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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한국사 | 거꾸로보는 고대사

by 여.울.목 2018. 8. 1.

거꾸로 보는 고대사
2010/09/27   1
2017/06/23   11
박노자

한겨레출판()

 

우선...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 신문의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 광고를 봤다.

우리를 일컫는 평화의 민족’, 실상 그렇지 않다는 말로 시작하는 프레시안의 글은 거꾸로 보는 고대사라는 책 제목만큼이나 눈길을 끌게 했다.

 

박노자는 러시아? 아니 한국인이다. 글을 읽는 내내 그는 우리라는 말을 쓴다.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객관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지식인이다. 추천의 글을 쓴 이성시라는 분도 재일한국인 2세이다. 추천의 글 제목을 보면 저자나 추천인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 간다.

다문화 상생사회의 고대사를 위하여

한국사회가 21세기를 주도해서 동북아와 세계를 이끌기 위해서는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인 생각을 버리고 열린 다문화 상생사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민족주의적 사학의 공통점은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 우리들의 피해를 강조하여 민족과 국민의 상()을 역사적 정통성 있는 피해자로 그린다. 그러면서 고대사의 상은 우리들의 위대성위주로 그린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은 현존하는 사료나 유물을 무시하여 무리한 가설을 내세운다. 이것은 민족이나 국가의 단합을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주의나 경제적 팽창을 은근히 정당화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욕하는 일본처럼 제국주의적인 냄새를 풍긴다는 말이다.

 

저자는 성숙한 동북아시아의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이 책을 통해 고대 한반도의 세계성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경우 군사적 위대함보다는 종족적문화적 다양성과 중국일본과의 긴밀한 교류, 고급 국제인으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 그러한 것들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추천의 글과 저자의 들어가는 글만 읽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텐데, 실상 읽는 그 증거를 위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만 같아 아쉽다는 생각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철저하게 사료중심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 - 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료가 많은 신라에 초점이 맞춰지고, 신라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미화하려고 노력한다. 저자가 생각했던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세우는 것에 맘이 많이 상하기도 한다.

저자나 나나 주제에서 한참 벗어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료 중심의 글이지만, 어짜피 역사라는 것이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고 그 것들을 합의하는 과정이라면 열린 다문화 상생사회를 위해 너무나도 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만 해석한 것은 아닌지 - 생각이 든다.

그가 한국인이듯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 책이 8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꾸준하게 읽힌다는 점은 그의 신선한 접근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른 해석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다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찌 지식인에 범접할 수 있겠는가?

열린 다문화 상생도 억눌리고 축소된 우리 고대사가 제대로 평가되면서 가능하기에 그러기를 바라는 한국 사람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나의 알량한 오만함을 늘어놔봤다.

 

 

1부 우리는 만주의 주인이었는가

 

*단군신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창세 신화가 없다고 한다. 아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공식적 문헌에 잘 수록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유교나 불교의 관념 속에 살던 이들의 눈에 잘 들어맞는 것이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조선의 주류가 우리 기원에 대한 신화적 설명으로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가 가장 유서 깊다고 판단했기 때문 일 것이라는 말.

건국신화. 즉 국가 이야기가 종족의 기원까지도 설명해주는 독특한 상환은 한반도 역사에서 국가가 점하는 매우 특별한 지위를 보여준다고 한다.

 

북방계의 신화였던 단군신화가 평양세력의 반란을 진압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조선과 단군 이야기를 제외시켜 고려 초중기 단군의식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1270~1280년대에 이르러 몽골에 대한 항쟁이 끝나고 과거 삼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표상이 필요하던 때 일연과 이승휴가 평양 지역의 단군 전승을 해동 전체의 기원신화로 부각했다고 한다.

승려 일연의 시각으로 단군은 인도의 천신 인드라의 손자였고, 조선 초 구데타의 정통성 확립하려는 관변 유교 학자들에게는 유교적 의미의 성현이었다. 일제는 13세기 후반에 날조된 이야기, 최남선은 하늘을 대표하는 고대 종교 지도자의 호칭으로, 신채호는 정복왕조 단군조선의 뛰어난 정복자로 묘사했다. 독재시대에는 우리 모두의 할아버지로 설정해 가족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고, 북한은 신화를 실존 인물로 만들어 정권 유지에 이용한다.

 

저자는 실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고구려와 백제 양쪽과 관련 있는 소서노의 모습이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

 

*고조선

기원전 4세기 만주 서남 지방은 종족적 구조가 복잡하기에 고조선이 랴오둥 지역 전체에 세력을 뻗쳤는지 의문을 가져볼만하다고 한다.

(명도전과 한국식 세형동검 출토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세력 중심이 랴오둥에서 평양지역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연나라와 전쟁을 벌이거나 외교를 할 정도의 주민 동원력은 있었지만 위계질서적 관료제를 정비하거나 군현제를 실시할 만큼의 중앙집권적이지 못한 - 지배구조가 매우 느슨한 상태로 설명한다.

