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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아이와 함께한 봉화대 (공주 월성산)_2010.12.05.

by 여.울.목 2014. 9. 1.

아이와 함께한 봉화대 (공주 월성산)
2010.12.05.

 

 

늦잠

잠시 눈을 떴는데 밖이 깜깜하다. 비몽사몽 중에도 다행히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

 

원거리 산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겨울 동안... 경제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시간이 없다. 돈도 시간도 없는 전형적인 산업시대의 도시빈민 신세가 되고 만 건가?

아무튼 겨울 산행은 해가 짧아진 만큼 위험하기에 원거리는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어쩌다 하루 쉬는 날, 배낭 메고 나서는 내게 이제 대놓고 뭐라 하는 아이들이 겁나기도 한다.

 

9시 30분까지 이불 속에서 뒹굴다 보니 일요일 오전이 다 갈 것 같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랜만에 한가한 오전을 보내는데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르겠다. 우울하기도 하고...

등산양말을 신고 옷장을 열어 등산복을   챙기는데 작은 아이가 이쁜짓을 하며 주변을 맴돈다. “아빠랑 산에 같이 갈래?” - “응”

 

큰 아이는 이제 컸다고 할머니댁에서 외박을 한 터라 집안이 조용하다. 한 번에 두 녀석이 따라 나선다고 하면 그만 두라고, 혼자 나설 터인데 힘들다면 업고라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데리고 나선다.

 

그래도 큰 아이와는 가끔 산에 오를 기회를 만들었는데 요 녀석과 단 둘이는 처음이다.

PC050095.jpg

 

아직 등산로에 접어들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 등을 탐한다.

아들 녀석과 달리 요 녀석은 계속 쫑알댄다. 큰아이는 또래 아이들끼리 있으면서는 무어라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이제 커서 그런지 아빠하고 단 둘이 있을 때는 별스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작은아이에게는 계속 답변을 해 줘야 하니 들쳐 업고 움직이는 내가 어찌 숨이 가쁘지 않으랴?

 

그래도 이제 컸다고 봉우리에 올라 경치를 볼 줄 안다.

 

함께 사진을 찍으려 삼각대를 올려놓으니 알아서 자세를 취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빠와 딸 모두 세수도 하지 않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성큼성큼 산에 올라 마냥 즐겁기만 하다. 햇살이 참 좋았다. 딸아이도 답답한지 점퍼를 벗으려 했는데, 감기 걸릴라 노심초사...

 

얼마 전 오서산 억새를 보러 갔을 때 큰 아이를 업고 정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내 등에 업기에는 점점 부담이 가는 아이들... 커가는 몸집만큼이나 생각도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아빠는 여전히 예전의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조잘대는 말, 낱말 선택이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가 신기할 정도였다.

 

PC050099.jpg

엽수림을 내려오면서 작은 행복감을 느끼는데, 그새 참지 못하고 녀석이 잠이 들고 말았다. 잠에 빠져드니 내 팔에 힘이 더 간다. 그래도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사는가보다.

가끔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딘지 몰라 꿀꿀해질 때가 있다. 혼자 조용히 생각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얼마까지는 내가 방패가 되 줘야할 소중한 존재와 함께하는 것도 참으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녀석 덕에 짧은 코스지만 두 배로 운동은 한 것 같다. 어찌 다리보다 팔이 더 얼얼하다.

그래도 열심히 움직였다고 점심을 오빠만큼이나 해 치운다.

둘만의 산행 소식에 아들녀석이 샘이 좀 나던지 내게 자꾸 몸을 비벼댄다. 담 번엔 자기랑 가자는데, “이제 넌 업어줄 수가 없단다. 스스로 오를 수 있겠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