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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향적산_2010.03.27.

by 여.울.목 2014. 8. 29.

향적산(香積山)

감기

지난 목요일을 절정으로 감기에 흠뻑 젖었기에 이번 산행을 감행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목요일엔 카풀만 아니었다면 조퇴하고 일찍 집에 와서 이불 푹 뒤집어쓰고 눕고 싶은 맘이 가득했다. 정말 독한 감기다. 그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 있기에 가야 되는지... 내 몸뚱이가 무척이나 걱정된다.

하지만 산행을 하지 않은 지도 벌서 몇 주가 지났다. 향적산이라는 곳이 그다지 험난한 코스는 아닌지라 반나절 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답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산좋아 정기 산행일에 셤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구체적으로 산행정보가 파악 되어야 장소를 변경하든 시간을 조정하든 양단간에 결정을 할 수 있으리라.

무엇이 경제적인가

아침에 그리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아무리 대중교통을 찾아봐도 내가 사는 곳에서 그 곳까지 택시 빼고는 달리 대중교통이 없다.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리 편한 걸... 버스시간 맞추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아낄 수 있기에 시간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기에 느긋하게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이리도 편하니까 사람들이 너도나도 차를 끌고 나오나보다. 그래서 내 뱃살이 이렇게 갈수록 늘어나는 게지... 하지만 요즘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다. 가는 길에 평상시처럼 같은 돈만큼 기름을 넣었는데 연료계 바늘이 게으름을 핀다. 아무래도 주유소에서 장난치는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향적산

향적산은 계룡면 엄사리에 있는 산이다. 계룡산 줄기가 뻗어 나와 이곳까지 세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 멀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계룡면이 아니라 계룡시다. 기다란 계룡산 줄기를 빙~ 돌아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것이니까 공주에서 계룡시까지의 거리는 30~40km 정도고 시간도 30~40분 정도 소요된다.

긴 터널과 짧은 터널을 지나니 짙은 색으로 다가오는 산줄기가 보인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500m대의 능선이 계룡대와 계룡시를 호위하듯이 길게 남북으로 병풍을 치고 앉아 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살짝 시내를 거쳐 엄사중학교를 거치니 내가 올라야 할 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산행 소요시간 : 2시간 35분(점심 2~30분 포함)

결과부터 이야기 하자면,

주차장에서 산을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좀 난이도 있는 코스, 오른 쪽으로는 좀 완만한 코스다. 다음 카페에 글 올려놓은 ‘초보 산행인’이란 분이 택한 곳은 오른 쪽이다. 헌데 그나마 등산객이 내려오는 길은 왼쪽이다. 그리고 찌그러진 함석 이정표에 ‘국사봉’하고 가르키는 곳은 왼쪽이다. 오른 쪽은 삼림욕장이다.

우리 일행의 산행 코스는 아무래도 오른 쪽을 통해서 올라가는게 좋을 것 같다. 알싸하게 왼쪽으로 올라가는 것도 좋을 터인데, 아무래도 원성이 심할 것 같다.

11:50 무상사 주차장 도착, 산행시작

무상사는 커다란 2층 누각 형태의 비싸 보이는 건물 두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생각했던 - 반은 민가고 반은 사찰의 형태 - 와는 달리 제법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올라가야 하나? 을씨년스럽다. 3월 하순인데도 봄 향기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고 바람 때문에 한겨울보다 추위를 더 느끼느니 옷깃을 다 여미고도 모자라 수건으로 목을 감싼다.

12:13 이름 모를 기도 도량

허걱~ 시작부터 오르막이 좀 심하다. 그렇게 이렇게 오르막은 완만할 틈을 보이지 않고 계속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름 모를 기도 도량. 그래도 시스템창호로 외풍은 차단한 것 같다. 이곳을 비켜 10미터를 가니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보인다. 아래로 저수지를 낀 무상사 주차장 주변도 보인다. 잠시 노란 산수유 꽃 망울을 바라보면서 숨을 고른다.

12:25 향적산방

향토로 지어진 헛간? 아니 화장실 같다. 향적산방이라는 조그만 알림판을 지나니 ‘묵언수양지 향적산방...’ 어쩌구 하는 문구가 나온다. 민가 3~4채로 움푹 패인 지형에 맞게 ‘ㅅ’자 형태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길이 헷갈려 물어 보고 싶지만 ‘묵언...’이라는 말 앞에서 마당을 쓰는 저 남정네에게 말을 걸기가 좀 그렇다. 나뭇가지 위에서 부리에 뭔가 가득 물고 있는 가마귀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말시키지 말라고 대충-자세히도 만든 향적산방의 이정표를 따라 숨도 못 고르고 또 오른다.

12:30 장군암

오랜만의 산행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감기에 너무 고생한 내 몸 탓이다. 완만함이라는 틈을 별로 주지 않은 이 코스 덕에 두 다리는 이미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내 근육에 다시 힘이 불어넣어지길 바라며 열심히 걷는다. 죄다 동여 맸던 옷깃을 풀어 헤쳐 열기를 빼려고 안간힘이다. 그렇게 조용했단 향적산방을 지나니 나만이 아니라 많은 등산객이 보인다. 한 무리는 10여명으로 능선을 타려는지 산허리를 감아 돈다. 다른 무리는 두 쌍의 부부인가 오고가는 말이 정겹다. 한 5분을 오르니 장군암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이 없었다면 암자인지도 몰랐을 게다.

