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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다시는...싫다. 마티(203m) - 수정봉(675m) - 신흥암 - 갑사

by 여.울.목 2020. 11. 8.

다시는...다시, 같은 코스를 가라면 "싫다."고 말할테다.

마티(203m) - 수정봉(675m) - 신흥암 - 갑사

2020.11.08.(일)

고청봉을 거쳐 마티로 옮겨가기 전
암릉에 앉아 물끄러미 남서쪽을 바라보면 그리 고울 수 없던 능선이었다.
항공사진이든
등고선 지도를 보든 매끄럽게 이어진 산줄기가 어찌나 유혹적이던지...

 

2020_11_08_10_11_마티 수정봉.gpx
2.40MB

 

당당하게 마티고개에 내려선다.
빨랑 산행을 마치고 느러지게 낮잠을 자고 싶구나~ ㅎ

마치 속은 것 같기만 하다. ㅋ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이유가 있다.
떨어진 떡갈나무 잎으로 뒤덮인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LocusMaps를 여러번 바라보며 위치를 가늠해야 했다.

수정봉을 줄 세우게 만든 금남정맥 근처까지 가는 산줄기 내내 제대로 주변을 조망할 수 없다.
나무로 둘러쌓인 능선 곳곳마다 5분 이상 서 있다면 고독을 떠나 두려움까지 엄습할 것 같더군.

수정봉이 있는 금남정맥이 제대로 보일 때부터 조금씩 주변을 조망할 수 있더군.
그전까지 내내 왼 편으로 보이는 상신리 마을의 낯익은 모습만 드문드문.

조망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걷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헌데 수정봉 근처 봉우리에서 바라보니
지나온 봉우리 모두가 봉긋봉긋 이쁜듯 솟아 있지만
봉우리마다 어깨동무가 근근히 능선으로 손잡고 있는 모양새다.
체력소모가 많았을 것이다.
그나마 요새 중단거리 산행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견딜만했나보다.

첫 번째 뷰포인트, 비로서 휴식을 취한다.
지나온 봉우리다. 나무 속에 숨어 있는 가파름 지독하다.
따듯한 햇살 사이로 벌레들이 마지막 짝짓기 비행을 하더군.

수정봉이 점점 다가올수록 산은 더 가파라진다.
금남정맥에 능선에 발을 내딛고는
이젠 제대로 능선을 즐길 수 있겠다고 내심 안심을 했건만,
가관이다.
오르막이 거의 60도는 되는 것 같다.
스틱까지 하면 4개의 발인데도, 연신 떡갈나무잎에 미끄러져 헛발질이다.
게다가 곳곳이 날까로운 바위다.
바위를 기어오르기엔 살벌하고 비켜가는 길에도 만만치 않은데다
요놈의 참나무잎이 위험천만하다.
바위 위에 살짝 앉은 흙, 그 위에 낙엽이 미끄럼틀이다.
미끌어지면 가파른 바위에 부딪치고는 어디로 굴러갈지 모른다.
아찔하다.

첫 번째 뷰 포인트.
비로서 휴식을 취한다.
초코파이 하나, 차 한 잔.
그러고 보니 오늘 체력 소모도 많은데 도시락도 안 싸왔다.

어제까지 짖굳던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따듯한 햇살이 가득하다.
그 사이를 날벌레들이 부지런히 비행한다.
마지막 비행일지도 모른다.
짝짓기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수정봉 정상, 소나무 사이로 삼불봉

수정봉을 지나 삼불봉~자연성릉~연천봉으로 여유있는 산행을 생각했는데,
수정봉 정상 근처에 다다르니 체력이 딸리는 것 같다.
안전한 하산을 위해서는 중간에 내려서야 한다.

신흥암 쪽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무리를 했더니 무릎 통증이 일찍 시작됐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택?
매번 오르던 암봉에서 느꼈던 위험, 아니 위협은,
내려설때 2~3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스틱을 접어 배낭에 넣는다.
살아야 한다. ㄷㄷㄷ

수정봉~신흠암 사이에 있는 멋진? 암봉. 저 살벌한 암봉을 내려서야한다. 오를 때하고는 전혀 딴 판이다.
멋지지만 오늘은 아찔함이 더 크다.
후덜덜... 무사히 내려왔다

신흥암까지, 스틱 집어 넣고 네 발로 내려왔다.
무릎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도 오랜만이다.
천진보탑도 둘러보고,
신흥암을 천천히 둘러보며 내려선다.
신흥암을 찾은 사람들이 내 바지 꼴을 보고는 희한한 얼굴을 한다.
바지 3할이 온통 먼지 투성이다.

신흥암 천진보탑

신흥암에서 몇 백미터를 내려서면,
임도와 등산로가 갈리는 곳을 만난다.
지금까지 수 없이 이 길을 걸었지만,
한 번도 임도를 따라 오르내린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무릎을 위해 임도를 택한다.

임도는 처음인데,
운 좋게도 마지막 단풍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기회였어. 아팠고 고단했지만.

임도에서 만난 단풍!
가을 갑사, 내년에 또 보자!

산 속은 이미 끝인데,

그나마 산사는 마지막 절정에 다른 단풍이 고단함을 달래준다.
주차장 근처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음악소리가 예까지 들린다.

지친 발걸음이 마음조차 그쪽으로 끌고가려 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처음 같다.
그래도 다들 마스크는 쓰고 있군.

빨랑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다행히 마눌님께서 태우러 오셨다.
해는 조금씩 저물어가는데
아직도 滿秋를 즐기려 들어서는 차들로 오랜만에 갑사가 몸살을 앓는다.

근육통으로 잠이 몇 번이나 깼다. ㅎ
무릎 통증 후유증이 가장 길게 이어진 산행이었다.
그래서 그랬나?
일요일 산행 이야기를 금요일에야 쓰고 있는데,
한 주 내내 어찌나 고달프던지,
일도 그렇고, 숙취도 그렇고, 스트레스도 그렇고...
그 구간을 걷는 것 같은 한 주였다.

그러니,

다시는, 이 코스 타고 싶이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