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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태안 백화산 산행이야기_2014.03.08.

by 여.울.목 2014. 9. 10.

나에게 요상한 버릇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산행 후 산행이야기를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는 버릇이다. 이제 습관화 되어버려 후기를 쓰지 않으면 다음 것을 마주하기에 좀 껄끄러울 정도다.

그런데 요즘 후기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산을 찾고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어쩐지 사치라는 생각이 내 맘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심란할 땐 혼자 산에 오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는 했는데... 무엇부터 실마리를 찾아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복잡한 것들 잠시 접어두고 산으로 향한다.

 

2014.3.8. 11:23 (2:18)

3.57km를 걸었고, 평균속도는 1.54km/h로 참 여유로운 산행이었다.

 

  

태안에 있는 백화산. 멀리 있는데 다른 산행 때보다 여유 있게 출발을 한다. 공주에서 09:30분에 출발을 하는데, 그렇게 하는데도 시간이 괜찮은지 점심은 산을 내려와 식당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하찮은 산이기에 이리도 여유만만인지.

다들 간만에 만만한 산을 간택한 기쁨에 간장게장에 밥 비벼먹고 바닷바람 쐬고 싶은 맘이 산을 향한 그것을 뛰어 넘은 것 같다.

 

천기를 누설하는 기상청. 꽤 따듯할 거라는 말을 또 믿고 말았다. 쌀쌀하던데...

태안군민회관 앞에서 일행을 만난다. 다들 가벼운 차림이다. 산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않던 친구가 오늘은 배낭까지 던져버리고 나섰다. 나들이 나선 셈이군. 청소년수련관 근처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예전 일반지번으로 바뀌기 전 우리 동네 야트막한 야산을 오르는 기분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덩어리 같다. 오랜만에 차돌맹이도 본다. 가벼운 언덕을 지나 나지막한 능선으로 접어들자 약속시간을 연착시키면서까지 사들고 온 족발보따리를 풀어제친다. 정말 봄나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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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보들이 배를 채울 동안 하나하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은 바위 구경에 나선다.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커다란 돌맹이들이 개성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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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덩치를 자랑하는 입석에 올라서니 저 멀리 마블링 잘된 한우처럼 맛있게 생긴 산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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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이 산이 맘에 든다.

풍수로 따진다면 저기 저 백화산이 태안읍내의 진산이 되는 셈이다. 산의 기운이며 모양새는 우리나라 1호 관사 뒷산과 비슷한데 그 좋은 터가 될 곳엔 밭만 덩그러니 있고, 멀찌감치 나가서 태안 시가지가 펼쳐지는데, 안산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터에 모진 인간들이 용적률 같은 거 잊었지 넓은 땅 위에 촘촘하게 고층 아파트를 올린다. 마치 안산을 꾸며보려는 부질없는 짓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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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박이 아이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동반한 우리 일행은 생각만큼이나 엉금엉금 길게 꼬리를 늘어트리고 백화산 봉수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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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백화산 정상은 봉수대 터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너그럽던 능선은 점점 그 본색을 드러낸다. 다행인건 바위에 등산화가 착착 잘 달라붙는다.

땀을 식힐 시간쯤이면 멀리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나오는데, 곳곳이 자연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좋은 포인트다.

 

산은 내가 봉수대를 가진 봉우리다고 말하고 싶은 듯 갑자기 가파르게 솟아오른다. 꼬마아이를 데려온 회원이 등에 업고 올라오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상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느덧 열기가 식어 추위를 느끼는듯하다. 달여 온 구기자차를 한 잔씩 나눠 마시며 봉우리 남과 북으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속을 덥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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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길은 군부대로 통하는 포장길과 만날 듯 말 듯... 재미있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길이다.

산 중턱에는 태안마애삼존불이 있는 사찰이 있다. 커다란 화강암에 석가여래 보살 약사여래가 차례로 조각되어 있는데, 보통 석가모니가 가운데 오는데, 여긴 아주 특이하게 배치를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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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산하는 이 등산로는 태안초등학교 쪽 내려가는 길인데, 태안 사람들의 운동하러 많이 찾는 곳 같다. 등산로 곳곳에 보안등과 여러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3km 조금 넘는 산행이었는데 오랜만에 참 멋진 산행을 한 것 같다.

높고 깊고 웅장한 것만이 산은 아니다. 뭐라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매력 있는 백화산.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뭐지?

 

간장게장... 조금 늦은 점심이라 그랬나? 어찌나 집중해서 쪽쪽 빨아대며 맛있게 먹는지, 요리 인증샷도 안 찍고, 말도 않고.., 술도 안 먹고 뒤풀이하기도 처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