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7. 09:50~17:10 (7시간 20분)
용문사주차장-용문사-마당바위-용문산-장군봉-함왕봉-백운봉-현수리
(13km인지 17km인지 GPS가 오류를 일으켜 모르겠다.)
*독설
산행의 전조는 2주 전부터 시작이다. 함께 산행을 가자는 데는 모두 의견이 일치되었지만 막상 가려니 이런저런 일이 겹치나보다. 그리하여 대신 1박 2일로, 다음엔 꼭...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선뜻 펜션 예약을 부담하기로 하면서 산행일정은 급물살을 탄다.
하지만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뭔가 더 나은 가치를 찾기 위해 약속을 저버린다. 괜한 짓을 벌린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만 가득하다. 숙소를 예약한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이런저런 회유와 협박에서 흔들리지 않는 그들. 산좋아 홈피에 독설을 뿜어내고 다른 산악회를 물색해서 홧김에 회원가입까지 해버렸다. 1년 동안의 산행지를 테마별로 정해 움직이는 모임이었다.
*파티
파티? 사실 간다는 사람들 없었으면, 친구 집에서 그냥 1박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행을 떠났으면 되는데... 어쨌든 벌려놓은 일이라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워 담아 장을 보고나니 짐이 꽤 된다. 이럴 때 일수록 잘 차려먹으라는 집사람의 조언과 더불어 먹을건 별로 없지만 먹어야할 것이 많아진 파티를 연다.
모두 잠자리를 준비하는 시간에 퇴근을 하고 출발한 지라 저녁 9시가 넘어서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시작한다. 트렁크 안에서 달궈진 맹맹한 린에 혀가 금방 풀린다. 그래도 참 좋다. 숙소 고도가 330m라 그런지 열대야는 없다. 모기도 없다. 남은 신선류 음식은 아깝지만 폐기. 나머지 것들은 재활용.
<하룻밤 묵은 펜션>
*천년은행나무
밤의 풍경과는 달리 아침 기운을 머금은 펜션의 모습이 아쉬움을 더욱 자아내게 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가족들이라도 데려올 것을...
햇반으로 나름 든든하게 배를 채운 후, 능선코스를 타기위해 내 차는 백운봉 쪽 연수리 마을길에 주차를 하고, 친구 차를 타고 용문산관광단지로 들어선다. 주차비 3,000원과 1인당 입장료 2,000원... 뭐 이런데가 다있나? 나름 돈 받은 티를 내느라 열심히 꾸며 놓은 조경과 자그마한 박물관을 지나 용문사로 향한다. 용문사까지 함께 하는 계곡은 시원한 휴식처다. 가족단위의 관광객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잘 닦인 길이지만 1.4km나 되고 습도가 높아 배낭을 짊어지고 용문사에 이르니 온 몸이 땀범벅이다.
커다란 은행나무, 믿기지 않을 만큼 무성한 초록 은행잎과 튼튼한 나무줄기가 1천년 하고도 100여년의 수령을 가진 나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없다. 정말 무한한, 정갈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11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인데, 무지하게 젊어보인다.> <짙은 안개가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龍門山(1157m)
원래 미지산(彌智山)이라 불렸는데, 이태조가 등극하면서 용이 드나드는 산이라는 뜻의 용문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사료로는 일본인들이 지도를 만들면서 미지산을 용문산으로 표기하면서 지금까지 불려왔다고 한다. 미지는 미리의 완성형이며, 미리는 용의 새끼를 일컫는 말로 미지산과 용문산의 뜻은 상통한다고 한다.
용이 드나들던 산은 오늘따라 그 신령함을 더하려고 산 전체에 안개를 가득 안고 있다.
용문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소리가 더위를 식혀준다. 미리 정상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하산을 한다. 계룡산 신원사 ~ 연천봉 코스처럼 이곳은 그렇게 잘지도 크지도 않은 돌덩이로 등산로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숨이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나보다. 그래도 날벌레도 거의 없고 울창한 숲에 햇볕도 드리지 않는다. 바람만 조금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마당바위까지는 그렇게 계곡을 따라 때론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돌동이 틈을 비집고 나다닌다.
