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청명한 날씨가 이어질거라는 일기예보가 나를 들뜨게 한다.
하지만, 이 시국에 멀리 가기엔
여전히- 난 쫄보다. ㅎ
토요일 내가 선택한 코스는,
10여 년 전에 알게된 고청봉~꼬침봉 코스와
지금도 가끔 찾는 국사봉~청벽을 마티로 잇기로 하는 것이다.
지난 주 비를 쫄닥 맞으며 오랜만에 장거리 산행에 불을 지폈지만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그런지 너무 쉽게 찾아 온 무릎 통증때문에 오늘도 은근히 걱정이다.
들머리(용암저수지)
들머리는 반포면 봉암리? 공암리? 아마 봉암리일 거다. 용암저수지.
길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입산금지"라는 현수막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걸은 것이다.
왠만하면 되돌아 가려고 했다.
최근 장마와 잦은 비로 수풀이 억세게 세를 확장한 것이 분명하니깐...
그런데 되돌아 가기는 어렵다.
벌써 차는 떠났다.
되돌아가 버스를 다시 타던지 대전교육연수원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새 기울어질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들머리에 들어선다.
그나저나 여기도 국립공원에 해당 된다니... 참 넓게도 잡은 것 같다.
그럼그렇지...
알짜 없이 바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름보다 예상대로 왕성하게 뻗친 수풀이 장난이 아니다.
그보다 더 심한 건, 거미줄이다.
지독하게 질기다. 최근 이 숲은 날벌레 세상이었으며,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방증이다.
멀리서 예초기 소리도 들리더만, 벌초꾼들도 들리지 않았나보다.
고청봉(319m) 0.9km, 0:27
낮은 동네 뒷산 수준인데, 악조건이 많았다.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다.
그래도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조망이 고생에 보람을 안겨준다.
가까이는 반포면 봉곡리 일대,
멀리는 내가 오늘 계획한 국사봉과 매봉재,
산줄기 사이로 보이는 세종시 일원도 빼꼼히 머리카락을 보이고 있다.
남쪽으로는 계룡산줄기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가마봉(414m) 3.1km 1:38
"고청봉"만 따로 봐도 된다.
하나의 산을 내려와 다시 꼬침봉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고청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참~ 곱다고 생각했는데,
꼬침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는데 해메고 말았다.
해멜 수 밖에 없다. 산불로 길이 지워져 있다.
그렇게 산불 피해가 나 잡풀이 없는 편안한(?) 길로만 따라가다보니
하신리 쪽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 ㅠㅠ
다시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찾은 길 - 원시림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 오늘 이렇게 길을 찾아 해메다 시간만 다 버리는 건가? 괜히 걱정이 앞선다.
조심스레 길을 찾아 다행히 고속도로를 만난다.
대전교육연수원에서 체력단련코스로 닦아 놓은 등산로다. 휴~ 안도의 한숨이난다.
밖으로 노출된 손등이며 얼굴은 거미줄로 질척거린다.
긴 바지를 입고 오기를 잘했다.
수풀이 숨을 다독이는 겨울철이 아니고서는 다시는 오르기 싫다는 생각이다.
모르지 시간이 흐르면 이런 기분이 희석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이 맛에 산에 오른다.
대전교육연수원에서 "가마봉"이라고 명명한 봉우리 암봉에 서면 절로 가슴이 시원해진다.
근 10년 만에 찾은 포인트다.
하신리 마을과 들을 지나 장군봉과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 계룡산이 멋드러지게 흥을 내고 있다.
꼬침봉(422m) 4.0km 1:50
이 코스에서 흔치 않는 능선길.
그리 길지 않지만, 가마봉에서 꼬침봉까지는 얌전한 길이 이어진다.
곳곳의 암반이 돌출되어 있어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암반 줄기를 빗겨 편안한 길을 만들어 놨더군.
"꼬침봉"
바위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것 같다.
그래서 꼬침봉이라고 하는 건가?
대전교육연수원에서 조성한 등산로와 헤어질 시간이다.
상신리와 교육연수원을 잇는 고개길을 가로질러 마티고개로 향한다.
다행히 벌초 때문에 길은 평온하다.
마티(212m) 7.0km 3:00
마티로 내려서는 길은 암자로 향하는 불심으로 길이 넉넉하게 닦여있다.
가파름이 심한 구간마다 콘크리트 포장이 씌워져 있다.
무릎에 신호가 오는 것 같아 콘크리트 구간마다 뒤로 돌아서 거꾸로 내려서기를 한다.
잠시나마 근육이 시원한 느낌.
불심과 효심(가족 묘지 조성)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길을 넓게 닦아놓는 바람에
마티로 내려서는 길은 선택지가 다양하다.
차량 진입을 위해 출입한 포크레인의 무한궤도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더군.
마티에서 한동안 해멨다.
국사봉으로 향하는 들머리가 자잘한 수풀로 뒤덮혀 찾을 수가 없더라.
두리번두리번...
입구를 찾기 힘들어서 그렇지 나머지 길은 낯익다.
가파르다.
