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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공주 천태산 동혈사지

by 여.울.목 2017. 7. 2.

천태산 동혈사지



마음만 먹으면 그냥 휘~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은 산인데,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는다.


첫번째 왔을 때는 왠지 피곤해서 오르고 싶은 맘이 없어서 근처 수촌리 고분군만 둘러보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뭐 설악산이나 한라산 오르는 것도 아닌데...

날을 잡은 것이 반가운 비가 내리는 날이다.

하루 종일 내리는 날이었다.


그래도 잠잠해진 비구름 사이로 밝은 빛이 보이기에 현관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찾았다.

하지만 오늘도 400미터도 안되는 작은 봉우리를 올라보지 못하고 돌아선다.

어쩐 일이다냐.


쉬지 않고 내리는 비와 숲이 지닌 무서운 생명력 때문에 오늘도 이 작은 산을 넘보지 못하고 돌아선다.


2017-07-02_10-47-32_동혈사지.gpx






이동 거리는 2km정도 밖에 안된다.

비를 맞으면서 길을 찾는다고 헤맨 거리와 시간을 빼면 정말 얼마 안 되는 거리다.




입구는 고개 정상에 커다랗게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쉬 찾을 수 있었다.

그냥 오르기는 심심할 것 같아서 광덕사를 통해서 천태산 정상을 올라보려했다.



광덕사에 다다르자 그냥 멈출줄 알았던 비가 나름 거세게 내려친다.

바위 밑에 절을 지으려고 했던 흔적이 있다.

그 너머로 올라서면 능선을 타고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일 것 같은데,

이 무성한 덩쿨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비라도 내리지 않았다면 모르겠는데,

며칠 전부터 내린 비 덕인지 덩쿨의 생명력은 무섭기만하다.

길은 고사하고 건물의 흔적까지 모두 꽁꽁 숨겨놓고 말았다.



정글을 헤쳐나가는 칼이라도 하나 있다면 모를까...

그냥 산책 수준을 생각하고 칠부 반바지를 입고 온 내게 용기는 과한 욕심일 뿐이다.


다행히 다시 내려서지 않고 동혈사 쪽 오솔길을 찾았다.



아직도 굴삭기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진 험한 길을 따라 오르니

미륵상이라도 세우려는지 암반 앞에 콘크리트 기초를 다져 놓은 것이 보인다.




아이쿠!

깜짝이야.

비가 와서 그런지 들고양이 새끼 한 무리가 암반의 구멍 안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놈은 더 이상 도망갈 틈도 없는 바위 틈으로 파고 들고 나머지 놈들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괜한 장난 않고 사진 한 장 찍고 녀석들 그만 놀래키려 발길을 돌린다.



동혈사 삼층 석탑 앞에는 최근에 모셔놓은 듯한 부처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바라보는 시선은 공주 시내보다는 우성면 쪽의 너른 들녘이다.



비는 맞으며 길 잃을까봐 좀 긴장했던 내 맘이 한 순간 확 트이는 것 같더군.




삼층석탑 위로 암반이 멋지게 서있다.

그리로 올라가면 능선을 만날 것 같다. 하지만 여기도 마찬가지다.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어가는 게 맞는지 우중에 도저히 이 덩쿨을 헤치고 앞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동혛사 쪽으로 내려오는데 다시 능선으로 올라갈만한 길은 약초재배 중이라면 출입을 금지하고 있더군.

괜히 도둑으로 몰리느니 깔끔하게 돌아선다.

시청에서 세운 등산로 이정표는 말고는 뭐 이 와중에 뭐 하나 산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ㅠ_ㅠ



실망의 발걸음... 터덜터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20미터 정도 내려오니 동혈사 터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동혈사東穴寺

의당면 월곡리 천태산天台山에 자리 잡은 이 절터는 서혈사, 남혈사, 북혈사와 더불어 공주 4혈사 중의 하나로 전해온다.

동銅혈사라고도 하는데 동철銅鐵을 발굴하여 곳곳에 바위구멍이 생겨서 銅혈사와 섞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언제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이 없다.

산기슭에 4.5m 높이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세웠는데, 조선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2동의 건물터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 조선시대 부도가 남아 있으며, 절터 뒤편 암에는 자연동굴 형태의 석굴이 남아 있다.

여기서 은 구멍, 웅덩이, 동굴 등을 뜻한다. 조선시대 암기와 조각이 발견된 동굴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동굴을 말하는 것 같다.


무언가 연대표에 대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을 발판삼아 말한다면, 동굴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 아마 조선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3층 석탑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비가 와서 구질구질한 산행이었지만,

깔끔하게 물러나고자 한다.


겨울에 보자 벌거벗어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는 시절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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