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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2010.02.06.

by 여.울.목 2014. 8. 29.

아침부터 저녁까지~
2010.02.06.

 

신원사 주차장 - 금룡암 - 큰서문다리재 - 천황봉 - 쌀개봉 - 천왕암 - 벼랑바위 - 황적봉(천왕봉) - 치개봉(황적봉) - 야영장 입구

째려보기

얼마를 째려봤는가? 오고가며 저 산을 오르고 싶다는 마음에 욕심만 자꾸 키워갔다. 지도가게에서 2만5천분의1 정부지도를 샀지만 내가 원하는 저 산으로 가는 길은은 아득하기만 하다. 우연히 파란닷컴에서 ‘고산자의 후예들’에서 만든 지도를 보았다. 걸어 놓은 링크를 통해 들어간 그들의 지도 쇼핑몰, 배송비가 아까워서 계룡산과 지리산 등산지도를 함께 구입했다.

금요일 저녁, 설레는 맘에 배낭을 미리 꾸려 놓는다.

긍정적인 스트레스?

스트레스라고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이라도 조금이라도 심해지면 피해가 일기 십상이다.

영하의 날씨다. 영하 5도 정도.

아침 눈을 떴다. 주말은 이 포근한 이불 속에서 한참을 누워있고 싶다. 일어날까 말까? 여유 있게 일어났지만 나의 게으름 때문에 또 9시 버스에 신경을 모은다. 감기에 골골하는 아이들이 병원에 간다며 같이 옷을 입는다. 내가 좀 서둘렀으면 되는데 9시 버스를 놓치고 말겠다며 짜증을 내고 말았다.

사실 아픈 아이들 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할망정 운전이라도 해 줘야 하는데, 그래도 얼굴하나 찌푸리거나 같이 짜증을 내지 않는 안사람이 너무 고맙다. 고마운 마음에 큰서문다리재 아래에서 감사의 문자를 날렸다. 얘들에겐 미안타는 말을...

09:45 신원사 주차장

어쩐 일인지 버스 안이 썰렁하다. 정류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갑사나 동학사를 택했는지 내가 타는 신원사 버스에 타지 않아 등산복 차림은 50대 아저씨와 나뿐이다.

거의 다 와 청황봉과 쌀개봉이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 한 분이 이것저것 짐을 한아름 안고서는 신나가 달리는 버스를 택시 잡듯 세운다. 순간 카메라를 꺼내어 두 봉우리를 찍고 싶더라... 이상하게도 찍어댄 사진 중에서 쌀개봉만이 흐릿하게 나온다. 때를 놓쳤나보다.

주차장이 한산하다.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신원사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편 길로 접어든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한 5분여를 걸으니 입구가 보인다.

10:50 금룡암

길을 가면서 머릿속에 익혀놓아야겠다는 욕심에 진도가 더디다. 좀 더 탄탄한 길이 나오면,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 시작점을 확인한다.

숲 속 한 가운데에서 만난 집터에서 첫 번째 선택을 한다. 지도를 그리 열심히 들여 봤건만... 느낌은 자꾸만 산등성이로 가자고하는데, 그래도 지도를 믿기로 한다. 그리하여 만난 곳이 금룡암이다. 금룡암도 지나지도 않았는데 난 내가 꽤 멀리왔다는 생각에 빨리 큰서문다리재를 향해 올라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로에 던져진 한 마리 실험쥐처럼 여기저기를 들이대가 겨우 금룡암을 지난다. 이제 들고양이가 다 된 집고양이가 나를 노려본다.

10:55 큰서문다리재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막이다. 등고선 지도를 보면 색깔로는 고동색, 선들은 촘촘히 그려져 있어 얼마나 가파른지 보여준다. 온통 나무에 가려 경치라고는 볼 수도 없다. 길이 희미해진 기억처럼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가끔씩 만나는 하늘색 비닐끈 리본이 안심하게 해준다.

기차화통처럼 씩씩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잠시 바위 위에 배낭을 내려 놓는다. 자켓은 돌돌 말아 배낭 안에 넣고 겹겹이 입어댄 옷의 단추를 풀어 헤친다. 열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조금 덜어온 위스키 한 모금이 싸~하게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퍼진다. 안주는 초코바다.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한참 산행을 했을 때 나타나는 하체의 피로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그나저나 이 깊은 산속에도 어김없이 버려진 쓰레기... 줍고 싶은 마음, 날 풀리면 둘둘말아 넣을 자켓 대신 꼭 쓰레기봉투를 가져와 담아 가야겠다. 지금은 몸도 비틀거리고 배낭에 쓰레기를 담을 공간도 없다.

