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금오도 비렁길
1~3코스 12km를 예상했는데 실제 학동포구까지 15km, 4:30 소요
트레킹 코스가 중간에 1, 3에서 1~3코스로 변경되었는데, 코스 변경은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님들에 의해 바뀌었다는 점도 참 아이러니하다.
여수 신기항까지 여유 있게 움직이기 위해 출발시간 30분 당기기로 결정. 배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라 신분증 지참을 강조하느라 스팸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가지도 않을 사람들까지 문자 보내기 좀 그래서 참석 가능한 사람들만 따로 문자발송 그룹을 만들고, 변경 결정이 3일 전이라 변경된 시간과 신분증 지참에 대한 핵심사항을 스마트폰 안에서 정신없이 편집하다보니 1.토요일을 일요일로 잘못 쓰고, 2.점심을 준비하라는 말을 마치 제공하는 것처럼 만들어 보내고 말았다.
요일 오타 난 것은 바로 수정했는데, 점심 관련된 사항은 끝내 인지하지 못했다. 두포항, 점심 때 몇 분 젓가락을 들고 이리저리 배회하시는 모습을 그려보니 송구스런 맘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일정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리 헷갈릴 일은 아니지만 누구든 자기 일 아니면, 자기와 관련된 일인데도 아주 남 일처럼 객관적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니.
나도 내 본업을 하면서 틈을 내다보니 그것이니 – 게다가 다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니 다행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산행 전날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차량 이동 시간 내내 고문이 따로 없다. ㅋ
고맙게도 도시락을 싸준다고 새벽 2:30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마눌님 덕(?)에 술은 덜 깬 상태에서 잠이 그대로 깨고 말았다.
차량운행 시간이 갑작스레 변경된 데다 예상 탑승인원도 40여 명. 전・현직 산행대장님들이 한꺼번에 빠지시는 건 처음인지라 괜한 걱정에 구터미널서 차에 올랐다.
강남 지역만 14명이다. 예전 같으면 몇 명 더 보테서 한 차를 꾸릴 인원이다.
셔틀버스 마지막 구간, 많이 걱정했는데 40명의 인원이 예정된 시간에 OK.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눈은 감았지만 속이 편치 않아 계속 끙끙거린다.
여수라는 동네가 그 근처 다른 지역과 같이 섬도 아닌 것이 섬처럼 바다로 뛰쳐나와 있어 여수 시계를 들어서고서도 한참을 들어간다.
다행히 처음 계획보다 30분 일찍 04:30에 출발해서 그런지 여유 있게 돌산 신기항에 도착했다. 그러다보니 추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허름한 매표소.
승선권을 발급하는 여직원이 세 명인데, 가운데 앉은 사람이 덩치 값을 하듯이 출입문을 열어놓은 채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춥다고 문 닫으라며 큰소리를 뻥뻥 친다. 분위기 참 멍멍이 같다.
아예 예매는 안 되고 현장에서 조차 편도 승선권만을 발권한다. 게다가 40명에다 버스기사까지 일일이 신분증 확인하고 컴에 입력을 하는 삽질. 다시 40명이 넘는 승선권과 신분증을 개인 별로 나누어주고 검표원에게 신분증과 함께 확인 – 정말 일찍 출발한 것이 다행이다.
배를 타고 뭍을 떠난다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이 되어 있었는지 승선하고서야 다들 얼굴이 풀어진 것 같다.
하얗게 칠해진 사장교* 화태대교가 환하게 웃는 것 같아 보인다.
*사장교와 현수교
차이점을 찾아보니 너무 전문적인 용어로 설명했기에 뭔 소린지 모르겠더군.
내 수준에서... 사장교는 다리 상판을 교각기둥에 각각의 케이블로 직접 연결하는 것이고,
현수교는 교각기둥에 U자 모양으로 주 게이블 늘어놓고는 거기에 보조 케이블 매달아 다리 상판을 들어 올린 것이란다.
그래서 사장교가 건설비용이 저렴하고, 보다 좁은 거리에 많이 쓰인다고 하네.
