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청량산
2016.7.9. 10:13부터 5:00
경북 봉화 청량산
입석-응진전-김생굴-자소봉-뒷실고개-청량산(장인봉870m)-뒷실고개-청량사-선학정주차장
산악회 회원 15명
금요일 오후 술 한 잔 하자는 전화가 몇 통 온다만, 정중히 사절한다. 방 잡아 놓고 먹는 모임이라 아무래도 거기 참석했다가는 산에 가는 버스도 못 탈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문자 너댓 통이 연거푸 온다. 안 봐도 이 시간의 문자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간다.
15명... 다음 달에는 휴가철에다 연휴까지 겹쳐서 더 걱정이 된다. ㅠ_ㅠ
그래도 반가운 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56회, 68회 선배님과 66회 후배님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시간 넘게 달려가 드디어 낙동강을 건너자 바로 청량산도립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예전에는 입장료를 받은 모양인데 최근의 추세에 따라 무료로 개방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주차료도 따로 받지 않는다.
차량은 계속 달려 산행 출발점인 입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버스는 회차하라는 커다란 간판이 도로 한 가운데 세워져 있다. 남덕유산 이래로 나라에서 하라는 것은 빼놓지 않고 잘 지킨다. ㅎ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다. 800m 걸어 올라가니 엔진에 예열은 충분하게 된 탓인지 벌써 땀방울이 비처럼 내린다.
입석등산로 분기점
길가에 생뚱맞게 서 있는 입석 뒤로 밀성대의 기암도 멋지다.
레미콘 차량이 어쩌다 남은 콘크리트를 던져놓고 도망간 것처럼 도로 한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역암덩어리가 입석이라고 한다. 오히려 입석 뒤로 보이는 밀성대의 기암이 더 ‘입석’이라는 명칭을 살리는 것 같은데, 산 위에서 보니 밀성대에 비해 밋밋한 것이 아래 길가의 돌을 보고 입석이라고 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맞는 말 같다.
산행 시작 때 보았던 밀성대의 산성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저 성을 쌓느라 민초들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저 깊은 골짜기를 지나 온 것이 청량산이다.
안 던 배구를 한다고 폴짝거린 탓에 다리를 중심으로 근육이 뭉쳐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입석 출발점에서 한 발을 내딛어 오르막에 이르자마자 입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고문도 이런 고문은 없는 것 같다. 3번 무전기의 부재로 핑계 삼아 꼬랑지 제일 뒤에서 대겸이와 느릿느릿 걸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입석처럼 바위의 성질이 특이해서 그런지 풍화작용으로 아슬아슬하게 모양을 낸 기암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기암 외에도 좀 특이한 것이 있다면 이 도립공원 내에는 나무판재와 청량사 시주용 기와 남은 것으로 안내하는 글을 써서 여기저기 지긋이 기울여 놓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오르다보니 어느덧 암반지역이 나오면서 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응진전에 도착한다. 웅진전인 줄로 알았는데... 應眞殿이다. 의상대사가 처음 지은 암자라고 하는데, 터를 잡았겠지. 청량사라고 검색하면 자주 보이는 프레임이다. 돌담 주변에 구절초가 피어나고 병풍처럼 둘러친 금탑봉 괴암에 살짝 단풍이 들고, 하늘마저 높고 파랗게 배경을 서면 신선이라도 사는 동네같이 여겨진다.
금탑봉 아래 응진전, 돌담에 구절초가 핀 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그 사진 배경이 여기다!
그늘진 길가에 가던 길 멈추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총명수, 최치원에 관한 유적 중 하나인데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곳에서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그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예로부터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효험을 보았다고... 울 마눌님 그런 물 있으면 얘들 좀 떠다 주지 혼자마시고 왔다고 핀잔을 준다. ㅋㅋ 그러네, 좀 떠올 것을.
여기까지 올라와서 허벅지 튼튼하게 해서 건강하고, 등산하면서 혈액순환 잘 되서 뇌에 신선한 피와 공기가 잘 공급 되서 그런 거지 이 사람아~~~ 시험끝나면 애들 데리고 산이나 같이 가자.
총명수 먹으면서 최치원이 공부했다는 ‘치원암터’를 지나니 청량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나온다. 정말 딱 절터 자리에 포근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총명수; 더 똑똑해질라나 ㅋ
치원암터; 최치원이 암자를 짓고 공부했다는 터. 이런저런 글귀가 세겨져 있어 추정을 하는 것 같다.