아 드디어 고갯마루에 걸터앉는다. 사람들이 매어 놓은 리본이 어지럽게 달려 있다. 제대로 오긴 왔나보다. 무슨 구릉처럼 생긴 지형이다. 나무들도 그리 우직스럽지 못한 게 동네 야산 같다. 집에 와서 안 사실이지만 정부 지도(제작연도가 96년에 제작, 05년에 수정한 지도다)를 보니 ‘밭’표시가 되어 있다. 그래 밭이었고, 집도 있었다. 스님들이 살던 곳인가 화전민들이 살던 곳일까?

아무튼 그 여린 나무 사이로 머리봉이 보인다. 그 왼쪽으로는 천황봉이다. 그런데 머리봉과 천황봉이 우리집 지붕처럼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저렇게 가까이?

그렇다면 얼마나 가파르다는 것인가? 정말로...

세 갈레의 길이 만나는 곳이다. 당연히 저 지붕을 향해 위로 위로 향한다.

12:35 천황봉 - 그 길이 아니었어!

헤매다. 갈피를 잡지 못하다. 그래도 다행히 갈피를 잡았다. 살았다.

길이 너무 탄탄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산에 왠 목수가 있나? 망치질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딱따구리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근 10여 미터에 다다르자 후다닥 자리를 옮긴다.

<그 딱따구리다>

금방이라도 능선에 닿을 것 같았다. 열심히 오름에 갈림길이 나온다. 노란리본들은 이 길 말고 저 길에 매어져 있다. 그 하늘색 리본은 없다.

아무튼 길도 괜찮기에 계속 오른다. 길이 아닌 듯...? 사람이 오간 흔적을 따라 오른다. 너른 바위가 나타났다. 굉장히 넓은 바위인데 가파르다. 항공사진으로도 보이는 곳이다. 낑낑거리며 20여 미터나 되는 바위 정상에 다다랐다. 아~ 저기 보인다. 사자봉 그 위에 천황봉, 그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머리봉...???

머리봉?

<머리봉>

내가 가려는 코스가 머리봉을 지나 천황봉이다. 근데 이 길은 천황봉으로 직행하는 길이다. 끙~ 길을 잘못 들었다. 큰서문재에서 위로가 아니라 아래도 갔어야 한다. 그래야 머리봉을 지날 수 있었을 터인데...

지금부터가 고생이다. 다시 내려가 큰서문다리재와 서문다리를 거쳐 머리봉을 향해 가기엔...

<멀리 국사봉과 향적산이 보인다>

그저 저 곳을 향해 갈 뿐. 다행히 리본 하나가 매어져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고생 지질이다. 낙엽이 왕창 쌓여 있어 이게 길인지 물길인지... 길이 분명한데 가다 끊기고... 미치겠다. 길을 잃었다.

그동안 한 가지 얻은 경험, 이럴 땐 산등선을 타면 된다. 열심히 하늘과 맞닿은 곳으로 이동한다. 와~ 정말 길이 있다. 그것도 정말 등산로다. 반갑다 하늘색 비닐끈 리본!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연천봉다>

저기 연천봉이 보인다. 연천봉과 같은 높이다.

사자봉에 닿으니 너무 가파라 사자봉을 볼 수 없다. 천황봉을 오르기 위해 천황봉 아래로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돌아 어럽게 천황봉 근처에 다다랐다.

<정말 사자를 닮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천단’에 갈 수 있는 걸까? 한 10여분을 헤매어 중계시설 이곳저곳을 도둑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다 올랐다.

이 느낌! 설명할 수 없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도저히 머리봉을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철문에 있는 초인종을 눌러 군인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이 좋은 산 위에 등산객이라고는 나 말고 없다.

13:15 쌀개봉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다. 천황봉 정상은 바람 잘날 없고, 밥을 먹기엔 왠지 불안하다. 저기 능선을 바라보니 햇볕도 따사로울 것 같다. 조심스레 눈길을 내려와 또 다른 중계탑을 지나 멋진 곳에서 자리를 폈다. 앞엔 연천봉과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관음봉이 보인다. 그 사이에 움푹 내려앉은 계곡엔 먹잇감을 찾는 한 쌍의 솔개가 내 점심을 불편하게 한다. 남은 술과 김밥, 컵라면을 몽땅 입안에 넣는다.

