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놓고 본다면, 어찌 그리 호기롭게 집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2023.7.30.(일)
상신리-남매탑-삼불봉-금잔디고개-용문폭포-갑사
8.37km
3:00
2.8km/H
장마를 핑계로 몇 주 건너뛴 산행이라 마음까지 들뜬다.
계룡산 코스 중 좋아하는 길을 잡았다.
상신리부터 큰배재를 통해 남매탑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이다.
그리 가파르지 않게 자연성릉에 접근해서 동학사나 갑사로 내려오면 10km 넘는다.
계곡과 능선, 그리고 사람까지 두루두루 구경할 수 있다.
오늘도 역시 마눌님께서 들머리 근처까지 배웅해준다.
상신리 계곡 – 장마로 시끄럽다.
기나긴 장마로 산 곳곳은 잔뜩 물을 머금고 있다.
상신리 탐방센터를 지나 계곡으로 접어드니 시원한 냉풍이 쏟아진다.
계곡 곳곳은 먼저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로 심심치 않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이번 장마 에너지로 내내 물소리로 시끄럽다.
큰배재고개를 쳐다보지도 않고 갈 길을 간다.
남매탑 – 폭우와 폭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산행의 한 마디를 지어본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수분과 염분을 보충한다.
아무도 없어 보이는데 나무 그늘 군데군데 사람들이 숨어 있다.
언제 봐도 정겨운 오누이 탑... 순간 구름을 헤치고 해가 반짝인다.
삼불봉 – 그늘 없는 직사광선이 포기를 선물한다.
조금 쉬었다고 계곡 때와 달리 발걸음 무게가 장난 아니다.
지금까지 길에서 만난 사람 수에 미루어 짐작컨대 꽤 많은 등산객을 상상했다.
생각과 달리 삼불봉 정상은 ‘고요’ 그 자체다.
인증샷 찍으려는 사람들로 울퉁불퉁한 봉우리 가득 장터였는데,
삭막하리만큼 조용하다.
적막보다 더 무섭게 나를 짓누르는 열기!
계곡 숲 사이로 다니던 지금까지의 길과 확연히 다르다.
보통이면 자연성릉 건너뛰고 한달음에 천황봉에 다다를 것 같은 호연지기는 어디로 갔냐?
내려서는 철계단.
내 발자국 소리에 ‘동작 그만’하고 멈춰 서 있는 도롱뇽.
덕분에 폰 꺼내 사진을 찍는다만
생존 위해 뜨거운 철판 위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이 전부라니...
녀석을 보내주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내가 선택한 건 오로지 산행을 여기서 멈추기로 한 것이다.
갑사로 가는 길 – 수없이 다닌 길인데 이런 날은 처음이다.
금잔디고개를 거쳐 갑사로 후퇴 아닌 후퇴하기로 한다.
맘 편하게 포기했다. 그럼 몸과 맘 모두 홀가분할 줄 알았다.
온몸이 땀으로 뒤 범벅이다.
금잔디고개를 내려서자마자 가파른 돌길은 수분을 먹고 있어 내려서는 걸음에 신경을 써야 했다.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날벌레들이 정신 사납다.
녀석들과 대결하다 보니 어깨 여기저기 모기가 여러 차례 물어뜯었다. 눈치채지 못했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몸뚱이가 몸 둘 바를 모른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다닌 길인데, 이렇게 벌레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긴 처음이다.
동네 야산에서나 당할 일이기에 장마가 많은 걸 바꿔 놨다는 생각이 든다.
혹여나 이번 장마로 얼마나 위풍이 당당하신지 용문폭포를 친히 방문하시다. ㅋ
시원함 그 자체에 어떤 이는 자리를 깔고 누워 자고 있더라.
몇 해 전부터 내가 즐겨 다니는 코스 - 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 대적전 앞을 지나 철탑민박을 스쳐 내려간다.
어찌 그리 호기롭게 집을 나섰는지 모르겠다.
상신리 계곡을 지나 삼불봉까지 사뿐사뿐 좋았는데.
내려오는 길 내내 모기에 뜯기고 날벌레에 농락당하고 땀으로 찌들어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어쩌다 이런 산행도 하네.
밀림이라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집으로 왔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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