결국, 진개 침략 이전의 고조선 역사는 랴오둥과 만주 역사의 일부이지만 영토지배와 같은 발상은 역사왜곡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역사관은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과 시장에 군침을 흘리는 자본가들의 대륙 팽창 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낙랑

고조선 멸망(기원전 108) 이후 한나라에 의해 한반도 북부에 세워진 한사군 중 313까지 거의 400년 이상 존속하며 한반도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다.

낙랑문화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해 한반도 역사의 전체 상을 왜곡하는 식민지 역사관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그러면서 자자가 생각하는 당시의 낙랑집단,

근대 제국주의 국가와 달리 전근대의 제국 한나라는 한반도 북부 같은 변방들을 체계적으로 통제수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기에 낙랑집단은 토착 지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고급 수공업과 무역 중심으로서의 그들의 존재를 과시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다는 것. 게다가 고구려가 평양 지역 중국인들을 추방하기는커녕 반자치의 상태에 놓아두었다는 것은 낙랑에 대한 토착민들의 의식이 별로 나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침략을 긍정할 필요는 없지만 문화 교류와 인구의 혼합화로 고구려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제국?

다른 민족을 통치통제하는 정치체계이다. 일반적으로 국가로서의 제국은 힘의 중심에서부터 문화·민족성이 문화적 그리고 민족적으로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통치권을 확장하는 국가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에서는 경제적 또는 정치적 요인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제국이라 불리는 기간에 군사적 패권을 가짐을 함축한다. <위키백과>

 

전성기 고구려는 분명히 동북아 일부를 호령하면서 강한 정치적 주체의식을 가진 소제국으로 면모를 보였다. 고구려의 영토적 영향력이 컸지만 근대 제국들과 달리 주변부 지역을 토착적 지배집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을 뿐이다. 거점에 의한 간접지배 형태였다고 이야기 한다.

고정된 국경이 없는 데다 인구 유입과 유출이 비교적 자유로워 인구 구성이 늘 새로워지는 고대국가 사이의 전투를 오늘날의 민족투쟁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은 과학적인 사학이 아니라고 한다.

 

 

2.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였는가

 

*발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발해가 침공할까봐 늘 긴장한 신라

게다가 꽤 높은 문화수준의 발해는 현실 세계에서도 상징 세계에서도 일관되게 신라의 철저한 경쟁자였기에, 신라는 공식적으로 발해를 오랑캐 이상으로 보려 하지 않아 발해 문화에 대한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아 후대에도 발해에 대한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저자는 부여 계통의 고구려와 남쪽 한() 계통의 신라는 언어와 풍속이 상당히 달라 이질성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다민족 국가인 발해가 상징했던 다양성에 더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이해를 하겠다.

 

통일신라를 선호했던 일본 관학자들의 학통은 1980년대에 들어 비판을 받아 남북국시대내지 신라와 발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진다.

이렇게 외세와 손잡은 신라에 대한 비난에, 전근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근대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신라에 의해 남겨진 사료를 바탕으로 쓴) 전근대의 역사서를 기준으로 신라와 수당의 동맹관계를 반민족적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국제연대로 인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대주의라고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다.

지정학적 상황, 현실적 역학관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에는 이의가 없다만,

동아시아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한 나머지 너무나 극단적으로 신라의 통일을 미화하려 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를 근거로 -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고.

신라는 외세를 끌어들였다 기 보다는 당나라 태종의 대외정책에 편승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영토를 확충한 신라의 문화 융성과 고구려의 계통을 이은 발해의 등장으로 한반도와 랴오둥 문화의 요람이 되었다고 한다.

고구려 계통을 이은 발해의 등장은 이해하지만 신라의 그러함으로써 발해가 그러했다는 것은 너무 비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라보다 고구려나 백제가 삼국을 합쳤다면 신라의 경우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저자가 너무 자신의 논리에 빠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저자는 고대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우리의 정체성이 존재했을까? 의문을 던진다.

맞다. 저자가 예로 든 의무 교육텔레비전이 없던 때인데, 당연하다. ‘민족을 말하는 학자들도 그 정도의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들도 그러함에서 유추하여 현재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도 나온 통일신라의 사회문화적 통합력의 한계 이야기를 꺼내 중국 역사서의 이야기를 앞뒤 안 가리고 인용해서 그만큼 이질적이었다고 <강조>를 한다. 그냥 지정학적 상황, 현실적 역학관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로 마쳤으면 좋았을 것을.

 

 

3. 일본은 언제나 우리의 적이었는가

분명 언제나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 최소한 고대사에서는 말이다.

우리를 통해서 문물을 받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후진 종족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한다.

저자도 아는 것처럼, 일본이 하도 많은 것을 왜곡하고 있어 그에 대한 반감이 감정적으로도 표출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도 고대 동아시아에서 함께 활동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존재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오히려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에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가야의 역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윤색과 가필이 심하지만 상대적으로 풍부한 일본 쪽 기록은 부러워할 만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해서 감정이 아니라 더 많은 역사적 증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에 있어 새삼 다시 느껴본다.

