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2012.08.11.(토) 13.1km를 6시간 33분 동안 걷다.
강천산-금성산 일대
(강천산주차장-광덕정-깃대봉-왕자봉-형제봉-금성산-북바위삼거리-강천사-원점회귀)
*바람 없는 날
강천산은 순창에 있는 산이지만 산을 경계로, 담 너머는 담양이다. 전라남북도의 경계에 있으니, 공주에서 멀리도 온 셈이다.
기세는 꺽인 것 같지만, 아직도 주차장을 향해 쏟아지는 햇볕은 따갑다. 아침이라 아직은 덜 북적대지만 벌써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주차비는 안 받는데, 1인당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산에 대한 객관적인 느낌을 가져야 하는데, 강천산은 우리 일행의 기억에 그리 좋은 이미지로는 남지 않을 것 같다.
네게는 그리도 경계했던 금요일 음주로 광덕정 분기점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산행길에 온 몸이 반기를 드니 정신이 혼미해진다. 게다가 어제 내린 비로 습도가 높고 바람 한 점 없다.
이런 악조건은 산행 내내 이어진다. 다들 같은 느낌에 불만이 가득했던 것 같다.
이 산의 바위에는 대부분 이끼가 끼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산에 물기가 많은가 보다. 분주히 뿜어져 나오는 땀 냄새를 따라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날벌레들, 특히 이놈의 모기. 내 피가 그리 맛있나 보다.
깃대봉 삼거리까지의 시간은 통상 40분인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휴식에 받친 것 같다. 능선을 향한 가파름은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다. 근대 요녀석 그 특유의 “계단식”코스로 저기 보이는 것이 봉우리겠지 하면 어김없이 한숨을 날리게 한다.
*동문회
보통 앞서가던 사람들을 추월해서 가는 것에 익숙했던 내게 “당함”은 좀 생소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몸 보다도 평상선생은 더 심한 것 같다. 그렇게 중간 중간 몸뚱이에게 쉴 틈을 주는데, 언제 올라오셨는지 연세 지긋하신 5~6명의 노인분들께서 휴식을 함께 하신다.
깃대봉 삼거리부터 강천산 왕자봉까지 쉬는 장소마다 함께 숨을 고르게 되었는데,
이 분들께서도 공주에서 오셨다고 한다.
평상선생이 후미를 책임지며 그분들과 덕담을 나누셨는지, 중고교 선배님이라고 일러준다.
깃대봉에서의 휴식 시간은 호구조사 시간. 내가 64기인데 그 분들이 35기시란다. 70이라는 나이에도 산행을 저리 즐기신다.
전라도까지 와서 동문을 만나 기수를 맞춰보니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드는 군.
산행 시작시점부터 중간에 샛길로 하산하겠다고 장담을 하던 평생선생. 이 분들의 몸놀림에 자극을 받았는지 이를 악물고 따라온다. 끝까지 가자고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챙피한 건 아는 사람이군.
*형제는 어디 가고
사실 능선까지의 처음 코스를 제외하고는 조금 어려운 산책길 정도다.
깃대봉을 지나 강천산 왕자봉에 자리를 잡고 점심꺼리를 펼친다. 총무님의 배낭에서 나오는 구운계란, 김밥, 천도복숭아, 맥주... 소풍나온 것 같다. 이거 준비해서 끙끙대며 메고 온 충무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난 아침부터 지긋이 내 아랫배를 눌러오던 불쾌한 것을 남들 눈을 피해 해결하고는 다시 술에 입을 대고 만다.
왕자봉에서 다시 대선배님들을 만난다. 간단한 요기를 하시곤 여기서 바로 현수교 아래로 내려가신다. 평상선생 함께 하산하자는 달콤한 유혹에도 마지만 남은 자존심으로 버틴다.
설득, 다시 형제봉을 지나 금성산성까지 가기로 한다. 내려가는 정도가 꽤 되니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오르막에 다들 내심 경계를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제1호 군립공원. 그래도 관리 주체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능선을 타고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야 하는데 등산로는 그것들을 비껴 평이하게 닦아져 있다. 그렇게 속도를 내다보니 어느덧 제1,2형제봉은 지나친지가 한참이다.
평이한 등산로의 단점이라면, 등산로는 물론이고 봉우리까지 주변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호젓한 숲길을 함께 이야기하며 걷기엔 딱 맞는 그런 길이다.
하지만 이놈의 모기는 정말 싫다.
*믿을 수가 없어
등산로 숲 사이로 담양호가 조금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다.
