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찾은 용봉산
일요일 새벽녘에 하늘이 요란을 떨더니 해는 잠을 깨지 못하고 드디어 비가 내린다.
휴일에 비라... 다른 때 같으면 잔뜩 찌푸린 하늘만큼이나 얼굴을 구겼을 터인데, 가뭄에 내리는 단비라 맘이 편안하다.
>공염불
어제는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단둘이 용봉산 산행을 했다. 그동안 산악회다 저마다의 바쁜 일상에 산행일정을 맞춰 함께 한 것이 오랜만이다.
발목인대염증으로 한 동안 고생하던 친구가 이제 슬슬 산행을 시작하겠다며 아주 천천히 재활산행을 하지고 한다. 처음엔 집 근처의 계룡산이나 칠갑산을 생각했는데, 녀석이 언젠가 가봤던 용봉산을 떠올리며 이제 고속도로 덕에 근교산행을 할 수 있으니 찾아보자고 한다. 그렇군 1시간 거리니 이제 근교산이 되어버렸다.
나도 지난 제암산 산행 후로 양쪽 무릎과 오른쪽 발의 이상으로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가벼운 산행 ok톡을 날린다.
용봉산은 용과 봉황의 생김을 닮았다하여 ‘용봉’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산의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군데군데 절경만 본다면 설악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올만했다. 홍성군청의 홍보문구에는 용봉산 구석구석에 많은 유적과 전설이 서려있다고 하는데, 찾는 사람들에게 그 유적과 이야기를 전하는 데는 좀 소홀한 것 같다.
지난 달 제암산 산행 때 제암산의 이름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님의 아들과 예쁜 웅녀의 이야기로 임금 帝를 써서 커다란 바위에 이야기를 입혔더만...
21세기에서 허황된 거짓말을 늘어놓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곳, 우리 선조의 이야기를 되 살려 멘탈을 경건히 할 수 있는 신화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쌓이고 퍼져 마을과 도시를 묶어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신도시와 구도심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정신적인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염불을 외어본다.
용봉산 주차장-거북바위-병풍바위-전망대-악귀봉-노적봉-최고봉(381m)-최영장군활터-원점회귀
4.7km(2:22)
>슈트 입은 허수아비
간만에 나서는 산행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예산수덕사 IC에 도착했다. 내포신도시까지 새로 난 국도를 여유롭게 달려 얼마를 가지 않으니 내포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아직도 진행 중인 도시다.
세종시와 같이 여긴 아이들 애니매이션에 등장하는 미래의 도시 같다. 세종은 그나마 국비로 이것저것 인위적으로나마 뭔가 끼워 맞춰 어색한 구색이라도 갖춰놓은 것 같은데, 여긴 더 심하다. 그 ‘미래’라는 것이 도시의 세련됨이나 스마트하다는 느낌보다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영화 「월-E」나 「아스트로 보이」처럼 사람들 사는 일정부분만 제한된 최첨단의 터전이고 다른 세상은 황량한 황폐한...
봄도 무르익어 녹음이 짙어가는 데도 가을걷이가 끝난 들에 홀로 생뚱맞게 고급 슈트를 입고 서 있는 허수아비 같다는 것이여.
영화에서는 그게 과학문명으로 가능한 일이지 사실 생태계의 고리가 끊어진 채로 사람이 제한된 구역에서 모든 것을 인공적인 것으로 대체해서 살 수 있을까?
두 신도시 모두 주변 환경과 어울리기 보다는 사람 위주로 계획된 그림에 따라, 그것도 정해진 기한 내에 뭔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쥐어짜다보니 계획대로도 다 재현을 못할 것이여. 배경을 지우고 도시만 세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도시 자체만은 ‘멋져부러~’라고 엄지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배경색을 칠하기 난감한 그리다 만 그림이다. 어떻게 배경색을 칠해서 마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만 비관적인 건가? ㅎ
미신 같은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활 속에서의 풍수란 이런 의미에서 결국 자연 앞에서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들이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에서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자연과학 지식이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다보니 미신적인 면이 더욱 두드러진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
역쉬 혼자 중얼거리다 만다.
내포문화권과 금강문화권
충남을 내포문화권과 금강문화권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 구분이 차령산맥이다.