이 바위 봉우리가 쌀개봉이란 걸 밥먹으면서 몰랐다. 봉우리를 내려와 통천문을 내려와 다른 능선에 다다라서야 몇 번이나 은선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보던 그 봉우리에 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천문>

14:20 벼랑바위

능선

<앞에 펼쳐진 자연릉~ 멋지다>

능선이라고 생가하면 대부분 한 번 오름에 어렵지 오르고 나면 오르락 내리락 재미에 시간보다는 지나는 거리가 더 많아 다닐만하다. 그런데 여긴 아니다. 내려오는 길... 내가 이리로 오르지 않은 것도 다행일지다. 내려오는 내내 길게 늘어뜨린 스틱에 의지해 충격을 완화시켰다.

너무나 가파른 내리막길이지만 펼쳐지는 풍경에 셔터를 누르느라 시간을 너무 소모했다.

바위 이름이 벼랑바위란다. 정말 벼랑이다.

16:05 천왕봉

천황봉이 아니라, 천왕봉이다. 쌀개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천왕봉과 황적봉은 정말로 온화한 바위산이었다. 누런 빛깔만큼이나 포근할 것 같았건만... 녀석.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계곡따라 동학사~학봉리~박정자까지 보인다>

아직 발에 익숙하지 않은 새 등산화를 다시 고쳐 매고, 배낭의 위아래 벨트를 조여대고는 옷이며 배낭의 모든 지퍼를 꼭꼭 여민다. 아~ 그냥 가파른 바위를 오르는데 도움을 주는 줄이 아니다. 90도를 넘어서기까지 한 경사도를 오르려니 이제 힘이 다한 체력에 이제는 정신력만이 내 생명줄을 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긴장이 된다.

간신히 밧줄 타는 곳 두 곳이나 지났는데 정상까지 또 네 발로 바위를 올라야 했다.

<온화한 모습 속에 숨겨진 녀석의 진면목은 쓰라리다>

휴~ 가까스로 오른 천왕봉 위에서 마른 목 축일 물을 찾는데 이제 한 모금이면 마지막이다. 추워 물도 별로 안 마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 마시고 말았다.

<사진보다 가파르다>

17:35 황적봉

내가 왜 이 산을 깐봤는가? 이제 힘든 것에 더 힘들게 하는 게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너무 빠르다. 서둘러야 한다. 서두르는 바람에 장갑까지 잃어버렸다. 이제 스틱 들고 가는 것도 힘이 든다. 체력도 다해가는데 맘까지 급해진다. 이러다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아 근데 사람들이 별로 안 다니는 길이라 계속 머리를 숙이고 다녀야 하는데 잠시 멍 때리다가 머리를 나뭇가지에 심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피나 안 나면 좋겠다. 아프다.

이 곳 경치도 정말 좋은데 경치 감상할 때가 아니다. 지는 해가 명암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삼불봉과 장군봉이 참 좋다.

<저녁 해가 내려갈 길을 밝혀주고 있다>

18:00 수련원 입구 - 산행을 마치다

내려 온 이 길, 대로변으로 나가려는데 이곳이 도자기 굽던 가마터라고 둘레를 철조망으로 빙 둘러쳤다. 아~ 끝까지 힘드는구나. 담장을 힘껏 뛰어 넘었다.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 없이 돌아다녔다. 중간에 GPS까지 말썽이라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지만 마구 헤맨 거리까지 합쳐 최소한 15km이상은 걸은 것 같다.

정말 깐봐서 미안한, 아니 죄송했던 산이었다. 근데 깐볼만도 한 것이 매일 지나치는 산이요, 자주 오르던 산이기에, 산이 너무 겸손하게 다가왔다. 어리석게도 내가 겸손치 못함이 더 컸음에도.

산행 막바지엔 추운 날씨에도 물이 얼마나 마르던지 수통의 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조금 더 걸었다면 사막 위의 고행자처럼 될 뻔했다.

하지만 좋은 풍경... 뭐라 말할 수 없다. 그 풍경에 사진을 찍느라 더딘것에 한 몫을 했다.

다음 번엔 넉넉한 마음으로 쓰레기 봉투 꼭 챙겨서 들리고 싶다.

내가 웬만해서는 다리에 알이 배기질 않는데, 힘들었나보다. 2~3일 동안 통증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