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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조계산, 천년불심길

by 여.울.목 2024. 5. 13.

조계산(889m)+천년불심길

 

선암사-장군봉(889m)-작은굴목재-큰굴목재-송광굴목재-송광사
11.9km | 5:20 점심시간 포함 | 2.2km/H
2024. 05. 11.(토)

 

어언 20여 년 전 인상 깊은 두 산사를 잇는 산행이 생각난다.
세련되고 뭣 좀 있어 보이는 절과 교과서에서 봤던 무지개다리를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시간이 지나 두 사찰의 특징과 사찰명이 서로 매칭되지 않는다.
그땐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갔다. 그러니 이번 산행계획과 얽혀 기억은 뒤죽박죽.
이제 명확해졌다. 큰 규모의 송광사와 무지개다리가 인상적인 선암사.
두 절이 있는 조계산에 간다.
조계종 유명 스님들을 배출해서 송광산에서 조계산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게 되었단다.

그 산자락을 관통하는, ‘천년불심길’을 걷는댄다. 12km.
선암사는 백제 성왕 때, 송광사는 770년 경에 세워졌다고 한다.
최근 걷기에 관심 갖게 되자 두 산사 오가는 길을 “천년불심길”로 정했나 보다.
보리밥집도 유명하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출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리밥집 근방이 두 사찰의 경계로 오랜 교류의 장이었다고 한다.
이 근방 사람들은 선암사-장군봉-천년불심길(일부)-선암사 원점회귀 길을 주로 걷나 보다.
외지 사람들은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선암사-천년불심길-송광사’
또는 ‘선암사-장군봉-천년불심길(일부)-송광사’ 코스를 선택하는 것 같다.

산악회… 요즘 추세대로 천년불심길을 택한다.
난 옛 추억을 되살리고파 장군봉(조계산 정상) 길을 간다.

선암사와 송광사 모두 입장료와 주차료는 받지 않는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단체 사진 찍고 옷 정리 후 배낭을 다시 꾸리는 사이 우리 일행들은 휑~ 도망가버린다.
사실 내가 버린 건데, 버려진 기분이다. ㅎ
이 길이 맞나? 시원한 시냇물을 따라 선암사로 향한다. 선암사까지 걷기 좋은 널따란 산책길이다.
굽은 길을 지나자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보니 생각난다. 오늘은 - 20년 전 산행과 달리 – 반대 방향 선암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거다.
무지개다리 - 보물 400호 승선교에서 잠시 서성이다 선암사로 들어선다.

 

평온하게 천년불심길을 걸을까? 걸으면서 잠시 망설인다.
…사찰 경내를 둘러볼 생각을 접고 대각암 쪽으로 빠르게 들어선다.
내 선택에 화답하듯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을 만난다.
선암사마애여래입상, 크기는 5m 원만한 얼굴에 눈썹까지 그려져 있다. 안내문엔 그 눈썹을 백호(白毫)로 표현했다. 하얗고 얇은. 고려 중/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아직까지는 문화유산 관람 수준이다.
대각암 차례다. 암자라고 하기엔 큰 규모다.
대각암 울타리를 따라 낯선 지명을 새긴 이정표에서 ‘장군봉’을 찾아 오른다.
이제 등산 시작이다.
얼마 동안 평온한 숲길이다. 이내 경사가 심해져 내내 등고선과 직각을 이룬다.
저녁 무렵 비 예보 때문인지 하늘은 찌푸려 있고 바람도 거세다.
내내 숲에 가려 하늘을 볼 수 없다. 썬크림 바른 낯이 부끄럽다. ㅎ
금새 하늘이 보일 것 같다만, 요 언덕만 지나면 멋진 풍광이 펼쳐질 것 같다만, 정상까지 나무로 둘러싸여 기대만큼 만족감을 얻을 수 없다.
그래도 등산로가 잘 정비 돼 있고 건강한 숲이어서 기분은 좋다.

 

정상.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은 보인다만, 기대하던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때도 그랬다. 열심히 올라왔건만 산 정상에서도 풍경을 즐길 수 없어 실망했다.
잠시 숨돌리고 바로 내려선다.
실망에 빠진 발걸음을 잡아 세운 안내판 - 배바위 전설

배바위 비선암 신선암으로 구분되는 전설

1.배바위 船巖, 배바위에 배를 묶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아주 옛날에 세상이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졌는데 커다란 배를 이 바위에 묶어 견딘 끝에 살아났다”는 전설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

실제 배바위 위 배를 묶었다는 대형 둥근 철고리 있었다는데 - 일제강점기 일제가 맥을 끊기 위해 박은 철주의 일종이라는 설도 있다.

