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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백암산 산행이야기_2013.06.30.

by 여.울.목 2014. 9. 4.

백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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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한 주간 찌든 숙취로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예매했던 버스표를 1할이나 되는 위약금을 물고 반환했다.

혹시나 일요일 산행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산꾼 친구에게 문자를 날렸는데 의외의 OK 사인.

07:30 일요일치고는 이른 시간인지 길거리가 한산하다. 점심은 근처 식당가에서 챙기기로 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친구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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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30분정도 되는 고속도로 드라이빙 중 1/3은 내 넋두리로 채우고 말았다. 그냥 묵묵히 들어줄 상대라 더 열을 내서 투덜거렸는지 모른다. 그리 떠들고 나면 속 시원할 줄 알았는데 습도 높은 날 끈적끈적한 몸뚱이처럼 찝찝함만 더 쌓인 것 같다. 내 입이 아팠던 만큼 뉘도 귀가 많이 간지러웠을 테니... 암튼 예 왔으니 별거 아니어도 조그맣게 맺힌 응어리 있음 맘껏 풀고 가보자.

 

백암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이 친구 벌써 여길 다녀간 모양이다. ~. 괜히 미안한데, 나 땜에 괜히 따라 온 것은 아닌지.

허긴 벌써 71개의 산을 헐떡거리며 돌았다니 웬만한 뫼는 녀석의 땀방울 세례를 받았으리...

어찌나 땀을 흘려대는지 흡입하는 물의 양이 내 3배는 되는 것 같다. 다행히 탐방로 공사관계로 밟아보지 못한 코스가 있다하니 내 맘이 덜 불편하다.

산행은 백양사부터 시작한다. 원래는 백암사였는데 조선시대에 중건하면서, 근처 산의 흰 양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백양사로 고처 불렀다고 한다. 백양사에 들어서면서 예사롭지 않게 다가서는 백학봉, ‘깍아지른이라는 표현대로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대부분 직각으로 서 있다. 바위는 정으로 쪼아대고 제대로 다듬지 않은 미완의 거대한 조각물 같다. 그래서 그런지 백학봉 주변은 물론이고 백암산 전체에 납작하고 잘게 쪼개진 돌맹이를 많이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들자마자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리 뒤를 바짝 쫒아오는 공원직원들-탐방로 보수공사 감독관 두 명-이 약사암까지는 그래도 제법 폼을 잡고 올라오며 조언을 해주더만 오르막과 더위에 장사가 없다고 영천굴 위편에서 같이 퍼지고 만다. 직업으로 오르는 것과 즐기며 오르는 것의 차이가 확연해진다. 백학봉까지 마지막 1개의 철계단 구간을 남겨놓고 쉬어가야만 할 고갯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난다. GPS가 비프음을 내며 난조를 겪는 동안 공단직원들은 현장 소장과 이바구를 나누는데, 업무상 오가는 말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철계단을 올라 절에 들어서며 보았던 그 하얀 바위 위에 올라서니 산줄기가 어미새 날개처럼 포근하게 절을 안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힘들지만 이 맛에 오르는 거다. 땀 흘린 보람이 있다.

 

 

 

백학봉 정상은 깜박 그냥 지나칠 뻔했다. 다른 산은 그 흔한 표지석이라도 세워놓더니만, 여긴 그것도 없다. 백학봉까지 2.2km정도 험한 길을 지나면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뒤처져 오던 사람들도 무난한 길이라 그런지 제법 잘 따라온다.

상왕봉가는 길에 도집봉 옆구리를 지나치며 올라볼까 말까 고민하다 배고픔에 에너지를 아끼느라 발걸음을 아낀다. 땀을 흘리고 났더니 조금씩 허기진다. 주차하는데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점심꺼리를 미처 챙기지도 않고 씩씩하게 오른 것이다. 도집봉도 백학봉처럼 바위봉우리가 푸석푸석한 것이, 계룡산 천황봉 근처 사자머리 바위와 그 깨짐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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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서운한 것은 상왕봉의 조망이다. 계곡길로 올라 상왕봉을 지나 백학봉에서 정점을 찍었으면 벅찬 감흥을 가지고 산행을 마무리했을 텐데...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터라 그늘에 앉아 배낭 속을 긁어 초코바와 소시지로 배를 대충 채워 출발한다. 상왕봉만큼이나 사자봉은 실망스럽다. 다행히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순창새재와 내장산 쪽이 한눈에 보인다. 청류암 쪽으로 능선을 타고 남으로 가다 만난 작은 봉우리에서 만난 작은 행운, 어느덧 백학봉 옆모습이 마주 보인다.

점심을 먹지 않아 후유증이 점점 심해진다. 이대로 청류암 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서 다시 올라와도 될 성 싶은데 너무 허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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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흠뻑 젖어 빨리 옷을 갈아입으려 서두르다 그만 휴대전화와 GPS를 차 지붕에 올려놓고 그대로 질주해버리고 말았다. 화장실서 한창 씼고 나서야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불길한 기분! 길을 되짚어 가보니 콘크리트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내 핸드폰. 지나가는 차량에 짓밟히고 말았다. 케이스는 뒤틀리고 액정은 멋지게 아래위로 금이 가 있고 그 간의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진 외장메모리는 깨진 채로 따로 뒹굴고... 아침나절 열나게 남 험담한 대가를 치르는 건가?

다행히 서비스센터에 부품이 있다기에 큰 거 한 장 쓰고 고쳤다만, 외장메모리의 귀중한 내 추억들은...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네. 참고로, 여기 올리는 몇 장의 사진은 친구에게서 받은 사진이다.

어떻게 얻은 귀중한 이틀간의 시간인데 하루는 휴대전화 살린다고, 오늘은 집중 호우가 내린다는 예보에 겁먹고 봉화대만 휙~ 돌고... 이렇게 무의미하게 지나는 구나.  

1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 그러다보니 마음도 많이 들떠 있었나보다.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