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가야산, 만물상-칠불봉-상왕봉_2010.10.

by 여.울.목 2014. 8. 29.

* 가야산까지 가기 공주(07:40) - 유성나들목 - 경부고속도로 - 내륙고속도로 - 해인사나들목 - 백운동탐방지원센터(09:40)

 

* 가야산에서 09:50백운동탐방지원센터 - 만물상 - 11:50서성재 - 12:55칠불봉 - 13:05상왕봉 13:30하산 시작 - 용기골 - 14:00서성재 - 15:05원점(백운동) 회귀

 

항상 그렇지만, 오늘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데 내게 산행을 허락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침부터 김밥을 챙기고 배낭을 꾸리는데 두 녀석들까지 일찌감치 아침잠을 뿌리치고 고마운 참견을 한다.

 

백운동탐방센터에 도착해 처음 산행길이라 두리번거리며 산행길을 찾아 나서는데, 한 젊은 청년이 내게 사투리를 섞은 말을 건네며 다가온다. 젊은 청년이라고 하니 내가 꽤 나이든 것 같네, 20대 후반의 남자로 정정하자. 난 웬 잡상인? 하며 짜증스런 심기를 드러내려고 했는데 복장을 보니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다. 만물상 산행코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대략 걸리는 시간 등에 대해서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계곡 쪽으로 가다가 다시 되 돌아오다가 시간만 낭비했을 지도 모른다. 상왕봉까지 갔다 오는데 6~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오후에 들릴 곳이 있다 보니, 내게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만물상 코스가 만만치 않으니 체력안배와 충분한 물을 챙겨가야 한다고 한다.

 

 

만물상

만물상 타령을 하는 친구의 말, 만물상이 38년이나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다가 지난 6월에 개방이 되었다고 한다. 설레는 맘으로 탐방을 시작한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왼편의 급경사길... 시작부터 숨이 막혀온다. 한 10여분을 오르니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이제 숲을 벗어나 군데군데 산 아래 경치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보인다.

1.jpg

<가파른 숲길을 오른 보람이 이제 서서히 빛을 본다. 여기서부터 멋진 절경이 펼쳐진다>

 

3.jpg

< '만물상'이란 말 말고 또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른 뒤 초록에서 남색으로 이어지는 첩첩산중의 색상미학에 정신이 팔려 그 자리에 서고 만다. 잠시 후 이제 거친 산행이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한 노인분 말씀이 “가야산은 이름은 고상한데 산이 왜 이리 거치노!” 그렇게 거친 탐방로를 씩씩대며 올라 능선을 맞는다. 능선이라고 하지만 여느 능선과 달리 계속 바위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아니 좀 더 재밌으라고 이것저것 다 보고가라고 그러는지 모른다. 오르락 내리락 에너지를 계속 발산해야 한다. 이 산과 수많은 바위가 어우러져서 만물상을 만들고 있다. 내가 올라야할 저 쪽 만물상을 보니 군데군데 불타오르는 단풍과 상록수의 푸르름과 바위색깔이 어찌 저다지도 잘 어우러져 있는지 정말 끝내준다

2-1.jpg

.

<올라갈수록 단풍이 조금씩 타 내려가고 있다>

 

사실 말이 능선이지 지도의 등고선을 보면 계속 오르막이다. 이제 만물상의 절정을 향해 조금씩 더딘 발걸음을 수도 없이 내딛자 멀리 내가 지나온 만물상 산행길이 보인다. 다들 헉헉거리는 숨을 가라앉히며 내 눈으로 머릿속으로만 간직하기 싫은 멋진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2.jpg

<지나온 길, 내가 저 아름다운 길을 지나왔다>

 

이제부터는 운무가 춤을 추는 모습과 함께 멀리 저리 높은 곳에 저런 병풍이 쳐져 있나 의아해할 정도의 멋진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칠불봉과 상왕봉이다. 만물상을 피해 계곡사이를 달려 빠르게 바람을 타고 운무가 두 봉우리를 감싸 안는다.

4.jpg

< 운무와 두 봉우리>

 

막바지 오르막에 힘을 보태다보니 어느덧 올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바로 서성재다. 이렇게 아쉽게 만물상을 지나칠 줄 알았다면 좀 더 느끼고 올 것을...

 

 

서성재 서성재는 말 그대로 고개다. 만물상에서 오는 길과 계곡으로 올라오는 길이 만난다. 비교적 너른 터가 닦여져 있다. 사람들 힘들지도 않는지 계곡으로 상왕봉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오른다. 난 배낭을 풀어 요기를 해결한다.

