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쯤 전 지도나 탐방안내도 공유가 그리 흔치 않던 때, 무작정 임도만 따라 오른곳 - 장불재였던 것 같다. 앞에는 희한하게 솟아 있는 바위기둥 군락이 인상깊었다.
그날 따라 뒤쳐진 일행의 체력과 일정 때문에 그냥 돌아서야만 했던 무등산.
그때부터 밀린 숙제처럼 찌뿌등하게 몸 속 어디에 숨어서 나를 간지러핀 산이다.
터미널에서 우연히 공주-광주 고속버스가 운행 중인 것을 발견.
숨어있던 녀석이 발버둥친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시간이 빠듯하다. 그럼에도 어거지로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산행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된 SRT 광고방송. 공주역~광주송정역 구간의 고속철도편이 넉넉하게 배차되어 있더군.
방학인데 해준것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게 미안해서 가족과 함께 하기로 한다. 그런데 무등산의 예상 기온을 보니 -10~-12사이를 넘나든다. 눈도 제법 오는 것 같다. 집사람과 작은 아이는 이미 포기했고, 큰 아이에게 같이 갈건지 무언의 협박을 하건만… 녀석, 아빠와 함께 가고는 싶은데 고통스런 산행이 싫어서 고민하는 폼이 어쩜 어릴하고 똑같냐.
그래, 괜히 나도 잘모르는 길인데 아이들까지 고생시킬 필요는 없지.
광주 자유관광을 마치고 시내에서 만나기로 한다.
오가는 기차시간은 잘 잡았는데, 금요일부터 눈이 내리는 것이다.
토요일 저녁엔 내리는 눈을 보니 왜이리 심란한지. 예매를 취소할까 말까…
새벽 6:38기차. 깨우니 칭얼대지 않고 일어나는 아이들이 고맙네.
추운날 차를 덥혀놓으려 먼저 일찍 내려왔다. 밤새 눈이 더 내렸다. 쓸고 쓸어도 차에 얹힌 눈이 쓸리지 않는다. 차도 이러니 길바닥이야 오죽하겠어. 아무래도 공주역까지 가는 길이 험난할 것 같다.
다행히 15분 전에 도착.
추운날 대합실에 더 있으면 좋으련만, 기분이 Up되서 기어이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광주송정역은 일반기차를 함께 타는 곳이라 휴일 이른 아침인데도 북적거린다. 공보인 상태라 우선 김밥집에서 아침 요기를 한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일어나야 오늘 일정에 맞출 수 있을 것 같
군.
지하철이 대전처럼 단순한 ‘-”형인데도 우리 동네가 아니다보니 헷깔린다. 녹동방향인지 평동방향인지… 지하철의 종점 녹동 쪽에 거의 다 다다른 학동.증심사입구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가 버스로 갈아 타야 한다.
카카오맵으로 검색하니 실시간으로 먼저 오는 운림동 방향 버스를 알려준다. 참 편한 세상이다.
역에서 하차하는 십수명이 대부분 등산객이다. ㅋ 그냥 그들을 따라간다.
GPS와 연동된 버스도착 알림 전광판의 안내와 달리 여행계획을 세웠을 때 눈독들인 ‘첨단09’ 버스가 먼저 도착한다. 무등산 가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배낭맨 등산객 따라 걍 버스에 올라탄다.
2017.1.22.(일)
눈이 계속 내리고, 바람이 거센 악천후
증심사입구(운림동)-약사사-서인봉-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
위 코스 되돌아 가기, 총 거리13.3km 이동 시간4:29 (평균 3km/h)
2017-01-22_08-55-41_무등산.gpx
버스 종점 이니 신경 쓸 필요 없이 우르르 내리는 인파에 밀려 함께 이동한다.
심란하게 눈이 계속 내린다.
증심사 입구주차장(운림동)부터 약사사까지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다. 눈이 안 왔으면 제법 차량통행이 많은지, 차 조심하라는 문구가 여러번 보인다.
포장도로이다 보니 아이젠을 신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애매하다. 스패츠는 생략한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무등산 타는 멋을 안다면 증심사 갈림길부터 제대로된 탐방로를 타서 중봉을 거쳐 서석대와 천왕봉에 발을 내딛는 것이 딱이다. 헌데 첫 방문인데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약사사 일주문을 기준으로 빗겨가면 비포장 탐방로가 비로서 시작되는데, 시작하자마자 놓여진 계단길이 사람 진을 뺀다. 내내 워밍업했던 기운에 계단까지 오르니 목에 두른 워머와 모자가 거추장 스럽다. 그렇게 서인봉갈림길에 올라서면 능선길이 시작되는데, 그걸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세찬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열을 식히고 다시 모자와 워머를 쓰고 배낭을 메려는데 등이 너무 차갑다. 으~악!
서인봉갈림길에서 중머리재까지는 그리 험난하지는 않지만 제법 힘을 써야 하고 간간히 계단길이 있어 등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머리재로 가는 길에 서인봉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서인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회로를 택한다.
서인봉보다는 조금 아래로 내려선 전망대가 훨 좋은 장소더군. 그래서 인간들이 미리 알고 다 우회를 했나보다. ㅋ
전망대에 서면 아래 중머리재가 친근하게 보이는 반면, 멀리 중봉과 장불재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다.
