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줄이기 = 짐 늘리기?
어떤 여행가의 말처럼 배낭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야 한다. 하지만 추위가 주말에 정점을 찍을 것이란다. 더군다나 1박을 한다. 한라산에서 멜 배낭을 가볍게 꾸리려다보니 궤변인지 역설적인 건지 가방을 하나 더 챙기고 만다.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 여행 내내 고생을 부른다. ㅋ
한 예를 들자면, 언젠가 혹독한 추위에 고생한 탓에 준비한 손모아장갑은 배낭 제일 아래에서 한 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 것이 어디 장갑뿐이겠느냐.
서공주
04:20 1명이 부족한 30명 탑승 완료. 20분을 더 기다렸다 어쩔 수 없이 공주IC로 들어섰지만, 고속도로에서 제 속도를 내게 된 건 05:10이 지나서다.
또 그 일로 갈군다고 짜증을 낼 테니 간단히 정리만 하자면,
요 근래 인간문명을 대표하는 스마트폰에 새벽 기상의 운명을 걸고 있다가 배터리 이상으로 폰이 잠들어 버린 바람에, 잠결에 재촉 전화도 받지 못하고 뒤통수 제대로 맞은 것이다. 좀 늦게나마 통화가 성사되어 서공주IC로 차를 돌려 나와 친구와 조우한다.
무안함을 딴 것으로 메우려고 일부러 구박하는 박 위원 말고는 다들 아무런 타박이 없다만, 시간이 지체 되 배라도 놓치면 어쩌나 속으로 엄청 애태웠을 것이다. 한 동안 내리지 않던 눈이 그날따라 매섭게 퍼붓기 시작했으니 맘이 편치 않았을 게다.
▼ 서공주 IC에서 멈춰선 버스
▼ 휴게소에 들렀는데, 눈이 너무 많이 내린다. 제주도는 갈 수 있을런지...
세월 vs 산타루치노
목포.
제 시간에 들어왔다. 부두 앞 만석궁이라는 식당에서 조찬을 하는데, 이거이 내륙 사람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조기탕이 아침꺼리로 나온다. 1인 당 1마리... ㅋ
09:00 뱃고동소리와 함께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선실에 다 모여 앉아보니 서로 민망할 정도로 서로의 거리가 짧다. ㅎ
군대 내무반 같은 분위기. 우리 동기들이 간식꺼리와 소주 몇 병을 들고 자리를 좀 비우면서 공간에 여유가 생긴다.
산타루치노호에 오르면서 몇몇이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다른 일행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엔 내 깜냥이 작아서 그냥 우리가 탄 배와 단순 비교만 해보련다.
<세월>
1994.4.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
일본 마루에이 페리 1994~2012 / 한국 청해진해운 2013~2014.4.16.
6,835t(배수통수 - 중량톤수)
145m 22m
최대 21노트(39km/h)
921명, 차량 130대, 컨테이너 200개
(From 위키백과)
<산타루치노>
1996. 일본 한큐페리
15,180t (국제톤수(총톤수) -용적톤수 24,000t)
189m 27m
최대 24노트(45km/h)
일본810명, 296대 → 한국1,498명, 500대
(From 일요신문 온라인 기사 2015.11.25.)
이 배도 일본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모 조선소에서 수리를 해서 사용하는 배였다. 그 과정에서 승선인원과 화물 용량이 2배 가까이 늘어난다. 선주 측에서는 일본에서 장거리 항해용으로 사용해 1인당 많은 공간이 필요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목포-제주만 운행하는 단 시간용이라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 설명이다.
아무튼... 세월과 비슷한 이력을 가진 배였더군. 알고 나니 뒷골이 좀 서늘한 기분.
▼하늘이 갤려고 그러나?
▼ 가사도 부근을 지날 즈음, 1번이 나를 부른다. 이상한 입석이 있다고~ 그럼 난 찍어두지. ㅋ
▼ 추자도가 시작된다. 그래서 군도라고 하더군.
▼ 다리로 연결된 추자도
▼ 드디어 제주항, 먹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조금 희망을 가져본다.
