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산 봉화대
수원사지까지 거치는 길
2017. 4. 15. | 3.93km | 1:10
* 여기에 나와 있는 문화재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문화재 옆 안내문에 적힌 것을 필요에 따라 재구성한 것임
매주 토요일 작은 아이가 공주대학교 평교육원에서 하는 역사 강좌를 듣는다고 한다.
어질적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매번 안사람이 하던 일인데 오늘은 큰 맘먹고 내가 아이를 데려다 주려 나와 같이 걸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물러가고... 좀 추운듯해서 재킷을 입고 왔는데 금새 몸뚱이가 후끈 달아 오르는 것 같다.
아이를 강의실에 데려다 주고 나오며 바라본 건물 뒷산. 산을 보자 심장이 쿵쾅거린다.
알았다~ 집까지 산을 비~ㅇ 돌아서 가보련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오늘 산행이다.
공주대학교의 이 캠퍼스는 예전에는 간호전문대학일 있던 자리다.
공주대학교와 통합되면서 보건대학 캠퍼스로 쓰다가 이제는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건물동과 다국적 학생들의 생활처로 바뀌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자리에 초등학교 하나 들어서면 딱 좋은 자리다.
건물 뒤편으로 월성산 봉화대로 이어지는 길이 이어진다.
이제 숲은 온통 연두와 분홍빛으로 가득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녀석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사람들이 이런 숲길을 걷기 부담스러워질 시기가 될 것이다. 산행하기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날벌레들은 아직 높이 날지 못하고 땅 위에서 맴돌기만한다.
오늘 내가 처음인지 거미줄이 갈길을 가로막고 있넹.
능선까지는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야 하는데,
다행히 그 거리는 그리 길지 않기에 버틸만하지.
동네 산이라 사방팔방 잘 인식하고 있는데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라 그런지 내 의지와 달리 눈동자 돌아가는 모양새가 꽤 요란스럽다.
그 수고는 낯익은 이정표를 만나서야 평온을 찾는다.
이제 등고선을 따라 걷는 산책길이 이어진다.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왔던 약수터 가는길,
어린 내 아이를 업고, 녀석들의 손을 잡고 요즘도 걷는 이 길.
그런 길을 생각하니 갑자기...
능선길을 찾느라 거칠어졌던 숨에 안정을 준 것도 잠시,
이제는 봉화대로 향해야 한다.
어릴적 내 사는 집에서 약수터까지는 자주 갔는데, 봉화대까지는 큰 맘을 먹어야 했다.
그땐 왜 그리 멀게 느껴졌던지, 역시 어린 녀석의 자잘한 발걸음이었기 때문이겠지.
길가에 핀 야생화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엔 잘 쳐다보지 않았던 것인데 요즘은 꽃집의 그것보다 더 예쁘다.
봉화대로 향하는 오르막 내리막 재밌는 능선길은 이제 마지막 고비를 맞는다.
이제 쉴 틈도 없는 거친 오르막만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팔각정에서 전열을 가다듬고는,
Let's go!
그냥 솔숲길 같이 보이다.
사진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제법 거친 오르막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멀리서부터 빛과 연기를 받아 멀리까지 다시 보내야 하는 봉화를 피웠던 봉화대를 오르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어?
심박수가 거침없이 오르고,
땀이 흥건히 젖을 무렵 드디어 봉화대 터의 남문지에 다다른다.
월성산 봉수대(봉화대)
공주시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5호
공주시 소학동 산69
조선시대, 서축 둘레 80m, 남북직경 33m, 동서직경 13m
남북이 긴 타원형이 형태로, 석축 대부분은 붕괴된 상태로 남쪽 봉수대 출입 문지 흔적이 남아 있다.
공주에는 3개의 봉수대가 있다.
이곳과 정안면 북계리의 *고등산 봉수대, 정안면 인풍리 **쌍령산 봉수대.
