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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대중교통] 계룡산, 신원사-연천봉_2009.12.27.

by 여.울.목 2014. 8. 29.

계룡산, 신원사-연천봉
2009.12.27.

 

계룡산...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계룡산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 말이다.

버스비와 산채비빔밥 사먹을 돈만 있으면 되니까, 학창시절부터 맘 편하게 찾던 곳이다.

사실 맘은 편해졌지만 몸은 힘들었다. 오름에 내림에 힘든게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3일 연휴

첫날은 전날 마신 술 땜에 생긴 주독과 크리스마스라는 것 때문에 가족과 함께는 했지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둘째날,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했다.

오늘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자꾸 아들이 맘에 걸린다. 아들이 같이 놀아달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버스를 타고, 능선을 타고 갑사로 내려왔을 텐데... 빨랑 갔다가 빨랑 오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 신원사-연천봉-자연성릉-관음봉-... 자꾸 욕심이 날 것 같다.

주차장09:45 - 소림원(길을헤매다)10:00 - 연천봉11:15

신원사-연천봉

자가용을 타고 가니 한결 여유롭다. 더군다나 이렇게 추운날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된다.

마침 신원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막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주차장엔 내 차까지 달랑 3대밖에 없었는데 버스에서 저 많은 사람들이 내리다니... 나만 버스를 타고 다니는 건 아닌가보다.

영하 9도, 춥다.

너무 춥다. 왼손 세끼손가락 부근이 자꾸 거슬린다. 너무나도 차갑다. 장갑을 벗어 바지주머니에 넣고, 다시 오른손으로 열심히 주무른다. 자꾸 그 아픔이 떠오른다. 세끼손가락이 자꾸 불쌍하게 느껴진다.

추위도 잠시, 좀 걸으니 온 몸에서 열이 난다. 시렵던 손도 이제 살아난다. 겉옷이 답답해서 배낭에 넣었다.

소림원 NO, 보광원 YES

신원사-연천봉 코스, 가본 사람들은 다 알거다. 얼마나 무료한 코스인가? 더군다나 잡석이 많아 자칫 발목을 다칠 우려도 있다. 연천봉 자락과 천황봉-쌀개봉의 자락 사이의 깊은 계곡에서 1시간 하고도 50분을 허우적거려야 연천봉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이 좀 빠른 코스,

몇 년 전 직장(공주교육청) 산행 시 알게 된 후로는 '신원사-연천봉' 코스는 꼭 이 길로 오른다. 지도를 보니 구 코스로 표시 되어 있다. 점선으로.

그런데... 소림원? 맞아? 아무튼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래도 두 번이나 오른 길인데 헷갈린다. 암튼 절 뒤편으로 오르는 길이 맞는데 그리하여 갸우뚱하면 찾은 길... 15분 동안 길을 헤맸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어쩐지 너무 가깝더라.

처사

조선 중기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서 은둔한 선비들을 일컫는 말.

보광원이 맞다. 본격적으로 연천봉 등산코스가 시작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보광원으로 가는 길이다. 잘 기억하자.

나도 본격적으로 등산로로 접어든다. 스틱을 적당하게 늘리고 힘차게 절을 지나 등산로로 들어서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난다. 아니 등산객이 아니다. 알루미늄 지게를 짊어진 내 나이 또래의 사내 3명, 그 앞에는 나이지긋하신 아주머니...  옷차림새를 보니 모두 암자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 샛길은 연천봉 바로 아래 등운암에 생필품을 나르는 지름길 같다. “처사님은 가뿐하게도 잘 올라가네요.” 처사님? 당연하죠 저야 지게가 아니라 옷이 반을 차지한 배낭을 메고 있으니까요.

첫 번째 뷰포인트

아직 힘이 남아 있다. 아니 조금씩 빠져간다. 첫 번째 뷰포인트가 아니었으면 힘이 쪽 빠졌을 것이다.

동쪽으로는 천왕봉과 쌀개봉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서 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저놈의 송신탑이 맘에 안 든다. 언제 쯤 천왕봉과 쌀개봉에 올라볼 수 있을까?

그보다는 아래로 펼쳐지는, 서남쪽으로 보이는 두 개의 저수지와 너른 농지, 가까이는 신원사와 나를 헷갈리게 했던 두 암자가 보인다. 멋지다.

가방 안에서 초코파이라도 꺼내 먹고 싶었는데, 사진을 찍고 물 한모금을 마시고나니 힘이 솟는 것 같다.

두 번째 뷰포인트

점점 힘이 빠지는 것 같다. 걸음의 속도는 줄어들고 숨소리는 거칠어진다. 다시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나타났다. 이제는 남서쪽의 경치도 좋지만 천왕봉에서 이어져 쌀개봉으로 멀리 올라가려고 찜해 놓은 뾰족한 향적봉까지 보인다.

태양에 맞서 사진을 찍으니 느낌이 새벽이라도 된 것 같다.

에티켓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지긴 처음이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가 성안의 빨래를 모두 해치우고 호숫가에 앉아 한 말이다.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어, 더더욱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말 마음이 평온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적당히 술먹고 푹 잠들었을 때? 다음날 속 쓰리다.

머리를 굴리다보니 아마도 힘들게 오른 산에서 멋진 경치를 바라보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힘들었지만 그 힘듦을 다 보상해주는 것...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건만 연천봉 정상은 한 무리의 산악회원으로 점령을 당해버렸다. 꾸려간 컵라면과 귤, 맥주 한 캔도 꺼내볼 여유도 없이 그냥 돌아섰다. 왜 하필 그 사람들은 다른 넓은 곳도 놔두고 정상 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던 걸까? 연천봉을 오르며 내리며, 많은 사람들이 처사에게 먼저 건네는 가벼운 인사에 정말 맘이 좋았건만,

산을 사랑한다는 산악회 사람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바람에 내가 품고온 느낌은 그냥 씁쓸하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젊은이부터 어르신까지 골고루 구색을 맞춰 이름보다는 아이디를 부르는 걸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최소한의 예절은 꼭 지킵시다!

무릎이 아프다

그렇게 내려오며 주린 배를 채우려 다시 오던 길을 내려오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에 김치에 맥주를 곁들여 나만의 잔치를 벌인다. 순간 아래 작은 봉우리에서 날아 오르기 시작한 솔개 한 마리가 나선을 그리며 천천히 큰 원을 그려, 결국 천왕봉 뒤로 사라진다. 한동안 눈을 떼지 않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빼앗겼다.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지만 잘 나오지 않아 지우고 말았다.

아 근데 갑자기 무릎이 아파온다. 컵라면을 먹는 내내 통증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경사가 심한 바위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런가 보다. 따듯한 방바닥에 잠시라도 누웠으면 딱 좋겠다.

다행히 내려오는 길엔 통증이 없었다.

불경기

내려오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해가 뜨고 바람도 잠잠하니 등산객이 마구 몰려든다. 이런 휴일에도 신원사까지 들어오는 길에 늘어선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날씨만큼 썰렁한 불경기다. 나만해도 집에서 사발면이니 초코파이니 바리바리 싸오지 않는가? 내가 돈 쓰는게 미덕인가? 하지만 세상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불안하게 만들어 주머니를 닫게 하고 있잖아.

주차장은 어느덧 차로 가득 찼다. 하지만 주차장 앞 군밤과 약초를 파시는 할머니는 여전히 추위를 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