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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이젠 길 잃기 선수? - 운장산_2010.10.30.

by 여.울.목 2014. 8. 29.

이젠 길 잃기 선수? - 운장산
2010.10.30.

 

요즘 한창 단풍절정이라고 신문이며 방송이며 한참을 떠들어 댄다. 더군다나 이번 주말이 최절정이라 이번을 놓치면 올해 단풍은 바이바이~

그러니 임씨가 안달이 안 날 수가 없것다. 같이 계룡산 단풍구경을 가자고 난리다.

 

금요일 과도한 음주에 대리운전을 부른 시간을 핸펀에서 확인한 것이 자정을 훨씬 넘긴시간, 빨라야 새벽 1시에나 잠이 들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기상시간, 휴일인데도 눈은 감았지만 잠은 깨어 있다. 입안은 어제의 음주로 시궁창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서서히 잠을 깨니 사무실에 나가는 건 포기해야 할 판, 문득 산에 가자는 임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임씨 미안하다.

난 단풍보다 100대 산에 한 점이라도 찍고 싶어. 오늘은 놀토가 아닌지라 괜시리 연락했다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루 일정이 엄청 뒤섞일 것 같다.

친구, 혹시나 해서 문자를 보냈더니 역시나 벌써 황악산을 향해 내달리고 있단다.

 

꾸역꾸역 배낭을 챙기는데 집사람과 아이들이 푸념을 떨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게다가 냉장고 여기저기를 뒤적거려 간식까지 챙겨준다.

 

 

 

운장산 오가는 길

 

* 교통편

네비에 “내처사동”을 찍다.

물론 자가용을 타고 간다. 네비에서는 1시간하고도 40분, 그럼 보통 1시간 안팎이면 가능한 거리다. 거리는 편도 90~100km 정도다.

갈 때는 시간을 아끼려 논산까지는 국도를 타고, 논산에서 잠시 천안-논산 민자고속도를 거쳐 호남선을 탔다. 정말 빠르다.

오는 길엔 톨비를 아끼려 최단경로 옵션으로 왔더니 추월하는데 너무 신경이 쓰이더라.

 

암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이 좋은 곳을 이제야 찾다니...

가던 길을 그냥 멈춰 서게 하는 멋진 풍경

가는 길은 대아호를 고불고불하게 거쳐 가야 한다. 그 길... 가다가 차를 세우게 만든다. 무르익은 가을은 투명한 호수와 햇빛과 함께 어제 마신 술을 싹 가시게 한다. 그 도로를 따라 노래를 따라 부르니 쌓인 스트레스가 그냥 가신다. 그렇게 호숫가를 돌아 달려가니 이제 전형적인 가을 산길이다. 이렇게 계속 차로만 올라갈 건가? 정말 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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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을 멈추고>

 

인터넷 카페에서 찾은 등산지도를 프린트해 왔건만, 이렇게 저렇게 오르자는 계획을 했건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처음 찾는 곳에서 계획대로 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주차장 앞의 등산안내도를 보내 머릿속이 텅 비어지는 것 같다. 당체 이해가 가지 않는 개념도다.

- 사실인즉, 대부분의 지도가 위쪽이 북이고... 그런데, 이놈의 개념도는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정 반대로 해 놓았다.

- 게다가 운장산 이곳이 구봉산과 함께 어우러진 거대한 산이다. 그렇게 구봉산과 어우러져 커다란 산세를 그려 놓았으니 처음 찾는 나 같은 길치가 헤맬 수밖에. 산행도를 쳐다봐야 짜증만 나니 그냥 리본을 찾아 가자.

결과적으로는 인터넷 카페의 안내와는 정 반대방향으로 산을 돌았는데, 산행지도의 원본(국제신문 판)을 집에 와서 보니 내가 정확히 제대로 돌았다.

아, 정말 이럴 때 제대로 된 gps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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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도>

 

 

10:10 주차장

그냥 무작정 노란 리본인 묶여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따라 오른다.

 

단풍에 대하여

어떤 기자도 이런 이야길 했더라. 방송이나 기상청의 절정은 주변 산사나 길가 산언저리의 단풍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그래서 제대로 단풍을 느끼려면 1주정도 먼저 산을 찾아야 한다고...

나도 3년 전부터 내장산의 경험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운장산은 이미 겨울맞이를 다 마쳤다. 낙엽만 뒹구네~ 사실 단풍은 오는 길에 실컷 즐겼다.

 

그렇게 겨울 앞인데 오르막이 계속되자 내 몸에서 나는 열기로 자켓을 벗어 던진다. 땀방울에 어제 마신 알콜이 다 빠져나오는 것 같다.

이곳은 산죽, 산에 사는 대나무로 유명하다.

오르는 길마다 산죽이 촘촘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이 산 정말 애매하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조금만 더 올라 저 봉우리 위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자~’

근데 봉우리가 또 있다. 거대한 계단 형식으로, 한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면 다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씩씩대면서 오르니 앞산 줄기의 봉우리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저 산이야?’ 저기까지 언제 가냐? 내가 등산 코스를 잘못 잡았나? 그렇게 제대로 한 번 쉬지 못하고 점심을 담보로 동봉까지 오르고 말았다.

 

12:35 삼장봉(동봉)

그렇게 사람 가지고 놀더니 이를 악무니 어느덧 그 귀한 이정표다. 삼장봉까지 0.6km 그래 조금 더 가서 쉬자. 조금만 더 가면,

짠! 정말... 지금까지 숲 속 길에서 허걱거리기만 한 것 같다만, 삼장봉에 올라서니 앞의 운장산과 서봉인 독제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이 남향으로 터를 잘 잡았는지 지금까지 남쪽의 경치와 따스한 햇살이 함께 해서 그런지 더 좋다.

