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벽산, 국사봉
계룡산 줄기가 상하신리를 빗겨가 대전교육연수원을 지나쳐 그나마 나지막하게 길을 터 준 곳이 “마티”다. 마티를 거쳐 신하가 엎드려 있는 듯하다 하여 “국사봉”이라고 하는 봉우리를 세워 놓고는 청벽산과 진날산 자락을 어어 북으로 달음질 쳐 비단강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난 산행에 마무리 못한 산행에 매듭을 지어보려는 맘에 홀로 산행을 결심했다.
언제
2008.06.07. 토요일 산행시작12:00 산행마무리14:20 (총2시간 20분 휴식시간 포함)
어디
국사봉과 청벽산, 진날산
누구
1인(여울목)
1200
푸름이가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서려는 내 바지자락을 붙잡는다. 녀석 덕분에 푸름 맘이 마티고개 정상까지 승용차로 태워다 주었다.
그러나 녀석... 업어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락한 산행이라, 실제 굽이굽이 펼쳐진 산을 보니 “아빠가 낮은 산에 왔으면 맘이 왔다 갔다 안하는데, 높은 산이라 맘이 왔다 갔다 해요!” 높지는 않지만 그리 만만치 않게 길게 뻗은 능선이 더운 날씨에 어른도 흔쾌히 선택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녀석과 실랑이를 펼친 게 5분가량 지났을 게다. 결국 푸름이는 산행을 포기하고 눈가에 이슬 가득 채운 채로 엄마와 지수와 함께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마티고개 정상에서 대전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니 표지판도 없는 산행 진입로가 나왔다. 이제 시작이다. 혼자 하는 산행, 얼마만인가? 손을 크게 다친 후로 계절이 3번이나 바뀌었다. 좀 겁도 나고 설레기도 했다.
국사봉을 향해 오른지 한 5분이나 되었나? 짧은 능선을 따라 가다보니 첫 번째 전망이 보인다. 간벌을 하고 난 후라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1215
오르막의 진수.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물 한 모금.., 등산로는 입산통제구역이라는 현수막으로 막혀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현수막을 훼손하기 보다는 옆으로 새 등산로를 빙 돌아 내었다. 우거진 잡목으로 햇볕은 들지 않았지만 등산로 곳곳에 지뢰감지 선처럼 거미줄이 어찌나 많은지 흘러내리는 땀과 거미줄이 얼굴에 얽히고 날벌레들이 계속 내 귓가에 윙윙 소리를 내며 따라온다. 그리 상쾌하지 않는 초반 산행이다.
한참을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출발한지 15분밖에 안 됐다. 산불감시 초소가 보였다. 산불감시 초소가 있다는 것은 전망이 좋다는 말이나 같다. 예전엔 맨 날 산불감시 공무원이 올라와 공무를 수행했겠지. 지금은 무인카메라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좀 전의 불쾌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 이 맛에 산행을 하는 게 아닐까.
1225
이제 능선이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웬 봉우리에 무너진 돌무덤 같은 것이 보였다. 국사봉 정상이다. 정상이라 하기엔 너무나 허접스러웠다., <국사봉 392m 대전원진사람들> 이렇게 씌여진 흰색 팻말이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근데 자꾸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2m 전방에 뱀 껍질이 있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죽었으려니 생각하고 사진기를 꺼내는 순가 녀석이 목을 꼿꼿이 세운다. 으악!
그만 사진도 못 찍고 뛰어 내려왔다. 겁쟁이... 그래 솔직히 겁이 났다. 이번엔 독사에 물리면 안 되잖아? 그래서 겁에 질려 도망가다 찍은 국사봉 사진이다. 정상이지만 잡목에 둘러싸여 그리 전망이 좋지는 않았다.
자꾸만 떠오르는 뱀 생각에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동화책 한 권을 보여준다. 뱀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 이다. 내가 뱀의 일광욕을 방해 했나보다. 푸름이가 책을 뒤적이며 내용을 대충 주절거린다. 아이만도 못한 겁쟁이 어른이 되고 말았나?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1305
산중에 웬 도로? 편도 1차로는 될 것 같다. 지난 산행을 중도에서 마무리한 곳이다. 서쪽으로 내려가면 과학고가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산림박물관이 있는 동네로 연결되는 길이다. 참 희한한 것은 길가에 가로수까지 심어져 있고, 철도시설공단 기준점도 있고 'GNG텔레콤'이라고 찍힌 맨홀 뚜껑 등... 뭐 이런 도로가 다 있나?
나도 이쯤에서 다시 내려갈까 말까 망설여지더라.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1320
지난 산행에 그리 길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금방이다. 맘을 고쳐먹고 다시 산행 결심을 하길 잘 했다.
능선 중간에 나무보다 웃자란(?) 바위에 올라섰다. 멀리 '세종시' 예정지역이 보인다.
1325
청벽산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두 번째 산행인지라 그나마 정상이란 걸 알 수 있다. 요즘 나무가 무성해서 그런지 정상이 아주 높아 나무가 없거나 바위로 되어 있지 않다면 산 정상이라고 느끼기 어려울 거다. 푹푹 빠져드는 낙엽길이나 우거진 나무를 보니 건기에 산불이 나면 크게 번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1330
그다음 봉우리다. 느낌 상 좀 전의 산보다 낮다는 생각에 집에 와서 지도를 찾아 보니 "진날산"이라고 한다.
1345
탁 트인 금강줄기, 양 옆으로 열병 하듯 난 국도 위로 쉼 없이 자동차가 지나다닌다. 정원아! 오늘도 경찰아저씨들이 검문중이다. 안전벨트 단속이 분명하다. 그 때 네가 너무 머뭇거렸던 탓에 불라고 한 것이다.
전망에 취해 잠시 서 있다가 바로 아래 절벽으로 내려갔다. 오른 편으로 불티교와 세종시 예정지역까지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이제 생각났다. 배고픔. 김밥 두 줄을 안주삼아 시원하게 캔맥주를 들이켰다.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어떤 재벌 보다 낫다.
1410
산을 내려왔다. 구 도로를 따라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매일 다니는 이 길, 이렇게 천천히 걸어보는 건 처음이다. 차를 타고는 금방인데 걸어서 가려니 한참이다. 산닭집 앞에 도착해서 굽이굽이 도로를 찍어보려 사진기를 꺼내는 순간 21번 버스가 왔다.
버스를 내려 집까지도 걸어서 왔다.
한 삭이 다되도록 머릿속에 움크리고 있던 두려움을 모두 떨쳐버린 것은 아니지만, 다음 번엔 좀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산행 내내 꺼내지 않았던 MP3와 이어폰 꺼냈다. 애청곡을 따라부르며 ♪ 햇살 가득한 한가로운 거리를 걸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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