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 이젠 길찾는데 요령이 생긴다
2010.11.28.
주차장09:40(200m) - 갈림길10:30(2km/434m) - 갈림길10:45(2.8km/393m) -폭포·돌탑 11:25(5km/434m/36.20.04_127.12.01) - 머리봉12:10(점심30'/6.7km/741m) - 천황봉 13:15(9.2km/847m) - 주차장14:45(13.8km)
총 13.8km / 5시간 소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아직 밖은 어두운데 시계는 벌써 7시를 지나고 있다. 어제 아침 한바탕 치른 말다툼 때문인지 집사람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휴일인데... 괜히 미안하다.
차려준 밥상을 성심성의껏 받아들이고 꾸역꾸역 배낭을 꾸린다.
아들과의 협상
작은방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챙기는데 안방에서 나누는 모자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핵심을 요약하면 "매일 어쩌구~, 토요일날도 어쩌구~, 그런데 일요일날 쉰다면서 왜 또 어쩌구~" 이렇다.
꽤 논리적이다. 그에 대한 경식맘 "아빠도 아빠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란다~"
뜨끔했지만, 어쩌냐 배낭꾸리기를 마무리한다.
녀석이 이제 내게 협상을 제기한다. "그럼 일찍 들어오시고, 나와 함께 원카드 한판, 마구마구 야구게임 한판, 목욕탕 같이 가기"
목욕탕 가기는 엄마의 중재로 보류...
정말 춥다
산을 오르기 전까지는 추위에 고생을 할 것 같다. 영하 3도. 산은 더 추울 텐데, 매번 같은 집에서 김밥 두 줄을 사고 차를 몰아 신원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근데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더군다나 혼자 모를 길을 찾아야 하니...
또 시작이다, 헤매기
며칠 전 강한 바람 탓에 낙엽이 모두 떨어져버렸다. 숲속 길을 가득 메운 낙엽이 심상치 않다. 어떤 곳은 스틱을 짚으니 푹~ 꺼진다. 그래도 오르는 길은 길을 잘 찾아 능선까지 다다랐다. 이제 머리봉을 찾아가야 한다. 직접 천황봉으로 치달리지 않고 남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가보기로 한다. 남쪽 내리막길을 가며 불안한 마음, 또 이 길을 거슬러 올라와야 하나?
갈림길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배낭을 내려 지도 쳐다본다. 예전에 갔다가 헤맨 길은 왼쪽(북동)이요, 오늘 이렇게 보니 오른쪽(남동)으로 길이 보인다. 파란 비닐노끈도 보인다. 지도의 등산로가 남쪽으로 내려가듯 다시 북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내리막이 한도 끝도 없다.
다시 지도와 GPS를 번갈아 보니 내가 용화사에서 올라오는 길까지 내려온 것이다. 짜증 제대로다.
이러다 오늘 중에 저기 보이는 머리봉에 올라 갈 수는 있겠어?
이젠 요령이 붙다
다시 지도를 꺼낸다. 어젯밤 지도를 보면서 그리도 애타게 찾던 머리봉 갈림길을 포인트의 도와 경도를 미리 적어 놓았다. 위도36.20.08 경도127.12.09
이제 선택은 하나다. 계곡을 따라 무작정 오른다. 그리고 08"에서 갈림길을 찾는 거다. 늦가을 계룡산은 '건기'인가? 상류 쪽이라 해도 물기가 거의 없다. 계곡을 따라 좀 미친 사람처럼 무작정 오른다. 손목에 있는 GPS를 가끔 흘겨보며 주위를 두리번 거려 혹시나 길이 보일런지 부지런히 눈동자를 움직인다.
하지만 이미 겨울준비를 끝낸 이 숲은 며칠 전 강풍으로 온통 참나무잎을 뿌려놓은 덕에 그냥 가던 계곡만 따라 오른다.
힘은 두 배나 드는 것 같다. 그냥 잘 닦아진 길과 달리 스틱을 쥔 두 팔과 발끝의 신경에 온힘을 가한다.
<폭포 너머 봉우리가 유난히 돋보인다. 근처에 누군가 공들여 쌓아 올린 돌탑 있다>
이 험한 산중에 저런 멋진 폭포, 그 곁에 누군가 공들여 쌓은 3미터 남짓한 돌탑이 서 있다. 그래 어딘가 저거 쌓은 사람이 다닌 길이 있으려니 두리번 거렸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 짜증난다. 죽으라 계곡길을 따라 올라왔건만 지난 초봄에 만났던 그길을 다시 만난다.
※ 그길 : 아까 그 갈림길에서 북동쪽인 왼편 길로 향하면 화전민들이 살던 집터 같은 곳이 있다. 꽤 잘 다져진 그길을 지나오면 계곡길과 맞닥드린다.
