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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덕유산(1614.2m), 단풍은 움츠리고.., 무주구천동계곡-오수자굴-중봉-향적봉

by 여.울.목 2021. 10. 23.

 

2021-10-22_덕유산_오수자_중봉_향적봉_002.gpx
2.22MB


2021.10.22.(금) 어쩌다 휴가를 냈다.
덕유산, 삼공지구-무주구천동계곡-오자수굴-제2덕유산(중봉)-덕유산(향적봉)-백련사-삼공지구 원점회귀
21.5km를 6:54동안 걸었다. 3.1km/h


걷다보니 내가 이렇게 길게 걸을 줄 몰랐지.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김밥 한 줄을 움켜쥔다.
몇 번이나 올랐던 덕유산이라 백련사를 피해 다른 코스를 찾는다.
혼자 가는 길이라 원점회귀를 해야하니 선택지가 좁아진다.

백련사를 비켜 오수자굴을 지나기로 한다.

오르기 전에 어떤 코스인지 조금 더 자세히 살폈어야 했는데,
이 곳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무렴 어떠냐 그냥 걷자.

바람마저 사뭇 다른 삼공지구 주차장

생각 외로 주차장은 한산하다.
큰 주차장은 텅 비어 입구와 조금이리도 더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다.

화장실서 볼일 보고 준비운동, 등산화 끈을 조이는데 바람이 차갑다.
예상은 했지만 의외로 칼지다.
목에 머프를 두르길 잘했지.

걷기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덕유산탐방지원센터까지 약 1km를 포함해서 백련사까지 7km조금 못되는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변수(?)가 하나 생겼다.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백련사 방향으로 700m
캠핑장 부근에서 '어사길'을 만난다.
어사길로 접어든다만, 아무래도 임도보다 시간은 더걸리겠지.

구천동 어사길 코스 3.3km, 1:40분 소요

몇 년 새 큰 건물이 들어섰다.
갈림길에서 백련사와 향적봉을 가려면 오른쪽 어사길로 들어서라고 자동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언제 이런 테마 길을 만들었나.
건물 말고 계곡 따라 군데군데 데크를 설치하느라 돈 좀 들인 것 같다.
구천동 어사길 코스는 완만한 코스로 가족이 함께 걷기에 좋은 탐방로다.
그냥 어사길만 여유있게 걸어 백력사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주차료나 문화재 관람료 따윈 없다.

어사 박문수가 구천동을 찾아 어려운 민심을 다독였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길이란다.
무작정 포장된 길을 걷는 것 보다 덜 지루하고 건강에도 좋은 것 같더만,
아무래도 산길이다.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는다.

사람들 살던 터전도 나오는데,
일부 구간에서는 문화재 발굴을 하고 있더군.
롱패딩점퍼를 입은 두 명은 여자(학예연구사 같다)가 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고는
가만 서 있으니 추운지 발을 동동거리며
발굴작업 하는 인부들을 감시하는 것 같다.
계곡물 너머에는 그들이 타고온 것 같은 승용차도 두 대나 보인다.
소형 굴삭기가 연신 매연을 내뿜는다.
특별하게 뭐 나올 것 같지 않은데 그들끼린 꽤나 진지했다.
시원한 계곡이 쉬지 않고 힘차게 이어진다.
간간히 보이는 빨간 단풍이 의무감으로 걷는 것 같은 내 발길을 멈춰서게 한다.

어사길이 길어질 수록 인적이 드물어진다.

 

오수자굴, 백련사-2.8km(1:20)-오수자굴-1.4km(0:40)-중봉

어사길은 잠시 쉬었다가 이제 계곡 왼쪽으로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백련사 가는 포장길은 뭘로 새로 포장하려는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있더군.

많이 걸었나보다. 7km남짓.
허기에 긴식을 입에 우겨 넣는다.
생각대로 구천동계곡을 따라 오수자굴~중봉을 통해 정상으로 가련다.
근데, 쉽게만 생각하고 왔는지 에너지 분배에 문제가 좀 있긴 한것 같다.
자꾸 허기진다. ㅎ

계곡의 폭은 조금씩 좁아진다.
간혹 계곡은 양쪽으로 갈렸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한참을 올라왔는데도 물소리는 여전히 우렁차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구간이 2km 정도 이어진다는 안내문과 함께 길은 거칠어진다.

1000고지를 훌쩍 넘겨 단풍은 대부분 추위에 움츠려 볼품 없이 사그라져 있다.
산행 안내도에서는 무난한 계곡길이라고 했는데,
갈수록 힘을 더 들여야 한다. 열이 난다. 걷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어느덧 자비심도 없이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솔직히 힘들더군.
계곡길만 9km넘게 걸었다.
구천동계곡과 Goodbye를 하고 본격적으로 중봉으로 올라서는 길 내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더군.

