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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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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햇볕이 두 배? 희양산(曦陽山, 996.4m)

by 여.울.목 2023. 6. 2.

은티마을 주차장-구왕봉-희양산-성터-은티마을 주차장
11.36km
5:10
2.2km/h

Climbing_2023-06-01희양산.gpx
1.14MB

 

 

마을이름 찾기
100대 명산. 접근성이 떨어져도 산의 가치가 컸나보다. 고요하다.
너른 주차장에 서너 대의 차량. 이미 입산을 한 모양이다.
내심 궁금했던 은티마을 주차장 이용료
소형 3,000원 대형 5,000원.
한창일 때 세워놓은 듯 녹슨 철재 안내판만이 덩그러니.
이리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인건비가 더 들겠다.
장거리 운행 때문인지 몸이 뻣뻣하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 ‘은티마을’ 이름 유래비를 지난다.

유래비 내용을 요약하자면,

조선 초 각종 문서에 나오는 마을 이름은 義仁村里.
경술국치1910 때 왜인들이 義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고 은티[銀峙]로 개칭하고
주진리에 마을을 포함시켰다.
후에 다시 묶임을 풀어 은티라는 里명칭으로 지금까지 불린다.
풍수지리에서 은티마을을 女宮穴(여자의 집?)이라고 하며,
동구(洞口)에 남근형 상징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아들을 많이 낳는다 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 마을의 평안과 동민 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고제를 지낸다.
1996년에 세워짐

은티[銀峙] 속뜻보다 단순한 지명 유래 - 일본인들이 불순한 의도로 바꾼 것 - 설명.
曦陽山 曦와 陽 모두 햇빛이라는 의미를 지닌 한자다. 햇빛*2.
曦 햇빛 희 陽 볕 양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런 음기운을 이겨보려고 산 이름을 겹겹이 그리 지었나보다.


들머리 찾기
마을 고사(동고제) 지내는 터를 지나 다리 건너 희양산으로 향한다.
마을을 둘러싸듯 지나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다. 면면이 기암괴석으로 위풍당당하다.
다행히 오늘은 희양산과 구왕봉만 걸친다.
전체적으로 산으로 가는 길은 조금 급한 구릉을 지나 뼈만 오뚝 솟은 봉우리 형태다.
구릉지역은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다.
밭일 하시는 분 옆으로 배낭배고 지나는 나... 지송.
멀리서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만만함? - 산이 이런 내게 본때를 보여준다. ㅎ
드문드문 현대식 가옥과 펜션이 있어 갈림길이 많아 앱을 켠 채로 길을 찾아 움직인다.
콘크리트 포장이 끝나고 제법 너른 숲속 터, 정상에나 있을 법한 표지석이 선택지를 내민다.
왼쪽 – 희양산으로 직진, 오른쪽 - 구왕봉 지나는 길.
이앙 온 거 구왕봉 지나 희양으로 간다.
지도엔 갈림길이 많아 헷갈릴 것 같더만 실제 들어서니 고민할 필요 없다.
등고선을 따라 난 길 대부분 자연석 축대와 임도로 널직하지만 드문 왕래로 금새 숲으로 바뀔 것 같다.

구릉길을 따라 올라야 한다. 왼쪽 산이 희야산, 가운데 - 구왕봉
정상에 있어야할 표지석이 갈림길에 턱~허니 자리잡고 있다.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한다. 지름티? 궁왕봉?
임도는 잘 닦았는데 관리가 좀...
임도가 점점 좁아진다.
드디어 백두대간 능선에 놀라 탔다. 이제 구왕봉으로 간다.

 
인적 드문 구왕봉
등고선을 거스르자 분위기 반전.
크게 가파르지 않지만 습기 가득 품어 열대우림지역인 듯, 상쾌하지 못하다.
눈치없이 달려드는 날벌레들 짜증을 돋는다.

다행히 백두대간 줄기에 닿아 햇볕을 쐬며 숨을 고른다.
대간줄기 - 가파름 시작이다.
오늘 내가 처음인지 거미줄이 얼굴에 달려든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다리는 무겁고 몸뚱이는 땀으로 범벅이다.
구왕봉 근처 너른 바위 봉우리 임자는 까마귀다.
잠시 머물다 갈 건데 어찌나 공격적으로 울어대는지 사랑방서 눈치 보다 도망치듯 자리를 턴다.
위협스럽기도.