남쪽 논산 노성산성의 봉수대와 연결되고 북쪽으로 의당과 정안의 경계인 고등산 봉수대와 연결한다.
그 신호는 다시 공주와 천안의 경계인 쌍령산 봉수대로 이어져 서울로 길을 재촉한다.
*고등산 봉수대(봉화산)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3호
공주시 정안면 북계리 산36-1
정안면 북계리와 의당면 두만리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184m의 봉화산 정상부에 자리
둘레 78m, 북쪽으로 직경 5m 높이2.5m 크기의 대. 건물터로 추정되는 대지는 민묘가 자리하고 있어 확인이 어렵 단다.
*쌍령산 봉수대(봉수산)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14호. 정안면 인풍리 산58-23
차령고개. 공주시와 천안시 경계 해발 324m의 봉화산 정상부
산 이름이 다 봉화와 관련되 것이다.
봉화대, 봉수대, 봉화산, 봉수산... 산은 가파르고 거칠지만 그리 높거나 규모가 크지 않아서 접근하는데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하면 된다.
그러니까 명을 받아 여기에 올라 봉화를 피웠겠지.
내 태어나고 자란
앞으로도 살아갈 공주의 전경
봉화대 정상에 서면 공주의 구도심과 신관동 신시가지가 함께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봉화대 정상에서 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서면 조금 낮은 크기의 봉우리
난 형제봉이라고 하는데,
봉화대와 달리 여기서는 계룡산줄기와
세종시 방향이 시원스레 보인다.
이제 내려서는데
조금 있으면 녹음으로 가득하면 틈도 없을 텐데
아직은 잎이 듬성등성하여 내 사는 동네를 보여준다.
봉화대에서 내려서면 수원골이라는 농네가 나온다.
예전에 여기에는 커다란 또랑이 길을 따라 옥룡동 사거리쪽으로 내려섰는데
그 또랑은 한참 전에 복개되었다.
동네의 이름이 수원사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밭농사 짓기 딱 좋은 형태의 잔디밭이 이 고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주 수원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36호. 지정면적 7,219㎡
백제시대 세워진 수원사터 추정.
삼국유사에 '웅천주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를 볼 수 있다'는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 진자사(眞慈師)조의 진자의 꿈 내용을 토대로 신라의 진지왕대인 6세기 후반에는 존재하였음을 알게 해주고 있지만,
발굴 결과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대의 것으로 그 이전을 증명할 유물은 추가로 발굴되지는 않았다.
1967년 곱돌로 만든 작은 탑과 청동방울 및 탑의 조각 등 발견
1991년 2차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외 4개소의 건물지 확인
석탑지
건물지의 남쪽으로 약 20m 거리에 위치.
서-동의 완만한 경사. 기단부는 점토에 잡석을 섞어 다져, 면마다 2~3매씩 모두 7개의 석재로 조성했다고 한다.
오랜 경작으로 인해 훼손되어 탑의 부재가 지포상으로 노출되었다. 지대석은 3면을 다듬은 화강석을 사용하였다고 안내하고 있다.
석탑지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니,
아파트단지가 떡허니 가로막고 있다.
예전에는 멀리 공산성이 보였을 것이다.
금당 터
수원사지 전체 건물군이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며,
중심건물은 금당. 서쪽 산 경사면을 절토하여 조성. 동향으로 배치. 기단은 22.1m*12m로 연 면적 265㎡. 기단 4면 다듬어진 돌은 유실되었고 현재 기단 자연석 기초부만 확인. 초석은 24개 중 7개 유실 17개만 남아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란다.
이 절의 중심건물 금당 터 끝에서 남동쪽으로 찍은 사진
금당 앞에 건물터가 좀 더 있는데, 안내문은 따로 없다.
멀리 가운데로 보이는 산이 월성산 봉화대다.
월성산 봉화대.
보이는 봉화대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웅치다.
동학농민전쟁 때 사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 수원골에도 그 함성과 총성이 생생히 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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