25분.
짧아서 그런지 맘이 들떠서 그런지 사람들이 객실에 들어가 앉을 생각을 않는다.
조그마한 여천항의 모습의 사량도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1코스>
‘함구미 → 두포’ 구간, 5개 코스 중 가장 긴 거리다. 5km라고 하는데 사실 두포까지 6km는 더 되는 것 같다.
1코스가 시작되는 함구미항까지 함께 바다를 건너온 버스를 타고 이동. 1코스 시작점에 있는 경로당 옥상 난간에 그려진 “←비렁길”이라는 소박한 글씨 때문에라도 발길을 멈춘다. 단체사진을 찍기로 한다.
어라~ 간만에 많은 사람들 때문에 한 프레임에 넣으려 세 번이나 자리를 뒤로 옮겨야 하네.
잘 해야 한 번 쓰는 삼각대, 여행 내내 내 짐이다. 사진을 찍고 삼각대를 접고 배낭을 정리하고 나니 순식간에 일행이 모두 떠나버린다. 경로당 앞마당에는 할머니 한 분만이 이 썰물 같은 풍경에 항상 그려러니 하는 표정으로 서 계신다.
대신 맡은 1번무전기, 선두 그룹으로 가야하는데 벌써 다들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혼자 낑낑거리며 꼬리를 물어보려 애를 쓰는데, 밭에 비료 포대를 나르는 노인양반이 눈에 들어온다. 괜히 이 좋은 날씨며 이런 내 모습이 죄송스럽다.
섬 길은 보고 느낄 것이 많아 천천히 걸어야 한다는데...
비렁길이 처음 얼마간은 그냥 흔히 보아왔던 동네길로 이어지니 금방 질려한다. 완만한 길을 만만하게 보아 발걸음이 빨라져서 그런지 순식간에 선두와 후미 그룹의 격차가 벌어졌다.
그 지루함은 신선대에 들어서야 조금 해소가 되는 것 같다.
야~ 바다다!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상괭이의 등짝도 살짝 볼 수 있고, 하늘도 맑고, 트레킹 처음 긴장하게 만들었던 거센 바람이 어느새 잠잠해져 두꺼운 재킷은 배낭에 우겨 넣고 망중한을 느끼기엔 딱 좋은 날씨다.
그렇게 천천히 바라보고 느끼면 좋은데 선두는 벌써 신선대를 찍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한 1.5km를 걸으면 오르막 언덕에 다다르는데, 이동식 주막 옆 바위에 오르면 보이는 동네의 모습 - 우리가 처음 출발한 함구미항이다. 괜히 먼길을 돌아 온 것 같다는 생각에 좀 허탈하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해발182.2m인 낮은 봉우리를 비켜가는 길이다. 바닷가라 그런지 얼마 안 되는 높이의 산인데도 꽤 힘을 써야 하는 것 같다.
이 섬의 특이한 장묘 형태인 초분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고 이엉과 용마름 등으로 덮은 초가형태의 임시무덤을 2~3년 후 뼈만 간추려 일반 장례법과 동일하게 묘에 장하는 토속장례법. 초분을 통해서 최종 죽음을 확인하고, 뼈를 깨끗이 씻어 묻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산골 길을 벗어나면 탁트인 비렁에 다다른다. 멀리 신선대의 모습도 보인다. 너른 바위 위에서 자리 깔고 앉아서 도시락 까먹으면서 반주 한잔 하면 딱인 것 같다만, 무슨 시합을 하는지 다시 자리를 박차고 두포로 향한다.
멀리 보이는 섬이 나로도, 나로호를 발사하는 기지가 있는 섬이다.
섬 곳곳이 이렇게 석축으로 길도 내고 밭도 이루고 있다.
석축으로 이어진 길을 가다보니 두꺼비를 닮은 건지, 거북이를 닮은 건지 특이한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뭍 쪽인 북향으로 좀 완만해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해안도로가 나 있고, 우리가 걷는 남쪽 비렁길은 농장비가 다닐 수 있는 그냥 사람들이 벌어먹고 살고자 해안 비탈을 따라 난 길을 연결한 것이다.
