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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아이와 함께 하는 산행♬ _20112.07.21.

by 여.울.목 2014. 9. 1.

2012/07/21

10:50~15:50 5시간

우리집-형제봉(332m)-봉화대(339m)-능치-생명고 뒷산(321m)-수원지

7.4km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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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봉화대-수원지.jpg

*오랜만에

토요일 산행을 계획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엇박자를 놓고, 다음주에 1박을 하면서 경기도에 있는 용문산행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산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산

뒷산, 사람들이 한 번 겪고 나면 뒷산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큰 코를 다치고는 한다.

그 뒷산 봉화대를 지나 능치를 거쳐 산불감시초소에 점을 찍고 공주생명과학고 제2농장 뒷산까지 오르고 수원지로 내려오는 코스다. 누구는 공주대간이라고, 누구는 공주둘레산이라고 하는데 이걸 다 돌려면, 수원지로 내려오지 말고 우금티까지 몰아가면 된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일락산과 두리봉을 거쳐 땀을 닦고 나면 공주대간은 일단락된다.

아이가 갈 수 있을까? 그 코스 전부는 아니지만 7km가 넘는 산행길이다.

 

*짜증

토요일 아침이다. 뒷산이기에 그리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아들녀석은 내심 산행에 맘이 들떴나보다.

하지만 10:00까지 준비를 마치자고 했는데, 녀석의 하루 학습을 다 마치고 가야한기에 우물쭈물하다 보니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기다림 없이 연신 움직이는 벽시계의 초침을 바라보고 있자니 점점 덥혀지는 대기의 온도만큼이나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배낭을 찾으며 잠시 어지러운 보일러실을 정리한다면서 짜증을 풀어내고 배낭 한 가득 짐을 우겨넣으면서 아직도 탁자에 붙어 연필을 잡고 씨름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더위가 밀려온다.

산에는 갈 수는 있는 건가?

가까스로 채비를 마치니 10:30이다.

이젠 딸아이까지 따라나선단다. 도저히 10kg를 웃도는 짐을 메고 다리 아프다고 보채는 아이까지 업을 수는 없다. 불가능이다. 그렇게 설명을 하니 이해를 한다. 하지만 토요일 오후 내내 딸아이의 삐침은 풀리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이제 편의점에서 김밥과 김치, 화장지와 물티슈까지 챙기고 이제 정말 산행을 시작하려는가 보다 했는데, 인석이 응가를 해야 한단다. 웃어야겠지? 그래 웃는다. 똥싸고 가자... 허허허

 

 

*편견을 버리자

10:56 드디어 산행시작.

GPS가 좌표를 잡고, 블루투스로 폰과 연동을 시키는 시간 동안 녀석에게 포즈를 취하게 한다.

해맑은 저 모습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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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습은 잠시. 키에 맞게 줄여 준 스틱이 무겁다며 내게 건넨다.

정말 걱정이다. 등에 짊어진 배낭에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꾸려왔는데 그냥 창피하게 바로 되돌아 가야하나?

이제야 콘크리트 포장길이 끝나고 밤나무 숲을 들어서는 순간,

아빠! 풀들이 다리를 간지럽혀서 걷기가 힘들어요.”

얼마나 시적인 표현인가? 지나고 나니 든 생각이다.

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버럭 소리 지르는 대신 산길이 원래 그렇지~”하며,

짜증을 꾹꾹 참고 이야길 했다. 녀석이 오르기 싫어 벌써 잔머리를 쓴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평정심은 갈지자를 그린다.

요 녀석 계속 잘 오른다. 6개월 전만해도 중심을 잡지 못해서 버둥거리던 아이가 이제 몸을 숙이고 무게중심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킨다.

그런 모습을 보니 퉁명스럽게 답한 것이 괜히 미안스럽고, 한편으론 화를 내지 않고 퉁명스럽게나마 말한 게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머릿속에 이리저리 굴려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더 문제다.