금강문화권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금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화권이다. 금강을 따라 포구를 이루뭐 문화와 물자 교역이 이루어졌던 권역이다.내포 지역보다 성질이 급하고, 도시성과 개방성이 높고, 구 한말에 독립운동도 계몽운동 양상으로 이어졌다.
공주, 부여, 논산, 서천, (구)연기...
내포문화권
금강과 같이 큰 강이 없는 대신 하천을 따라 배가 육지까지 이어졌다고 해서, '내포'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금강문화권에 비해서 보수적이지만, 항일운동은 투쟁의 형태로 이루어진 지역권이란다.
서산, 당진, 보령, 홍성, 예산...
>초록을 입은 용봉산
벌써 15년이 훨씬 넘은 것 같다. 얼떨결에 따라 나선 용봉산은 어릴 적 뒷동산 같은 느낌이었다. 산을 얏 봐서가 아니라, 산이라고 하기엔 나무가 거의 없었던 느낌 때문이었다. 그냥 나무가 거의 없는 먼지 풀풀 나는 길을 걸었던 기억이다. 어릴 적, 산을 밀어 나름 택지를 조성하려 까발려졌던 뒷동산도 그랬다. 인구가 한창 늘어나던 때의 택지 예정지라 나무를 심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벌거벗겨져서 그렇게 몇 년 동안이나 방치되었던 황토 빛 뒷동산.
그런 기억과 함께 얽혀졌던 용봉산이 이제 제법 초록이란 멋진 옷을 입고 있다. 이제 숲이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이다. 그 초록이 골산의 부끄러운 곳을 가려주니 참 멋스럽게 보인다.
바짝 가파른 길을 조금 걸어가니 거북바위가 나온다. 거북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너른 바위 위에 서서 멋진 그린재킷을 입은 용봉산과 내포 신시가지를 바라보는 황홀감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랜만에 흘린 땀을 식혀준다. 재활 산행답게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늘에서 여유롭게 땀을 훔친다. 그럭저럭 이렇게 700여 미터를 걸으니 이제 순수 오르막을 벗어나 능선길에 접어 선다. 그 능선의 시작이 병풍바위다. 산에서는 바위의 모습이 병풍 같다는 것을 알기 어렵고, 안내문의 사진을 보니 멀찌감치서 바라봐야 바위가 병풍처럼 길쭉하게 정방형으로 겹쳐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군.
- 풍화작용으로 생겨난 구멍
- 이만큼 구멍을 파기 위해 얼마나 수없이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벼랑바위에서/ 기암 괴석 사이로 조금씩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앞의 봉우리가 용바위 봉우리 같다.
-벼랑바위에서/ 의자모양으로 생겨난 바위 덩어리, 신기하다.
병풍바위부터 보이는 풍경부터는 내포 신도시의 중심인 도청과 도교육청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오르막에 더 수고를 하면 용바위 갈림길을 만난다. 용바위 갈림길에서 오른쪽 북향으로 수암산쪽으로 200미터를 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말 그대로 전망대라 사위가 시원스럽게 들어오지만, 그만큼 햇볕이 따갑게 내려쬔다. 용봉산으로 치자면 용봉산 자체 자락만으로는 제일 북쪽이라 용봉산 정상과는 좀 거리가 있건만 여기서 홍예공원과 도청, 교육청이 중심으로 보인다.
-전망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 오른쪽이 북, 위쪽이 서 /탐방객의 시각으로 지도를 그려놓았다
내포시가 홍성과 예산의 경계지에 세워졌다더니 그게 그런가보다. 어찌 보면 산 중심으로는 용봉산보다는 예산의 수암산이 신도시의 진산이 아닐까 여겨지는 각도다.
>소금강 맞네~
그렇게 200여 미터를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병풍바위에서 감탄사를 쏘았던 용바위...는 그냥 지나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멋질 수도 있는 것이다.
용바위를 내려와서 그늘에 앉아 쉬는 내내 가까이서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바로 임간휴게소라는 곳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네. 널따란 방부목 평상이 서너 개가 그늘 아래 시원하게 놓여 있다. 아~ 여기가 쉬기 딱 좋은 자린데 관광버스 타고오신 언니 오빠들이 점령하시고는 막걸리에 수박에 임간파티를 벌리고 있다. 웃음소리가 그치질 안네 그려~ 뭣이 그리들 좋은지. 아이들보다 더 수다스럽고 재미있어하는 어른들의 모습. 뒷마무리는 잘 하고 내려가셨는지요~.