▼ 중봉과 장불재... 사이로 하얗게 잠까 모습을 드러낸 것이 서석대
중머리재에서는 힘들지 않아도 잠시 숨을 돌려야 한다. 용추삼거리를 지나 장불재까지는 꾀 험난한 코스인데, 눈에 덮혀서 보이지 않는 너덜너덜한 돌덩어리 길이기 때문에 더 심하게 느껴지나 보다. 다행히 오르내리는데는 눈 때문에 충격은 덜 느껴진다.
어쩌다 한 산악회 아저씨와 일행이 되어 제법 속도를 내는데, 에티켓도 좋아서 추월을 할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게 경험이 많은 산꾼 같다.
장불재에 도착하자 하산하는 사람들이 인상을 쓰면서,
“통제 랍니다. 하산하세요~”
에이 C~ 광주까지 어렵게 왔는데 이게 뭐냐. 아무튼 바람이 너무 세다. 관리공단 직원이 4WD차를 몰고 지나면서 내려가라고 한마디 던지고는 휙 천왕봉쪽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일단 힘들게 왔으니 좀 쉬면서 생각하자.
장불재에는 다행히 파고라가 있다. 사면이 막힌 건 아닌데, 한쪽 면과 삼 면은 30%정도 막혀서 눈보라는 피할 수 있다. 파고라 안을 왔다리 갔다리하다 장갑 한짝을 흘렸나보다. “어이~어이 장갑, 장갑!” 장갑 찾아주는 건 고마운데, 여기 사람들 모르는 아재 부르는데 “어이”라고 하나? 추운 날씨에 장갑 챙겨줘서 고마운데 입밖으로 고맙다는 말 나오기가 왜이리 힘든지...
꾸역꾸역 초코과자를 넘기면서 영 인연이 없어보이는 입석대를 바라보면서 허탈해하는데, 갑자가 날이 좋아지는 것이여.
어라!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입석대-서석대로 향하는 것이다.
날이 갑자기 이리 좋아지다니. 몇 분 정도 걸으니 눈구름이 싹 걷히면서 입석대가 환하게 나를 반긴다. 이런 땐 센스있게 사진을 찍어줘야지. ㅎㅎㅎ 스틱을 난간에 던져놓고 장갑에서 손을 빼서 사진을 찍고 나니… 어라 내 오른쪽 장갑 한 짝이 어디로 갔냐?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ㅠㅠ 그새 바람에 날려갔나보다.
사진이 뭐라고 그걸 찍는다고.
꽉 채워 2년 이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썼으니 대견하다만, 하필 여기서 분실을 하냐고. 여기서는 영 인연이 없는 건지 두 번째 흘리는 사이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기적어기적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그래도 입석대에서는 그놈의 사진을 또 찍는다고 허우적거린다.
아~ 멋지다. 그래도 장갑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갑자기 날이 또 안 좋아진다. 눈도 계속내리고 바람이 세차고, 그래 거센 눈보라다. 하는 수 없이 여분의 워머와 안면마스크로 오른손을 칭칭 둘러 응급처치를 한다만 찬바람이 계속 스며든다.
그런 악천후의 절정은 입석대와 서석대 구간이었다.
바람 때문에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다. 서석대에 오르니 같이 온 사람들이 끼리끼리 사진을 찍고는 추위에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하다닥 다들 하산을 한다.
인증샷 한 장 부탁드릴게요~. 손시려워서요~. 두 번째 인간한테 부탁하니 찍어주는데, 뭐여 찍은거 맞아? 빈대도 낯짝이 있지. 두 분 일행이신 것 같은데 제가 사진하나 찍어드릴게요~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인사치레를 마친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누무시키 눈 꽉 감은 사진을 찍은 거라구 ㅋㅋㅋ
짜증나. 그래 손시렵기는 진짜 손시렵더라.
혼자 온 내가 잘못이지. 서럽다.
그리고, 천왕봉. 넌 도저히 이런 날씨에 감당하기 어렵구나. 다음기회에 보자꾸나.
그래 천왕봉은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다.
▼ 오르는 길에 만난 입석대, 이 때 잠시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 멀리 낙타봉과 백마능선
▼ 서석대를 오르며 보게된 입석대 뒤통수
▼ 서석대 표지석, 뒤로 천왕봉은 눈구름으로 뿌옇게 시야가 가려있다.
▼ 이제 하산길에는 백마능선도 안 보인다.
▼ 올라갈 때 손시려서 사진찍기를 참았던, 승천대
▼ 내려 갈 때 만난 입석대는, 반대 편에 있는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하산길에 잠시 들린 장불재 파고라. 한 줄 말아온 김밥먹기엔 너무 춥고, 차와 함께 빵조각을 먹으며 바라보는 입석대 - 천왕봉 포기하고 하산하길 정말 잘했다.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하산하는 내내 눈이 내린다.
그래도 장불재를 지나니 바람은 잠잠해져 손은 덜 시려워 다행이다만 장갑을 잃어버려서 그런건지 퉁명스런 사람들 때문인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급 밀려오는 피곤함에 아이들을 만나 돌아다니는 곳은 얼렁뚱땅이다.
그래도 다들 나름 빛고을에 와서 바라는 바를 이루기는 한 것 같아 다행이다.
공주역에서 내리는데,
우리 가족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리더군.
공주 시내와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생뚱맞게 세워져 있어 정감이 떨어진다만, 어쨌거나 공주역이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공주역에 대한 이야기 좀 추가... http://yyh911.tistory.com/183
이제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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