삼장봉 봉우리는 좁다. 사진 찍었으면 얼른 자리 좀 비켜주지 선행주자들이 계속 본전을 빼려는지 비킬 생각을 안 한다. 짜증 제대로다. 결국 한 10여미터를 더 가니 끝내주는 자리가 있다. 점심과 사진촬영을 여기서 해결하다.

점심으로 한 30분은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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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삼장봉)에서>

 

 

13:30 운장산

이 산 정말 사람 가지고 논다. 한참 오를 때 저쪽 산줄기 저 봉우리(서봉)까지 언제 가나 했는데 동봉 능선에 서니 바로 코앞이 운장산과 서봉이다.

그리고 운장산, 운장대...라고 하더라. 뭐 이리 매력이 없냐?

하지만 실제 보기와는 달리 빽빽한 산죽길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지는 운장대 오름길은 제대로 내게 한 방 먹인다.

봉우리 정상에 정말로 누군가 벤치를 가져다 놓았다. 그냥 벤치가 아니라 클래식컬한 장식이 있는 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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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바위에서 서봉을 바라보다>

 

13:40 상여바위를 지나 서봉과 병풍바위에 서다

나의 다름질은 잠시 운장대에서 숨만 돌리고 곧장 서봉으로 향한다. 능선길에 생뚱맞게 서 있는 바위... 상여바위다. 향적산에서도 본 적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외로운 바위에게 삭막한 이름을 붙일까? 한 밤중에 달빛 받은 바위를 보면 그 풍경이 주는 느낌이 대충 그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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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건물이 있는 저곳이 운장대다>

이 상여바위에서 저 서봉까지 정말 끝내준다.

겨울의 문 앞인데, 산죽은 이 산이 아직도 한 여름인양 활기를 넣어 준다. 게다가 단풍까지 어우러져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사진이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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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의 푸르름과 활엽수의 단풍이 잘 어우러져 있다, 병풍바위-상여바위-운장대-동봉>

갈등...

지도를 보면 거의 6할은 돌았다. 다시 되돌아 주차장으로 갈 건지 좀 걷더라도 능선을 돌아 갈 건지...

높은 봉우리에 서서 길을 바라본다.

그래, 온 김에 한 번 돌아보자.

 

15:00 독자동 계곡을 지나 겨우 진보산장에 도착

凟 계곡을 뜻한다는 ‘독’ 한자를 잘 알았다면 미리 준비를 한는 것인데, 정말 험한 계곡길이다. 능선길이려니 했던 내 예측은 어김 없이 육체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한 600미터 가파른 - 그냥 가파른 - 길을 내려오니 갈림길이 아마도 활목재였나 보다. 독자동 계곡으로 가야 진보산장을 통해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만약 독자동 계곡길을 피해 완만한 길을 따라 피암목재로 간다면 한 5km가 넘는 아스팔트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가야한다.

독자동으로 길을 잡는다.

 

길을 잃다

가다 보니 아침에 내가 추월한 40대 중반의 부부를 만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 길을 택한 걸 보니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한참 거친 돌길을 내려가다가 계곡과 등산로가 만났을 때다.

아저씨 왈, “이 길이 맞나?” 하며 잠시 뒤 쳐진 부인을 바라보는 순간. 난 이때다 싶어 홀라당 추월을 한다. 분면 노란 리본을 봤다.

근데 내려가도 내려가도 계속 계곡이다.

아~! 또 길을 잃었다. 긴장했나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길이 아닌 계곡이라 혹 다치지 않으려 조심조심 갈지자로 낮은 바위를 찾아 계곡을 내려간다. 분명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있을 것 같은데...

그 느낌 그대로 한 번 가봤어야 했는데, 예전에 우산봉에서의 경험상 그냥 계곡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계곡을 내려간다.

심리적인 부담이 몸의 피로를 쉽게 불러온다. 좀 멀리 다녀오려고 따돌렸는 임씨가 떠오른다. 그냥 같이 계룡산이나 갈 것을...

멀리 주황색이 보인다. 자연 만든 빛깔이 아니다. 농부가 물을 끌어들이려 댄 주황색 비닐 호스다. 살았다!

그렇게 물이 고여 있는 햇빛 잘 드는 계곡을 가로지르니 등산로를 만난다. 일부러 지친 몸을 이끌고 거꾸로 올라간다. 내가 어디부터 잘못한 걸까?

아 근데 그 부부의 목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챙피하기도 하고, 만나면 뭐라 말할꼬?

또 하나의 경험을 얻고 간다. “침착”

 

15:15 주차장 원점회귀

지도상으론 진보산장에서 원점까지 한참 같은데 평지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한 숨을 돌리고 가져온 초코바를 허겁지겁 먹고 한 5분을 쉬고 차에 올라 내려가다 보니 그분들이 올라오신다.

여전히 아저씨가 앞에... 내외가 심하다.

 

 

독자동 계곡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만 않았어도 좋은 기억만 남을 텐데, 애꿎은 이정표만 부실하다고 투덜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말 좋은 산이었다. 100대 명산에 꼽힐만하다.

내려오는 계곡엔 평상이 무수히 많다. 여름에 사람들이 많이 찾나보다. 그런데 정말 오는 길이 너무 머니 사람들이 여름 빼고는 안 오나 보다. 정말 한가로운 산행을 만끽하려면 이곳으로 오시라.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없는데, 동봉-운장대-서봉 능선과 봉우리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마도 좋은 풍경에 심취해서 다들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 같다.

 

항상 아쉬운 건 1박 2일이다. 1박의 여유가 있다면, 구봉산까지 휘 돌아 보는 게 담백한 산행일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