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악산 산행에서 통증 때문인지 산행에 대한 두려움 이라는 장애물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꾸준히’에 중점을 두어 산행을 하고 싶다. 이것저것 산행에 대한 징크스를 이겨내고 싶다.
개천절 연휴 1.사무실서 일하기 2.가족과 함께하기 3.오늘은 산에 가는 날...
주말에 사무실로 나갈 때마다 옥룡동 정류장에 산행 채비를 갖추고 서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게만 보이더만, 오늘은 내가 그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아침 기온은 쌀쌀하지만 건물 틈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병사골-장군봉-큰배재-남매탑-삼불봉-관음봉-문필봉-연천봉-신원사
10.7km (5:13)
300번 버스
산성동 터미널서 09:00에 출발한 버스가 10분이 지나서 도착한다. 박정자에 내리려 버스의 하차버튼을 눌렀는데, 내 차림새를 보고는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주시는 친절한 버스 기사님
병사→장군→임금→신선
병사골.
산행을 하는데 계급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겠냐마는, 장군봉 능선코스를 가만히 들여 보니 참 재밌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코스의 들머리가 병사골 이다.
병사골을 영차영차 300여 미터를 오르면 암릉이 나온다. 예전에 이곳에 계단으로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는 이 커다란 바위 길을 따라 등고선을 직각으로 올랐는데, 친절한 탐방로가 그 길을 우회해서 새로 나 있다. 그래도 한 고비 쉬어가는 작은 봉우리에서 땀 흘린 후 보이는 박정자 교차로와 세종‧유성 시가지를 보고 있음에 아직 먼 걸음이 남았는데도 흠족한 마음에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휴식을 취한다.
잠시 동안의 성취감이 식기도 전에 숲길 오르막이 시작된다. 장군이 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하신리를 지나 멀리 세종시가 보인다>
장군봉.
멀리서 바라보면 웅장하고 용맹스러워 보이니 장군봉이라 했을 테고, 봉우리에 서면 사위가 한 눈에 들어오니 아래 병사들에게 이리로 저리로 옮겨가며 작전을 수행하도록 깃발을 흔들 수 있는 전망 좋은 터니 장군이 서 있을 만하다 해서 장군봉이라 했을 거라는 것이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장군봉에 오르면 이제 능선길이니 산을 다 헤집고 다닌 것 같은 자만심에 빠지고 만다. 장군봉 능선은 이제 시작이다. 법정 탐방로 중 이 코스만큼 체력소모가 많은 길도 드물 것이다. 보통 시간 당 2km 이상 걷는 것이 보편적인데, 배티재까지 기록을 보니 1.8km다.
자연성릉과 문필봉 능선까지 갈 생각에 조금씩 속도를 조절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앞에 신선봉이 보입니다>
<신선봉에서 바라보니 삼불봉 봉우리가 확연히 들어오네요>
임금봉.
임금봉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오름을 다 끝냈다는 안도를 잠시 뒤로하고 능선길 곳곳이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유격장을 방불케 하는 울퉁불퉁한 탐방로가 네 발을 요구하는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다. 그러자니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 나오면 편안함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임금봉을 한 번 찍어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본다. 장군봉 보다 소박하지만 눈 아래에 장군봉이 보이는 걸 보니 ‘임금’이란 말을 붙여볼만 하다.
신선봉
장군봉이 500, 임금봉이 600, 신선봉이 649미터니 높이에 따라 이름을 잘도 붙였겠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거친 능선길을 묵묵히 걷다보니 장군이 되고 임금이 되어 신선이 될 만도 하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입가에 베어든다.
이제 이 투박한 길의 끝이 보이는 구나~ 신선봉 바위에 걸터앉아 싸온 과일 몇 개를 집어 물고는 심심한 반성을 해본다. 장군봉에 올랐을 때만해도 이런 식이면 후다닥 돌아 늦어도 2시 버스는 탈 수 있겠다는 포부는 현실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지도를 보면 신선봉을 지나면 바로 큰배재 건만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 그런지 몸이 점점 둔해진다. 큰배재는 동학사 매표소에서 몇 천원의 기분 나쁜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는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대부분 남매탑을 최종목적지로 했는지 남매탑 주변은 온통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삼불봉부터는 점심 전을 펼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햇볕 잘 드는 바위를 찾느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다보니 어느덧 자연성릉은 관음봉 바로 밑 마지막 오르막으로 최후통첩을 하는 것 같구나.
