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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설악산, 한계령-대청봉-설악동_2013.10.12.

by 여.울.목 2014. 9. 10.

2013.10.12  08:01 ~ 16:18 (08:17)

한계령-서북능선-끝청-중청-대청봉-소청봉-천불동계곡-비선대-설악동 | 21.1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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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이틀 동안 새벽 3시 언저리에 잠자리를 들어서 그런지 몸이 말이 아니다. 아 그런데 쌀쌀한 강원도 날씨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뭔 놈의 모기가 그리 많은지...

이마를 시작해서 오른손 약지 끝, 발등... 사정없이 물어댄다. 다른 사람들 자는데 불을 켜고 모기를 잡는다고 설칠 수도 없고 미치겠더라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고 나니 머리가 띵하다. 왜 나만 무는 거야 ㅠ ㅠ

제대로 산이나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설악산 산행. 산에 다닌다고 떠들고 다닌 시간에 비하면 설악을 찾는 건 참 늦깎이다. 혼자 아무리 오려고 머리를 굴려 봐도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던데... 어렵게 찾은 만큼 기회를 쉬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에 오늘 하루도 몸뚱이가 고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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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평상선생께서 설악동에서 픽업해주신단다. 다시 한계령(1004m)으로 내려오지 않고 더 많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계령은 아침 8시인데도 벌써 등산객들을 실은 차량은 만원이다. 관광버스 한 대가 오갈 때마다 수 십 명씩 무리지어 산으로 다름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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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어질 한 상태인데다 나의 산행 파트너는
사람이 아니무니다님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몇 번이나 완주한 자타가 공인하는 산좋아 최고의 체력짱이다. 차떼기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들머리부터 점령을 하고는 비켜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속도라면... 뻔하다. 드디어 사람이 아니무니다님이 속도를 낸다. ? 쫓아가야지 별 수 있겠어? 손이 시려울 정도로 쌀쌀한 날씨인데도 20여분이 지나니 한 여름처럼 땀이 온 몸을 적신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머리는 띵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땀방울의 농도가 진해질수록 천규의 파랑색 자켓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무릎이 조금씩 시비를 건다. ‘너 이러다가는 완주 못해!’ 그럼 다른 무릎에 힘을 좀 더 주고... 살살 달래가며 쓰디쓴 가파름을 한참 동안 걷다보니 이제 사람들이 좀 띄엄띄엄 떨어져 간다. 한참을 온 것 같은데 겨우 1km. 내 산행 역사상 가장 어려운 1km였던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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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산길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걸 보니 서북능선에 가까워 진 것 같다. 능선이래도 많은 구간이 울퉁불퉁한 바위로 되어 있어 초보자나 여자 분들의 움직임이 그리 수월치 않은 구간이었다. 그래도 능선길을 만나니 숨도 차분해지고 풍경도 제대로 보이니 사람 살 것 같구나. 가는 길마다 무슨 놈의 경치가 이다지도 좋다냐? 자리 깔고 앉아서 안참을 즐기고 싶은 심정이다. 햇살도 좋고 산도 좋고 시절도 좋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면서 그렇게 웅장해 보이던 봉우리와 바위덩어리들이 멋진 모자이크 작품으로 되살아난다. 완만한 능선이 얼마동안 사람의 맘을 평온하게 하더니 갑자기 오르막이 다시 시작된다. 더 쏟아 부을 힘이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 올라가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 !’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끝청(1604m)이다. 다들 숨을 돌린다. 동쪽으로는 귀때기청봉(1577m)이 만만하게 보이고, 한계령 고개는 조그만 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동북쪽 봉우리에 설악산 기상센터의 한 쌍의 둥근 조형물이 보인다. 가까워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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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을 지나자 길도 걸을만하고 가까이 왔다는 생각에 다시 힘이 난다. 등산로가 능선 약간 비껴서 서-동으로 나 있는데 북쪽은 손과 귀까 떨어질 정도로 칼바람이 불어 닥치는데 능선 이쪽 남향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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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 두 개가 서있는 봉우리를 끼고 돌아서니 대청봉이 보인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수많은 바위와 봉우리에 비하면 참 개성 없이 평범해 보인다. 약간 실망? 중청대피소 가기 바로 전 고갯마루에서 대청봉을 바라보느라 그냥 지나칠 뻔 했는데 왼쪽으로 정말로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소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만나는 곳인데, 용아정성릉 만경대, 나한봉, 공룡능선, 울산바위, 권금성... 모두가 한 눈에 보인다. 다들 정상을 잠시 잊고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대청봉은 멀리서 봤을 땐 그저 그랬는데 오를수록 참 멋지다. 대청봉 오르는 길의 키 나무들이 엮어내는 색깔이 참 좋더라. 대청봉. 소백산 때보다 바람이 더 날카롭다. 날아갈 것 같다. 게다가 2,3백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대청봉이라는 돌덩이 앞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다. 그렇게 억어지 춤을 추느라 대청봉 정상 식물군락지의 따스한 모습은 다들 무심하게 지나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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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대피소에서 라면을 끓여 허기를 채운다. 고단함이 온 몸에 퍼졌는지 가져온 캔맥주에 소주 몇 잔을 마셔도 무감각이다.

소청봉을 지나 회운각 대피소까지 가파름도 만만치 않더군. 내려가도 내려가도 가파름이 뭔 웬수를 만난 것처럼 사람을 이리 고단하게 하는지... 올라오는 사람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여지는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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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운각대피소에서 공룡능선... 가고는 싶지만 하룻밤 더 잘 수는 없잖아? 천불동 계곡부터는 단풍이 제법이다. 내려가는 내내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는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봉우리와 어우러져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계곡 왜 이리 기냐? 질린다. 비선대 근처에 다다르니 단풍이 게서 멈칫거리고 있더군. 이제 사람단풍이 제대로네. 설악동은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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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평상선생께서 마중을 나오시네.

~ 너무 좋아 기가 막힐 뻔한 하루였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감동. 조물주가 금강산에 세상의 멋진 봉우리를 다 불러 모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더만, 아직 금강산을 가보지 못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 눈으로 확인한 설악도 그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통이 감동에 밀려 끽소리도 못한다.

 

아무튼 이 좋은 산행 끝까지 잘 몰고 온 총무님 무진장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