배가 크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배 멀미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저런 편의시설이 구색을 갖추고 있어서 시간을 때우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1번 무전기 말대로 섬이 보이지 않을 즈음이면 제주에 다 도착한다더니, 박위원이 그리 보고 싶어 하던 망망대해는 어물쩡 제주 앞바다에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수월봉 엉앙길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산타루치노도 한 발 양보해서 1시간이나 늦게 도착.
시간이 어정쩡해진다. 첫 날 일정 중 하나를 지운다.
우리가 들리려는 첫 방문지... 해외에서 만나보는 단체쇼핑이다. 다들 진지하게 들으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 어찌 대한민국 성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만 쏙쏙 집어내는지, 나도 한 통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년초.
▼ 어째 분위기가 '새마을운동' 시절 같다.
드디어 첫 코스, 올레길12코스에 도착한다. 웬걸... 버스기사님이 바람이 너무 세서 파도가 쳐서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네. 한라산도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통제한다는데... 찌푸린 하늘처럼 이번 여행이 이렇게 구겨지고 마는 건지. ㅠ_ㅠ
벼랑을 여기 사투리로 ‘엉앙’이라고 하는데 그 아래로 난 바닷가 길을 걷는다. 진짜 바람이 너무 거세다. 사진 찍으려 시멘트 둑에 올랐다가 중심을 잃고 내려서고 만다.
이 벼랑이 참 별나다. 본래 화산지대라 퇴적층이 생길 수 없다는 게 내가 아는 지식이었건만, 차곡차곡 예쁘게도 쌓여있다.
화산쇄설물(크고 작은 고체물질 통틀어 이름)이 화산가스나 수증기와 뒤섞여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빠르게 지표 위를 흘러가는 현상을 화쇄난류라 한다. 화쇄난류는 화산쇄설물 운반의 중요한 방법이자, 화산재해의 중요한 원인. 화산분출물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분화구 가까이에선 급격히 쌓여 괴상층이 만들어지지만, 멀어져감에 따라 화산분출물의 함량이 적어지고 견인퇴적이 일어나 화산재가 겹겹이 내려앉은 판상층리와 거대연흔 사층리 그리고 판상엽층리 등의 구조들이 차례대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화쇄난류층의 다양한 변화과정을 연속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화산학의 교과서 역할. 제주도 무수한 오름 중 하나, 남쪽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쇄설암층은 세계적으로 지질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천연기념물 제513호
대체 이 안내판 누구의 작품인지 「ㅆ」나오게 한다. 좀 풀어쓰면 안 되나? 표지판을 세운 사람 딴에는 그 설명을 보충한다고 안내판을 3개나 세웠는데, 그게 또 다른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식이다. 사전을 뒤적거려도 잘 나오지도 않는 한자말. 한자라도 병기했으면 대충 그런 뜻이란 걸 짐작이라도 하지... 글은 한글인데 영 딴 나라 말 같다.
수월봉 해안 엉앙(절벽)길은 약 2km 이어진다. 천연기념물인데, 이런 곳에까지 일본인들이 전쟁을 치르려고 탄약고를 만들었다. 거칠게 비벼 넣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벼랑 곳곳에 샘물이 솟아오르는 “녹고물”이라는 약수터로 유명하다.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홀어머니 병환 때문에 오갈피를 캐러 왔다가, 누이 수월이가 떨어져 죽자 녹고는 슬퍼 17일 동안 울었다고 한다. 이 눈물이 녹고물이라 전하며 수월봉을 “녹고물 오름”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니. ㅎ 안구건조증 해소를 위해 한 번 마셔볼 것을...
▼ 수월봉에 있는 고산기상대
날씨가 맑은 날은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보이는데, 수월봉도 360여개나 되는 한라산 폭발 때 발생한 기생화산인 오름의 하나라고 한다. 수월봉에 오르니 바람이 더 세게 분다. 여기저기 바람에 시달려 울어대는 사물의 소리가 괴기영화 수준이다. 수월봉에 세워진 하얀 건물. 멀리서 봤을 때는 등대 같더니 기상대건물이다. 고산기상대.
