. 큰 인심 써서 같이 가준다니 정말 고맙구나...
한 사람은 사거리 버스정거장에서 만났다. 그래도 임씨는 양심은 있는지 준비물에 대해서 질의한다. “김밥 있어야 되나?” “당연하지” “물도 있어야 돼?” “당연하지”
원래 내가 탔어야 하는 옥룡동 동사무소 근처 정거장에서 또 한 사람 박씨가 탄다. 버스비 1천2백원 문자로 두 번이나 보냈는데, 기사 아저씨와 실랑이다. 어~ 그런데 이 사람 점심은 그렇다 치고 물도 안 챙기고 지갑만 달랑 들고 온다. 그래도 그 귀한 지갑을 맡길 사람이 그리도 없는지 임씨에게 맡긴다.
산은 평지가 아니다
박정자 정거장에서 내려 박씨가 뒤늦게 물 두병과 구운계란을 넣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편의점을 나온다. 검정비닐 들고 나들이 가는 양이 딱 아저씨 모양새다.
박정자 삼거리에서 지도를 펴고 협상을 한다. 제발 내 원망 말고 당신들이 적당한 코스를 골라보쇼! 그래도 단거리 보다는 조금이라는 완만한 코스를 선택한다.
《천장골 - 큰배재 - 오뉘탑 - 삼불봉 - 금잔디고개 - 갑사》
그리고 걷는다. 천장골까지. 아침부터 찌는 날씨, 그래도 해가 숨어서 다행이다. 이들 왜 이리 걸음이 빠른가? 인도가 좁은 탓도 있지만 나흘 동안의 병치레로 체력이 다한 나에게 저들의 빠른 걸음...은 따라 붙이 버겁다. 등짝으로 땀이 주루룩 흐른다. 이 분들 산에서도 이렇게 힘차게 걸으실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40분을 걸어 천장골 입구에 다다르자 임씨 동동주에 파전으로 형님들을 대접한다.
내가 살아 있구나
얼큰 술이 오르는지, 작은 술독 바닥이 보이자 바로 일어서자고 한다. 정말 내 몸이 이상한 것인지. 저들이 일취월장할 것인지... 남은 파전 한 쪽을 또 다시 검정 비닐봉지에 넣고 출발한다.
정말 이들 초반 기세가 남다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가자면 점심 전에 고개를 넘을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도 많이 버텼다. 임씨 드디어 코호흡을 포기한다. 역시 박씨 대단한 승부욕이다. 끝까지 선두를 내어 주지 않더니, 한 부부가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잠시 내게 자리를 내어 준다. 솔직히 난 내 페이스를 잃지 않으려 계속 그 속도로 간 것뿐인데, 박씨가 조금씩 힘이 드나그 이의 입도 조금씩 벌어진다.
지독한 열병으로 세상을 남달리 보게 된 나... 조심스런 마음에 보폭을 최대한 짧게 하고는 절대 오버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오르면 오를수록 얼마나 힘든지 팔뚝에서도 땀방울을 쏟아 내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뭔가 시원하다는 느낌이 단다. 나흘 동안 아니 일주일 내내 수축해져 있던 내 다리 근육에 모처럼 싱싱한 피가 도는 것 같다.
큰배재 앞 계단에서 잠시 보폭을 넓히다 보니 좀 오버를 했다.
같은 고통인데 이 고통과 그 고통은 왜 다를까?
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큰배재에서 거친 숨을 고른 뒤 임씨 무섭게 앞으로! 돌진을 명한다.
그 기세도 잠시 뿐, 그래도 그의 등산에 대한 사고방식은 많은 변화를 가져 온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하고 오뉘탑에서의 정취는 이 대목에선 그냥 지나쳐야겠다. 아쉽다.
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임씨에게 물어보자.