조금의 오르막에 에너지를 쏟으니 금성산성 북문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의 흔적이 한 눈에 느껴지더만, 그래도 북문을 지나 가파름을 친구삼아 이어지는 성곽은 예전부터 이어져온 것이 맞다.
금성산성(사적 345)은 담당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조선 태종 9년에 개축하고, 임진왜란 후 광해군2년에 파괴된 성곽을 개수하고 내성까지 구축하였고 제법 견고한 병영기지를 갖추었다고 한다. 호남의 3대 산성 중 하나로 외성은 6.4km, 내성은 0.85km에 이른다. 10여 동의 군사 시설은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분지에 이 시설들이 있으며, 절벽과 가파른 산줄기를 따라 잘 어우러진 돌성곽이 참 인상에 남는다. 북바위라는 커다란 바위에 걸쳐 있는 성곽을 보는 순간, 어찌 이렇게 지형과 지세를 잘 이용했는지 신통방통하다.
그런 금성산성은 이제껏 달려온 산행로와 달리 탁 트인 조망을 제공하는데,
이분들 연대봉에서 따라올 생각하지 않고 저 밑에서 자기들끼리 꾸물거리더니 먼저 가란다.
“조금만 오르면 능선길이야~”
“믿을 수가 없어~”
<이 오르막만 오르면 되는데, 내 말을 안 믿는 사람들>
윤구라. 내가 어쩌다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나.
그래 나도 힘들 더만, 그래도 조금만 오르니 이런 풍경이 펼쳐지더만.
어찌 바람도 안부냐. 성곽을 잘 보이게 하려고 성곽을 따라서 나무를 베어 냈는데, 푹푹 찌는 더위에 그 비린내가 곱지만은 않았다. 녹차를 끓는 물에 넣고 팔팔 끓이면 나는 독한 냄새 같다. 나무에게 이 현장은 학살의 현장이라 그런가?
<성곽 오른쪽으로 능선과 절벽이 만든 분지가 예전 군사시설 지역이다. 주변과 잘 어우러진 성곽>
*용은 없고 모기만
그렇게 1.4km를 성곽을 따라 멋진 경치에 기분이 한껏 돋아져 북바위삼거리에서 하산길에 접어든다. 가파른 하산길이 주는 무릎의 고통을 잠시 이겨내자 완만한 계곡길이 이어진다. 여기는 ‘비룡계곡’인데, 물이 드물어 어제 내린 비로 고인 물 웅덩이마다 모기가 득실거린다. 먼저 내려간 일행을 계곡 시작점에서 만났다. 다들 잘 살아 있네. 계곡 내내 가득 품은 습기와 모기, 날벌레... 싫다. 게다가 아직 숙취로 남은 것들이 한 번 더 밀어내기를 하자고 타협을 시도한다.
광덕산까지 크게 도는 코스와 강천산에서 내려오는 코스가 만나는 홍화정 근처 약수터부터는 살만한다. 약수로 머리에 물을 붓고 나니 체온이 뚝 떨어지는 청량감이 든다.
<구장군폭포, 이것도 인공폭포라는 사실에 다들 실망...>
그러고 보니 일행 홍일점 임유정님 왈 “이 산에는 청량감이 없어요.” 여름 산이 주는 그게 없다. 오늘만 이런 거겠지?
이제 평지가 계속 이어진다. 폭포의 규모에 놀라 입을 벌렸다가 2002년에 조성된 인공폭포라는 말에 얼른 닫아버린다.
다들 힘들었는지...
현수교도 그냥 지나친다. 현수교까지 가는 계단이 장난 아니다. 게다가 현수교에 한 발 딛는 순간, 건너야 하나? 두려움이 엄습한다.
정말 힘들었는지,
말도 않는다. 그냥 차에 앉아서 내 짐정리만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출발한다.
차 안의 땀 냄새는 ‘코를 찌른다’는 표현의 정수를 보여준다.
닭갈비는 닫혔던 입을 열게 만들고, 소주 몇 잔은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래도 다들 좋았죠?
마치 산행의 힘듦이 내 탓? 그렇게라도 한 순간 타깃을 정해서 푸념을 내 뱉을 수 있는 존재였다니, 뭔 역할을 했으니 함께한 보람이 있네요.
강천산은 봄이나 가을에 맞는 산인 것 같네요.
다들 다음엔 더 멀리(포항-연석산) 가자고 하데요. 분명 함께 하면 좀 늦더라도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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