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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추월산 산행 이야기

by 여.울.목 2016. 12. 18.

추월산 산행 이야기

복리암~수리봉~추월산 정상~보리암 정상~보리암~담양호 관광단지

9.74km | 5:00 | 2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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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전날에 잡힌 1박2일 워크숍, 술은 먹지 않기로, 아니 소주만 먹기로, 분위기 땜시 쬐끔만 섞어... 그래도 1박을 않고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주 동안 감기와 항생제 후유증으로 골골대다 숙취까지 겹치고 만다. 심신이 고달팠는지 몹쓸 꿈이 알람이 되어 새벽을 맞이한다.

아~ 정말이지 따듯한 방구석에서 푹 쉬고 싶을 뿐이다. 

게다가 버스까지 10여분이나 늦게 오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 찬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어 기운이 빠져 뱃속에 전쟁을 일으킨다.

먼저 버스에 오르는 1번무전기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연결음이 귓전을 때릴 동안 ‘이럴 바엔 아예 차가 어찌 되서 푹 쉬다 저녁에 총회나 했으면...’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무뚝뚝한 담당 기사님이 펑크를 내서 갑자기 차가 바뀐 것이여. 그 양반 영~ 정이 안 간다. 구터미널에서 우리 일행과 대타 기사님이 서로를 빗겨 찾다가 10여분을 공회전만 한 것이다. 

그래도 나 말고는 누구하나 차가 늦었다고 불평을 하지 않는다. 다행이다.

 

차가 휴게소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지를 챙겨 뛰쳐나갔지만, 불편한 기운이 아무래도 오래 갈 것 같다. 김밥 덩어리도 넘기지를 못한다. ㅠ_ㅠ

부글거리는 속 때문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버스가 멈춰 선다.

헐~ 복리암이 있는 동네 입구에서 내려서야 하는데 담양호 국민관광단지 근처까지 내려서고 만 것이다. 어째 들머리가 애매한 것이 헤맬 것 같더니만 속이 부실한 내 탓이다.

평지니 그냥 걸어서 가자는 것이 결론이다.

어찌 걷다보면 마을 회관이라도 나올 것 같아 참고 걸어보는데, 이 동네가 관광단지 근처라 그런지 죄다 펜션에다 별장 형태의 건물이다. 날까지 추우니 문을 꽁꽁 닫아놓고 있어 틈이 안 보인다.

대겸이도 어제 1잔을 했는지 속이 미식거린 댄다. 들머리를 찾으러 가는 내내 이 동네를 샅샅이 수색한다만 화장실 냄새도 안 난다. 그래도 좀 걸으니 고여 있던 피가 온 몸을 고루 도니 살만하다.

 



복리암, 아무리 찾아봐도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맘먹고 찾는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내 사는 동네도 잘 모르면서... 인터넷에는 동네 이름이 복리암이라고 한다.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전남 담양군의 연혁 및 옛 지명의 유래에 대한 글을 찾았다. 전주이씨월평군종회 카페http://cafe.naver.com/lwpg/348 에서 찾았다.

 

<부분 발췌>

·복룡(伏龍, 복리암. 伏里岩) 용면 월계리

월계 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 모양이 엎드린 용처럼 생겨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복리암(伏里岩, 복룡.伏龍) 용면 월계리 → 복룡

 

그러니까 큰절에 딸린 작은 절인 암자庵子를 뜻하는 ‘암庵’이 아니라 바위 ‘암岩’을 쓴 지명이다. 현 행정구역상 담양군 용면 월계리의 한 마을의 뒷산 암벽이 마치 용이 엎드린 모양을 하고 있어 복리암 - 엎드릴 복伏 마을 리里 바위 암岩 -을 써서 동네 이름을 지은 것이다.

때로는 그 것이 복룡伏龍으로 불렸을 것인데, 아마도 마을 크기가 어정쩡하다보니 공주 복룡리처럼 ‘리’단위도 되지 못해서 복리암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동네에서 동네의 유래를 지레짐작해서 절은 눈 씻고 안 찾아봐도 된다는 것.

 

 

별장같이 집 잘 지은 집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무렵 후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되돌아오란다. 그 집 담장을 따라 그냥 조금 더 가면 정식 등산로와 만날 텐데 1번무전기도 자심감이 떨어지나 보다. 주말마다 산을 탔으면 저 성격에 더 크게 떠벌리면서 앞으로 나갔을 것을, 직장 옮기고 일에 시달리다보니 나처럼 이제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산을 찾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제 내년부터는 등반대장. 무리를 안전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비로써 구뻥(하는 말의 9할이 뻥)의 성격까지 누르는가 보다.

