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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제암산, 사자산 철쭉산행

by 여.울.목 2015. 5. 11.

몸 상태가 무리한 산행을 삼가야 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지지난 주에 먹은 옻순의 여파로 주말과 어린이날까지 시름에 시달리고도 아직 그 후유증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다. 견디기 힘들어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는데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다. 기마자세를 취할 양이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근육 여기저기에 힘이 쪽 빠져 있는데 아직 열 기운이 몸에 남아 조금씩 피부 여기저기에 작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어쨌든 옻 탐이야 이제 그 기운이 기울어져 가는데, 몸에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가라고 낮이고 밤이고 설렁설렁하게 옷을 차려 입은 탓인지 아이들에게 끝물로 감기를 옮은 것인지 목이 부어오르고 코도 맹맹하고 무엇보다 두통이 머리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

이런 상태로 산행을 해야 하는지...

그래도 새벽에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 달에 한 번인 산행이라며 정성껏 도시락을 챙겨주니 용기를 내서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내가 언제 제암산을 이리 다녀올 수 있겠느냐.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컨디션 조절을 해야겠구나.

 

날은 한 달 사이에 더 길어졌다. 환한 것으로 치자면 한 낮같은 기분이다. 버스를 기다리자니 일터로 나가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깊은 주름을 보니 사치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미안스런 마음이 또 든다.

 

버스 안은 다른 때와 달리 한산하다. 5월이라 많은 사람들이 가족행사와 겹쳐 참가를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산악대장님께서 선두 무전기를 내게 건네신다.

옻이 올라서 어쩌구~ 이런 저런 변명으로 구시렁거릴 상황이 아니었다. 어떨 결에 받아든 무전기

 

제암산자연휴양림-제암산-곰재-간재-사자산-골치-용추계곡  11.28km (5:13)

 

 

제암산 산행은 제암산과 사자산 그리고 일람산을 아우르는 철쭉산행으로 계획이 되었다.

산행개념도를 바라보면서 품은 용기는 내 몸 상태와 실제 산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각각의 산이 능선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 능선이지 하나의 산을 내려와 사시 다른 한 산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울긋불긋한 철쭉을 그리며 찾은 제암산 들머리는 가는 길이 많아 조금은 헤매고 만다. 이미 녹음이 짙은 숲의 기운에 철쭉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 같다.

<제암산 정상이 보기기 시작한다.>

얼마 고생하면 능선길로 접어드는 산행길이 아니다. 조금 쉬어갈만하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코스다. 철쭉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흙이 검은색의 점토질이다. 밤새 비가 조금 내렸는지 질척대기도 한다. 그렇게 씩씩대며 등고선을 가로질러 제법 오르니 이제 키 작은 나무로 이루어진 암반지역에 다다른다. 암반 사이로 보이는 철쭉꽃. 진달래와 달리 조금 짙은 색으로 나뭇닢과 함께 피는지라 짙은 녹색과 짙은 분홍은 사람이 일부러 가꾸어 놓았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여기선 자연스러움을 떠나 신비롭다.

 

 

 

감탄도 그만, 앞에 우뚝 서 있는 암반지역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산 정상을 기점으로 80% 이상은 육산이고 거의 10% 범위 내에 골산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골산이니 소나무와 참나무 숲보다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0.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다. 남은 300백여 미터가 제암산까지 오르는 길의 막바지 시험을 한다. 경사는 느낌으로야 90도에 다다른 것 같다. 그렇게 거친코스를 지나니 비로서 펼쳐지는 철쭉군락은 여기서 산행을 그만 접고 내려와도 여한이 없을 것 같더만.

 

 

<제암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철쭉군락 능선>

 

<이제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제암산 정상이 맞는 것 같은데 정상석이 없다.

정상석은 암벽을 타고 올라가야만 있는 것이다. 올라갈 안전한 루트를 확인하는 동안 후배가 뒤늦게 올라와 거침없이 벽을 타고 올라간다. 쫄밋쫄밋 하면서 오른 산 정상은 노력한 만큼에 댓가를 준다.