2. 신선바위 仙巖, “옛날 신선들이 이 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었다”하여 신선바위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숙종 때 “호암선사가 관세음보살을 보려고 이 바위 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며 깨달은 바가 있어 선암사에 원통전을 지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절 이름을 선암사라 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착한 홀아비와 손자가 스님 가르침에 따라 배바위 위에서 홍수를 피해 살아났다.”는 전설이 ”성광향지”에 실려 있고한다.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 순천시 -

이 맛이다!
로프를 타고 배바위에 오른다. 아직까지 연두빛 강한 녹음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틈새에 피어난 철쭉이 웃음꽃을 피게 한다.
이 산 이 바위가 이런 평온을 주다니. 그 때도 올라 비슷한 감흥을 느꼈으리라.
자꾸 20년 전 내가 그리워진다.
추억이라도 끄집어 내 무언가를 이겨내고 싶은가보다.

이 나이 이 위치에 오르면 나아질 것 같았는데… 삶은 언제나 이런가? 지치지 말고 끝까지~ 파이팅!

 

내려서는 길에 인상적인 건 산죽이 풍성하게 서식하고 있다는 거다.
길을 잘 정비해서 그런지 길가에 초록 병풍처럼 늘어선 것이 시야를 가렸다는 답답함보다 청량함을 준다.

작은굴목재까진 금새 도착한다.
왁자지껄~ 요란한 사람들 소리, 문득 우리 일행이 생각난다.
걸음을 재촉해본다. 그나저나 시간은 점심시간인데 연락도 없는 인간들… ㅋ
산죽이 곱게 깔린 평온한 능선길 덕분에 수월하게 큰 굴목재에 도착한다.
큰굴목재에서 비로서 천년불심길과 만난다.
어물쩡 남들 다 먹는 것 같은 보리밥을 등지고 송광사로 향한다.
금방 도착할 것 같은 길, 참 길더라.
영차영차”” 선선한 바람에도 땀을 삐질거리며 송광굴목재에 올라선다.
낯익은 목소리… 우리 일행 후미를 따라 잡았다.
이제부턴 기나긴 하산길이다.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생각보다 길더군.

조계산 3곳에 ‘굴목재’가 있다고 한다. 송광굴목재/ 큰굴목재/ 작은굴목재
어원은 우리말 ‘골막이’에서 유래한다.
양쪽 골짜기를 가로막고 있는 줄기에 나 있는 통로(길)를 의미한다. 골막이 - 굴막이 - 굴맥이 - 굴목재로 변한 것으로 보이는데, 굴목재는 순 우리말을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이름이다.
1700~1800년대 선암사와 송광사 관련 고지도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목자를 눈목目, 나무목木으로 표기했다. 이는 한자화 과정에서 기록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졌다는 단서라고 한다.
굴목재는 선암사~송광사 왕래 지름길에 있는 고개다.
1600년대 이후 양사 고승들 교류 기록과 보리밥집 아래 장안마을에서 송광사 고승이 많이 배출되어 현 보리밥집 일대를 두 절의 경계 지역인 ‘지경터’라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두 절 간의 동행은 물론 장안 계곡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무시로 드나들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1700년도 초 굴목재 명칭이 처음 등장했으며,
1926년 최남선의 ‘심춘순례’에 등장, 1960년대 국내여행 대가인 이화여대 조필대 교수가 여행 산길 제1번지로 추천했다. -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순천시 -

 

법정스님이 17년간 머무르셨던 작은 암자 불일암. 그런 곳인 줄 알았다면 일행 기다리는 시간에 다녀올 것을, 이게 좀 아쉽다.

송광사는 여전하다.
활기찬 계곡물은 우화각을 지날 즈음 고요하게 머물다 간다.
대웅전 앞엔 초파일을 앞두고 조용하지만 요란한 채비를 하고 있더군.

집에 가는 길, 일기예보처럼 요란한 비가 쏟아진다.
뒤풀이 술기운이 살짝 골 팬다. ㅋ
추억이고 나발이고 술 조금 덜먹고 집에 돌아오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