경치고 뭐고 바람에 떠밀려 내려설 수밖에 없다.
만찬
하루가 그렇게 거센 바람에 휘리릭 날아가 버렸다.
제주도 서쪽 올레길12코스에서 이제 남서쪽으로 이동해서 남은 일정인 만찬을 즐기기로 한다. 만찬 장소에서, 서쪽으로는 대장금을 찍었다는 올레길10코스 송악산공원이 보인다. 저 넘어에 일인들이 전쟁을 치르려고 동굴진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7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청산되지 못한 일제의 잔재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대한민국 곳곳에 버젓이 남아 있구나.
▼ 송악산 공원
▼송악산과 산방산 사이 바다에 있는 형제섬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방산이 보이고 그 옆으로 화순항 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산방산과 화순항 포구
성원식당 해물전골.
‘해물전골+옥돔구이+전복회’ 대 6만원, 중 5만원 (공기밥 별도). 맛도 중요하지만 구색을 갖춘 비주얼과 주인장의 인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반찬 좀 더 달라는데 인상 구기지 않고 응대를 하니 다들 바람에 날려가 버린 하루에 대한 보상을 받는 듯 기분이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통제를 하고 있다지만 한라산 날씨가 언제 또 긍정적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한라산 등반팀들은 기대에 차 소극적 음주를 즐기는데 친구, 김위원이 평상시에 보이지 않던 오버페이스를 펼친다. 어쩌려고 저러지? ㅋ 내일을 생각해야지~
숙소는 제주 시내인데 다들 한 잔 기분 좋게 걸쳐서 그런지 차로 이동하는 1시간가량의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더군. 방 배정을 받고는 마치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한 방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서 내일 산행을 위해 이른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만찬 2회전에는 빠지려 이렇게 뺀들거리다 결국 불려 가는데,
쉐프님이 공주부터 직접 들고 오신 번득이는 회칼이 방어의 살결을 지날 때마다 가지런히 싱싱한 횟감으로 변신한다.
그 맛에 또 한잔두잔 들어가기 시작한 소주.
그래도 날씨 탓에 일찌감치 시작한 저녁식사라 그런지 2회전에 돌입했는데도 늦은 밤은 아니다.
우리 또래의 잠자리는 흡연/비흡연자로 나뉘어졌다. 그래도 최위원은 담배를 절제하려는지 우리 방에 남네. ㅎ
::: 한.라.산 :::
성판악-속밭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백록담(1950m)-삼각봉대피소-개미목-탐라계곡-관음사
19.95km 2.5km/h
2017-01-15_06-34-44_한라산_성판악관음사.gpx
진달래밭대피소 통제꾼
새벽 5시부터 식사를 한다더니 5시 30분이 되어야 아침밥을 제공할 수 있다는 프런트 아저씨. 차가 5시 30분에 출발한다는데... 하는 본새가 어디 협상을 붙일 여력이 없다. 우리말고도 딴 일행도 마찬가지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사람들에 닳고 닳은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안 통한다.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핀잔을 하니 어쩌지 못하고 식당 안을 기웃거려 밥상을 재촉하네. 5시 지나 10분정도 되었나. 억지를 부려 식사를 시작한다.
보온병에 담을 물을 찾는데 이제야 전기포트에 전원을 넣었는지 미적지근하다.
아침 볼일은 봐야지. 산에서 무슨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잖아.
순조롭게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최위원이 덩달아 여관방으로 따라오더니 볼일을 보고 가야겠다는 것이다. 차는 같은 여행사를 통해 온 대전의 제일산악회 일행의 버스를 같이 이용한다. 녀석만 들어서면 출발할 태세인데 응가가 잘 안 되는지 꽤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래도,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통제한다는 비보 때문에 거꾸로 시간적인 여유는 생겨서 그런지 누구하나 불평은 하지 않는다.
모텔을 나설 때만해도 성판악에 도착하면 랜턴이 필요 없을 것 같더니 웬걸 차에서 내리자마자 캄캄한 주차장에 몰아닥치는 바람이 어딘가 틈새가 있으면 비집고 들어와 몸을 서늘하게 한다.
