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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계룡산, 상신리-남매탑-삼불봉-금잔디고개-갑사

by 여.울.목 2015. 7. 14.

산행개요

일시: 2015.7.11. 08:12~11:12 (3:00)

이동: 상신매표소-큰골삼거리-큰배재-남매탑-삼불봉-금잔디고개-갑사

7.47km (평균 2.5km/h)

 


 

 

 

 

상신리를 가는 대중교통이 뜸한지라 다른 코스에 비해 접근이 어려웠던 코스다.

아마 2004년도 8월일 것이다. 을지연습이 한창일 때 반나절 휴무를 얻어 상신야영장을 통해서 산행을 했던 기억이 갑자기 나네. 삼불봉까지 갔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려오는 길에 맑은 물에 멱 감던 기억이 난다.

야영장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을 마시고는 고단한 몸을 달래주던 그때가 벌써 1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상신리당간지주 앞 공터에서 하차를 한다. 길이 더 이상 우리가 탄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상신리당간지주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려니 방금 타고 온 버스가 되돌아 나가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상신리당간지주는 구룡사라는 큰 절의 터로 추정이 된다고 한다. 꽤 큰 규모의 절이었는데 발굴작업이 이루어진 지역에서 7동의 건물터가 나타났지만 탑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절의 규모가 상당해서 발굴한 곳이 전체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한다. 그 터의 대부분도 경작지로 쓰이는 사유지라 발굴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네.

어떤 자료에서는 통일신라 때 지어진 것이라고 하고, 이런저런 유물을 견주어 볼 때 고려 때의 사찰이라고도 하는데 시기가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간지주(사찰의 입구쯤에 천에 부처나 보살을 수놓거나 그린 기를 다는 깃대를 받친 기둥)의 위치상 앞 개울까지 절터로 예상된다는데, 아마도 중간에 폐찰이 되었기 때문에 절의 규모에 비해 이런저런 것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설이 맞는 것 같다.

상신리매표소까지 동네에는 보기에도 여유로워 보이는 전원주택이 길을 따라 지어져 있다. 집을 지으면서 길도 좀 넓혔으면 좋으련만.

 

상신리매표소로 들어가는 탐방로는 계룡산 구간 중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않는 몇 안 되는 코스다. 아마 구룡사가 지금까지도 번듯하게 서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겠지.

상신리매표소를 지나 큰골삼거리까지는 골짜기를 따라 가는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 이어진다.

사실 이 구간 동안은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감상하고 손도 담가봐야 하는데 예전의 그 기억과 달리 숲이 넝쿨식물로 너무나 많이 점령당해서 계곡마다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야 할 판이다. 10년 전 장정 여러 명이 시원하게 풍덩 뛰어들어도 한참이나 여유로웠던 그 계곡은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겠군.



큰골삼거리는 큰배재와 금잔디고개로 길이 갈라진다. 큰골삼거리는 말 그대로 골짜기가 크다는 의미인가보다. 산속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군데군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석축을 쌓아 평평하게 만든 곳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은 예정대로 큰배재를 통해서 남매탑으로 향하는데 마지막 일행까지 기다리는 나와 함께 삼거리에서 머뭇거리시는 몇 분... 굵고 짧게 금잔디고개로 바로 올라가시겠단다.

 

큰골삼거리를 지나자 조금은 가파름이 심해지지만 그리 사람 잡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미 폭염이 시작되었지만 숲길 내내 나무그늘로 이어져 햇볕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중간 선배님들께서 준비해 오신 막걸리 한 모금과 과일로 피곤함을 씼어 본다.

?

밤늦게 까지 술을 마신 덕에 간식 보다는 화장지를 신경 써 챙겨왔다. 그래도 맑은 공기와 열린 땀구멍 덕에 몸이 가벼워진다. 헌데 아침을 거르고 왔더니 속이 영 휑하다.

 

큰배재부터 남매탑 턱 밑까지는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는 셈이다.

남매탑에는 무전기를 들고 선두에 나선 친구 종탁이가 근엄하게 앉아 있다.

삼불봉에 같이 오르자고 꼬드겨도 녀석이 넘어오지 않는다. 산행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며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무전기가 뭐라고... 긍정의 완장이다.


남매탑.

고등학교 때 수필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사로 가는 길’... 맞지?

이야기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소개한다. 액자소설처럼.

 

신라 때 상원조사가 토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호랑이가 울부짖어 나가보니 목에 커다란 가시가 걸려 있어 뽑아주었다. 그 은공을 보답하고자 며칠 뒤 호랑이가 아리따운 처녀를 업고와 내려놓고 갔다. 처녀는 경상도 상주사람으로 혼인 치른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오게 된 것이다. 때는 눈이 많이 쌓인 겨울이라 봄까지 함께 머물다가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처녀의 부모는 그런 상황에서 딸이 다시 혼인시킬 수 없으니 부부의 연을 맺어 달라고 한다. 결국 스님은 처녀와 의남매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 불도를 닦다 하날한시에 입적했다고 한다. 이런 의남매를 기리기 위해 스님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건립하였고, 남매탑 오누이탑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있을 법한 일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든 것 같다.

폐사 된 청량사 터에 쌓은 탑으로 하나는 칠층 하나는 오층 석탑이라고 한다. 백제의 석탑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위로 올라가면서 부재가 생략되거나 세부조각수법이 정연하지 않는 등 고려 중기의 시대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큰골삼거리에서 빠진 일행 외에 이곳으로 오는 마지막 분의 모습을 확인하고 선두를 맡은 종탁이를 따라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다. 봉우리 하나는 찍고 와야 산에 온 것 같기에...

종탁아 미안하다!

 

그래 이 맛이다. 장군봉 능선, 쌀개능선을 지나 도도한 천황봉의 자태, 멀리서 보니 뭉툭하지만 속살은 거친 문필봉과 연천봉...

삼불봉은 자연성릉 쪽에서 바라보면 부처세분이 계신 모습과 같다고해서 삼불봉이란다.

정말 능선을 타고가다 문득 바라보니 그렇더라! 진짜다.



 

일행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 페이스를 오버했더니 코 호흡은 커녕 계속 숨이 헐떡여져 입을 헤벌레 벌리고 만다.

아무 일 없듯 금잔디고개 평상에 슬며시 앉아서 뜨거운 땀방울을 식혀본다.

 

폭염으로 하산길이 더 어려운 것 같더라. 숲으로 된 그늘 길인데도 어찌나 찌는 더위인지 지금까지 산행 중 가장 많은 땀을 흘린 것 같은 느낌이다.

 

상신리에서 다른 곳으로 넘는 코스는 교통수단이 그닥 좋지 않아서 자주 접할 수 없는 코스다. 어렵지 않고 무난하게 계곡과 함께 시원한 여름산행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상신리는 맛나는 두부가게가 유명하다. 상신리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힘들면 원점회귀로 해서 계곡에서 더위도 식히고 맛나는 두부 요리도 맛보면 좋을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