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이상의 휴가를 내본 적이 있던가? 아무튼 지난 주 목요일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 수요일까지 이어지는 긴 휴가가 어쩐지 낯설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네.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식구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이들까지 방과후수업에 참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나만의 시간을 가져 봐? 그동안 가고 싶어 별렀던 산을 찾아볼 요량이었지만 아이들까지 학교에 내려주고 나니 시간이 참 애매하다. 지도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충북괴산에 있는 도명산에 낙점을 한다. 그간 눈독 들였던 강화도 마니산이나 몇 번이나 맨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소백산에 비하면 1:30이면 가뿐하게 도착할 거리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흥을 맞춰가면서 강을 따라 여유 있게 차를 몰아가지니 ‘그래 이 맛에 여행을 하는 구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에 숨 또한 고르고 길게 이어본다. ♬ 헐~ 그것도 잠시 금강을 따라 난 강변도로는 세종시 첫마을에 접어들자 꼬리를 잇지 못한다. 네비언니가 알려주는 대로 핸들을 틀었건만, 예전 대전-대평리 도로는 공사를 한다고 바리케이트로 막아놓았다. 다리 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헤매봤지만 잔머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종시다. 그렇게 세종시 공사장에서 10여분을 헤매고, 끼어드는 차에 쌍시옷을 날리다보니 그 여유로움은 어디로 가고 짜증에 내 본 마음 깊이 가라 앉아 있던 짜증덩어리까지 보태져서 옻 탐하듯 열기가 뻗혀 오르듯 안 좋은 기운이 온 몸에 흐른다. 정부청사 앞에서 끼어들었던 차에 창문을 열고 찌릿 한 번 쏘아붙이고는 다시는 이런 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앞차와의 간격을 바짝 붙여간다. 예상 도착시간이 또 10여분 늘어나자 허들 넘기 경기 하듯 조금가다 멈춰 서게 하는 신호등에 신경질이 나고, 세종시를 벗어났음에도 답답한 앞차 녀석을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여볼 양 차선을 바꾼다. 음악까지 귀에 거슬려 꺼버린다. 그렇게 씩씩거리다보니 안 좋았던 이런저런 기억들까지 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쩜 갑자기 사람이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나선 게 아닌데... 얄팍한 내 밑천만 드러난 셈이 되고 말았다. 2차로로 차선을 바꾸고 다시 음악을 틀었다. 웬만하면 추월을 하지 말자꾸나. 2015-08-10 도명산__20150810_1041.gpx
화양동계곡길에 접어드니 초록으로 가득한 가로수길이 이어진다. 맘이 한결 편해진다. 그래 좀 늦으면 어떠냐 일부러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으로 택했는데. 그리고 이미 지난 일에 왜 이리 집착을 하는 것인지. 내가 잘났지만, 참 잘난 것은 아니잖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난 그냥 나다. 자존감부터 출발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자존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니 쉽게 화를 내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 같다. 5천원이나 되는 주차료를 내고는 주차를 하고 차에 걸터 앉아 양말을 갈아 실으려는데, 오른쪽 발가락 하나가 따끔하다. 개미가 내 발가락을 물었다. 아니, 내가 콘크리트 사이에 있던 개미집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개미떼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내 슬리퍼 주변을 부지런히 오간다.
▽ 금서당, 송시열이 이곳에 내려와 저렇게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짓고 놀며 공부하며...
모랫빛이 금빛이었고 학문을 익히는 곳이라서 금서당이라고 했다는 안내표지판을 읽은 기억이 난다. 멋지다~
화양계곡은 우암 송시열과 인연이 깊은 계곡이라고 한다. 원래 회양목 즉, 황양나무가 많아 황양동이라고 했는데, 송시열이 거처를 옮겨와 중국을 뜻하는 華와 *一陽來復의 양을 다서 이름을 화양동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런데 북벌을 외쳤다는 그의 행적과 달리 어째 사대주의의 냄새가 풍기는 지명이다. ㅋ
*음기(陰氣)의 극한인 음력 10월이 지나 11월 동지(冬至)에 이르러 양(陽) 하나가 처음 생기는 복괘(復卦). 봄이 되는 일 또는 나쁜 일이 끝나고 좋은 일이 다가옴.<역경易經 복괘復卦> [네이버 지식백과] 일양래복 [一陽來復]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여기저기 우암 선생과 관련된 유적이 많다. 게다가 점잔은 계곡과 함께 기암괴석도 함께 어우러지니 풍류를 아는 선비들치고 이곳을 찾지 않는 이도 없었을 것 같다.
학소대까지 보도블록이 깔린 평지와 같은 길이 2.5km나 이어진다. 보도를 기준으로 도명산 정상을 꼭지점으로 삼각형 모양의 탐방로를 걸어 원점회귀를 했다.
1.5km 보도를 걸으니 첨성대라는 안내판과 함께 도명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앞서 가셨던 어르신 일행 분들이 오르막 앞에서 정체현상을 보이신다. 추월을 하느라 좀 빠른 걸음을 옮겼더니 금새 숨이 가빠지고 땀구멍이 열린다.
▽ 도명산 산행 들머리 첨성대,
첨성대는 여기서는 안 보이고 내려오는 길에 바로 옆 다리 위에만 올라서도 보이더군.
*첨성대
화양구곡 중 제5곡으로, ‘큰 바위가 첨첨이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하여 첨성대라 부른다. 진짜 별을 관측할 수 있으려나? ㅋ
도명산 산행길은 거의 능선 없이 가파르게 이어진 것 같다. 아무튼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었는데도 앞길을 내어주시지 않는 두 분 어르신. 그렇다고 이분들의 발걸음이 현저히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이 페이스를 지켜가기로 하고 꼬랑지에 붙어간다. 이정도면 좀 쉴 만도 한데, 이분들 계속 발걸음을 내딛는다.