마당바위를 지나 능선코스와 만나는 시점까지 약 500미터는 지금까지 계곡코스와는 다른 고통을 준다. 등고선이 촘촘하게 모여 있다. 한 번 쉬고 싶어도 그렇게 쉬고 나면 다시 오르기 싫을 것 같다. 게다가 뒤에 오시는 노인분이 나를 잡아먹을 듯 힘차게 쫓아오신다. GPS까지 엉터리다. 뭔가 문제가 있는지 몇 번이나 비프 음을 낸다.
간신히 능선과 만나는 지점의 평상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산행 솜씨만큼이나 거친 노인양반의 이야기에 웃음 지으면서 숨을 고른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친구의 말... 지금까지는 숲을 지나온 길이었다면, 이제는 간간히 암릉이 있는 능선길에 속한다. 짙은 안개가 바람을 타고 날름거리니 암릉이 더욱 멋지게 다가선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가파름이 더해지는데, 그 가파름은 철계단, 지옥계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올라도 올라도... 지친 근육에 치명적이다.
난 이런 규칙적임 싫다. 사람들이 내게서 느끼는 첫인상과 달리 말여.
정상엔 그늘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2007년부터 이곳을 개방해 준 군부대에 감사를 드려야 하나? 정산의 99%를 차지한 군 시설과 올레 전송탑.
그간 얼마나 한(?)이 맺혔나 사람들이 철조망에 덕지덕지 리본을 매달아 놓았다.
계룡산 천황봉은 언제쯤이나... 그래도 여긴 천황봉 가는 길만큼 거칠지는 않다.
*장군봉(1056m)-함왕봉(947m)
본격적인 오후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안개로 쌓인 이 산은 시원한 조망으로 등산객의 피로를 풀어 줄 아량은 베풀지 않으려는 것 같다.
점심을 먹으며 충분한 휴식으로 땀구멍을 잠시 닫고는 장군봉과 함왕봉으로 이어가는데,
이 코스는 오전에 오르던 길과는 달리 비옥한 토양이 많아 야생화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고 있어 지나는 길이 고달프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전반적으로 내리막 코스라 속도가 제법 난다.
<왼쪽 꽃은 산수국, 오른 쪽 위는 동자꽃, 그 아래는 긴 줄기 땜에 헤깔렸는데 바위채송화다.>
장군봉은, 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하기 좋은 터라고 해서 조망 좋은 곳을 장군봉이고 일컫는다. 계룡산도 장군봉 아래 병사골이 있다. 그런데 이 산의 장군봉은 정말 장군봉이 맞는지 의문이 간다. 주변은 나무로 가려져 있어 전망을 즐길 수 없다. 더군다나 봉우리도 아닌 것이 내리막길에 이정표 하나 달랑 세워져 있어, 두 번이나 이곳을 오른 친구도 장군봉이 딴 곳인 줄 알았다고 한다. GPS를 확인해 봐도 이 지점이 맞는데... 아마도 친구가 전망 좋은 곳이라고 했던 봉우리가 장군봉이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아래 함왕봉과 위 용문산 사이에 어정쩡하게 있어 장군봉이라고 칭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함왕봉을 지나자 방긋 보이는 암봉과 백운봉>
함왕봉은,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에 좋은 산으로 고찰 사나사를 끼고 있다. 용문산의 유명세에 눌려 빛을 못보고 있는 만큼 한적하기까지 하다. 용문산에서 서남쪽 2km 거리에 있으며 용문산 정상이 출입통제 지역일 동안 등산객들이 오를 수 있는 실질적인 제일봉인 셈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 봐서 안 것이지만 해발 740m의 함왕성 터가 있다고 한다. 이 성터는 고려 때 몽고군의 침입 당시 인근주민들의 피난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는 함왕성터에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고산샘터가 있다. 함왕성 수비대를 지탱시켜 준 젖줄과 같은 샘물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늦은 점심을 함왕봉에서 즐기고 있다. 함왕봉도 장군봉과 같이 조망이 좋지 않아 내심 실망하며 다시 백운봉을 향해 간다.
계속 안개에 가려 볼거리가 없을 거라면 중간에 내려갈까? 원래 남쪽으로는 백운봉과 남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보인다는데... 아~ 그런데, 봉우리를 조금 지나자 음봉과 백운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놈의 욕심. Go!
*인내심을 끄집어 내야한다. 백운봉(940m)
함왕봉을 내려오면서 보인 음봉과 백운봉. 욕심을 품기에 충분하다. 조금씩 안개가 희석되는 거 같다. 그 좋다는 전망도 좀 보자꾸나.