 

제암산과 관련된 전설

곰재에 마음씨도 곱고 예쁜 여왕이 살았다고 한다. 여와의 미모와 덕성이 하늘까지 소문이 이르러 하늘나라 왕자가 여왕을 흠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옥황상제는 지상의 여인가 사랑에 빠진 왕자에 화가 나 장목으로 내려쳐, 하늘의 왕자는 곰재로 떨어지면서 커다란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산 정상 곰바위가 된 하늘의 왕자는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곰재산을 임금바위산, 황제바위산으로 부르다가 오늘날에 이르러 제암산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여기에도 웅치(곰재)라는 지명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곰 토템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곰 신앙을 믿는 정착민 집단에 소수의 새로운 엘리트 세력이 정착하게 된 이야기가 꾸며진 것 아닐까 생각된다.

 

 

<뒤돌아 서서 제암산을 다시 바라봄에~>

<곰재 가는 길, 형제바위>

이제 여유롭게 철쭉군락지에서 두 팔을 휘 저으며 행보를 한다. 오르는 동안의 피곤은 수많은 꽃이 반겨주는 박수소리에 꼬랑지를 내리고 만다. 그렇게 행복한 걸음을 뗀지 얼마나 되었을까 거침없는 내리막이 이어진다. 곰재까지 이어지는 내리막에서 형제봉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 빼고는 연세드신 선배님들께서 어찌나 전투하듯 내려가시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분명 페이스를 오버하시는 것 같은데...

무전기를 달고 있다고 나까지 어쩔 수 없이 나댄다. 조금씩 양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

<철쭉으로 에워쌓인 등산로>

  

이윽고 곰재를 지나자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내려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내려오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버린 일행이다. 곰재산까지 올라가는 내내 그 소비된 에너지만큼 속도가 뚝뚝 떨어진다. 나까지 다리가 풀려버려 허기가 진다.

곰재산까지 오르는 길은 꽃대궐, 철쭉으로 에워쌓인 터널이다. 인상을 박박 긁어가면서 오르니 지나온 길이 꽤 멋스럽게 달래준다. 이제 다들 지쳤는지 배꼽시계를 기준으로 점심 전을 펼치자고 한다. 짧은 코스를 택한 B코스 일행들이 철쭉제단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고 무전으로 알려준다.



<철쭉 터널을 나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본다>

 

 

점심을 먹는데 멍~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짧은 B코스를 선택하신 분들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이 남은 체력으로 먼저 길을 잡고 나선다. 나도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뒤따라 나서고 만다.

 

 

다시 이어지는 철쭉군락은 든든한 속 덕분인지 더 흥겹게 보인다.

그 흥겨움도 잠시 다시 사자산을 향한 길에 오르막을 만난다. 완전 체력단력이군.

사자산을 지나 561고지 전까지 얼마나 올라가려고 다시 이런 내리막이 이어지는지... 일행 저마나 골치이야기를 한다. 골치에서 내려서자는 이야기다. 발목이 아프다. 시간이 안 된다. 체력이 아니다...

솔직히 나도 561고지를 찍고 골치로 내려서는데 왼쪽 측면 무릎이 다시 또 통증을 부른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통증이 시작되니 속수무책이다. 골치로 내려서자고 나까지 동참을 한다.

 

 

<사자산, 간재봉>

일림산이 문제가 아니고 더 나은 앞으로의 산행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의견을 모아 중간에서 하산을 결정했는데, 어쩐 일인지 일림산을 코 앞에 두고 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분을 이지기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네~

 

<멀리 일림산이 보인다. 또 다른 철쭉 군락지. 저기까지 계획되어 있던 산행이 아마도 내탓으로 단축된 것 같으이 ㅠ>


몸도 맘도 지쳐서 못 가겠더만
...

 

아무튼 그렇게 이른 회군으로 큰 통증 없이 내려섰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앞서서 내 페이스를 찾지 못한다면 고행의 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괜시리 우울모드에 빠져든다.

늦은 귀가로 처갓집도 가지 못하고, 홀로 썰렁한 집에 앉아 있으려니 여기저기 삭신이 쑤시고 감기가 더 심해졌는지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히고 머리가 띵하다.

 


<용추계곡을 통해 내려오는 길에 만난 편백나무숲, 마음이 편안해진다.>

 

<차량 이동 중 우리나라 3대 남근석이라면서 호들갑을 떤다. 나도 한 컷 담아본다 ㅋ>

일요일 아침. 두통 때문에 모든 감각은 무뎌지고 근육통으로 움직거리기도 싫다.

~ 나만 이렇게 힘든 산행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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