1~2코스 사이에 끼어 있어 교통이 안 좋아서 그런지 해안가를 따라 띄엄띄엄 있던 집들에서 대부분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바다를 바다보고 아침을 맞이해서 석축사이의 길을 따라 석축 위의 밭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마치 성을 쌓듯이 돌로 석축을 쌓아 길을 내고, 밭도 지탱을 하고, 집도 짓고 살고 있다.
동네 어귀 전에 너덜지대를 발견. 석축이 흔한 이유를 알겠다.
1코스가 좀 길다보니 일행의 꼬리도 더 길어지는 것 같더군.
두포가 보인다. 두포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 산죽 터널이 인상적이다.(직포 마을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섬은 일부러 그리 심는 거 아닌가?)
바람이 세긴 센가보다. 요새처럼 쌓아 올린 돌담의 장난스런 모양에 살짝 미소가 그려진다.
실제 5km 훨씬 넘는다. 바다를 빼고는 조금 지루한 듯 피곤한 길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2코스>
‘두포 → 직포’ 구간. 3.5km. 1코스는 처음 바다를 접해서 그런지 지루했어도 인상에 남는다만, 2코스는 지루함을 넘어 피곤함을 느끼기 쉬운 것 같다.
1코스 끝자락, 2코스 시작점에서 점심 전을 펴기로 했다.
첫 번째 코스가 생각보다 길어서 그랬는지 나머지 코스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속출한다. 먼저 점심을 해결한 일행은 벌써 길을 잡아 들어섰기에 명색이 1일 1번무전기라 후미를 챙기는 걸 내팽기고 일단 길을 나선다.
시멘트길을 따라 씩씩거리며 오르다보니 멀리 사람들 살던 흔적이 있던 동네(양지포)가 보인다. 석축길을 따라 걷기만 했는데, 여기서 보니 석축위로 개간된 밭이 온전하게 보인다. 근처에 사람은 살지 않아도 여전히 밭은 일구는가보다.
지루한 것인지 지친것인지 바닷가에 있는 굴등 전망대까지 내려가지도 않고 동네 어귀로 들어선다. 남쪽이라 그런지 벌써 들꽃이 계단식으로 자리 잡은 집들 사이에 공터를 봄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조그만 계단식 동네를 지나고부터는 오르막이다. 오르막 때문에 다시 선두그룹이 나뉜다.
지나고 나면 짧은 그 오르막의 정점에서 직포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짰다는 전설이 숨어 있는 동네라고 한다.
전망데크에선 일행, 그 전설보다는 멀리 직포 포구가 학동일 것이라고, 빨간색 버스가 우리 버스라고 믿고 싶어 한다. 가까이는 앞에 있는 촛대바위의 교묘한 형태를 보면서 감탄한다.
다시 일행은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과 주저 앉아 있는 사람은로 나뉜다. 이놈의 무전기, 아이고~ 뭘 느끼기보다는 쫓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ㅎ
직포마을 입구 대나무 숲. 두포는 산죽으로 맞이하더니 여긴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직포마을에는 전설이 서려 있어 그런지 멋진 해송이 많다. 해송 사이에 그럴듯하게 앉아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만 저 분들 쉬지도 않고 내지른다.
직포마을 전경 - 멀리 빨강색 버스 여러 대가 보인다.
<3코스>
‘직포→학동’ 3.5km 짧은 산행. 가장 멋진 코스라고 하는데 다들 지루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아 어쩌나...
3코스가 가장 유명한 게 맞나보다. 이 코스만 집중해서 오는 사람들을 태우러 온 관광버스가 3대나 코스 시작점에 대기를 하고 있다. 사람도 지나온 코스에 비하면, 관광지라는 느낌이 물씬 느껴질 정도로 많고 연령층도 다양하다.
어쩜 처음부터 3코스를 돌아보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만 이미 지난 일인걸 어쩌냐.