오가는 사람들마다 자연성릉이 보여주는 광경에 탄성을 아끼지 않고 인증샷까지 날리느라 호들갑이 한창이다. 여러 번 올라서 그런지 그런 감흥은 떨어진다만, 자연이 주는 감동이야말로 여러 수행으로 얻는 그 무엇과 비슷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면 힘이 솟을 것 같았는데 다리와 엉덩이 부근의 근육이 풀려버려 더 무뎌지고 무거워진다. 그런 발걸음을 옮겨 관음봉에 올라섰는데, 잠시라도 서 있을 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서 피해줘야겠다.
<자연성릉 시작~>
<관은봉 바로 턱 밑, 마지막 오르막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올라간다. 예전엔 암릉오르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엔 계단이 생겨서 그 재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관음봉에서 바라본 동학사 지구와 멀리 유성 시가지>
<관음봉에서야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본다. 자연성릉>
여러분! 샛길로 다니지 맙시다!
세 개의 봉우리가 뾰족함을 서로 뽐내듯이 서있는 문필봉 능선. 능선이라고 해도 되나? 사실 볼일을 보기위해 관음봉에서 계속 향한 길을 그냥 가고 말았다. 원래 가파른데다 비법정 탐방로라 다듬어지지 않아 움직임이 쉽지만은 않다.
관음봉을 기준으로 해서 문필봉은 마지막에 있다. 녹슨 와이어 줄도 타고 네 발로도 기어가 하나, 두울, 이제 마지막 세 번째 봉우리다. 멋진 돌무지가 있는 문필봉이 바로 코앞이다. 힘을 내자!
“아구야~!” 깜짝 놀랐다.
누군가 그 돌무지에서 벌러덩 누워 있는 것이다.
이런~ 국립공원 공단 직원분이다.
요즘 철을 맞이해서 샛길 단속차 길목을 지키고 계신단다. 흡연, 쓰레기 무단 투기, 취사... 단속을 위해서. 나한테 해당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다행히 내 선량함(?)을 인식하셨는지 샛길단속의 의미를 몇 번 되새겨주시고는 훈방조치 해주신다. 사진 한 장 찍고 가고픈데, 맘 변하실까 후다닥 뒤를 보이고 내려선다.
괜히 찝찝한 마음 때문인지 연천봉에 올랐는데도 감흥도 별로구나.
<관음봉에서 바라보이는 문필봉>
<첫 번째 봉우리의 억새 틈으로...>
<와이어를 타고 내려가야 할 위험한 길이 있다>
<문필봉 능선을 지나다보니 멀리 삼불봉과 관음봉이 참 얌전해 보인다>
<바로 앞이 왼쪽부터 쌀개능선을 지나 천황봉-머리봉 이다>
이제 내리막만 남았다. 남은 간식을 먹으며 오후 3시20분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고 내려서기 시작한다.
역시나 지난 설악산에서의 통증 조짐이 조금씩 꿈틀거린다.
아~ 이런 18. 일부러 장군봉부터 페이스를 조절했는데...
계속되는 내리막길에 조금씩 무릎이 화를 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주변에 보이는 절경에 감탄할 새가 있겠어?
그래도 다행이다. 본격적인 통증이 시작될 무렵 보광사 뒤편에 도착했다.
휴~ 통증도 다행이고, 버스도 시간 내에 탈 수 있겠다.
낮잠을 자는 내내 불편해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릎 때문은 아니다. 그냥 좋지 못한 컨디션에 투박한 탐방로를 오랜 탄 것이 여기저기 불쾌함을 불러온다.
그래도 희한한 것은, 내내 머릿속을 누르던 두통과 시린 눈의 통증이 땀을 흠뻑 쏟는 동안 게운했다는 것이여. 내가 움직임을 한 번에 너무 몰아서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쉬지 않고 맨몸 스쿼트를 해서 그런지 그 놈의 통증이 잠시 겁만 준 것 같다.
잘 아는 산이라고 얕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겸손을 떤다고 떨었지만 내 몸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벗어내지 못했던 것 같어.
산 앞이건 뒤이건 항상 겸손하자.
통증은 몸이 건강을 위해 주는 신호라고 했다지. 산행에 대해서 되짚어보면서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산을 찾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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