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대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서노대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하여 높게 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 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팔각형 평면이며 기와 벽돌로 쌓았다.
수원 화서문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1795년(정조 19) 7월 21일 공사를 시작하여 1976년(정조 20) 1월 8일 마쳤다.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이 썼으며 옹성 안 홍예문 좌측 석벽에는 성문공사를 담당했던 사람과 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수원 서북공심돈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된 서북공심돈은 3층 건물로 아래쪽 부분의 치성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는 전돌로 쌓았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1797년(정조 21)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건축형태와 효과적인 재료 활용을 보여주는 서북공심돈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1710호로 지정되었다.
홍이포
길이 215m/ 구경 10cm/ 중량 1,800kg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된 유럽식 화포로 포구 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이며 사정거리가 700m에 달하는 이력적인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장안문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문으로 수원화성의 정문이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 마쳤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의마한다. 장안문은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지게 되어있는 형태)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건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거과 같아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북수문(화홍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 북수문과 남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1월 13일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암문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화성의 5개 암문 중에서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으며 1796년(정조 20) 3월 27일 완공되었다.
수원 방화수류정(동북각루)
1749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가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보물1709호.
수원 팔달문
화성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1794년(정조 18)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정조 19) 5월 20일에 완공되었다.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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