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잇기, 천왕봉-황적봉-밀목재-관암봉-도덕봉-삽재_2012.05.27.

계룡산 잇기, 천왕봉-황적봉-밀목재-관암봉-도덕봉-삽재
2012.05.27.

 

 

山行은 苦行이다.

동학사지역에서 “천왕봉-황적봉” 코스와 “관암봉-백운봉-도덕봉-삽재” 코스를 이어보기로 한다. 그래서 시간을 아끼려 천황봉 오르려는 욕심은 잠시 접는다.

법정등산로로 다시 태어난 삽재 코스를 만나 바가웠던 산행이었다.

   

거리 17.4km (원점회귀를 위해 걸은 포장길은 5km)
시간 7:27
평균속도 2.3km/h  움직이는데 평균 속도 3.9km/h
최저 104m에서 최고 662m를 오르다

어김없이 눈은, 아니 내 뇌는 6시면 잠에서 깨어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꿈속에서 헤매다 헤어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랄까?

달콤한 잠은 피곤한 몸을 끌고 잠자리에 누울 때뿐 내내 곤한 잠을 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피곤을 달고 사는 것인지. 피곤한 일상 때문에 잠을 달게 못 자는지는 말 잘하는 의사선생님만이 알 일 같다.

 

*나와의 싸움?
어제 먹은 술,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처갓집 식구들이 오랜만에 방문을 한지라 마실 때는 신나게 넘겼지만 막상 산행을 하자니 몸덩어리가 걱정된다.

아침 10시를 넘겨 손님들 배웅을 하고, 배낭을 챙기는데 손을 발을 움직이기 실어 밤새 숙취에 고생한 마눌님에게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라...

산에 가야하나?

 

*시내버스가 제일 좋은데
그렇지 않아도 아침 시간이 많이 지나갔기에 30분이라도 아껴야 할 것 같다.

차로 다시 돌아오려니 동학사 주차장으로 가서 편하게 산행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시 걸어서 차를 가져올 일을 생각하니 지침 몸을 생각해서 차는 하는 수 없이 박정자 삼거리 근처에 놓기로 한다.
3km, 주차하고 본격적인 산행로까지 3km를 걷는데, 벌써 힘이 빠진다. 땀이 난다.

 

   
 <내가 올라야 할 능선, 왼쪽부터 황적봉(치개봉, 천왕봉...)

 

*이미지 변신
불교문화원을 뒤쪽으로 접어 이제 산행길에 오른다.
지난 산행 때 봄비를 맞으며 내려왔던 길이다. 봄비 때문에 물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계곡길은 땅이 모두 말라 먼지가 푸석거리는 숲길로 변해 있었다. 초록 잎을 힘차게 뻗치고 서 있는 이 숲의 나무들이 나머지 물기를 모두 빨아드리기라도 했나보다.
그 봄비가 억척스럽게 내리던 날 계곡물을 마시러 내려왔다가 나를 보고 도망가던 고라니 한 마리를 떠올렸던 그 곳은 이렇게 이미지 변신을 시켰다.
그리고 내게 어려움을 준다.
내려올 때는 오르는 길이 그저 힘은 들겠지... 생각했건만, 가파름이 점점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내 귓전을 맴돌다 눈으로 들어오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은 날벌레들,
계곡물 때문에 습한 이 길을 생각해서 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먼지만 날리고,
내 땀 냄새에 녀석들이 자극받아 난리다.
이렇게 그냥 이 계곡에 계속 서 있다가는 벌레들이 내 몸을 다 뜯어먹을 것같다.

움직여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ㅎ ㅎ  

능선길까지 한 30여 미터를 남겨두고 이제까지 희미하게 이어오던 등산로는 오락가락을 넘어서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한 10여분을 흔적만 남은 가파른 계곡에서 헤맨다. 날벌레들 더 난리다.
스마트폰에 표시되는 GPS의 궤적을 따라 어렵게 본 등산로를 찾는다. 어찌나 좋은지. 이젠 날벌레도 없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벼랑바위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오르막이 계속된다. 벼랑바위다.

<벼랑바위 아래, 밧줄길이 두 군데나 있다>

사실 이 커다란 암벽은 천황봉에서 봤을 때 친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이보리색깔에 초록빛이 어우러져 한 없이 자비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여길 오르려면 손과 발에서 땀이 난다. 아찔하다. 어딘가 돌아가는 길도 있으련만 찾을 맘도 없다.
좀 굵은 줄 좀 묶어 놓지... 로프를 두 번이나 당겨 올라 벼랑바위에 다가선다.
벼랑바위는 직각으로 5미터 높이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암벽의 제일 윗부분이라 전망이 딱 이다. 