 


이제 고생 시작이다.

여기저기 헉헉대는 소리가 난다. 석 달 만에 얼굴 뵌 반가운 선배님께서는 스틱 3단부가 빠져나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오르신다. 본래 들머리는 복리암 동네 입구에서 산등성이를 타면 되는데, 다들 처음인지라...

간벌을 한 야산을 올라 원래 등산로까지 찾아 가야 한다. 간벌을 하려고 임시로 낸 길 같다. 어설프고 거칠다. 동네사람들이 친근하게 오르는 길이 아니다. 다들 본격적인 격한 움직임에 꽁꽁 여민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한다.

간벌을 한데다 다행히 시절이 초겨울이라 그나마 길을 찾는 것이지, 10월만 되었어도 무성한 풀숲에서 어지간히 고생했으리라.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전자지도 준대도 끝까지 그놈의 ‘산꾼의 감’을 쫓기만 한다. 1번아 이제 핸펀도 바꾸고 전자지도 좀 잘 써먹자~.

 

등산로에 다 달아 이제 한숨 돌리는가 보다 싶었는데 첫 번째 뷰포인트까지 알싸한 맛을 보인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웅장한 건물. 무슨 수련시설 같은데 어찌 저런 산 위에 커다란 건물이 들어섰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산행을 하다 힘들어 길을 내어준 일이 없건만, 도저히 힘들어 종락에게 길을 비켜준다. 이정도면 자켓을 벗었을 텐데, 으실으실하다는 느낌에 옷을 그대로 껴입고 있는다. 정말 몸이 많이 골았다.

첫 번째 뷰포인트는 바위 하나가 두 개로 쪼개진 것처럼 나란히 낭떠러지 위에 서 있다. 헉헉대는 숨을 돌리고 바위를 비껴 돌아가니 담양호가 시원스레 들어선다.

 

그렇게도 위압스럽게 보이던 건물도 이제는 내 발 아래 작은 성냥갑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대법원가인연수원 이라고 되어 있더만. 다들 저 산 위에 건물 지을 정도면 그 정도 권력이 되어야 한다는 둥... 사실 등고선을 잘 살펴보면, 792번 지방도에서부터 완만하게 개울을 따라 올라와 자리를 잡은 것이 연수원이다. 들어서는 북쪽 입구에서는 평범한 느낌이지만 남쪽에서 연수원을 바라보면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깎아지른 산 능선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어 느낌이 꽤 위압적이다.

 

아무려면 어떠냐 내 발자국 몇 번에 어느덧 작은 성냥갑이 되고 만 것을.

꼭 이런 맛 때문에 산을 오르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이 왕후장상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 짧은 시간이지만 – 나도 주인이라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바로 위에 커다란 바위(수리봉)가 보인다. 저기부터 이제 본격적인 능선인가보다.

능선 길에서는 좀 여유를 가지고 볼일 볼 자리를 찾아 봐야겠다. 계속 속이 부글거려서 이거이 산행을 하는 것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리 가까이 보이던 바위는 제법 건친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제법 오른 덕에 이제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친다. 쉬더라도 그늘을 피해 양지에 서고, 무거운 배낭이라도 내려놓으면 등짝이 서늘해져서 단단히 메고 있어야 한다. 속이 계속 거지 같으니 말도 더 없어지고 얼굴도 계속 굳어 있다.

 

코앞에 보이던 수리봉은 귀 위세가 저 연수원만큼이나 대단해서 북쪽으로 빙~ 돌아서 올라야 하는데, 북쪽 수리봉 그늘을 지날 땐 다리도 후들거리고 머리도 빙글빙글.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ㅠ

봉우리 정상에 서니 이제 산행은 다 마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평온한 마을 풍경과 따스한 햇살, 겹겹이 포개진 산줄기에는 박무가 연하게 들어차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으로 가야할 능선길은 마치 삼불봉에서 바라보는 계룡산 자연성릉과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도 잠시 바람이 몰아치니 컨디션이 다시 급 하강한다. 바람을 피해 봉우리 남쪽 양지로 내려선다. 병대가 보온병에서 꺼내준 수제차를 마시니 속이 좀 진정되는 것 같다.