 

 

칠불봉과 상왕봉

점심을 해결하고 시계를 본다. 더 나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런 산이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꼬? 친구의 말처럼 칠불봉-상왕봉을 거쳐 해인사 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이 가장 이 산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일터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

아침에 오는 시간 저녁까지 올라가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니 빨리 여기서 결정을 지어야 겠다. 상왕봉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사실 왕복 2시간 정도니까 오르는데 1시간은 훨씬 더 걸린 셈이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만물상에서 바라본 두 봉우리가 “병풍”이라는 표현을 쓴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이제 조금씩 종아리며 허벅지가 고통을 호소한다.

식사를 마치고 오름에 정말 오르막 길만 있다. 만물상 코스와 달리 그냥 숲속에서 이렇게 내내 오르기만 해야 한나? 앞서 나아갔던 사람들이 길을 가다 멈춰서 간식을 먹는다. 나만큼 저니들도 힘든가보다.

그 숲의 터널을 빠져 나오니 이제 다시 바위길이다. 철계단을 넋이 나간 듯이 터벅터벅 오르다 노 부부를 만났다. 이분들 쉬엄쉬엄이지만 절대 길게 쉬지 않고 계속 오르신다. 내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숨을 돌리고 출발하려면 다시 만난다. 산행은 저렇게 느긋하게 해야하는 것 같다. 두 내외분이 이런저런 말을 해가면서 정다움을 산에게 선사하고 있다. 그 분들과 내가 느낀 가을 가야산의 단풍이다.

5.jpg

 

5-1.jpg

<칠불봉의 단풍>

 

얼마나 멋진 광경이 펼쳐져 있기에 저 위 봉우리에서 연신 삐빅소리가 난다. 카메라의 자동촛점 맞춰지는 소리다. 막바지 온 힘을 빼게 만드는 이 봉우리가 칠불봉이다. 지난 말이지만 사실 지도 여기저기에 상왕봉에 “가야산”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다. 그리고 상왕봉 1430m 라고 씌여 있지만 칠불봉에는 높이도 나오지 않는다. 상왕봉보다 3~4m 더 높다. 그리고 가야산의 단풍을 더 만끽할 수 있는데 다들 상왕봉에 대한 기대로, 나도 만찬가지로 후다닥 상왕봉을 향해 달려간다. 사실 가야 왕실에 대한 전설도 이 깎아지른 거친 봉우리 칠불봉에 서린 전설인데, 아쉽다. 그 아쉬움이 운무 때문에 더 하기도 하다. 안개가 너무 심했다.

200미터를 더 오니 상왕봉이다.  상왕봉에서는 해인사 쪽이 잘 보인다. 저쪽 가보고 싶은 두리봉도 나를 유혹하고 있다. 캔맥주를 꺼내 몸 속에 밀어 넣는다. 두 봉우리 근처에 다가서면서 몇 번 보였더 저 현수막과 표지판... 해인사 경내이니 숙연해달라고, 그건 이해하겠지만 이제 돈을 받겠다고... 자꾸 돈 이야기를 써놓냐?

김정한의 사하촌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절 위 인데도 위세가 저리 당당하다. 사실 이쪽 당 전체가 해인사 땅이라고 하니, 팔만대장경을 품은 민족의 어쩌구하는 그런 좋았던 이미지는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 쓰린 맘이 맥주 한 모금에 저 불타오르는 풍경을 보니 누그러든다.

6.jpg

 <상왕봉에서의 사진 6>

 

 이제 하산이다. 내리막 길이라고 누가 얕잡아 보았는가? 서성재까지 내려와 냉큼 용기골로 접어들어 빨리 집으로 향해야 겠다는 욕심. 엄지발가락이 바위에 부딪쳐 통증이 이만저만, 무릎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내게 태클을 건다. 열심히 내려온 것 같은데 표지판을 보니 중간이다. 이제 맘을 비우고 내 페이스를 찾자...

 

가야산, 전날 저녁에 내려와 근처 숙박시설에서 하룻밤을 묵고 천천히 대화를 하면서 만물상-서성재-칠불봉-상왕봉-두리봉-해인사 이렇게 코스를 밟아가면 참 좋을 것 같다. 정말 좋았다.

얼마나 좋은지 집사람에게 친구에게 포토메일까지 폰으로 보냈다. 좀 서운하다면 시간에 쫓겨 후다닥 지나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