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2
2004/04/23
2023/09/04
오르한 파묵
이난아
㈜민음사

기나긴(?) 추석 연휴 후반부 아쉬움을 채운 책이다.
<붉은여왕>, <마음의 사회>,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요즘 읽다가 덮고만 책들이다.
차분히 앉아서 읽어야 하는데 내 일터가 나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마음의 사회>는 꼭 읽고야 말 책이다. 불편함을 잠재울 요량은 아직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걸 다스리고 싶어서 – 왜 마음이 이러는지 저러는지 분해한 사람의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성적라고 하기엔 감성적이고 마는 난해한 인간의 생각 영역을 샅샅이 파헤치는…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그리하여, ㅎ 시간의 아쉬움을 달래서 맘은 연휴 동안 해치울만한 녀석을 골랐다.
<내 이름은 빨강>이다.
다행이다.
지난 해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며 겪은 우울감
몇 개월 동안, 사놓고선 읽기 머뭇거렸던 건 이 책 또한 날 그렇게 할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음울한 사건의 소재와 달리 흥미로웠다.
내가 내 마음을 잘 다독이고 있다.
다행이다.
적어도 <마음의 사회>는 이성적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겠다.
줄거리
궁중 화원에서 일하는 세밀화가들과 오스만투르크 시대와 문화, 터키(지금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이라는 지리적 환경이 섞여 그려진 그림-소설이다.
우리 땅에선 왜인들이 크게 침범해 물리친 조선시대의 전환기와 비슷한 오스만트루크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궁중 화원 세밀화가 엘레강스의 죽음
12년 만에 이스탄불에 돌아온 카라, 첫사랑과의 러브스토리 사이에 그녀의 아버지-술탄의 서양화풍 서책 제작 책임자-까지 살해당하며 사건에 말려든다.
그들이 그려온 세밀화는 서양화풍을 받아들이려는 과정에서 갈등을 낳아 동료를 죽이는 일에까지 이른다. 종교적 신념과 개인의 명예와 돈, 이런저런 욕심이 얽혀있다.
이런 배경에 살인자는 동료 엘레강스와 첫사랑 세큐레의 아버지 에니시테까지 죽이고 만다.
사건 전개와 함께 수백년 동안 오스만제국과 주변 나라에서 쌓아온 그림, 문화적 자산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우러진다.
작가는 끝까지 살인자의 정체를 숨긴다.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은 끝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 덩어리다.
살인자가 본색을 드러내는 파트에서까지 ‘이자가 정말 그자 맞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스토리의 뼈대는 간단한데, 붙여지는 살이 만만치 않은 소설이었다.
줄거리에 좀 더 가까이
궁중 화원 세밀화가 엘레강스의 죽음으로 강하게 연다.
12년 전 이스탄불을 떠난 카라-튀르키예 말로 ‘검정’이라는데 블랙이 그를 특정 짓지 않는 것 같다-를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푸는 것 같더라.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 아니다. 적어도 내겐.
아무튼, 그가 돌아와 며칠 동안? 2주 내 벌어진 일이다.
신의 시선이라 표현하고 숭상하는 이슬람 화풍에 서양의 화풍이 스며든다.
서양의 사실적 묘사에 매료된 에니시테는 술탄의 지지를 얻어 그 기법을 적용한 서책을 만들게 된다.
다른 기법이지만 술탄의 명이고 비밀스럽게 해야기에 화원의 전문가를 동원한다.
죽은 엘레강스, 나비, 황새, 올리브, 한 때 카라도 이들과 동문수학했댄다.
술탄의 명과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라는 명분, 거기에 돈과 명예를 깔고 뛰어든다.
화원의 장 오스만은 그런 에니시테와 애제자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림’에 종교적 신념과 예술가로서 자존심과 돈, 명예, 개인적 욕망을 건 경쟁으로
시기와 질투가 베어나 동료를 죽이고 만다.
새로운 그림 기법, 그게 살인의 동기까지 될까?
그렇다. 그걸 지은이가 이야기로 탄탄하게 깔아준다.
밀서 제작 총책임자 에니시테도 그 녀석에게 살해된다.
카라에게 에니시테는 이모부이고 아버지 역할을 했고 첫사랑의 아버지다. 카라를 통해 서책을 완성하고파한 노인이다.
주인공처럼 보이는 카라의 첫사랑 세큐레,
카라보다 이 책 곳곳에서 두각을 보인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4년이나 돌아오지 않고 시동생 하산의 불손한 행태를 피해 친정으로 피해온다.
‘첫사랑’으로 마음에 품었던 카라와 달리 순수한 사랑 외에도,
그런 러브스토리 이면에 근본적인 여자로서의 엄마로서의 본성이 앞선다. 그건 본성에 바탕을 둔 계산이기도 하다. 그녀는 스스로 이야기한다.
카라, 엘레강스와 에니시테 살인범을 찾기 위해 그들 프로젝트 대척점에 있는 화원장 오스만과 함께 술탄을 만난다. 한낱 백성으로 권력의 정점을 만나는 그의 심정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오스만, 범인 찾기 놀이를 위해 술탄의 보물창고에서 그가 숭배했던 그림을 직관하는 영광을 얻는다. 한편으론 그들 화풍의 한계도 느낀다. 그럼에도 위대한 장인(匠人)이 되기위해? 스스로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림의 특징을 통해 누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지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쏟아 내는 올리브, 나비, 황새에 대한 평가.