▼ 사진 찍는 나 포함 13명, 1명은?
그나저나 한라산 정상 통제로 1시까지 여기 성판악으로 다시 와야 한다. 도시락을 나눠주는데 1시까지 하산 완료인데 저걸 들고 갈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려와서 휴게소에서 따끈한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말에 도동의 하는지 1번무전기 도시락을 아예 챙기지 않더군.
처음 기념사진을 찍을 때만하더라도 그냥 휴게소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어느 정도 걷고 나니 몸이 덥혀지고 숲에 들어와서 그런지 바람도 잠잠해진다. 게다가 랜턴도 필요 없을 정도로 날이 금새 밝아온다. 사람들마다 겹겹이 껴입은 패딩 점퍼를 벗느라 길가에 멈춰서 잠시 숨을 돌린다.
속밭대피소까지는 그리 어려운 구간도 없고 좋아진 기상상황 덕에 어두운 길을 헤드랜턴 빛에 의지해 오르면서 꿀꿀하게 생각했던 걱정꺼리도 시원하게 날아가 버리는 것 같더군.
뱃속에서 은근하게 꾸물거리는 기운이 있어 대피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기로 한다. 화장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화장지를 구걸하시는 분이 계시네. 티슈 몇 장 인심 쓰고 정중히 고맙다는 말 듣고 나니 좀 거시기하네.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사라오름도 올라가고 여러 사람 흐트러지지 않게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건만 선두는 언능 내려와서 따듯한 국물 생각인지 먼저 후다닥 올라가버리고 없네.
볼일도 봤겠다. 시간 여유도 있겠다. 배낭을 열어 짐을 정리하면서 후미그룹을 만난다.
애매하게 깔린 눈이 눈에 거슬려 아이젠을 찬다. 이제 조금씩 오르막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유 있게 눈길을 걸으며 선배님들께 우리집 큰아이 중학교 추첨 결과에 대한 꿀꿀한 마음도 털어놓고 이런저런 인생 상담도 하니 금요일 오후부터 쌓였던 짜증덩어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더라. 노 선배님은 산에 오시면 안 좋던 날씨가 매번 좋아졌다고 - 이번도 백록담에 갈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신다. 제발 저도 그랬으며 좋겠습니다.
우리 산행에 빠질 수 없는 백 선배님의 생밤도 간식으로 먹고, 그래 여기까지는 백 선배님 내외분이 잘 따라오셨는데? ㅋ
매파와 비둘기파
사라오름 입구를 지날 즈음이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통제가 풀렸다는 것이다.
산행 일정의 조정권자 1번 무전기에게 전화를 한다.
전원이 꺼져있다고 한다.
또 다른 무전기를 가지고 계신 대장님께 전화를 드린다. 당연히 원래대로 진행하자고 하시니 –1번에게 무전을 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전화가 또 온다. -아침에 같은 차를 타고 온 일행 가이드 -통제가 풀렸다. -그런데 백록담 가실 분은 가시고 어려운 분은 되돌아오시든 모두 1시까지 다시 성판악으로 와야 한다.
-(이런~ 뭐 이상한 멍멍이 소리!) -차량 일정이 꼬여서 어쩔 수 없다. -현재 진달래밭대피소에 와 있다. -그럼 기다려라 만나서 이야기 하자.
1번무전기 꺼져 있으니, 최위원에게 전화를 한다. 가이드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고는 통화해서 가이드 좀 잡아 놓고 있으라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선배님들께 말씀드리니,
“그런 게 어딨냐 해제됐으면 정상대로 진행해야지.”
맘이 급해진다. 이제부터는 숨이 찰 정도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잡아 놓은 가이드와 담판을 져야한다. 담판을 벌이고 있으면 더욱 좋고.
다시 사무국장님께 전화를 드린다. -이런 상황인데, 꼭 성판악으로 와야 하는지... -와야만 하는 상황이다. ㅠㅠ
그렇게 계속 여기저기 전화하는데... 무엇보다도 손이 어찌나 시리운지 눈물 날 것 같더라.
