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어릴 적부터 많이 찾았던 곳이다.
옆 동네 산등성이에 있는 갈색 벽돌로 치장된 그 곳.
그냥 우리들에게 박물관이라고 하면 아직도 여기다.
그냥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박물관”은 2004년에 현재 위치인 웅진동에 크게 새로 지어 이사했다.
그 박물관을 아이들과 함께 오늘 또... 찾았다.
사실 갈 곳이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맘 놓고 나설 곳도 마땅치 않다.
박물관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국립공주박물관
백제의 문화 유적 및 유물을 조사, 보호할 목적으로 1934년 공주고적보존회가 설립되었고,
1940년 충청도 감영청(監營廳)이었던 선화당(宣化堂)을 중동으로 이건하고 공주사적현창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선화당을 유물전시실로 활용하여 공주박물관을 개관하였다.
1945년 서울 국립박물관 정식 개관. 1946년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으로 편제
1971년 세계적 유물 백제 무령왕릉 발굴로 신관 신축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
1973년 신축 개관
1975년 직제 개편으로 지방 박물관으로 승격되어 국립공주박물관
2004년에는 국립공주박물관이 웅진동에 신축, 이전 개관
- 여기까지가 Daum백과사전에 나오는 이야기 -
문화해설사님께 들은 바에 따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지금도 마찮가지겠지만, 어려운 시기에 박물관은 대체로 나라에서 짓는데 공주의 박물관은 민간에서 먼저 조직해서 나라에서 “국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한다.
공주에 사는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하더군.
대전‧충남 지역 출토 45,009건 94,590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보관하고 있고,
국보 19점과 보물 4점 등의 중요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어 뜻깊은 곳임에도,
자주 찾아보았다는 이유만으로 박물관은 그냥 심심하면 놀러 가는 곳이다.
어쩜 이게 박물관을 대하는 바람직한 행태가 아닐까?
매번 보고 또 보는 것이지만, 어쩌다 찾을 때마다 색다른 전시와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기에 심심하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현재 1층에는 웅진 백제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성에서 웅진으로”, “웅진백제의 문화”, “무령왕의 생애와 업적”으로 주제를 잡았더군.
2층에는 충남의 역사문화실로 전시를 하고 있다.
선사-고대-중근세 문화를 유물과 함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던 중에 눈에 띈 특별전
2020년도 특집전 백제금동신발, 1000리를 가다
2020.7.1.수~8.23.일
금동신발하면 과장된 크기에다 무덤의 유물이라 내심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1000리를 갔다는 문구에 혹 다른 사연이 있는지 들여다 보기로 한다.
전시를 여는 말
인류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만들어 신었습니다. 그러나 신발에는 이러한 실용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고 인가 역사와 삶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백제 신발 중에는 특별한 신발이 있습니다. 바로 무덤에서 발견되는 금동신발입니다. 얇은 동판으로 신발의 형태를 만들어 도금하고, 표면을 각종 무늬로 장식한 뒤 바닥에 못(스파이크)을 여러 개 붙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크기와 약한 구조로 이 신발은 일상에서 신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백제인은 언제, 어떻게, 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러한 금동신발을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금동신발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요? 이 전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백제금동신발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땅과 인간을 연결한 신발”
발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도구인 신발 덕분에 더욱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땅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물건 신발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다고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나무신. 삼국시대 백제 것으로,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것의 재현품이라고 한다.
궁남지에서 출토된 짚신. 백제 짚신의 특징, 늪지에서 자라는 부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꼬챙이에 소시지를 매단 것과 같은 모양의 열매(?)를 맺는 식물이라고 한다.
“영혼을 위한 백제금동신발”
신발이 신분‧지위‧미의식 등을 표현하는 도구
각 신분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재질, 장식
백제금동신발은 한성과 웅진의 중앙세력이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 세력에 내려준 위세품*이라고 한다. 사후 영혼을 위한 무덤 껴묻거리로 사용. 늦어도 5세기 초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6세기 초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을 마지막으로 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 화성, 충남 공주, 전북 인산, 전남 나주 등 백제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당시 지방세력의 어떻게 분포했는지 추정할 수 있겠군.