구왕봉 가는 길 만난 바위
구왕봉 근처, 뷰포인트
구왕봉 근처, 은티마을 - 마을 뒤에 채석장 ㅠㅠ

 

희양산을 마주보고
흘린 땀에 비해 구왕봉 정상은 실망스럽다.
미련 없이 몇 십미터를 움직거리니 앞에 희양산이 맑게 웃고 있다.
남쪽으로 하얀 이마를 드러낸 걸 보면 햇빛 듬뿍 받는 골산이다. 曦陽.
맑고 우람한 봉우리...

경험상 멋짐 뒤에 펼쳐질 혈투에 대비 점심 전을 펼친다.
달려드는 벌레에 편치 않은 한끼다.
틈틈이 앞 산을 보며 - 저 산을 어찌 올라야 할지 고사목 옆에 걱정을 세운다.

거의 수직 절벽 지역이다.
지름티까지 내려서는 길 곳곳에 로프가 메어져 있다.
어영부영 내려설 수 없어 한 손이라도 로프를 잡아야 안전하게 갈 수 있다.

구왕봉을 조금 내려와 뷰포인트에서, 희양산이 온전히 보인다.
줌을 당겨 봉암사를 담아본다.

 

지름티. 왜 지름티인지 모르겠다만,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 만나서 그럴까?
이제부터 진짜 고생 시작이다.
한편으로는 나무 울타리가 능선을 따라 쳐져 있다. 산림자원 보존 때문에 통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래 봉암사 때문에?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 가파른 길을 두 다리로... 아니 네 발로 기어가야 한다.
그나마 인간들 잔머리를 내어 절벽을 살짝 피해 왼쪽으로 길을 텄다.
각도를 높이며 다리보다 숨이 차 조금씩 휴식을 취해야만 했지.
그도 잠시 밧둘을 타고 올라야 할 길이 직각이다. 지금까지 스틱 접어 넣는 게 귀찮아 어영부영 견뎌 왔는데 가만 모양새를 보아하니 긴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스틱을 가방에 넣는다. 먼저 다녀간 친구의 말을 듣고 3M 반코팅 장갑 챙기길 잘했다.
나이 먹었나? ㅋ
나름 이런 길을 즐겼는데, 이젠 안전한 귀가가 우선 순위다.
국립공원에 흔한 계단 이런 곳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정상 턱밑을 살살 달래 네 발로 기어 오른다.
 
희양산이 주는 감동!
이 산과 마주보고 있는 구왕봉 때문에 희양산이 더 빛난다.
굵직하게 이어진 백두대간과 주변 유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희양산 정상까지 약 오백미터 가량 화강암 절벽길을 걸으매 정신 없이 순간순간을 폰에 담는다.
지친 몸의 피로가 싹 달아난다.
집이 가까운 곳이라면 한동안 머물고 싶었지. 그래도 서둘러 하산을 해야한다.
장거리 이동을 감안해야 한다. 자칫 퇴근시간에 묶일 수도 있다.
 

희양산 턱밑, 이런 수직 절벽이 만만치 않다.
희양산에서 구왕봉, 멋지다! 피로가 싹~ 가신다. 너머 칠보산/ 군자산 같다.
문경 봉은사 쪽
구왕봉 반대편 백두대간, 문경 백화산

 

다시 지름티로 내려설까하다 산성터로 하산하기로 한다.
상대적인 기분 탓인가? 내려서는 길은 그리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산성터에서 은티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조심해야 할 구같이었지.
희양산성 석축이 150여 미터 남아 있다. 집에 와서 자료를 찾아보디 산성은 많이 활용하지 않았나보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옛성'으로 표현되어 있다. 견훤과 관련해 신라 말기에 축조되었다고 이야기로 전해진다 하네.
희양산 정사부와 달리 여긴 큰 힘에 못 이겨 돌이 산산히 부서졌나보다. 말목 조심. 내려서는 골짜기에 산성 쌓을 때 쓸만한 돌이 천지다.
내려서기에 조금 지치기도 한다만, 골이 깊으니 아랫쪽에 맑은 계곡물이 더위를 날려준다.
지름티로 바로 향하는 길과 합쳐져 몇 백미터만 내려오니 아까 그 공터다.
아~ 아무리 산이 좋아도 내심 쫄밋쫄밋하다.
집에 가련다.

희양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