안개바다
그래도 힘들게 올라와서 산봉우리에서 내려 보는 경치 보는 맛이 일품인데, 오늘따라 삼불봉 아래로 안개가 자욱하다. 아마도 비가 내리고 난 뒤에 높은 기온 탓에 수증기가 골짜기 골짜기를 가득 메운 탓일 게다. 멀리 천황봉 조차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우리의 박씨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보니 뭔가 오늘 산행에서 소득이 있나보다. 집에서 그냥 뒹굴뒹굴하느니 이게 나을 것 같아 따라 나왔다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나 보다.
그런데 웬 파리가 이리도 많냐? 이놈의 파리 때문에 더 앉아서 뭔가를 만끽하고 싶어도 기분이 영 나질 않는다.
임씨도 연신 오늘 산에 오길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미안한 점이 있다.
사실 삼불봉은 오르지 않고 그냥 금잔디고개로 가야 한는데, 온 김에 봉우리 하나는 올라 호연지기를 외쳐봐야 할 것 아닌감? 그래서 삼불봉에서 금잔디고개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고 꼬득여 이들을 몰고 간 것이다. 사실 샛길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있지만 관음봉 쪽으로 가서 내려가야 하니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훨 빠르기에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아무튼 산에 오면 난 조금은 거짓말장이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善意란 걸 알기에 -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들이 이쁘기만 하다.
금잔디는 어디로 갔나?
금잔디 고개에 만들어 놓은 평상은 세 사람의 엉덩이에서 나온 땀으로 멋진 스탬프자국이 선명하다. 오래 자국을 남기고 싶어도 이내 하늘로 날아가는지 나무로 숨어드는지 사라지고 만다. 정말 땀 같은 땀을 많이 흘린 것 같다.
평상 선생은 평상에 눕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고개에 있는 이것들이 정말 금잔디 맞아? 박씨 말로는 그냥 풀이란다. 무지한 내가 봐도 금잔디는 아닌 것 같다.
그늘 하나 없는 평상인데도, 하늘을 가득 메운 회색 구름 덕에 그나마 꾸려온 포도 두 송이를 몽땅 해치우며 노가리를 푼다.
많은 사람들이 금잔디로 올라온다. 그들 대부분이 삼불봉 대신 산행 표지판 뒤로 나 있는 관음봉 가는 길(위에서 말한 샛길이다)로 홀연히 사라진다. 좀 늦은 시간 같은데도 자연성릉을 타려고 하는 것 같다.
용문폭포
본격적으로 갑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을 거꾸로 올라왔다면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정말 돌덩이들이 한시도 눈을 발끝에서 뗄 수 없게 한다. 예전에는 흙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일부러 돌을 모아서 만든 것인지 흙이 씻겨 내려간 건지 암튼 비가 온 뒤라 미끌미끌 위험했다.
그렇게 신흥암 주변까지 내려오니 이제 제법 계곡의 물줄이가 힘껏 뽐을 낸다. 풍덩 빠져서 땀으로 젖은 몸뚱이를 식히고 싶은 충동이 가득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용문폭포는 폭포다웠다. 시원했다. 폭포를 지나니 많은 연인들이 오간다. 대부분 폭포까지 올라왔다가 볼 것 다 봤다고 되돌아 가는가보다. 그들의 신발만 봐도 어디까지 갈지 대충 알겠다. 뾰족구두에... 그나마 운동화는 다행이게.
박씨가 한턱 쏜다
격한 산행을 마치고 갑사 입구의 정자에 앉아 뒤풀이를 생각한다. 국물있는 걸 먹고 싶다는 임씨를 따돌리고 에어컨 빵빵했던 2번 버스를 내려 우덜 모두 소금구이집으로 향했다.
소주 각 1병에 간 맞은 소면을 먹고 나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구나...
사실 우리가 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재밌을 텐데... 칙칙한 윤씨,박씨, 임씨만 함께한 산행이다 보니 운치라고는 눈치만큼도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오랜만에 셋이 함께한 산행이라는 자체에 다들 만족하는가 보다.
나? 이 더운 날 두꺼운 이불을 덮고는 오한에 시달리며 끙끙 앓는 바람에 흘린 땀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린 것 같은데 오히려 몸은 훨씬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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