*위세품: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권위를 세우기 위해 내려주는 귀한 물건
1부. 백제금동신발, 금강에 이르다
마한의 작은 나라였던 백제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백제금동신발은 한성에 도읍한 시기에 지방에 내려주기 시작했다.
강원도 원주, 충남 공주, 경기 화성, 세종 나성동 출토
왼쪽 오른쪽 구별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형태가 유사해서 모두 백제 중앙(한성) 전문 공방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방 세력이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네.
2부. 백제금동신발, 영산강에 이르다
금강 넘어 영산강 유역으로 세력 확대
금강 이북(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외 전북 익산, 전남 나주(영산강 유역)
표면 장식이 복잡 다양, 달개 장식 치장, 좌우신발 구별
3부. 백제금동신발, 무령왕릉에서 꽃피다
백제에서 금동신발은 6세기 초 무령왕릉 출토 이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중앙집권화되면서 금동신발 등 위세품을 내려 지방을 지배하는 방식의 실효성이 사라졌기 때문.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마지막 금동신발은 다양한 무늬를 맞새김하고, 왕의 것은 좌우 신발이 맞닿는 부분을 돋을새김으로 표현. 측판과 바닥판에 달개(금관 따위에 매달아 반짝거리도록 한 얇은 쇠붙이 장식)를 달아 화려함을 더하는 등 앞선 때의 것과 다른 양상을 보임. 꽃피다.
금동신발은 중국세서 발견된 사례가 없고,
고구려, 백제, 신라, 왜에서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4~6세기, 백제의 경우 수도 한성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고르게 발견되는데
고구려와 신라는 수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 바닥판만 남아 있는데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신라: 백제와 같은 방식으로 3장의 금동판 결합
백제가 좌우측판을 발등과 귀꿈치에서 결합 - 신라는 좌우측판을 좌우 측면 중앙에서 결합
신라 것은 바닥에 못이 없고 표면 장식 무늬가 다양하지 않다.
글머리에서의 물음(?)에 대한 답, -박물관 총평
금동신발은 삼국에서 모두 나타났지만,
백제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긴 시간, 공간적으로 넓은 범위에서 출토되었다.
늦어도 5세기 초부터 지방 통치를 위해 지방 세력에 내려주었다.
일상 생할용 신발이 아닌 무덤에 껴묻기 위한 의례용품이자 권위를 드러내는 위세품
당대 최고의 금속공예기법과 미의식이 반영되었고,
백제의 역사와 백제인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런 백제금동신발은 무령왕릉 출토를 끝으로 더 이상 출토되지 않는다.
지방을 지배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앙집권화되면서 위세품을 내려주는 방식이 필요치 않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아울러, 무령왕릉의 금동신발은 앞선 시기의 것과 달리 더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금동판 안쪽에 은판을 덧대고, 표면은 연속 육각무늬를 기본으로 안쪽에 봉황, 연꽃 등 다양한 무늬를 맞새김*을 하고
왕의 신발은 좌우 신발이 맞닿는 부분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달개라는 화려한 장식까지 달았다.
*맞새김: 재료(材料)를 뚫어 파서 모양(模樣)을 나타냄. 뚫을 새김
**돋을새김: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무늬나 모양이 도드라지게 새기는 기법
시간이 지나면서 무르익은 금속공예 기법이 스며든 프리미엄 신발은 이제 최고 권력자를 위한 것이 되었다.
박물관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전시의 기준을 다양하게 확장하거나 빨아들여
일반인들도 쉽게 유물을 통해 깊은 뜻을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금동신발은 한 국가나 지방의 권력자에게 주어지는 상징물인데다, 한성에서 나주까지 짚신이나 가죽신을 신고 걸었겠지. 정작 그 신발은 귀하게 꽁꽁 동여 메고 옮겼을 껄?
금동신발 하나로 백성들의 삶까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유물과 기록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보면 백제인의 발자취를 색다르게 큰 그림으로 가늠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유물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포함한 지역의 고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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