대피소다. 통제가 풀려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척이나 활기차다.
대피소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라면 한 그릇 내미는 선두그룹. 고맙고... 먹고는 싶은데, 일단 산행일정을 매듭지어야 할 것 같은데, 가이드 말씀 수용하고 그냥 내보내줬다는 것이여.
가이드랑 전화 -가이드 녀석 지는 백록담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네.
-우리 때문에 같이 온 다른 일행까지 일정이 어그러지면 안 된다.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아침 차에 두고 온 짐만 옮겨지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여관 프런트만치로 막무가내다.
속속 진달래로 들어오시는 선배님들, “뭔 멍멍이 소리여~ 원래대로 가야지! 우린 택시라도 타고 갈거다.”
아~ 1시까지...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일정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우리 일행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데,
대부분 이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지 자꾸만 흩어진다.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 가이드 녀석처럼 나도 백록담을 가고 싶다.
온건한 선두그룹을 뒤로하고 매파에 가담하기로 한다.
총대를 메기로 한다. 가이드와 또 다시 통화를 한다. 싸울 수는 없고 말이 안 통하면 옆에 강경파 선배님께 전화를 토스. 격해진 분위기를 다독이기 위해서 중도 매파 선배님께 전화를 토스. 어찌어찌하여 사무국장님께 가이드와 전화통화한 내용과 등반팀의 의견을 전달.
결국 차에 두고 온 짐은 아침 제일산악회 사람들도 같은 배(16:30 산타루치노)를 타고 가니까 제주항이나 쇼핑센터에서 만나 찾기로 한다. 이제 뒤에 쳐져 있는 선배님들의 의사를 물어 1시까지 성판악으로 하산하던지 함께 관음사로 내려갈 것인지 말씀드려 마무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홍이 선배님이 전화연락이 안 되서 기다렸다 만나서 결정된 사항을 알려드리니, 물론 관음사로의 산행에 OK.
다들 먼저 출발하고, 혼자 남아 짐을 정리하고 출발하려니, 틈만 나면 은근히 성깔 있다고 쑤셔대는 박 위원 말마따나 이런 과정에서 비둘기파에게 괜한 짜증을 부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먼저 출발한 일행과 만나서 땀을 훔치고 있을 무렵 근선 선배님이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임선배님 -현재 여기 진달래밭대피소. 분명 새벽에 인원 체크할 때 없었는데 ㅠㅠ. 어찌 된 일인지. 너무 추워서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관음사 쪽으로 오시기는 무리일 것 같고 성판악으로 하산하시는 것으로.
한라산 눈꽃
한라산은 진달래밭대피소까지는 숲을 이루는 것을 허용을 했다. 하지만 조금 올라가면 숲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덕에 이제부터 진정한 겨울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눈 내린 한라산 세모꼴의 사선과 수평 구름층이 만나는 각도가 예술이다. 그 각도가 퍼져가면서 드러나는 탐라와 바다~
그 어떤 제대로 된 나무가 이런 곳에서 연명을 할 수 있겠어.
대체 바람이 얼마나 세차면 눈도 아니고 강풍 때문에 입산을 통제하나 했는데, 정말 그럴만하다. 서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악천후에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다들 자기만의 인증샷을 찍고는 바로 관음사 쪽으로 향한다. 2014년 6월에 관음사 쪽으로 내려갔는데 뭐 그리 볼 것이 없던지... 아쉬움에 조금 더 백록담에 머물고 싶었지만 얼어 죽고 싶지는 않았다. ㅋ
아~ 그런데 성판악 쪽(한라산 동쪽)과 달리, 관음사 쪽인 북쪽은 눈이 제법 내렸다. 기대도 않고 내려서는데 곳곳이 온통 눈꽃 세상이다.
북벽을 덮고 있는 산죽의 초록빛과 흰 눈의 조화로운 색감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백록담에서 20여분을 내려서니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도 따스한데다 넓은 데크까지 조성되어 있어 점심을 해결하기는 딱 이다. 풀어헤친 도시락이 제법 수준 있다. 헌데 밥이며 반찬이며 꽁꽁 얼어서 왠지 허겁지겁 먹다가는 체할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밥을 먹지 않는 다는 1번무전기. 도시락 놓고 오자고 말 꺼낸 건 난데 ㅋ 미안타.