누가 범인인지, 범인조차 앞잡이로 나와 이야기를 끌어간다.
오스만을 통해 힌트를 얻었지만, 저자는 그의 글솜씨로 끝까지 숨긴다.
허탈한 결과다.
승자도 패자도 없어보인다.
굳이 득실을 찾는다면
-12년만에 첫사랑을 찾은 카라도
-새 화풍을 도입하려던 에니시테도
-에니시테에 밀렸던 세밀화의 장인 오스만도
-세밀화가 나비도, 황새도, 말의 코를 찢은 올리브도
-힘을 과시하고픈 술탄도아니었다.
치밀하게 본성 토대를 둔 계산을 한 얼짱 세큐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올리브에게 승자일줄 알았던 카라의 코를 찢고 어깨를 망가뜨리게 하고
운명의 장난인듯 하산이 올리브를 북여 세큐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하고 멀리 떠나 보낸다.
이야기의 끝은 그녀의 말로 맺는다.
마지막 쪽에선, 이 이야기는 자신의 아들이 하는 것이니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말란다.
그의 아들, 정확히 둘째의 이름은 오르한 이었다.
그래! ‘오른한’
작가 오르한 파묵
영특하다.
무언가를 찾는다면
두 권의 책에 59개의 마디로 이야기를 나누고 엮은 책이다.
59개 제목마다 심오한 뜻이 있는가 싶었지만 이내 그 소제목은 말하는 자[話者]였다.
지루한 대목을, 화자를 바꾸니 내 눈도 맘도 쉴 틈이 생긴다.
가령, 빨랑 이야기 전개를 기다리는 내게 술탄의 보물창고에서 그 많은 보물과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방해꾼이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인내심 눈치를 봐서인지 그때마다 화자를 바꾸니 같은 공간 비슷한 대상에 대한 사뭇 다른 시선과 생각을 던진다.
나무 한 그루, 금화, 말(馬), 빨강(色)과 같은 사물과 동물이 말한다. 신선한 전개다. 그들의 시점에서 바라본 세상이라~
아! 그래, 빨강. 빨강이 이 책의 제목이었지.
예로부터 빨강색을 얻기란 참 힘들었다고 한다. 인도의 더운 곳에 사는 빠알간 곤충에서 어렵게 그 색을 추출한다고. 그래서 그 색은 크나큰 권력을 표현할 때 쓰인댄다. 반면 사람의 피를 표현할 때도 쓰인다는데, 빨간색처럼 이책을 이루는 소재의 배경과 원인을 통해 주는 결말이 주는 중의성을 강조하려고 제목으로 쓴 것 같다.
솔직히, 지루함도 만만치 않은 소설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그림. 그림 속 사물 하나하나까지 묘사한다. 오스만과 페르시아 흑양조, 백양조… 궁금하지 않는 것들을 만물상처럼 끄집어내 잘난 척을 한다.
그래도 난 혹시나 이 긴 묘사와 서설 사이에 범인에 대한 힌트가 있는지 미련스레 한 땀씩 읽어간다. 저자의 재주가 뛰어나다.
하지만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보다 훨씬 낫다. <장미의 이름> 명성에 끌려 읽었는데, 스토리 전개보다는 그의 자랑질에… 질리고 말았다. 너무 솔직하게 내뱉고 말아 내 낮은 지성의 바닥이 드러난 것 같다. ㅎㅎ
옮긴이 또한 대단하다.
난해한 책 중 한 원인은 번역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거의 직역에 가깝다.
소설가적인 기질까지 바라는 게 아니지만 일기 편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함이 많다. 꽤 유명한 책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불편함이 하나도 없다.
역자의 후기에서 탈고 후 보인 행태에서 그 노고를 느낄 수 있더군.
대신 난해함 뒤에는 그럴싸한 해설이 붙는데 그건 없다. 소설을 읽으며 대부분 알 수 있으니깐.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개인과 종교를 포함한 사회의 명예와 돈에 대한 욕심 등 수많은 욕망과 함께 원초적으로 느끼는 성욕, 이성이나 동성에서 느끼는 감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솔직하지만 조금은 세련되게 보여준다. 동서양과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은 공통된 것인가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문화적 양식으로 표현한다는 점 같다.
소설 속 그림, 여인의 가슴골까지 그려내는 서양인들의 그림을 천박스럽게 묘사하는 듯, 하지만 이스탄불 가정집 침실에서 그들의 사랑 또한 외설스럽지만 자연스럽게 그려져 중의적 대조를 이룬다.
이 책은 왜 그리 인기 좋을까?
제3의 지대인 양- 내게 이 책은 냄새 맡기 버거운 향신료 같았지만, 그런 편견을 없앨 수 있던 책이었다.
튀르키에서 만큼이나, 유럽에서도 인기 있다고 한다.
서양 문화를 우월시하는 시각 또한 유럽인들의 흥미를 이끌었으리라. 그러면서도 오스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니 그 지역 문화의 향연과도 같은 책이다.
순전히 내 느낌은 서양의 우월함을 조금 더 내비친 것 같다. 누구도 승자가 아닌 결말로 동서양을 다독인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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