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어른도 길을 잃는다 - 공주 우산봉_2008.07.21.

by 여.울.목 2014. 8. 29.

2008.07.27. 일 10:40부터
먹뱅이골~우산봉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 밖을 본다. 월성산은 아직도 뿌연 안개로 갇혀 있다. 비가 그친 것도 같은데...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보니 우산을 쓰고 간다. 뒹굴뒹굴~, 일요일 하루를 이렇게 보내야 하나?
일기 중계방송이라고 지청구를 듣는 기상청이지만 믿을 구석은 그 곳 뿐이다.
비가 오지 않는단다.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드니 지수가 어리둥절 한다. 왜 아빠만 내려서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나보다. 경식이는 뭔가 협상하고 싶은 맘이 있는지 나보고 가지 말라고 칭얼거린다. 토끼 같은 내 새끼들의 어린양을 보니 갑자기 산행을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

산행시작 먹뱅이골 140m
새로 구입한 휴대용 GPS를 가동시켰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른 아침까지 내린 비로 계곡은 활기에 넘친다. 계곡 구석구석까지 가족 단위 피서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불법아닌가? 모두 불판을 가지고 있다. 약 1.5km나 이어지는 계곡이다. 시원한 계곡물과는 달리 벌레들이 극성이다. 헉헉거리는 내 몸의 열기와 땀내 때문에 어쩌면 나보다 녀석들이 더 고생했는지 모르겠다.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해 안경을 벗었더니 벌레들이 자꾸 눈으로 파고든다. 아~ 이 고생을 왜하는지...

38' 박정자고개 384m
출발한지 38분만에 박정자 고개에 도착했다. 먹뱅이골 계곡길이 비포장길 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다. 잠시 숨을 돌리며 정신을 차리고 수분을 보충하고 나니 살맛 난다. 이 맛에 산에 오르나 보다.


<두 번째 찾은 문정봉>
1° 09' 문정봉 565m
다시 20분 동안 오르막에 땀을 더 쏟았더니 문정봉이다. 두 번째라 그런지 금새 온 것 같다. 지난 날 우산봉까지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되돌아섰던 곳이다. 이제 다시 시작인 셈인데 너무 힘을 뺀 건 아닌지 걱정이다. 흘린 땀을 생각해서 물을 충분히 마셨다. 언제나 넉넉한 수통이 맘에 든다.


<멀리 보이는 바위산이 계룡산 장군봉, 그 뒤로 천왕봉, 삼불봉...>
2° 우산봉 574m
능선이다. 소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널찍한 길이다. 생각외로 편안한 능선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편차가 클 것으로 예견되었는데 우산봉까지 친구와 손잡고 갈만큼 넉넉한 길이 이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우산봉 이다. 나 스스로 좀 실망했나? 인석을 찾으려 근 2주 동안 좀이 쑤셔가면서 계획했던 산행인데 아쉽다고 해야 하나?


<우산봉 정상에서... 공주로 가는 길이 반듯 나 있다>
봉우리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는 봉우리 바로 턱 밑에 있다. 정상에는 돌로 헬기장을 표시하려 했는지 엉성한 ‘H'자가 남아 있다. 우산봉인지 우솔봉인지 유래에 대한 안내판도 없다.
동쪽으로는 대전 유성구다. 서쪽으로는 마티터널을 지나 꺽어지면 반듯하게 공암쪽으로 내달리는 국도가 보인다. 북으로는 연기군 지역인데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어른도 길을 잃는다.
더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는데 엄두가 나질 않는 날씨다. 아무렴 경치에 좀 취해 있어야 하는데 야릇한 실망감에 하산 걱정뿐이다. 처음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계획대로 공암에서 직행버스를 타려면 옛 산행로를 따라 가야 한다.
우산봉 정산에 있는 산행도를 보니 다시 1.1km를 내려와 서쪽으로 가면 공암 동네가 나온다. 맥주 한 캔에 김밥 두 줄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우고 집에 하산한다고 전화를 했다.
여기부터 고생길이 시작이다. 길은 있는데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나보다. 나무 잔가지에 치이지 않으려면 허리를 굽혀야 했다. 이제는 돌로 쌓아 만든 희미한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는데 오한이 느껴진다.
이러다 사람들이 산에서 길을 잃고 쓰러지나 보다. 오랜 시간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잠긴다.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이러다 발목이라도 접질리는 날에는... 계곡이 양쪽으로 흐른다. 계곡 주변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다 간신히 길을 찾아냈다. 잘 닦여진 길을 만나니 ‘살았다’라는 생각에 긴 안도의 한숨이 인다. 알고 보니 학교법인 대성학원 수련원이다. 수련원이기 보다는 기도원이다. 내가 예상했던 골짜기가 아니었다.
공암리로 가고자 선택한 길이 송곡리 방면 대성산기도원과 송곡저수지 쪽으로 나온 것이다. 덕분에 5km를 돌아 공암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너무나 반가운 산장-대성학원 수련원>


너무 더운 날씨였다. 아무일 없이? 무사히 도착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이 언젠가 내가 읽었던 ‘어른도 길을 잃는다.’라는 책을 일고 있더라. 한국전쟁과 이념갈등을 배경으로 갈팡지팡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책인데...
상황이 딱 맞는 상황이다.

조금 편하려고, 조금 자만을 부려 많이 힘들었던 내게 오늘의 경험은 소중한 원칙이 될 것이다. 특히 홀로 산행에서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