<내 발끝에...고생한 내 발에게 일광욕을> 

 묵직한 등산화와 양말까지 벗어 고생한 내 두 발에 일광욕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막 사발면에 물을 붓고 맥주 한캔을 꺼내려는 순간 누군가 내가 가야할 길에서 내려온다.
한 아저씨.
산은 많이 타본 듯한 말솜씨다. 그런데 산을 근력으로만 타시는 것 같다. 내 산행계획도를 들여다보고 뭐라뭐라 하면서 내게 맘마 맛나게 하라며 내려간다. 사람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인데, 반바지를 입고 오셔 다리 여기저기에 상처투성이다.

나 말고 누군가를 여기서 보니 반갑기는 했는데, 뭔가 좀... 따듯한 산꾼의 면모가 빠진 것 같다.

    

*불개미가 갈등을 지우다
계속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오늘 몸뚱이 컨디션만으로는 여기까지가 딱이다.

벼랑바위에서 나만의 오찬을 즐기고 부지런히 좁은 길을 헤쳐나 올라선 천왕봉엔 오래된 무덤 두 기만이 줄을 지어 있다. 아마도 천왕봉에서 동학사 매표소 근처로의 최단거리는 이곳까지 성묘오던 사람들이 다져놓은 길이 아닐까?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천왕봉 정상은 벼량바위가 주는 웅장함과 전망도 허락지 않아 그냥 지나치게 만든다.
다시 나뭇가지를 억지로 비틀어가며 오르고 내리고, 그런데 오르막이 점점 심해지기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고 있노라니 길가에 바늘보다 좀 굵은 마른 나뭇가지 덤불이 보인다.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내 발을 타고 불개미가 올라온다. 녀석들의 집을 밟은 것이다.
이런 불개미의 덤불은 황적봉(치개봉) 봉우리 근처에 많이 있다.

 

황적봉에서, 여기서 산행을 마무리하고 동학사 쪽으로 내려가야 할지, 계룡시 쪽으로 내려가 계획대로 산행로 잇기를 계속할지 고민하려 그늘을 찾았건만, 거기도 놈들의 거시기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개미”라는 소설. 거기서 개미 몇 마리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죽이고 마는 몇 토막의 글줄기가 생각난다.
산행로 선택의 고민은 그렇게 불개미를 털어내면서 남은 근력을 다하리라 계획대로 발을 옮겨간다.

 

*밀목재 민목재 말목재
내려가는 초입길은 우거진 수풀 때문에 팔이 간질간질. 조금 더 가니 길은 잘 다져진 괜찮은 노면이다. 그렇다고 쉬운 길이 아니다.
황적봉의 다른 이름이 치개봉인데, 그 어원이 가파름이 심한 봉우리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제 신도안, 계룡시로 다시 태어난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오르내려 길이 잘 다져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이 계룡산 길은, 이제 옛길이 되고 만 것이다. 잘 다져진 길을 따라 가다보니 그 길은 아무래도 계룡시로 가는 길이다.
맞다. 다시 핸펀으로 GPS의 보여주는 길을 보니 내가 한참이나 잘못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잠시 머뭇했던 왼쪽의 희미한 길이 내 계획된 길이었다. 다시 한 100여 미터를 다시 올라 그 길로 접어든다.
길?
어디로 갔지? 다행이 잡목이 무성하지는 않아서 헤매도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그래도 길아 아닌 곳이라 내 발목의 힘은 빠른 속도로 빠져간다.

그렇게 헤매다 내려오니 커다란 무덤이 나온다. 그리고 임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닦여진 등산로, 턱하니 그길을 막고 있는 것은 철조망이다. 이곳이 이렇게 막혀 있을 줄이야.
그러니 그 옛날 등산로가 되고 말아 길이 사라진 것이다.
공주와 계룡시 신도안면의 경계, 계룡시로 가는 예전 길. 아직도 많은 차들이 지나다닌다.
아무도 없는 초소 앞 콘크리트 앞에서 지도를 꺼내든다.
말목재, 밀목재,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민목재라고 써 놓았다.
말도 쉬어가야 했을 산과 산의 좁은 길... 말목재
그런데 지도에는 밀목재다. 관리공단은 민목재라고 한다. 나무가 없는 민둥고개였나?