12:40 헬기장

내가 싫어하는 계단형 등산로, 잘 가꾼다고 해 놓은 것이지만 내 걸음걸이와 내 숨 쉬는 사이클을 그 계단에 맞출 수 없으니 내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게 쉴 틈도 없이 이어지던 오르막은 헬기장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넓은 헬기장에 이미 두 명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다. 심한 바람을 생각하면 양지바른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기서 따라잡은 두 쌍의 부부 등산객 무리는 완만한 코스(320m)로 나는 헬기장을 가로질러 바로 가면 논산 상월면 대명리가 나온다는 이정표에서 향적산 봉우리로 향한다.(200m)

같은 봉우리로 가는 길인데 한 곳은 200m 한 곳은 300m 다. 가파름을 알 수 있을 게다.

<내 등 뒤로 북쪽을 따라 올라가면 천황봉이다>

12:50 국사봉574m

이제 간간히 밧줄에 의지해 거의 50~60도에 가까운 경사로를 오르니 너른 논산 상월면의 경치가 펼쳐진다. 너른 곳이기도 하거니와 계속 가파른 산만 보다 갑자기 들판이 보이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흐린 하늘 사이로 보이는 태양이 유독 그곳만 비추느니 신천지 같은 느낌이다.

<저 너머가 논산 상월면 일대다>

군사제한구역이니 뭐니 콘크리트 말뚝이 이런 음침한 날씨엔 멀리서 보면 공동묘지의 표지석 같다.

그래도 이 맛에 등산을 한다. 정상이다.

이 정상에 콘크리트로 중국의 철학이 담긴 저런 것을 만들어 놨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쿵푸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말들이 나온다. 북두, 남두....

향적산이 맞다. 그런데 거기에 산악회사람들이 국사봉이라고 같이 기재를 해 놓았다. 국사봉은 남쪽으로 2km는 더 가야 하는데...

<가까이 무상사 앞 저수지와 멀리 계룡시가 보인다>

멀리 상여바위가 보인다.

향적산에 대한 산행자료를 찾다가 어느 누리꾼이 써 놓은 글이 생각난다. 뭔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어쩌던 형제가 하늘의 천둥번개를 맞아 그대로 바위로 변했다는... 향적산에서 남으로 500미터를 더 가야한다. 그곳 바람이 너무 거세다. 바람을 피해 다시 되 돌아와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상여바위, 정말 벼락 맞았나 쪼개져 있다. 그 뒤 남쪽으로 황산성까지 줄기가 뻗어 있다. 언제 가보련다.>

못 볼걸 보다.

모 볼걸 보고 말았다. 향적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8.5km 가면 황적산이고 등산로도 꽤 깔끔하게 닦여져 있다. ‘연산’쪽의 지도를 한 장 구입해야겠다. 횡단이니까 오고갈 대중교통도 알아 봐야 하고... 4월엔 요 능선을 탈수 있으리라.

13:30 다시 출발이다.

상여바위에서 다시 향적산으로 와서 북쪽으로 능선을 탄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계룡산 천황봉에라도 갈 것 같은 기세로 완만한 능선을 타고 간다.

열심히 가다보니 4층 바위탑도 보인다. 힘센 장사가 올려놓은 건지 자연이 빚은 산물인지, 희한하게도 주변에는 잡석도 없이 동네 마당처럼 그냥 흙바닥이다.

꽤 긴 거리인데도 완만한 내리막이라 그리 힘들지 않았다.

13:50 제한구역

북쪽으로 향하던 산줄기가 가로막혀 있다. 2017년이면 몇 살이냐? 그 때까지 저 곳까지 숲을 보존하기 위해서 출입을 통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건지 군사시설 보호를 위해서 그런 건지 제한구역 표지판의 말이 모호한 점이 있다. 2017년엔 군사시설 보호 때문에 못가는 거 아냐?

동쪽으로는 금강대학교가 서쪽으로는 계룡대 건물이 보인다.

14:10 경고문, 운동시설

이제 가파른 내리막이다. 그 내리막을 한 10여분 정도 내려오니 이제 그나마 그 가파름도 끝이다. 계룡대로 향하는 길과의 갈림길에 또 경고문이 있다. 너른 터를 다져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은 걸 보니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는 모양이다.

14:25 무상사 원점회귀

경고문을 지나 100m를 내려오니 민가인지 무속인의 집인지 한 채, 약수터도 있다. 그리고 좀더 내려오니 또 한 채의 민가... 이제 등산로가 아니라 차들이 지날만한 완만한 소로다. 한참이나 돌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길이 거의 평지에 가까워 생각보다 빨리 원점으로 돌아 왔다.

내려오는 길, 이제 오후라 바람도 잠잠해져서 그런지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띤다.

누리꾼의 산행기를 읽으며 ‘어려운길 쉬운길’에 대해서 읽었지만 막상 갈림길에 접한 등산객이야 가파른 등산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산좋아 산행 때에는 내 코스 반대로 한 바퀴 돈다면 3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려오는 길, 가파른 곳도 잘 지났는데 완만한 소로에서 자주 발목을 삐끗한다.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간만에 근육에 힘을 주다보니 힘이 다 빠져 발목가지 다 풀린 셈이다.

다시 찾고 싶다면, 정말 청명한 날이면 좋겠다. 주변의 풍경이 참 좋고 등산로에 철쭉이니 진달래니 봄에 멋을 뽐낼 생명체가 많기 때문이다. 이 날은 정말 바람도 세고, 체감기온도 낮아 점심 먹는데도 고생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맛있는 산이었다. 아니 멋있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