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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계방산 산행이야기_2013.12.28.

by 여.울.목 2014. 9. 10.

계방산

 

2013.12.28. 09:47~14:49 (05:02) 10.9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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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잠든지 3시간이나 지났나? 잠이 문제가 아니다. 12월 내내 마셔댄 술... 수료식도 마치고 이제 그 알량한 긴장감마저 고삐가 풀렸는지 몸이 지 멋대로다.

특별히 배려해 주시어 7인승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잠에 빠져들려는데, 거긴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곳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스마트폰을 뒤져 가장 가까운 휴게소를 찾아 차를 멈추게 한다. 먼 길 가는데 재를 뿌려서 미안타만, 그렇다고 차 안에 토를 할 수는 없잖수? 다행히 큰 거 보는 걸로 타협하고 나오는데, 차마 그냥 못 보내겠다고 하길래 나올 것도 없는데 억지로 확인하고 왔다. ~ 집에 가고 싶다.

횡성휴게소에서 한 번 더 큰 걸 보고 일행보다 늦게 시작한 아침식사. 반쯤 밥공기를 비웠을라나? 일행은 다 먹고 먼저 일어나고 혼자 식탁에 앉아 있자니 스키장 가는 사람들이 먹을 자리 선점하느라 내 앞에 앉아 숟가락 드는 모습을 내내 째려본다. 우이씨~ 더 먹을 수 있는데...

 

맨 앞자리로 자리를 양보해주는 고마운 천규. 꾸벅꾸벅 졸기에 바빠서 미안했다 종탁아! 그래도 더 자고 싶었는데 죄스런 맘에 억지로 잠을 몰아냈단다. 온도계를 보니 밖 기온이 17. 총무가 점심식사를 미끼로 운두령까지 차량 운행 거간을 하는 동안 또 볼일을 보러 간다. 이런 젠장~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하고 있을 걸 그랬나보다. 운두령에 내려서니 미칠 것 같았다. 온 몸을 꽁꽁 여미었는데도 삐져나온 광대뼈에 칼바람이 쓰라리게 내친다. 얼어 죽느니 발랑 걷고 싶은데 일행들 스패츠에 아이젠 착용하는데 왜 그리 시간이 걸리는지... 누굴 도와줄 몸 상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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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시작부터 45도 각도의 계단길이다.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지 게스트킴 왈 이 코스에서 여기가 가장 힘든 곳이다.” 그래 믿어보자 친구야.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거기만 지나니 정말 능선길이 나온다. 정상이라고 가리키는 곳도 그리 험해 보이지 않는다. 헌데 이놈의 추위가 문제다. 나만 추운건가? 해가 반짝 뜬 맑은 날씨인데도 기온이 하도 차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꽃이 그대로다. 볼만하겠는데 그걸 즐길만한 상황이 정말 아니다. 얼어 죽기 전에 무작정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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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생각하니 오늘은 게스트킴이 킴구라가 될 판이다. 산은 얼마간 얌전을 떨더니 한 고개를 넘어 주르륵 완만한 내리막을 즐기게 하더니 그만큼 오르막을 선물한다. 어느덧 마라토너는 저 앞으로 달아났고 난 좁은 등산로에서 한 부부를 추월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사이 일행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좀 움직였더니 몸에서 열이 난다. 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의 정도가 조금씩 정도를 더해가는 것 같다. 계속 걸으며 생각... 아니 의식되는 내 몸의 설사기운.

입에서는 쌍시옷만 나온다. 이런 추운날씨에 남들 안 보이는 데 가서 볼일보다 얼어 죽을 것 같구~ 참 별 경험 다해보네.

 

 

  

전망대 바로 밑에 너른 공간이 있어 총무와 함께 사람들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먼저 땀이 많은 신선적양이 두 눈만 공개한 채로 씩씩거리며 올라오는데 그 열기가 바로바로 얼어붙어 K2봉우리에서 만난 산악이 같더라. ..에 그 인상 깊은 사진이나 올려보지 고글과 머프로 꽁꽁 싸매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사진만 올렸더라.

보온병에서 차를 따라 마시며 나머지 일행을 기다리누만, 묻지마 관광버스 2차 분 등산객들만 열나게 올라가고 이 인간분들은 보이지 않네그려. 땀이 식기 전에 조금 더 올라가 전망대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 전망대(1492m)에서 바라본 경치 정말 죽이더라. 북쪽 멀리 설악산, 그 아래 점봉산, 바로 눈앞에 오대산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유혹의 손짓을 하고 있다.

1km 남짓 동쪽으로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옆집 아저씨처럼 계방산 최고봉(1577m) 너그러운 웃음을 짓고 있다. 나머지 일행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는 이제 별거 아니다라는 게스트 킴의 덕담을 듣고는 아쩌씨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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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구라!

하긴 네가 뭔 죄가 있겠냐? 도저히 정상에 서 있을 수 없다. 추워서. 그래도 독하데, 꼭 정상표지석 앞에서 얼굴도 안 보이는 인증샷을 찍고 오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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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삼거리까지는 그 칼바람의 여파로 다들 오들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삼거리를 지나자 날은 괜찮아지는데 경사가 어찌나 심하던지 아이젠과 스틱으로 버텨도 줄줄 미끄러져 내려가고 만다. 찻잔속의 태풍이라고... 노동계곡에 들어서니 모든 것이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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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수련장부터 노동리아랫삼거리마을까지의 지루한 평지길을 가르고나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쫄깃한 송어살과 들기름, 콩가루의 절묘한 조화가 이 거창한 하루를 잘 버텼다고 내려진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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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운전하느라 술냄새맡느라 참을인을 몇 번이나 썼을 것 같은 베스트 드라이버 게스트 킴 / 자리도 양보해주고 번개산행 끝까지 마무리 잘해준 총무님 / 투덜거리면서도 낙오 않고 계방산에 본보기를 보여준 평상선생 / 오랜만에 나왔는데도 여전한 산행 실력을 보여준 선옥샘 / 힘들어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진정한 산꾼녀 명선샘... 함께 산행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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