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
넉 달 만에 쓰는 산행 후기. 그날의 신선함은 많이 녹아내렸지만, 그래도 감격(?)스런 풍경이 아직도 내 뇌세포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달랑 세 명이다. 이 좋은 봄날 그 많은 회원들은 다 어디로 도망을 간 건지...
주 중 내내 아무 말도 없어 그냥 무장해제하고 있었는데, 나 말고 차량 운행할 사람이 없네. 낭패다. 주말 산행을 허하는 대신 차를 내어 놓으라는 마눌님의 지엄한 명을 어찌하란 말인가? 어쨌든 부여에 갈 일이 있다는 우리가족들이 버스와 택시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느라 예정에 없던 고생 좀 했네. 미안타.
그래서 그랬는지 은근히 짜증이 섞여 심기가 불편하게 뻗친다만, 이왕 가는 거 걍 잘 갔다 오자. 근데 하필 남도여행 때마다 내가 차를 끌고 가야 한다냐? 인간들 너무 잔머리 굴리는 거 아녀? 그래도 제주도 한라산 갈 때는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쉬는 시간이 있건만, 천관산 가는 길은 내내 운전하고 산행하고 운전하고... 뒤풀이를 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혼났다.
2014.4.12. 11:25~15:48 8.64km 1.97km/h (4:22)
오랜 운행에다 참석률 저조한 이 모임 생각에, 말끔하지 않은 몸과 맘. 하지만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산의 모양새가 사람의 맘을 간사하게 웃게 만들고 만다.
냉큼 올라서기 시작한 산행, 우리 일행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고 어쩌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산악회 아저씨들과 레이스 아닌 레이스를 펼치게 되었다.
체육공원까지는 그냥 산책 온 느낌이다만, 체육공원에서 오른쪽(북향)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니 이내 사람들 수가 줄어든다.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조금씩 뒤처지는 산꾼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저질스런 쾌감!
아~! 난 아직 멀었나보다. 빨리 이런 조잡스런 맘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 힘들지만 숲을 벗어나 암반지역에 들어서자 바다가 보인다.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다.
▼ 첫 번째 봉우리 선인봉
내가 이 산을 왜 이렇게 올라야하는지 의심을 가질 무렵 앞에 보이는 능선이 참 이국적으로 보인다. 색다른 느낌을 주는 주능선을 바라보며 지루함을 달랠 무렵 또 다른 위로 - 오를수록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다의 조망이 땀방울을 시원하게 닦아준다.
이 산 말이다. 그렇게 그런 능선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에 그쳤다면 다른 산과 크게 비교될 것이 없을 것이여. 아! 그런데 선인봉부터 시작되는 자연이 만든 이 장엄한 광경은 빠른 걸음에도 숨이 차오르는 고통보다는 ‘희열’을 느끼게 하고 만다.
선인봉을 거쳐 석선봉, 대세봉, 대장봉, 환희대까지 어떻게 달음질쳐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다람쥐처럼 바위에 달라붙어 봉우리에 올라 오만함도 부려보며, 신명나게 능선까지 도달했다. 암릉으로 가득한 산행길이라 체력소모도 많았을 텐데 아직도 내 눈을 통해 들어오는 이 풍광이 심장을 힘차게 받쳐주고 있다.
▼ 금강굴
▼ 멀리서 보니, 천자의 면류관 같다.
▼ 푯말에는 天柱(하늘의 기둥)깎아 세워 놓은 것 같다며 天主峰 이라고 써 놓았다.
환희대에서 올라서서 보니 올라오며 그렇게 색다르게 느껴졌던 연대봉까지의 얌전한 능선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선다. 초록 잔디위에 연두색과 분홍색이 섞여 봄이 주는 산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 같군.
▼ 환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 환희대에서 바라본 연대봉
▼ 구룡봉 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 한 무리
간식으로 소모된 칼로리를 보충하고 엔진도 거의 다 식었는데도 일행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천관산 산행을 한다니 친구가 꼭 구룡봉을 보고 오라는 말에 기다리느니 뭐하냐? 발자국을 옮겨본다. 가는 길에 철쭉군락 너머로 보이는 진죽봉... 신선이라도 살고 있을 것 같다. 자리 좀 펴고 입안에 딱 달라붙는 곡주라도 한잔 했으면 좋을 곳이다.
구룡봉에서는 바다를 한껏 잘 볼 수 있다. 구룡봉 여기저기를 보려면 약간의 용기를 내어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자칫 벼랑으로 떨어질 위험이 공존하는 곳이다. 일행을 만나기 위해 다시 발길을 돌리기 아쉽기만 하다.
▼ 바로 앞에 구룡봉이 보인다. 바로 손에 잡힐 것 같군.
▼
일행과 만나 점심 전을 펼쳐 본다. 식사와 간식에 곡주 몇 잔을 꿀꺽하니 천자 따로 없는 것 같더만.
얌전한 능선은 대충 걸어도 금방 천관산 최고봉 연대봉으로 길을 안내한다. 능선만큼이나 봉우리도 순해서 경치는 환희대나 구룡봉에 비해서 감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정원석과 양근암을 거쳐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 내려간다.
▼ 연대봉에서 환희대와 구정봉 종봉 등의 기암괴석을 한 눈에 바라본다.
▼ 하산길에 멀리 환희대 부근의 기암괴석이 참 우렁차 보인다.
▼ 정원암
▼ 천관산의 계곡, 봄꽃이 울긋불긋 단장을 하고 있다.
올라온 만큼이나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천관산의 기암괴석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니 정말로 곤룡포에 면류관을 쓴 것 같은 모양새다.
천관산, 사람의 마음을 홀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은 분명히 있는데 뭔가 좀 부족한 건 사실이다. 아마 바닷가에 홀로 서있기에, 높은 산과 깊은 산이 품고 있는 담백한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먼 길이지만 좋은 산 함께해서 흥에 겨운 날이었다.
4개월이나 미뤄 두고 쓴 산행후기.................
대체 그 동안 난 뭘 했지?
다시 산행을 시작하려고 2주 전 나선 홀로 산행에선 억지스레 힘을 쏟아 부어 탈이 났는지 발바닥에 간지러운 통증 가시질 않아 주말 내내 산 근처도 못 가보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산행이 문제가 아니었다. 4달 동안 정신없이 나를 팽개친 생활 자체가 문제였다. 그만큼 가치 있고 힘든 일에 몰두 한 건지... ???
이젠 그러지 말자꾸나. 넉 달도 그러려니와 그 넉 달의 것을 짧은 시간에 되돌려 놓으려는 내 욕심, 이제 좀 버려보자.
夫 執一家之量者, 不能全家; 執一國之量者, 不能成國
窮力擧重, 不能爲用
내일은 아침 일찍 봉화대나 올라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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