1일 1번무전기의 짧은 생각으로는 일행 전체가 16:20배를 타고 다시 귀향하려면 이런 속도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포로 차를 불러서 일단 15:30까지 알싸하게 산행이 가능한 사람은 코스를 시작하는 것이고, 아니면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학동에서 조우를 하는 것이다.
3코스의 시작은 동백나무 숲, 동백터널로 시작된다. 직포에 들어설 때부터 보이던 봉우리 매봉을 향해 바닷가 길을 따라 돌아 올라간다. 동백과 이런저런 나무로 울창한 숲길을 따라가는데, 더운 날씨에 찾으면 시원한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숲길을 따라 계속되는 오르막에 좀 지칠 때 쯤 시원한 바다 조망과 함께 아찔함을 선사하는 갈바람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갈바람이란 남서쪽에서 불어와 협곡을 통과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사진에 담으려 자세를 취하는데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된다.
바다낚시
갈바람 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비렁을 만날 수 있다.
자연동굴도 보인다.
잠시 시원한 바닷바람과 조망에 머리를 식혀주더니, 이제 비렁길은 체력단련코스로 이어진다.
남쪽 바다를 따라 촘촘하게 이어진 등고선과 완만한 북쪽 등고선이 만나는 가파른 길이 매봉으로 이어진다. 매봉이야 고작 194.2m의 작은 봉우리인데다 직접 지나치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산의 가파른 코스 못지않은 칼로리가 소모되는 곳이다.
간만에 산행다운 거친 숨을 몰아쉰 대가가 매봉 전망대다. 비렁길 전체 중 가장 높은 곳이다.
금오도 비렁길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풍광을 좀 몸으로 느끼고 가지 성질 급한 몇몇 일행이 씩씩거리면서 앞으로 내달린다.
무슨 시합이라도 하는 것 같으이...
매봉전망대
매봉
'비렁길'을 검색하면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가파른 길을 내려서는데 양 무릎이 송곳으로 찔리는 듯한 통증이 시작된다. 비렁길 트레킹이라고 스틱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낭패다. 15km가까이를 걷게 되니 반기지도 않은데 기를 쓰고 어김없이 나타나는 통증.
통증을 잠시 잊게 해주는 비렁다리. 갠자굴통이라는 협곡에 놓여진 다리다. 협곡 안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인의 몸에서 나오는 바람과 같다 해서, 언약의 다리라고 소문을 내고 있는 것 같다. 함께 다리를 걸으면 백년해로를 한다나 뭐래나. 좀 깊이 생각하면 에로티즘아 묻어나오는 이야기다. 다리 중간에 투명한 강화유리를 깔아 자연스레 다리 위에서 한 번 쯤은 멈추게 만든다.
아마 이런 저런 이유로 3코스를 많이 찾는 것 같다.
갠자골통에서 이어져 나오는 협곡
비렁다리 중간에 강화유리로 아찔하게 조성해 놓았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식은땀을 흘리던 짧은 산행이 마무리된다. 학동마을로 접어드는 어귀에 석축과 어우러진 동백나무 터널이 정겹기만 하다. 아쉽기도 하고.
학동마을에서 늦게 내려오는 일행을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함께 올랐는데, 이럴 시간이었음 나도 좀 천천히 걸을 걸 하는 생각이다. 이제 서쪽으로 많이 기운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니 아까부터 느껴졌던 아쉬움만 더 커지는 것 같다.
버스가 포구까지 내려올 수 없는 꼬부랑길이기에 근 1km이상을 걸어올라 학동교회 앞에서 모두 무사히 버스에 올라 집으로...
멀리 매화꽃이 활짝 피었는데, 멀리서 찍어서 그런지 잘 안보이넹
어디를 가도 쉬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비렁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도 멋지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감 넘치는 길이도 했다.
좀 더 비렁길에 대해서 잘 알았다면 전략적으로 천천히 느끼고 갔을 텐데, 여천항을 떠나는 뱃고물에서 그런 아쉬움은 나만 느끼는 것은 나닐 것 같다.
언제 이 먼 길을 다시 달려오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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