발목이 아프다고 근 한 달여 움직임을 줄여서 살이 쪄서 나만 힘든 건가? 급기야 한 분이 먼저 가라며 내게 길을 내어주신다. 그러면서 다른 일행 분께 먼저 계속 가라고 말을 건네신다.
이렇게 나머지 한 분과의 산행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존감이 어쩌구 하면서 애써 가라앉혔던 마음이 또 일렁인다. 하지만 이 일렁임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앞서 가는 내 발걸음은 처음보다 더 빨라졌지 둔해진 것이 아닌데도 뒤따라오는 인기척은 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명산은 능선이 없나보다.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땀이 여기저기서 용솟음치고 코호흡하기 벅차 가끔씩 날숨은 입으로 내 뱉고 만다.
아~ 이 얼마 만에 심장 터질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 분 못해도 60대 중반은 되 보이시는데 대체 얼마만큼의 폐활량과 체력을 지니신 것인지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오신다. 아~ 땀은 벌써 상체를 다 적시고는 흘러내려 벨트라인을 넘어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암석지역이 시작되면서 경사가 심해져서 우리 둘의 간격이 꽤 벌어졌다. 예의상 내가 먼저 쉬는 동작을 취해야 하나?
송곳바위에 다다른 철계단에서 드디어 내가 한 숨을 돌리고 길에서 비켜나 적당히 쉴만한 자리에서 땀을 닦고 있자니, 여전희 고른 호흡을 유지하시면서 유유히 지나치신다.
▽정상 가는 길에 기암괴석, 통천문?
▽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멀리 주차장도 보이고, 오른 쪽으로 공터 같이 보이는 곳이 채운사
▽ 도명산 정상에서는 역시 골산 답게 조망도 좋고 경치도 뛰어나다.
▽ 비율이 잘 배합된 마블링 같다. 가령산 쪽인데 가령산은 이 산 넘어서인 것 같고...
땀을 훔치면서 정겨운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횡~ 지나버린 그 어르신을 따라잡기는 이제 그른 것 같다. 거의 정상부분에 다다라서야 길이 완만해졌지만, 물을 마시고 땀을 닦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두 발이 갑자기 무거워진 것이여. 아직도 팔팔 뛰는 심박수를 가지고 ‘내가 졌다’라는 생각으로 정상을 향해 터벅터벅 발길을 옮긴다.
다른 때 내 페이스로 같으면 정상 근처에 다가서면 이 좋은 경치에 흥취해서 나도 모르게 가벼워진 몸놀림을 갖게 되는데 오늘은 영 아니다.
도명산은 육산 같아 보이지만 이산 정상에서 바라봄에 분명 골산임이 분명하다. 이미 어지간히 흠뻑 땀으로 젖어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시원한 줄도 모르겠고 힘은 힘대로 빠져 맥이 풀린 것 같다. 오늘 오르는 시간을 봐서 낙영산까지 완주해야겠다는 나의 당찬 속내는 부끄러운 공약이 되 버렸군.
그렇게 씁쓸한 휴식시간을 보내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고 내려서려니 아까 그 어르신이 저 쪽 바위 위에서 요기를 마친 모양인지 배낭을 정리하고 계신 것이여~
그렇게 또 내 뒤를 졸졸 따라오시는데, 내내 건강한 발걸음으로 내려서는 발걸음을 보니 그 연세에도 관절을 튼튼하게 잘 관리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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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산 도명산 마애삼존불상(충북 유형문화재 제140호)
엄청난 크기의 암벽에 선으로 새겨내었다. 오른쪽 불상은 9.1m의 규모에 안면이 길이만도 2m에 이르며, 세 불상 중 가장 세련된 솜씨를 나타내고 있다. 중앙의 또 하나의 불상은 더욱 커서 전체 높이 14m에 이른다고 한다. 또 다른 불상은 동떨어져 약간의 돋을새김 기법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5.4m의 규모이며, 곡선미의 세련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초기에 유행하던 선각 마애불상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고 하네.
▽ 마애삼존불상 아래에 샘이 있는데, 그리 맑지는 않아 마시고 싶은 마음은 없더라.
*학소대
화양구곡 중 제8곡으로, 큰 소나무들이 운치 있게 조화를 이루며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하여 학소대라 부른다.
오랜만에 말 그대로 가슴 터질 듯한 벅찬 산행을 하게 해주신 어르신께 감쏴~ 몸 관리 잘해서 앞으로도 건강한 산행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꾸나.
하산길은 처음 정상에서 내려서는 얼마간의 가파른 길만 조심하면 쉽게 계곡으로 접어들 수 있다.
작은 계곡은 수줍게 흘러서 화양계곡과 다시 만나 학소대에 이른다. 꽤 너비가 되는 계곡을 철제다리를 타고 건너 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하려면 보도블록이 잘 깔린 길을 2.5km를 다시 걸어야 한다. 그렇게 화양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지만 첨성대를 지나면서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길이 나 있다.
그러니까 총 8km의 거리 중 첨성대까지 1.5km*2, 학소대~첨성대까지 1km인 4km를 빼면 산길 산행은 4km정도 되는 셈이다. 나머지 거리는 산행 시작 전 풍경을 보며 워밍업을 하고, 산행마치고 마무리를 하는데 좋은 구간이다.
차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산인데, 오늘 레이스로 도명산에 대한 진면목을 그냥 지나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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