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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도락산 - 雨中山行

by 여.울.목 2018. 5. 15.

도락산
7.7km (500m정도 헤맨 구간 포함) | 4시간
상선암주차장-제봉-삼거리-도락산-삼거리-채운봉-검봉-상선암주차장(원점)



2018-05-12_09-44-54도락산.gpx



비(雨).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복병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갈 수 있겠다 싶어 우산을 팽개치고 나선다. 평소 같으면 버스 실내등을 일찌감치 끄고 깊은 잠에 빠질 시간인데 술렁인다. 비 때문이다. 오늘 일정 변경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 된다. 도락산 대신 단양 관광이 어떠냐고.

 

산행을 접었는데도 뭣 때문에 흔들리는지 휴게소에 내려설 때마다 빗줄를 살핀다. 단양 근처에 다다르자 빗줄기가 더 거세다. 이제 산행은 접으련다.

아마도 역설적인 말이었으리라.

명색이 산악회인데 비와도 가야하는 거 아니냐?”

의무감에 젖은 1번무전기와 나를 비롯한 몇몇... 일단 상선암 주차장에서 하차를 한다.

화장실에서 만난 그분,

인간적으로 이런 날 산행을 접어야하는 거 아니냐?”

ㅋㅋㅋ 아까 그분이 이분이다.

 

반반씩 나뉘어 관광/산행

이러다 그치겠지 하던 비는 우등생처럼 꾸준하게 내린다.

비 피할 곳 없으니 걷는 거 빼고 다른 움직거리가 정말 귀찮다. 지도를 쳐다보기도 싫고, 경치를 바라보려고 해도 시야가 뿌옇다. 쉬는 것조차 귀찮다.

 

상선상봉과 제봉까지의 산행은 그렇게 그럭저럭 진행된다.

우두득 우드득빗방울이 우의를 때리는 소리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자세히 보려고 본다마는 항상 평면 위에 그려진 등고선을 그저 일종의 미학으로 생각하다보니 우중산행에 만나는 바위산의 고통은 전혀 예상하려들지 않았다.

제봉을 지나 도락산 삼거리까지 가려니 푹 꺼지듯이 내려서고는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삼거리까지는 잘 온 것 같은데, 날만 좋다면 가장 좋은 경치를 자랑할법한 신선봉~도락산구간에 다다르자 비가 바람을 타고 지랄을 한다.

신선봉을 지나서는 아예 비가 아니라 하늘에서 소금 알갱이가 떨어지는 것 같더라.

 

이제부터 멋진 경치인데...

이상하게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지리산 천왕봉 오를 때 이런 상황을 겪은 적 있다.

허기진다. 추위와 배고픔이 온통 나를 지배한다.
아직 양말까지 젖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바지는 흠뻑젖어 질질질 바닥으로 잡아 끌기 시작한다.

비록 정상은 평범하기 그지없다만 정상근처에 다다를수록 절경이 펼쳐질 것 같은 지형이지만, 어서 정상을 찍고 내려서고 싶은 생각뿐이다.



▼ 급히 내려오는 길... 그래도 이 철쭉터널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정상에서 일행을 기다리기가 참 힘들다. 영차영차 배낭을 열어 초코바를 우걱우걱 뱃속에 집어넣고 났는데... 그래도 춥고 배고프다.

함께 인증샷을 찍고는 도망치듯 먼저 하산을 시작한다.

이런~ 내려가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그만 해모산성(광덕사선원) 쪽으로 길을 잘못 들었다. 임도와 가장 가까운 길이기는 하다만...

우이 C8. 다시 기어오른다.


꼬랑지를 따라잡으니 먼저 내려섰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행들이 의아해 한다.

하산하는 길에 채운봉, 검봉, 범바위와 큰선바위, 작은선바위를 만나고 지났겠지...

그런데 뭐 이런~ 오늘처럼 깜깜이 산행을 한 것도 처음이다.

기상조건 때문에 시야가 답답한 것도 있지만,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나 폰을 꺼내 가늠하고픈 의지도 없다.

그냥 내려서기만한다.

 

비 때문이다.

오로지 비 때문이었을까?

숙취 때문에 힘들었나?

도를 깨우치는 즐거움이 있는 산이란다. 단양팔경 중 4경이 인근에 있다는데, 지나치면서도 상선암도 쳐다보지 못했다.

내 바쁘게 사는 모습이 그런가보다.

 

도락산에 올 일정을 잡아 놓고는 맘 상할 일이 있어 펑크를 낸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자꾸만 놓치고 마는 산행일정. 이번에는 꼭 가리라 다짐하고 거의 우격다짐으로 산악회 일정에 넣었다.

이것도 원래 다음 달인데, 두문동재-금매봉-매봉산 구간 산불예방기간 운영으로 6월 도락산과 바꾸어 일정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다 비와서 못 간다니. ~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려는 찰라, 욕심에 불을 지펴 기를 쓰고 올라간 산이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고,

너 이 녀석! 도 닦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냐?”

어쩌면, 몸 안 상하고 무사히 내려온 것에 감사하고 그나마 빗길에 길을 열어준 것에 감사해야겠다.

 

날맹이에 들어서니 비가 그친다.

“푸하하하---”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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