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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오서산(烏棲山; 790.7m)- 좀 늦었지만 인상적인 황금 억새능선

by 여.울.목 2020. 11. 14.

까마귀가 사는烏棲山 산
이래저래 몇 번 오른 기억이 난다.
추억이라는 빛바랜 일기장에 먼지 쌓인 채로 숨어 있다
헉헉대며 가파른 길에 거친 숨을 내뱉다보니 하나씩 떠오른다.

어쩌다 이리 세월만 흘렀는지 모르겠다.
요즘 하는 일도 내 몸뚱이도 장마 한 철 처럼 질척거린다.

쌍수산악회 회원님들과 오서산을 찾았다.

2020.11.14.
상담주차장-정암사-계단길-억새능선(왕복)-일부 임도길 따라-정암사-상담주차장 회귀
약 10km, 쉬엄쉬엄 4시간 반이나 걸렸다.

산악회 버스도 보인다만, 우린 번개산행 방식으로 방역활동에 최선을 다했구먼~ ㅎ.


#추억1
누구랑 찾았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재룡이었던가?
가파른 길을 벗어나와 억새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는 암릉부분에서 몇몇이 끓여먹던 라면 냄새.
어찌나 구수하던지.
오서산 정상의 활짝 핀 억새무리가 정말 장관이었다.
게다가 그 땐 시야가 참 좋았다.
펼쳐진 주변의 평야지대, 그 육지 안으로 밀물 때를 맞춰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능선 저편에는 갤로퍼 한 대가 서 있더만, 허탈~
임도로 편히 올라왔나보다.
참 신기한 동네였다.
그런 산행후기를 쓴 기억이 나는데 검색이 안된다. ㅎ


#추억2
산행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취학 전, 아니 유치원 이전? 녀석을 업기도 하고 달래서 걷기도하며 임도로 정상까지 올라온 기억이난다.
어쩌다 임도를 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쪽에서 근무했기에 길을 잘 안다는 천규가 안내한 코스였다.
산 정상에서 아이와 아이스크림 맛나게 나눠먹은 기억이 난다.
힘들었지만 시간 날때마다 아이를 들쳐업고 나섰던 산행.
내가 이 글을 정리하려고 컴 앞에 앉으려니,
나보다 훨씬 큰 산적같은 녀석이 - 그 때 우리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다 - 그 덩치에 내 무릎 근처에 코를 박고서는
뭐 하시냐고 어린양을 피우며 참견을 한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어쩌다 이렇게 세월만 흘렀는지 모르겠다.
이제 다들 제 방에 들어가 무언가를 한다.
시간을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더 값지게 써야한다는 맘을 가져야 하는데,
가끔씩 몸과 맘이 지쳐 술 마시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추억3
직장에서 왔다.
1600여개의 계단이 생긴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정말 지루했다.
맛나는 안주로 술을 마셨는데 젤로 추억의 농도가 떨어진다. ㅋ

 

2020_11_14__10_21_오서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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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미세먼지와 나무 사이로 쏟아진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광경은 더 멋졌는데, 아쉽다.

 

 

 

미세먼지로 인간세상은 뿌옇게 흐려있었지만,
하늘과 맞다은 산은 그래도 숨쉴만한 곳 같았다.
오르매,
정암사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길
1600여개의 계단이 어찌나 지루하면,
계단이 시작되는 곳마다 지하면 옛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라고 한다.
처음은 다들 견딜만해서 그런지 옛등산로로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하지만 계단 한 구간을 지나자 그 지루함을 못견딘 사람들이 들춰놓은 낙엽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잘 따라오던 일행은 이 지루한 계단 구간에서 하나 둘씩 떨어진다.
지루함을 달래려 시작했던 옛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어느새 계단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떼어 놓는 재미와 경쟁이 빨려든 나.
숨이 제대로 차오르고 땀구멍이 열린다.

 

 

▼ 계단구간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난 풍경~인데 별로 감흥이 없다. 미세먼지 탓이다.

 

 

▼ 이제 능선이 가까워 진다.
하늘과 맞 닿아 있는 억새능선! 얼마만이냐?
여기를 지나자니 옛 추익이 솔솔 풍겨나오더라.

 

 

▼ 하얗게 탐스런 억새꽃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더군.

 

 

▼ 성연저수지와 억새의 케미가 정말 일품인데, 오늘은 입맛만 다시고만다.

 

 

▼ 홍성 상담마을에서 시작해서 능선을 홍성→보령→다시 홍성쪽 상담으로 원점회귀했다. 보령 쪽 봉우리에서 오서산 능선을 바라봤다. 겨우살이 준비를 다 마친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든다.

 

 

내려올 때 다들 무릎 걱정에 계단길을 피해가기로 했다.
지도를 통해 내려선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조금 편하려고 더 먼 길을 돌아 온 것 같은 느낌이더만,
그래도 다들 편안하게 하산을 했다.

사실 중장거리 운전에 산행이 좀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고민이다.

그나저나, 내심 심란한 생각이 산행 중에 달아나길 기대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에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