 

이놈의 배낭은 등짝이 매쉬 형태로 활처럼 휘어진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자꾸 잡아당긴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배낭과의 첫 만남-독감으로 지친 내 몸을 이끌고 간 두타산행-에서 고되게 당해서 그런지 별로 정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어깨끈을 조절해도 양 어깨에 번갈아가면서 통증을 선사한다. 내가 배낭에 맞춰야 하나?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그 만큼이나 들이마시는 물의 양을 생각하니 배낭 가득 짊어져 온 물도 모자를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녀석 정말 잘 오른다. 뒤가 아니라 내 앞에서 길을 헤치며 간다.

800여 미터를 치고 와서 첫 번째로 전망 좋은 곳에 도착했을 뿐인데, 벌써 땀으로 샤워를 한 것 같다. 씩씩한 녀석의 모습이 참 대견스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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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쉴 타임인데,

아빠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죠? 빨리 가요.”

경식이가 그 동안 많이 컸나보다. 매일 블록으로 만든 비행선을 들고 푸~ ~하면서 전쟁판만 벌리는 줄 알았는데 속으로도 많이 알차진 것 같다.

그러는 반면 이 몸은 이것저것으로 찌들고 말았구나. 아직도 찌든 것이 많이 남았는지 머릿속 한 구석은 그 복잡한 것들로 뒤죽박죽이다.

 

*월성산 형제봉

이름을 짓기로 했다. 월성산 봉화대는 큰 봉우리고, 이 작은 봉우리 이름을 뭘로 할까?

나란히 있으니까 형제봉우리로 할까?

그래 형제봉으로 하자.

멀리 보이는 계룡산을 배경으로 아들과의 시간을 멈춰 담아본다.

이곳에서는 금강을 건너 멀리 세종시와 우산봉, 계룡산줄기 잘 보인다.

반면, 형님 봉우리 월성산 봉화대는 공주 시내가 잘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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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고개

정말 다섯 고개쯤 될라나? 더 되겠지? 봉우리는 벌써 두 개를 올랐다. 울 아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세 번째 봉우리는 그리 가깝지 않은데 어찌 데려갈꼬? 어른들도 가기 고된 길을 초등학교 2학년생을 앞세워 가고 있다.

그 세 번째는 봉화대를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올라왔던 만큼 가파르다. 효포초등학교 학생들도 많이 오르나보다. 학교를 향하는 정겨운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녀석이 힘들고 지루했는지 다섯 고개를 제안한다.

스무고개의 아들 벌 되는 놀이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단어를 다섯 가지 질문으로 맞추어가는 것이다. 서로 답을 생각하고 질문을 해가면서 시시덕거리는 사이에 경식이는 조금씩 거친 산길에 적응을 한다.

그렇게 다섯 고개를 하면서 능치를 지나 산불감시초소까지 금새 올랐다.

 

*에너지 방전

하지만 어른도 힘든 이 더운 날씨에 아이는 오죽하겠어.

산불감시초소에 다달아 벤치를 보자 드러눕는다.

다섯 고개도 이제 심드렁... 뒷짐을 지고는 오르는 것도 자연스레 배워 노티나게 능구렁이처럼 지겨울 만한 오르막을 한걸음씩 다져나간다.

뭐라고 해야 힘을 돋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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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달래기

힘들지 않게 수원지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왔는데도,

매정한 아빠는 직진이다.

늦게 시작한 산행 때문에 배꼽시계 타령이다.

그래 점심이다. 점심 때문에, 2리터가 넘는 물과 버너, 코펠, 국수, 김치, 김밥... 많이도 챙겨왔다. 맛 나는 잔치국수에 희망을 거는 울 아들.

속도의 차이? 그리 느릿하게 걸은 것 같지도 않다.

또 한 번의 오르막이 나오자 이제 기차놀이다. 스틱을 잡게 하고 칙칙폭폭 아빠기관차가 아들 객차를 끌고 간다.