36.20.08
그때도 여기부터 헤맸다. 그러나 길을 만들어 천황봉까지... 오늘은 절대... 하지만 계속이어지는 계곡길에 함께이어져 있던 삐삐선, 또 그 길을 따라가고 만다. 이러다 그 때도 그랬건만, 36.20.09!!! 이미 지났다.
이제 요령이 붙나보다. 08을 찾아 다시 내려간다. 아니~ 결국 그 포인트구나. 그때는 저 길을 왜 못 봤을까?
초봄 헤맸던 그 길로 다시 들어서 한 6~7미터를 오르니 리본이 매어져 있다.
힘이 빠질만도 하건만 길을 찾았다는 기쁨이 피로를 가시게 한다.
저기 머리봉이다.
머리봉
머리봉은 멀리서 보던 바와 달리 거칠다. 오르는 길은 몰라도 윗 부분은 꽤 평평할 것 같은데, 아마도 산 서쪽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인가 보다. 봉우리는 상당히 뾰족하다.
울 마눌님께서 담아준 따듯한 둥글레차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한 30분 소요되었다. 이 느낌~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좁은 봉우리에서 몸을 비틀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 파노라마를 만들어 보건만... 집에서 보니 직접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내 머릿속에 찍힌 그 감동은 어디에 그려 넣을 수 있을런지...
<멀리 내가 지난 산행 때 헤매던 곳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바위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않은 곳... 간식을 먹으며 머리봉을 향해 애증을 날리던 곳이다>
이 번 산행부터는 술과 사발면을 끊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지 속이 더 편안하다.
<뒤로 천황봉에서 황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아들과의 약속
바로 북쪽으로 보이는 철탑이 흉물스럽게 버티고 있는 험한 봉우리가 천황봉이다.
머리봉은 생각보다 거칠어 내려가는데도 조심성을 요구한다. 봉우리를 내려 짧은 능선에는 쌀개봉 근처의 통천문보다 높고 위험스럽게 보이는 커다란 대분문이 보인다. 막혀 있지 않은 시원스레 뻥 뚫린 길이다.
<가까이 머리봉부터 멀리 향적봉까지, 천황봉에서 본 머리봉은 신원사쪽에서 보이는 둥그스럼과 달리 참 뾰족하기만하다>
<머리봉에서 천황봉 가는 길에 있는 사자머리 모양의 바위>
<천황봉에 있는 사자봉인데 정말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다>
머리봉 못지않게 천황봉을 향하는 길은 거칠다. 아예 길 흔적이 없다. 그러니 예전 천황봉에서 머리봉 가는 길을 찾지 못한 게 당연하다. 그리고 거꾸로 가니 길이 보이지만 누가 이런 비공식 산행로를 경험해보지 않고 알랴?
天壇에서 지도를 편다. 이 천단이 정말 예전 그대로인가? 아님 철탑 일부를 철거하고 급조한 건가? 암튼 지도를 보니 처음 맘 속에 담았던 쌀개능선이 나를 홀린다. 여기서 보면 바로 앞이다.
관음봉까지 갔다가 다시 신원사 쪽으로 내려가려면 아무래도 오늘 하루 내내 산에서 있어야 할 것 같다. 녀석과의 협상을 생각하니... 그냥 하산을 하기로 한다.
맘을 먹고 철판으로된 길을 쿵쾅거리며 내려오니 꼭대기 내부반 아저씨가 뭔 일로 왔냐고 시비를 건다.
"예~ 내려가는 길입니다"
<정상에서>
<정산에서 바라본 자연성릉과 장군봉, 겨울준비를 끝낸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초겨울 최대의 적 낙엽
내려오는 길, 두리번 거리며 길을 익히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네. 요령이 붙어 금새 어긋날뻔 했던 길을 바로 잡으면서 뒤 돌아 보니 저길을 오를 때 어찌 제대로 찾을지...
노련한 산꾼들이 존경스럽기만하다.
이제 아까 그 능선 갈림길이다. 여긴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 했기에 더군다나 내려가는 길이니 안심이다.
BUT! 항상 뒤통수를 때리는 너!
허걱! 내려오다 보니 길이 없다. 뒤를 돌아보아도 내려보아도 길 같이 생긴 곳이 없다. 푸~, 녀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또 계곡을 따라 간다. 그렇게 한 10분을 내려가니 파란색 비닐끈이 보인다. 왜 이리 반갑냐? 허겁지겁 내려오는데, 낙엽에 미끄러져 두세 번 엉덩방아를 찧고 얼마나 호되게 넘어질뻔 했는지 스틱이 휘청거린 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리도 낙엽이 만든 함정을 지나 금룡사를 통해 법정등산로로 나서니 살 것 같다.
집에 와 피곤함이, 삭신이 쑤실 정도다. 한 시간을 곯아떨어지니 좀 살 것 같구나.
그리고 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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