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산
속리산 문장대를 오른 다음 날이라 좀 걱정이 된다. 함께 담양 추월산에 함께 오르기로 한 친구에게 카톡을 던졌더만 “근무다”라는 짧은 문자만이 돌아온다. 갑자기 문장대를 핑계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파고들더군. 일기예보로는 주말 내내 태풍의 영향으로 흐리다는데 - 갈팡질팡 -어찌해야 할까.
우리 식구들에게 같이 떠나자고 제의를 했다. 내가 산행을 하는 동안 가족들은 잠시 주변 관광을 하고 오후에 합류해서 함께 남은 투어를 하자는...
가만히 생각하니 방장산 코스가 떠오른다. 방장산은 원점회귀가 아닌 호남정맥에서 뛰쳐 나온 능선을 길게 쫒아가야 하는 코스다. 그러니 장성갈재서 날 내려주고, 양고살재에서 만나면 될 것 같으니,
쾌재로다♬
장성갈재~양고살재 | 9.8km 4:24 (40여분 길 잃고 헤맨 시간 포함)
장성갈재
네비게이션은 내장산 IC에서 나오게 한다. 바로 이 정읍에서 장성으로 가는 고갯길의 정상이 ‘장성갈재’다. 내 생각엔 정읍에서 장성으로 갈 때 만나는 고개라서 ‘장성갈재’라는 명칭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는데, 한 신문에서 갈대가 많아서... 갈재~ 어쩌구 하는데, 산 속에 있는 것은 억새인데... 뭔 갈대냐?
그리 높지 않지만, 주변 너른 평야지대에 비해 거친 방장산과 고갯길은 상대적으로 위협적이었던 것 같다. 호남 저 아래로 내려가려면 여길 꼭 지나야 했기에 대낮에도 사람을 죽이는 도적떼가 많았다고 한다. 보부상도, 고을 수령으로 발령 받은 관리도, 귀향살이 가는 사람도, 과거길 오르던 선비도... 지나야 했던 고갯길은 이제 지방도, 고속도, 국도, 철도 등으로 대체되어 옛길이 되어버렸다.
오른쪽이다! 기억해
전라남북도의 경계에서 산행은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10여 미터를 지나자 우측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바람이 참을 수 없이 차가와 방풍자켓을 입는다. 입길 잘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는 터라 등산로는 잡풀로 무성해서 스틱과 종아리부분은 끈적끈적한 풀씨가 달라붙고, 거친 풀잎이 내 팔을 휘어잡는다. 그리 채 100여미터도 오르지 않은 것 같은데 난감한 갈림길이 떡~허니 버티고 있다.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왼쪽 길을 보니 누군가 단정하게 풀을 베어낸 흔적이 있다. 조금 더 그 길을 따라가니 나지막한 쇠그물 울타리도 보기 좋게 뭉게 놓은 것을 보니 여기가 진정한 산악인의 탐방로가 맞는 것이구나~.
하지만... 미치겠다. 산림청에서 숲 복원차 편백나무를 조림해 놓은 곳이다. 쇠그물 울타리 안쪽은 꽤 자란 편백나무로 간벌을 해서 사람이 다니기 쉬울 정도의 넉넉한 공간이 있다. 헌데, 능선쪽으로 가는 방향에 심겨진 편백은 한참 커가는 놈들로 촘촘하게 식재되어 있고 잡풀로 채워져 있어 도저히 뚫고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간신히 좁은 물길을 따라 가니 제법 길다운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길은 추석 성묘를 위해 벌초꾼들이 만든 성묫길이었다. 몇 번 그 짓을 반복하니 식은 땀이 난다.
갈림길을 선택했을 때 어느 정도 오르고는 oruxmaps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미련곰퉁이.
다시 그 갈림길로 내려오는 길 찾는데도 몇 번 실패, 예전에 산에서 여우한테 홀려 어찌되었다는 말이 이래서 있나보다 싶더군.
기억해 그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이다!
가을이다
간신히 능선을 잡았는데 쓰리봉은 언제 나온다냐? 40여분을 길 잃고 헤매고 나니 마음만 급해져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뭔가 봉우리에 오른 것 같은데 앞에 보이는 또다른 쓰리봉... 또 다른 산이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이놈의 능선이 다 그리 보인다. 쓰리봉은 숲에 덮여 조망을 볼 수 없을 것 같더니 표지목(이 능선 봉우리 표시는 목봉으로 되어 있다)이 있는 바위에 오르니 저 멀리 방장산 정상과 너른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길 잃고 헤맸던 암울했던 기억이 한 방에 시원스레 날아간다.
쓰리봉을 지나면서는 힘든 줄 모르겠더라. 보이는 지나온 능선의 빼어난 절경이 발을 멈추게 한다. 북쪽으로는 풍요롭게 익어가는 황금 들판이 넘실대고 호남정맥서 가지 친 산맥은 남쪽으로 힘차게 내달리고 있다.
가을의 정취와 방장산의 풍경은 봉수대에서 절정을 이룬다. 봉수대 코 앞 바위는 마치 성벽을 쌓은 듯 봉수대 봉우리를 평평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봉수대, 훤히 보인다. 그러니 봉수대다. 야생화와 억새가 방장산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잠시 쉬어가라고 꼬득인다. 하~ 정말 좋다.
사실 방장산 정상은 봉수대만큼 감흥은 없다. 봉수대에서 사방을 다 둘러봤기 때문인 것 같다. 방장산의 남쪽방향 반은 숲으로 병풍이 쳐 있어 봉수대에서 느낀 청량감은 덜하지만, 멀리 보이는 백양산과 내장산이 이제 한 샷에 다 들어오는 포인트임에는 분명하다.
양고살재
정상에서 바람을 피해 남쪽으로 조금 내려와 따듯한 바위 위에 점신 전을 편다. 참 많은 땀을 흘렸지만 상쾌하기만 하다. 이제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보인다. 방장산 휴양림을 통해 산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제 정상에 닿기 시작하나보다. 시원스레 내리막을 내려가 고창고개에서 잠시 망설이다 페러글리이딩활강장이 있는 벽오봉으로 향하려 길을 재촉하니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 다시 등산로를 잡아 타고 오른다. 벽오봉은 고창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억새 틈으로 보이는 고창의 들을 바라보니 고된 산행이 잘 마무리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지어본다.
이제 우리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양고살재로 하산 한다. 고창사람들이 주로 양고살재를 통해 산을 오르는지 점심을 기점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능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산꾼의 냄새가 나 인사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막판 가파름에 비포장 등산로의 투박한 돌맹이가 아쉬운지 자꾸 거추장스럽게 방해를 한다만 바로 양고살재에 닿는다. 양고살재는 병자호란때 고창 출신 무장 박의(朴義)가 누루하치의 사위인 양고리를 살해했다는 역사적인 연유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 고개에서 있는 일이 아니라 수원 광교산 전투에서의 일인지라 억지로 갖다 붙인 것 같기도 하다.
경기도 100대 명산마다 실망을 안겨주어 명산 선정에 대한 생각이 삐뚤어질 쯤 만난 방장산은 나를 다시 그 곳으로 빠져들게 한다.
양고살재에서 만난 우리 가족. 4시간 동안 기다려 준 고맙고 사랑스런 우리 가족.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하고, 장성 투어로 오랜만의 가족 나드리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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