속이 덥혀져서 그런지 따듯한 햇볕 때문이지 능선 바위에 걸터앉아 낮잠 한 숨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도저히 참지를 못할 것 같다. 이젠 적당한 자리를 찾아서 볼일을 봐야 하겠다.

경험 상 이쯤이면 돌아서서 적당한 장소가 나오겠지 하고 가보면 절벽이다. 이 능선 자체가 남북으로 암벽이 남북으로 비스듬히 형성이 되어 있다. 그러니 능선 기준으로 동쪽은 가파른 낭떠러지고, 서쪽은 완만한 길인데 그늘이 져 있어서 잠시 머물러 있기도 싫은 느낌이다.

그렇게 볼일 볼 장소만 찾다보니 병대 꽁무니를 졸졸 따라 붙는 격이 되어 어느덧 출월산 정상 어귀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추월산 정상은 그냥 정상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수리봉부터 마치 저것이 정상인가보다 싶던 737봉우리까지의 능선 길은 참 좋은 조망을 품고 있다. 737봉은 거칠어서 그런지 등산로 자체가 비껴나서 봉우리 구경도 못한다. 그 이후로는 관광단지에서 단체로 풀린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서인지 길이 반들반들하지만 초겨울인데도 숲길이라 조망은 별로다.

추월산 정상에 가니 선두그룹이 보인다. 아침부터 굶은 데다 육체노동에 시달려서 그런지 발이 천근만근이다. 






언능 점심 먹었으면 좋겠는데 더 좋은 장소를 찾는다고 보리암 쪽으로 다시 내달린다. 미치겠다. 추월산부터 1km는 더 내려와서 운동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도 점심을 먹고 나니 살만하다. 총회 때문에 코스를 조금 짧게 잡았고, 내 몸이 이래서 그렇지 산이 처음만 고생하면 능선만 타면 되니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겠다~ 다들 점심에는 푸짐한 이야기보따리까지 더불어 풀어 놓는다.

 ↓ 운동장만한(?) 점심터를 지나자 산죽 숲이 나와 한 컷  



↓'보리암 부근 봉우리'라는 곳에서 찍은 사진/ 이동통신 송신탑이 있는 곳인데, 보리암 정상보다 조망이 좋다.









복리암 근처에서 시작했을 때만해도 이 산에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더니 보리암 근처로 갈수록 사람들의 엄청나다.

시작이나 마찬가지로 마무리도 거칠다. 보리암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하산을 시작하면 계단이 섞인 가파른 하산길이다.



 

가파름을 잠시 쉬어 보리암에 들린다. 임난 때 의병장 김덕령의 부인이 왜군에게 쫓기다 욕보이지 않으려 뛰어내려 순절한 곳이라고 한다.

절의 많은 부분이 현대 기술의 힘을 빌려 벼랑위에 철콘으로 데크처럼 공간을 만든 형태다. 암벽 틈에 뿌리를 내린 사랑나무도 참 억세고도 억세다.

매일 여기를 오르내리기 얼마나 힘들었으면 짐을 오르내리는 삭도가 설치되어 있더군. 절에 참 돈이 많구나 생각되었는데, 아랫녘에서 살펴보니 담양군청에서 마련을 해준 것이네. 쫌 냄새가 나는데 ㅋ



나무만 붙어 있으면 무조건 연리지란다. ㅋ
*연리지(連理枝, 连理枝) 

뜻 맞닿아 연이어진 가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원래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출전 후한(後漢) 사람 채옹(蔡邕)의 효성에서 비롯됨-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서 두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오늘 컨디션이 영 꽝이다. 내려서는데 근육에 힘 딸려 양지바른 곳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 숨고르기를 했다.

관광단지에 들어서자마자 찾은 것이 화장실이다. ㅎ

근 30~40여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초등3년 아이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산행은 없었다.

산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힘들었다. 앞으로 나이 들수록 더 그럴 텐데, 꾸준하게 운동하고 먹을 것 가려 먹고 해야 더 나은 산행을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박 위원 말이 인상 깊네. 

“네 생에 오늘이 가장 늙은 날이라서 그런겨~”

하루하루 내게 가장 늙은 생물학적 시간을 경신한다. ㅎ

 

아이고~ 죽을 뻔한 산행이었다.

이놈의 몸 풀리면, 담달 한라산 가기 전까지 열심히 운동해야겠다.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