조금 더 힘내 시원하고 평평한 벤치가 있는 곳에서 편하게 점심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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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로 코앞에 세 번째 봉우리를 두고, 나도 힘이 들어 그늘 안 벤치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짐을 꺼내 버너를 설치하고 코펠에 물을 붓고, 물이 채 끓기도 전에 제 몫의 참치김밥 한 줄을 먹어 치운다. 잔치국수면을 넣으면서 뜨거운 열기에 호들갑을 떨던 녀석에게 핀잔을 주었는데, 나도 그만 내 몫의 면발을 넣으면서 3할이나 흘리고 말았다.

녀석이 피식~ 웃는다. 입 꼬리가 귀에 걸릴 것 같다. 요놈아~ 꼭 뽀로로 친구 에디 같다.

냄새~, 주변에 있는 벌들이 달려든다. 코펠 뚜껑에 따라 놓은 국물에 벌 한 마리가 다이빙한다. 그리도 좋은가?

우리 둘의 행복한 식탁은 곤충들의 습격으로 다른 자리로 옮기고 만다.

그래 여기의 주인은 저 녀석들이잖아~

아들이 몸서리를 치며 쳐다보지도 않던 벌레들을 이젠 손으로 툭툭 쳐내기도 한다.

시원한 바람과 그늘 이면에 있는 이겨내거나 친숙해져야 할 불편한 것들도 조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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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난다.

세 번째 봉우리는 공주생명과학고제2농장이 뒤편의 봉우리다. 고상하고 자그맣지만 당당한 소나무 한그루와 돌탑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다. GPS가 오류를 일으키는 바람에 정신이 팔려 멀리 우리가 다름질쳐 온 길과 봉화대를 일러준다는 것을 깜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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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 번째 봉우리를 지나고서는 계속 내리막이다.

녀석은 카메라 삼발이를 이제 장총으로 삼아 스스로 청룡팀이 되고, 백호, 현무, 주작팀을 만들어 전쟁을 벌인다. 아직 100이라는 숫자가 최고라고 생각되는지. 탱크도, 비행기도, 전함도 100대가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설명을 한다. 그 전쟁은 녀석의 머릿속에서 입과 손짓을 통해 이루어진다.

~~파앙~ 폭음이 들리고, 무전으로 작전을 지시한다.”

이제 팔에 힘이 빠져 스틱보다 무거운 카메라 삼발이의 무게가 진정으로 느껴져, 내 배낭에 다시 들어 와서야 끝이 난다.

 

수원지로 향하는 계곡길이다. 여름의 왕성한 생명력 때문에 수풀이 더 우거져 아이의 발목을 괴롭힌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헤치고 나갈 줄을 안다.

이제 우거진 수풀이 문제가 아니라 날벌레가 더 골치다. 자꾸 땀 냄새를 맡고는 귓전에서 맴돌다 눈으로 파고들기까지 한다.

다른 때 같으면, 울고 말았을 텐데, 땀으로 다 젖어버린 런닝셔츠도 아무렇지 않고, 발을 삐끗해서 넘어져 묻어난 흙도 개의치 않고 툭툭 털어내고 만다.

날벌레 침범이 하도 심해서 시원한 계곡물로 세수하는 그 맛을 보여주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그 “V”자 계곡을 빠져나왔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래 애써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같다.

내가 걱정이지. 마치 어른들은 모든 걸 다 아는 것 같지만 가끔 길도 잃고, 힘들어 울고 싶기도 하고, 코펠의 끓는 물에 국수면 넣을 때 아들보다도 더 많이 흘리기도 한다.

긴 산행코스니까 한 번에 힘을 다 쓰지 말고 에너지를... 어쩌구, 노자 왈... 저쩌구 하려고 했는데,

힘들면 쉴 줄도 알고 괴로움과 지루함을 자기만의 오락으로 재밌게 넘길 줄도 안다.

시원한 나무 그늘 밑의 곤충과의 타협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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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 버스를 타고 할머니댁으로 향한다.

20분이나 불볕더위에서 기다린 버스라 그런지, 냉방이 된 버스 안이 더욱 시원하다.

고생 많았다 경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