고달프다.
포기할까?
지치지 않고 길이 이어진다.
.
.
.
"청벽 → 마티" 구간의 산행 때 마티로 내려올 때마다 헷갈리는 길이 이제 확실해졌다.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10여미터 더 내려가는 심플한 등산로가 나오는데,
매번 무속행위를 하시는 분들이 내 놓은 길을 따라 내려 가다보니 헷갈린다.
다음부터는 내려설 때 혼동하지 않겠지.
믿는다. ㅋ
내가 즐겨찾는 뷰포인트 "산불감시 카메라 앞 바위".
출발한지 세 시간 만에 점심 아닌 한 끼니를 떼운다.
바람이 시원하다. 아니 조금 거세다.
비라도 내리련지 습하다.
국사봉(397m) 8.3km 3:50
산불감시카메라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국사봉이다.
이 산이 암반으로 되어 있는 건 안다.
그래도 대부분이 육산이다. 산 겉은 흙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국사봉만이 특이하다.
봉우리만 자잘한 돌맹이로 싸여져 있다.
어떤 실력자의 무덤이던지, 커다란 바위가 벼락을 맞아 산산이 부서진것이던지.
조금 떨어져 보면 무슨 말인지 알거다.
국사봉 봉우리만 바위가 아닌 돌무지로 이루어져 있거든.
국사봉을 지나 조금은 내리막을 지나야한다.
무릎이 소심하게 신호를 보낸다.
지난 산행의 기억이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왼쪽을 너무 의식해서 오른쪽에 힘을 주어 움직였나?
오른쪽이 말썽을 피우고 싶어 안달인 것 같다.
아침부터 몸상태가 별로여서 산행내내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다만,
10km를 지날 때가 되니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ㅠㅠ
더군다나 예보에도 없던 비가 시작된다.
꼬침봉부터 시작한 시원한 바람이
감시카메라에서 절정을 이루더만 그게 비구름을 몰고 왔나보다.
제법이다.
일부러 바람막이도 안 챙겼는데...
또 최악으로 치닫는가? ㅎ
다행이다. 소나기였다.
매봉재 갈림길(364m) 10km 4:12
매봉재, 매봉?
금강수목원에서 만든 길과 만나는 매봉재 갈림길.
언젠가 매봉이 어떤 곳인지 지친 와중에 기를 쓰고 가봤는데,
사방이 리기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실망스런 봉우리였다.
"매봉"이라 말에 많은 기대를 했었나보다.
날카로운 풍경이 있을 거라는 기대? ㅋㅋㅋ
매봉재 갈림길을 지나면 얼마간 능선길이 이어진다.
이런 구간에서 열심히 걸어 시간을 줄일 수도 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숲이 주는 평온함을 즐겨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제는 무릎을 위해서라도 그런 멋짐을 누려보자.
잠시 벤치에서 숨을 고른다.
물을 마셔본다.
청벽산? 진날산?(284m) 11.1km 4:50
청벽산, 진날산 산 이름이 분분하다.
아무래도 청벽 포인트와 붙어 있는 고지가 청벽산이고,
능선을 따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 진날산이 아닌가 혼자만의 생각.
청벽 포인트(200m) 12km 5:00
말이 필요 없는 뷰포인트!
남은 간식과 물 한모금의 여유를 즐기려고 했는데,
어쩐 일로 지금까지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쌍쌍으로 보인다.
개까지 데려와 별 포즈를 다 취한다.
휴대용 의자를 꺼내 앉아 혼자만의 낭만을 즐기려했는데,
아무래도 이 신혼부부는 내가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다행이다 내려서는데 통증이 없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컨디션 난조에도 페이스 조절에 성공을 했나보다.
덕분에 시간은 5시간이나 지났다.
시간 당 2.4km
평소 다니던 산치고는 조금 거북이 산행이었다.
내려서는 길에 4명이나 더 있더군.
일행인지 모르지만 나이 대가 30대 초반 이하의 사람들이다.
어지간히 답답했나보다.
다들 산으로 기어오를 모양새가 아닌데 ㅎ.
날머리 12.3km 5:13
휴~ 끝났다.
다행히 마눌님이 차를 가져와 나를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땀과 소나기로 젖은 윗옷을 갈아 입고 신발을 바꿔신는다.
고단하다.
소주 한잔 마시고 낮잠 때리고 싶다.
차 안에서 이어지는 금강을 따라 드러난 모래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해본다.
산행을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다행히 오늘은 대부분의 통증을 통제하며 잘 내려왔는데,
이렇게 해야하는지...
마치 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 보는 것 같다.
아픈데도 뭐 때문에 이렇게 달려야 하는지.
힘들면 군데군데 조금 쉬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는데.
즐겨야 한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잖아.
평상시 시간을 내서 잔근육을 키우고,
더디더라도 조금 다시 늘려나가는 거다.
허리며 고관절이며 삐걱거리는 것들을 바로잡고자 다시 시작한 산행이다.
틈틈히 걷기도 열심히 하자.
통증에도 귀를 기울이자.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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