통일?신라 시대의 서예가 김생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글공부를 한 곳 중의 한 군데가 여기란다. 수십 명이 웅크리고 앉아있을 만한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여기가 김생굴이다. 아마 그때는 앞에다 움막처럼 뭔가를 덧대었겠지. 김생굴 앞 공터는 장마철이면 여러 계곡의 물이 합쳐져서 폭포를 이룬다고 한다. 폭포수가 떨어지며 생겨나는 음이온이 무지하게 발생해서 공부하는데 도움은 많이 되었겠군.
김생굴
아~ 근디 어떤 놈의 **가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무지개 다리를 거너기 전 즘에, 등산로 한 가운데 *을 푸짐하게 두 군데나 퍼지르고 도망갔다냐. 지나는 사람마다 ‘ㅆ’을 던지는데 그렇게 욕을 먹어서 오래 살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자소봉까지 가파른 길을 계속 이어 올라야 한다.
혹시 뭉친 근육에 쥐라도 날 것 같아 테이핑을 하고 온 다리가 ‘나 살려주오~’ 발악을 한다. 자소봉에 올라야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는 1번 무전기의 꼬득임에 그래도 씩씩거리면서 철계단을 올라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청량산이 참으로 특이한 지질형태를 띠고 있다. 대부분 녹음으로 감춰져 있는데 청량산만이 약한 지반은 다 가라앉고 특이한 녀석들만 남아 기암을 이루고 있다.
자소봉 철계단을 내려와 작은 공터에서 점심 전을 편다. 오랜만에 나온 종락이가 시원한 카스를 내민다. 술을 안 먹으려 작심을 했는데 너무 시원해서 한 캔을 쪽쪽 빨아댔다.
이제 뒷실고개까지는 평이한 능선이 이어진다.
탁필봉은 홀로 서 있기에 그냥 지나치고 연적봉에 올라 탁필봉과 자소봉의 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본다. 조금 용기를 내서 소나무 뒤편으로 가면 처음 보았던 밀성대부터 시작된 산성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이 들수록 산성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 웅장하다거나 군사‧문화적 가치가 어땠다- 보다는 저걸 저기에 쌓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내 먹을거리 등에 지고 오르는 것도 이리 힘든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민초들이 말 그대로 풀뿌리만 먹고서는 돌맹이를 날라서 어쩌구저쩌구~
눈길을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리면 이제 작지만 청량산 하늘다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얼마 안 남았다 힘내자.
자소봉은 저리 가파라서 오르지 못한다.
자소봉 철계단에 잠시 서서 앞의 산성과 기암을 바라본다.
탁필봉
연적봉에서 바라본, 앞의 탁필봉(小)과 뒤의 자소봉(大)
역시 능선은 능선이다. 다들 편안한 걸음을 내딛는 것 같다. 지나니 널찍하고 시원한 도시락 까먹기 좋은 자리가 많다. 조금만 배고픔을 참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1번 무전기 10중 8, 9 분명히 뽕배낭이라고 비웃음을 던졌던 아줌씨의 배낭은 뽕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는다고 이것저것 다 끄집어낸 모양새를 보니 뽕이나 뻥은 아닌 것 같구나.
연적봉을 지나 움푹 고갯릴로 점어 들어 다시 올라 또 움푹 뒷실고개로 떨어지니 일행분들이 그냥 청량사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을 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가만 들어보면 그 갈등은 아무래도 입으로만 하시는 것 같다. 왜냐면 하늘다리에서 인증샷 제대로 찍었으니까. ㅎㅎ
그래도 그렇지 바로 코 앞에 연두빛 하늘다리가 ㄹ보이더만 선학봉과 장인봉을 잇는 하늘다리까지 가는 길이 그리 오르락 내리락인 줄은 몰랐다.
하늘다리 위에서 손을 밖으로 쭉~ 내밀어 멋진 바위를 찍어봤다.
다리를 건너와 보니, 멀리 자소봉이 보인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길이90m, 폭1.2m, 지상에서 70m 높이에 설치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량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2008.5.에 봉화군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 일환으로 신소재 PC강연 케이블과 복합유리섬유 바닥재 사용으로 최대 통과 하중이 340kg/㎡으로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단다. 그래서 그런지 길게 늘어진 연두색 줄을 손으로 툭툭 쳐 보니 소리가 쇳소리가 아니고 플라스틱을 치는 느낌이었다.
하늘다리를 지나 갑자기 푹 꺼지는 길이 나온다. 장인봉까지 400m.
여기서 되돌아가신 분들이 몇 분... 원래 산이란 것이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자상하지가 않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이 원래 좋아보이다가도 지가 싫으면 비바람에 천둥번개에 재해까지 몰고 오니까 이쯤은 애교로 봐서 감사하다고 해야겠지.