검색을 해 보니, 정식 명칭은 밀목재고, 고개가 민민해서 민목재라고도 한다고 하네.  

암튼 이 고개는 황적봉산등성이와 관암봉 봉우리를 잇는 고개다.

*고행(苦行)길

민목재에서 보온병에 넣어온 얼음에 물을 부어 시원하게 갈증을 잊게 하고는 다시 오른다.

이제부터 고행길이다. 민목재에서 산행길을 멈췄거나 황적봉에서 동학사삼거리로 내려왔으면 딱이었을 것을.

숙취로 망가진 근육이 고생이다.
민목재에서 관암봉까지는 처음 가파른 1km미만의 길만 잘 견디면 능선길로 접어선다.
정말 힘들었다. 땀, 한바가지. 그렇게 접어든 능선길은 수월했다. 이제 내 몸은 더 이상의 산행을 거부하는지 자꾸 갈증을 낸다. 종탁이가 준 소금과 포도당 덩어리를 꿀컥 삼킨다.
견딜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어우러진 관암봉과 백운봉을 지나 자티고개에 다다르니 등산로가 고속도로 같다.

 

   
 < 멀리 내가 넘어온 황적봉과 능선이 보인다>

몸음 추수리고 힘차게 걷지만 도덕봉까지의 2.5km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사실 자티고개에서 가리울골삼거리까지는 산책로 같기만 했다. 그런데 도덕봉에 가까워질수록 산다운 산길이 이어진다. 오르락 내리락.
수통골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한 등산객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웃는 얼굴로 지나친다.
허벅지 근육이 좀 쉬어가자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은 계획일 뿐.
도덕봉에서 삽재가 아닌 좌암교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엉뚱하게 수통골 입구로만 향한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도 지도에 보이던 그 길은 이제 지워진 길이 되고 말았는지 갈라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그냥 삽재길로 가자.’

사실 삽재길을 꺼리고 삽재 밑의 좌암교쪽으로 향하려는 이유는 예전에 삽재길을 처음 찾았을 때 길을 잃고, 빨래줄을 타고 올랐던 생각 때문에...

오늘도 길을 헤매다 힘도 빠지고 시간도 허비했건만.
도덕봉에서 바로 내려가면 되는데, 다시 또 걷는다. 능선길을 타고 삽재길로 향한다.

마지막 남은 물병뚜껑을 따 반쯤 마시고 나니 정신이 든다.
아~ 저기 보이는 대전 둘레산길. 갑하산, 더 넘어로 어렴풋이 보이는 우산봉.
힘내자!

<삽재를 지나 저기 보이는 갑하산을 지나 그 뒤로 보이는 우산봉까지 이어진다>

-조금 더 가면 빨래줄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거기서 좀 더 내려가면 길이 희미해서 계곡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 이 길이 법정등산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가느다랗고 다 삭아 있던 빨래줄 대신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계단에서 바라보면 낯 익은 삽재 인터체인지가 훤하게 보인다.

<예전에 여기에 빨래줄 걸린 위험한 바위 위에 멋진 계단이 마련되었다. 저기가 삽재 인터체인지다>

그리고 길 잃을까 긴장하게 만들었던 희미한 길 대신 잘 마무리된 새로운 등산로가 이어진다.
하지만, 점점 가파라지는 내리막길은 이제 허벅지가 아니라 무릎 관절에게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삽재 근처에 다다르자 전나무 숲이 내 입가에 미소를 띠게 만든다.

 

  

아침 저녁으로 밥벌이 하러 매일 다니는 삽재고개길을 천천히 내 두 다리로 걸어 내려간다.
하루 관광을 마치고 하나둘씩 대도시로 몰려드는 차량줄기를 바라보면서,
내 고단한 하루의 산행을 마무리해본다.
  

욕심이 좀 과했지만, 그 고통이 벌서 추억이라는 묘약으로 마름질쳐 버렸는지 “참 좋았다”라고 주절거린다.
바보아냐?

집에 와 샤워를 하고나니 몸살기가 느껴진다. 긴팔옷을 꺼내입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온 몸이 좀 뻐근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래서, 이 맛에...
  

그래, 
  

山行은 苦行이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힘들어도, 그래도 산행이 좋다. 누구 공감하는 사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