밥을 먹고 있으려니 까마귀들이 자꾸 근처로 다가선다. 밥이며 김치며 뭐든 던져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혼자 욕심만 부리지 않고 동료들과 나눠 먹기도 한다. 한라산의 청소부.
▼ 북벽아래를 점령한 산죽의 초록과 흰눈의 어울림이 참 좋습니다.
삼각봉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겨울한라산이 주는 감동의 물결~ 쥑~인다.
멋진 설경을 놓칠 수 없어 카메라에 담기 한창인데, 일행들은 별 감흥이 없는지 후다닥 자리를 비운다.
▼ 용진각대피소터에는 덩그러니 데크만 남아 있네요.
▼ 삼각봉 옆통수에 난 구름다리
▼ 멈춰서 뒤돌아보면 비로서 보이는 왕관봉. 금새 눈구름이 삼켜버리더군요.
▼ 삼각봉대피소 앞에서 본 삼각봉
3번무전기가 그립네~
진달래밭대피소에서 통제한다는 말에 너무 느슨하게 시작한 산행이다. 게다가 산행 방향을 잡는다고 진달래에서 30분 이상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시간에 쫓기기 시작한다.
3시까지는 관음사에 도착해야 하는데, 정상적인 진행속도로 가야 3시 안에 들어 설 것 같은데, 후미에서 오는 두 쌍의 선배님 내외분들이 걱정이다.
삼각봉대피소를 지나 개미동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전체 일정 때문에 근심어린 사무국장님의 전화가 온다.
아무래도 늦게 오시는 분들은 3시에 버스를 타지 못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제주항으로 오셔야 할 것 같다. 만약 지체가 되면 그렇게 하자고 사전에 이야기는 해 놓은 상태이기는 했다.
탐라계곡대피소부터 고질병 무릎 통증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구름다리를 지나고부터는 거의 평지수준이었지만 통증이 계속 이어져서 입을 꾹 다물고 통증이 밀려들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산활동이 만든 천연동굴과 용암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탐라계곡의 이모저모도 여유롭게 보고 왔으면 좋으련만 시간과 통증 때문에 쉴 틈도 없이 내달린다.
▼ 이제 숲이 새로 이어진다. 침엽수림은 딱 여기까지 땅이 푹 꺼지고 온대와 열대 사이의 식물이 사는 세상이 펼쳐진다.
일단 전체 일정을 위해 3시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다행히 제일 걱정했던 홍이 선배님 내외분이 300미터 남았다고 전화를 하셨다. 더군다나 백선배님 내외분도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기사님이 쇼핑센터 포기하고 20분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고 한다.
결국 홍이 선배님이 시간 내에 오셨는데, 백 선배님은 전화도 안 된다. 30분 전부터 걱정이 되셨는지 정선배님이 들머리에서 계속 기다리신다. 결국 시간 내에 도착이 어려우실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바로 제주항으로 오시는 것으로 한다.
아~ 3번무전기야! 너의 소중함을 여기서 깨닫는다.
1박3일
버스 안에 올라타니 31명 중 네 분은 회 뜨러 제주항에 먼저 가시고, 두 분은 탑승을 못하시고, 전체가 성판악으로 리턴 한다던 저쪽 일행 한명이 이리로 내려와 우리차를 탔고, 그렇게 속 타게 했던 그 가이드도 입 꾹 다물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더하고, 빼고, 배시간은 다가오고 27명 인원수 맞추는데 정말 심란하더군.
다행히 모두 16:30배로 출발한다.
떠온 싱싱한 회와 함께 소주 몇 잔이 오가니 모든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다!
자정을 넘겨 공주에 도착하니 사무국장님 말씀대로 1박 3일이다.
이번 산행이 어떠어떠했다는 말은 시간인 좀 흐르면 쓰고 싶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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