하늘다리 지나서 장인봉까지 오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달리 만만치 않은 체력이 필요한 구간이다.
이 동네에는 유난히 당대 문인들이 많이 찾은 모양이다.
여기저기 그런 글귀를 살려 놓았다.
登淸凉頂 정상에 올라
주세붕(조선 연산1~명종9 문신이자 학자, 성리학 이념 보급 위해 최초 서원 백운동서원 건립)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황학을 타고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장인봉 인증샷을 날리고 후다닥 그늘로 들어서는데, 1번 무전기 지는 힘들다고 그늘에 걸터 앉아 조금 더 가면 전망대가 보이는데 그거 안 보면 후회할 것이라고 나를 되돌려 세운다.
알밴 근육이 이제 피로도가 최고조가 되었는데... 그래도 후회한다니 가봐야지.
그래, 오길 잘했다. 멋진 경치는 둘째 치고 버스 안에서 산꼭대기에 화전민들이 산다는 이야기로 구박받던 1번 무전기가 10중 1은 옳은 말은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화전밭도 인증샷!
1번 무전기 말대로 산 정상까지 화전밭이 일궈져 있다.
하트모양의 전망대 아래로 낙동강이 보인다.
전망 좋은 곳에 퇴계 이황의 문구가
등산
퇴계 이황
그윽한 곳 찾아서 깊은 골 넘고
험한 데 지나서 겹 재 올랐네
물론, 다리는 피로하지만
오랜 기약 이루어 즐거웁구나
이 산은 마치 高人* 같으니
곧은 절개 품고서 홀로 서 있네
*高人 벼슬하지 않고 고결하게 사는 사람
뒷실고개까지 되돌아 와 청량사로 빠져 하산을 한다.
오래 걸어서도 그렇겠지만, 사실 뒷실고개부터 장인봉까지의 구간이 계룡산만큼이나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 맞는 것 같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이 구간에서 많이 힘들어 한다. 게다가 직사광선이 많이 내려쬐는 곳이 많으니 수분 섭취도 많이 해야 한다.
그나저나 등반대장님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점심도 제대로 못 드시더니 돌아오는 길에 걸음이 많이 무뎌지신다.
뒷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내려서는 길이 왜 이리도 가파른지.
처음 온 대겸이도 잠시 멈추고 무릎보호대를 꺼내본다. 영식이도 박 위원도 불현 듯 닥칠 수 있는 통증에 긴장을 했는지 우리와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리로 먼저 올라오신 사무국장님도 꾀나 고생하셨을 법하다. 내려가기 벅찰 정도의 가파른 길을 올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굵고 짧은 편이라 다행이다.
청량사에 들어서니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던 선두가 장난치는 듯 일어서서 내려간다. 허~ 참. 그래도 난 사진 좀 찍고 가야것다.
주변에 33개의 크고 작은 암자가 있었을 정도로 신라불교의 요람이었다고 하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14~15세기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유리보전의 약사여래 부처님은 특이하게 종이재질을 이용한 紙佛이란다.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의 영험이 있는 약사 도량이란다.
뭐든 임계점을 지나 이루고자 하면 지극정성이 필요하다.
김생굴 근처에서는 포근하게만 앉아 있는 것 같던 청량사는 가파른 터에 성곽을 쌓듯 석축을 세워 불당을 세웠다. 건물과 건물을 오갈 때에는 언제나 내 몸과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청량사부터 도착지점까지는 포장도로지만 경사도가 45도되는 구간이 많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콘크리트 포장 곳곳에 검은 타이어자국이 남아 있는 것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종이로 만들어진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유리보전
차마실...
뒤풀이 장소는 예서 3분도 안 걸리는 낙동강변의 식당인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난 그냥저냥 먹을만 했는데, 예약을 해서 미리 상을 차려 놓아서 시들어 버린 푸성귀 때문에 첫인상이 구겨져서 그런지, 평이한 메뉴 때문인지 실패한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죄송할 다름.
그래도 오는 길 내내 한화가 잘 리드를 하는 덕에 기분 좋은 귀가길 이었다.(결과는 연장 12회 무승부였지만)
아무튼,
사이다 같은 청량한 청량산은 맞는데, 다음 산행이 벌써 걱정이다.
사실 나도 내 일 하느라 정신없는데 다른 분들에게 일방적으로 일정을 강요할 수도 없고... 좀 이른 휴가철이지만 연휴가 겹쳐 다들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뭔 뾰족한 방법이 없을는지 무딘 석두를 두들겨본다.
무릉계곡아! 다음 달에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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