그런 요란함을 등 뒤로 하면 악귀봉과 노적봉까지 막바지는 오르막다운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리 걱정할 만큼 길지 않지만 충분히 땀을 빼게 만드는 코스다.
하지만 흘린 땀만큼 보답을 한다.
- 현수교 모양의 다리(모양만 현수교...)
- 진짜 물개랑 닮았다!
- 모든 바람이 여기를 지나치는 것 같다. 진짜 시원하다~
현수교 모양을 한 보통의 다리를 지나면 그늘이 하나도 없는 봉우리인데도 시원한 바람이 온몸 구석구석을 식혀주는 시원한 봉우리를 만난다. 아마도 노적봉인 것 같은데 봉우리 위에 물개를 닮은 바위가 있다. 하도 그 모양이 예뻐서 사진 좀 찍어가려했더니 산악회 일일 커플이 5분 넘게 이런저런 포즈를 느릿느릿 취하면서 자리를 비켜주질 않는다. 연배도 많으신 누님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리 예의나 눈치가 없으신지 ㅋ.
정말 쥑~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최고봉으로 향하는 능선에 보이는 바위와 철 계단의 조합은 설악산 같은 명품 골산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광이다.
내 금강산은 가보지 않았으니 모르겠다만 설악산과 빼어 닮은 모습이 참 멋지다. 금강산 가본 사람들이 그래서 소금강이라고도 하나보구나.
- 멀리 정자 하나가 보인다. 최영장군 활터~
- 읽으면서 웃음지었던 이야기
- 실제 지도를 보니 '말무덤고개'라는 곳이 있더군. 아마 사진의 왼쪽 아래 어디쯤 일것 같다.
>전설
투구봉으로 향하는 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길 같이 보이고, 오히려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안내도에 그려진 최영장군 활 쏘는 터로 향하는 능선이 자연스럽게 자락을 펴고 있다. 안내도가 휴양림을 기준으로 내포시 방향에서 보이는 것처럼 너무 과장되게 그려진 게 사실이다. 투구봉 쪽으로 가는 길에 한갓지게 서있는 최고봉의 정상석은 정상이란 것을 알리려고 자연바위 위에 정상석이 처음부터 있던 것처럼 애써 올려놓은 티가 난다. 몇몇 산처럼 용봉산도 최고봉이 최고봉으로서의 권위 있는 조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5년 만에 찾은 용봉산. 예전과 달리 숲이 안정화되면서 많이 달라진 모습에 몸과 마음이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그런데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그 오랜 동안 사람과 함께 해온 산이라면, 군청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그 많은 전설이 대체 어디에 붙어있는지...
오랜 시간동안 비와 바람에 의해 이런저런 신기한 모양이 나온 만큼의 이야기도 많이 숨어 있을 법도 한데, 홍성군에서 그런 이야기를 좀 안내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전설이 용봉산의 최고봉을 지나고서야 최영장군 활터에서 드디어 볼 수 있다.
어릴 적 교실에서 들은 이야기가 최영장군 활터에 안내문에 쓰여 있더군. 현실적으로는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최영장군의 명성에 더불어, 성숙해가는 과정에서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찾았다.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어릴 적 생각도 떠올리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기기도 하고, 몸과 맘이 편안해진다. 하나 챙겨온 캔맥주 하나를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며 짧은 산행을 마무하려 준비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와도 무난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산행지 같다. 시간과 교통수단이 허락한다면 예산과 홍성을 넘나들며 수암산과 용봉산을 종단하는 것도 큰 재미일 것 같다.
산이 조금만 더 규모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마 그랬다면 이곳 평야지대에서 생업을 하셨던 분들의 삶의 모습도 달라졌겠지.
그래도 산이 조금 더 컸다면 내포시도 포근하게 안아 줘서 함께 잘 어울렸을 것 같은데, 내포시가 마무리되면 사람들 때문에 많이 시달릴 것 같아서 측은하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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