고대의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상세하게 제3자의 시선으로 전해주고 있는 부분이다.

 

 

4. 고대국가, 억압과 저항의 이중주

 

*성기숭배

세계 어느 원시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성기숭배는 다산과 풍요 신앙의 골자가 되어 깊은 뿌리를 내렸다.

민간의 성 숭배가 불교신앙 안으로 스며들 수 있었지만, 성리학은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어서 개방적인 성 풍속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한국 문명개화 시대에 새로 수입된) 개신교와 혼합된 성리학적 엄숙주의의 승리로 미국의 일부 주를 제외하고 산업화된 민주국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간통죄가 최근까지 남아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빅토리아시대의 영국을 방불케 하는 엄숙주의보다 차라리 고대사회와 같은 성적 개방성이 건전한 비폭력적, 양성평등적 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부장제가 고금동서 계급사회의 보편적 원칙

중국 쪽 한반도 관련 기록의 2~3세기 기록 한반도에도 가부장제 고질화

야합엔 관대, 간통엔 철퇴; 혼전 성교와 사실혼은 동시대 중국에 비해 자유로움 - 온달과 평강공주가 가능했던 이유로 추정

성관계에는 개방적이었지만 가족 안에서 가부장 권리는 공고했던 신라의 풍속

고려 이후 여성 지위 되레 퇴보

고대 한반도는 공포의 전제왕국이 아니었다.

근대적 형태는 아니지만 이미 삼국시대 한반도 사회도 토지를 포함한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관념과 사유재산 보호장치가 있었다.

고대 한반도의 귀족 국가들은 무소불위의 동양적 전제왕권이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였고, 국가는 여러 경제적 관계 속에서 나름의 합리적 조절자에 가까웠다.

 

신라에서는 국가 부문이 민간 또는 시장 부문을 철저히 압도했다.

조공관례란 종속이라기보다 무역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선진 권역과의 교류 가능성을, 그리고 일정한 지역적 지위를 의미했을 뿐이다.

오늘날 일방적인 한-미 관계와 달리 철저히 호혜적이었다. 1.문명적 국제사회의 멤버로 인정받고 2. 공물 이상의 회사품 / 관무역의 한 형태

 

*종교

구석기 인류와 함께 태어난 종교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중략-

인간의 보편적 공포 심리로 보나, 공포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정글인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보나, 불교의 기복적 요소들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기원, 고통을 지양해 안락의 열반 세계와 하나 될 수 있는 자비와 선행, 자리이타의 길을 보여줘야 할 공포 극복의 위대한 교리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과연 오늘날에 와서도 각종 대입 기도에 의존하고 영험에 대한 이야기로 선남선녀들의 마음을 잡는 등 공포를 잠깐 잠재우는 진통제역할만을 계속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공포의 기원 중 하나인 탐욕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탐욕과 공포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극복해 경쟁이 아닌 상생의 사회를 건설하게끔 도와 줘야 할, 원리원칙상 초자연적 요소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 불교 아닌가. 공포심이란 인간의 영원한 하계지만, 불교 등 한국종교가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공포 심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석가모니와 예수에 대한 모독이자 배신이라 할 수 있다. 언제까지 고대의 신이 신앙과 다를 게 없는 기복 행위에 반성 없이 매달릴 것인가.

 

그러면서 저항하는 한국형 지식인의 뿌리에 대해서 찬사를 보낸다.

다만 그 뿌리를 통일신라의 인물에서 찾으려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여 있는 민족사대신 흘러가는고대사

국정 국사 교과서의 생산을 바로 국가기관이 맡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그 주민들을 민족이라는 혈통적 틀로 묶어놓고 민족 국가의 역사,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라고 불수도 있다. ‘국가의 자서전이라고 할까? 자서전을 쓰는 것을 탓할 게 없겠지만, 어떤 역사적 인물도 자신의 자서전을 객관적으로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만하다.

 

일제 침략기 민족주의 사관은 의미 있지만 고조선이나 고구려의 제국적성격의 강조는 (그 역사성 여부를 떠나) 한국 자본의 중국 동북 지방으로의 침윤이나 중국 등 이웃 나라 자본들과의 경쟁을 역사적으로뒷받침해주는 담론이 될 위험이 크다고 한다.

민족 웅비에 대한 역사적 상상은 일제 강점기 같은 절망적 시기에는 희망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 약육강식의 세계자본주의 체제 안에 정상적으로 편입됐을 때는 그 약육강식을 논리적으로 옹호장려할 뿐이라는 것이다.

의도는 이해하지만 논리전개가 너무 과하다.

 

신라의 생존 비결은 군사력보다 외교력, 아무래도 미화가 심하다.

 

차라리 저자가 이리도 이질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려 한다면 인류학언어학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스며듦을 강조해야 하는 것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한 쪽에 치우친 사료를 접근한 것 같다.

저자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편중되었다는 느낌이다. 백제나 고구려는 없고 승자의 기록 시각에서 신라만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