음봉, 내 지도에는 ‘암봉’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백운봉과 함암봉 사이에 움푹 들어가 있어 음봉(암봉)이라고 하는가 보다.
<암봉에서 백운봉을 오르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다>
<암봉 바위에 걸터 앉아 고사목과 새로 솔잎을 돋운 소나무의 조화를 감상한다>
여기서부터 조망이 좋다. 동쪽으로 멀리 지나온 장군봉과 함안봉, 용문봉도 희미하게 보인다. 남쪽으로 바라던 백운봉이다. 오르기 전에 푹 꺼지듯 내려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주는 곳이 있는데, 바람재라고 한다.
그런데 요놈이, 아니 이분이라고 해야겠다. 940m 높이의 봉우리가 떡 허니 버티고 있다. 두 번 정도 댄 기억이 있는 친구는 고개를 흔든다. 요것이 생긴 모양이 남북으로 눌려 납작하고 동서로는 계단 형식으로 되어 있어, 오를 때 저기까지 가면 끝이라고 생각되는 데 또 이어진다. 그렇게 3~4번 흔들어 놓고서야 허락하는 백운봉.
신음소리가 날만하다. 또 계단이다.
고생한 만큼 가치가 있는 산이다. 이런 맛을 알란가? 벌만 없었어도...
<백운봉 정상에 육군 모 부대에서 길을 내면서 기념으로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온
돌덩이를 기념으로 세워 놓았다. 천지의 기운이 느껴지는가?>
*죄와 벌
그런 독설을 품어 내고 멀쩡할 거라고 생각했냐는 듯이 벌이 다가온다.
백운봉 정상에서 남은 간식을 먹어치우고 이제 내려가는 하산길에 대한 은근한 기대로 맘이 술렁인다.
내리막은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가파르다. 몹시. 그렇게 가파른 길을 지나 계곡을 만나야 길이 평온해지고 조금 더 가면 이제 계곡과 어깨동무를 하고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라고 생각되었다. 맞다. 그렇기는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벌”이다.
이제 막 급경사를 지나 길이 나아지고 나무평상이 보여 쉬어갈 판인데, 갑자기 내 발목을 무언가가 물어뜯는다. 느낌이 든다. 갑자기 통증이 몰려드는 것이 뱀인가?
돌덩이가 계단처럼 되어 있는데 그 틈이 벌집이다. 벌에 쏘인 것이다. 통증이 대단하다. 침을 빼려고 보니 다행히 양말신은 곳을 물렸기에 침은 못 들어 왔나보다.
남들은 벌에 쏘였다고 하면 “난 지난번에 3방이나 물렸어~”이런 식이다.
하지만 나에겐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다. 고3 여름방학, 더위를 피해 그늘진 곳을 따라가다가 기지개를 편다는 것이 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5~6방의 벌침이 내 목 주변을 파고든다. 머리부터 감각이 흐릿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병원에 누워 반나절 동안 링거를 맞고서야 살아났다.
이런 내게 “벌쯤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하게 뭐가 어떻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답답.
조금씩 징조가 나타난다. 빨리 구급차라도 타려면 더 심해지기 전에 이 숲을 빠져 나가야 한다. 오른 발에 힘을 줄 수 없기에 절뚝거리면서도 속도를 낸다. 친구는 이게 뭔 일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계곡을 따라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그런데 반바지를 입었기에 웃자란 풀잎이 통증이 한창인 내 발목에 고문을 가한다. 땀으로 범벅된 내게 날벌레까지 정신없이 파고든다. 패닉. 지도에 별장이라는 표시가 있다. 차가 들어오는 길이다. 여기까지 힘내자.
큰 길이다. 살았다. 통증은 여전하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일찍 오지 그랬냐며 엉덩이 주사 한 방.
3번의 산행 모두 힘든 산으로 기억된다는 친구 종탁의 용문산
내게는 유난히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산으로 남는 용문산
백두산 천지의 돌덩이를 만져 무한한 기를 얻은, 그 반대급부에 대한 액땜이라고 치자며 웃어주는 친구. 함께해서 참 좋았다.
국립공원 같으면 벌집 있다고 신고라도 했을 터인데... 등산로에 벌집 있어요!
이놈의 붓기는 언제나 가라 앉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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