굴을 만난다. 오수자굴.
오수자라는 고승이 도를 닦은 곳이라고 한다.
겨울에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을 볼 수 있다더니 굴 안쪽 천장은 물방울로 가득하다.
평온함보다 불안함에 1분도 못되어 나왔다.
벌써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다.
탁 트인 풍경을 보면서 김밥을 해치우고 싶었는데,
허기에 지쳐 도저히 못 참겠다.

가을 단풍을 기대하고 찾았다.
오히려 여름이나 봄이 제격인 산 같다.
아니 가을 빼고는 다 괜찮나? ㅋ

중봉에 가까이 다가서니 키 작은 산죽이 잔디같이 깔려 있고 철쭉과 참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구상나무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중봉을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덕유평전이,
오른쪽으로는 정상 향적봉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이미 가을과 겨울 사이라 야생화 같은 아기자기한 풍경은 볼 수 없다.

 

중봉~향적봉, 약 1km(0:40)

환상적이다.

시절은 겨울의 문턱인데도 푸르름을 간직한 덕유대전.
가까이서는 잘 모르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볼 땐
이 고원에 축구장이나 골프장이라도 있는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조성된 탐방로 양쪽 난간은 목장길처럼 이국적 풍경을 준다.
(거친 산을 올라 정상부에서 평온함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5년전 육구종주(육심령~구천동) 때가 떠오르네,
그 바람에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드는데도 한참 중봉 언저리에서 머물렀다.
시간이 왜 이리 쏜살같이 지난다냐.
엇그제 같은데 5년이라니.
...

https://yyh911.tistory.com/279

 

덕유산 종주(육구종주, 육심령~구천동)

덕유산 종주 육십령-남덕유산-삿갓재-무룡산-중봉-향적봉-구천동 산행 후기를 끄적거린지도 벌써 2주 째다. 산행 후에 밀린 이런저런 일로 도저히 틈이 안보이더군.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yyh911.tistory.com

 

향적봉은 설천봉 곤도라에서 내린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정상석 부근은 코로나19 때문에 금줄을 쳐 놓았다.
에라~ 어쩜 잘된일인지도 모른다.
너도 좀 쉬어라.

중봉에서 감격스런(?) 옛 추억에 빠져 감정을 찐~하게 잡고 와서 그런지 향적봉의 감흥은... 맹탕이다.

 

가을산의 해는 짧다

향적봉을 오를 때마다 듣던 음악이 있다.
"In a beautiful season."
겨울 덕유산을 오르메 한걸음 한걸음이 지겨운 마음에 귀에 꽂은 리시버.
오토리버스가 작동하던 여러 곡 중 향적봉 근처에서 맞이한 음악이다.
붕우리에 다다르며 눈 앞에 펼쳐졌던 고산지대의 낯선 풍경과 함께 내 머릿속에 각인된 곡이다.

이상하게 오늘은 그 곡이 맘에 와 닿지 않는다.
힘들게 올라 맞이하는 풍경과
이제 정리하고 내려서야 하는 마음이 굳이 연결되지 않는가 보다.
그저 통증 없이 무사히 내려가길 바랄뿐이다.

가을산의 해는 그럴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겨울보다 짧다.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면 여전히 파랗지만,
주변은 그늘져 어둑어둑하다.

각설하고,
아직 해가 진 건 아니지만
골이 깊어 자꾸만 어두어지는 판에...
바람은 사그러들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기온이 차가워지고 있다.
백련사로 내려서자 어사길을 포기하고
임도를 따라 빠른 걷기를 시작한다.

하산 때 어디라도 걸터 앉아 여유롭게 단풍과 대화라도 하고싶었지만,
몸이 힘들어도 흐르는 계곡물만큼이나 빠르게 지나는 시간을 보니 맘이 급해진다.

어쩜 이리, 평일인데도 내 전화기는 고요~하다. ㅋ
그래도...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주차장은 아침보다 더 썰렁하다.

주변 펜션 어디선가 돼지고기를 굽나보다.
고소함보다는 숯과 달라 붙어 피어오르는 타르 냄새가 고약하다.

무릎이 잘 견뎌주었다.
오는 길 고속도로.
졸지 않으려 계속 무언가를 입에 집어 넣는다.
김밥 한 줄에 긴 산행인지 자꾸 뭔가 땡긴다.
퇴근시간과 겹친 고속도로,
차량 행렬에 맞춘 브레이크 등과 전조등이 멋진 네온사인 같다.

휴가.
이렇게 하루가 다 지났다.
마지막은 쉼 보다는 서두름, 아직까지 하고 싶은 일이 많은가보다.
힘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