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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이야기

남한산성 성곽길

by 여.울.목 2016. 10. 3.

남한산성 성곽길

2015.10.01.

남한산성 성곽길; 로타리-북문-동문-남문-서문-로타리 원점회귀 10.5km

평균속도 2.6km/h

최저321m, 최고521m



사실 지방사람이 서울 근교 산을 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거리도 거리지만 자칫 고속도로에 갇혀버리면 그냥 하루를 잡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한산성은 벌서 3번째다.

그런데도 그리 한 바퀴 돌고 싶은 성곽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다.

오늘은 꼭, 기필코 돌아보리다.

나의 다짐에 함께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까지 힘을 보테니 가족과 함께 일주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뜻깊은 일이될까?


 남한산성은 성곽길로 되어 있어 일반 산행로에 비해서 비교적 쉬운편이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다.

산에 쌓은 성곽이기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처럼 높지는 않지만 편차가 심하다.


 

집에서 일찍 나왔다.

몇 번 와 본 기억으로는 늦게 오면 주차할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차장에 군데군데 이빨 빠진 곳이 있어 다행이다.


북문으로 걸어서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예전에 동문에서 장경사를 지나 동장대터를 통해 서장대까지 사람들을 인솔해 간 적이 있는데,

어찌나 인솔한 나를 원망하는지 ㅎㅎㅎ

오늘은 거꾸로 돌아보기로 한다.


북문으로 가는 길에 호박넝쿨과 나팔꽃이 다투는 것인지 사이가 좋은 건지 제법 의좋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북문이다.

이제 고생 시작인데, 인 석들은 뭣도 모르고 신나있다. ㅋ

 
북문(전승문)을 지나 제4암문까지는 산허리를 감거나 능선길이거나 내리막길이다.

 
제4암문으로 나가보는 녀석들

 
제4암문(북암문)을 밖에서 본 모습이다. 아치형태로 자그마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작은 성문으로,

비밀통로였기에 작고 적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별도의 시설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로 내려가면 하남시 상사창동에 도달하게 된다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그리고는...

아빠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난이도 높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ㅋ
여기만 오르면 되~

에이 아빠 또 오르막이 있어요!

동장대터가 거의 정상이나 마찬가지다.
거기까지는 2~3차례 오르막을 경험해야 하는데,
이제 말 조심해야겠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거든 ㅋ


드디어 동장대터에 도착!
저 멀리~ 벌봉으로 뻗어가는 외성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보인다.


동장대 터에 '남한산성 여장(女墻)'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성위에 낮게 쌓은 담,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단다.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임을 강조한다.



 

멀리 벌봉으로 가는 성곽이 한참 공사중이다. 복원 중이겠지?


 다른 여장과 달리 벌봉으로 뻗어나가는 이곳의 약 20여 미터 정도만 예전에 복원한 대로 내버려 두었다.

아마 외성 복원 때 같이 복원하려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좀 이해가 안간다.

시대별 여장의 형식을 보여주려고 그러는 건가?

여기 바로 아래가 동장대터라는데,
인조 2년에 축조되었다가 18세기 초에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세워졌지만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짓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군사적인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동장대터를 깃점으로 이제 장경사까지는 주구장창 내리막이다.
그러니 여기로 올라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
재작년에 나를 따르던 연수생들처럼 말이다. ㅋ

 
'장경사신옹성'이라는데,
옹성의 대부분이 천막으로 덮혀있다.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걸로 알았는데...

 
이거이 전돌로 복원을 한 것들이 문제였다.
밖에 치장줄눈이 안의 재료와 달라 떨어져 나가고,
그 위의 평전돌의 무게를 못 이겨 두꺼운 기왓장 같은 벽돌들이 떨어져버린 것이다.
부실시공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탈락현상은 이 구간만이 아니라 복원된 성곽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어케 좀 조치를 해야하는 것 아닌지요~

 
아래 보이는 공터가 장경사 앞 주차장으로 쓰이는 곳이다.
저기를 지나 성곽 끝으로 산허리를 돌아서면,

 
얌전한 내리막이 능선길처럼 산서리를 따라 이어진다.

아래 사진말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에서,
떼놈들이 홍이포를 가지고 동장대에서 빗겨 봉우리로 올라가니 어쩌니 하더라
아무래도 동장대 가까운 저 봉우리가 그 망월봉 아닌가 해서 찍어봤다.
안내문에는 벌봉(봉암)이라고 되어 있다.


아~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

읽으면서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무능한 정권

용골대가 망월대에 오르면서 속으로 걱정한다.

이렇게 이동할 때 저들이 몰래 밖으로 나와 우리를 공격하면 어쩐다지?

떼 놈들은 내내 지원군이 지들을 공격하면 어쩐다지? 걱정을 한다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그는 왜 조선군이 지들이 움직이는데 반응이 없는지 오히려 궁금해 한다.

왜?
사대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나올 수 없는 무능의 극치의 상황이었으니까

소설인데 미웠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미웠다.
똑똑한 척 다하는 그 머릿속 텅빈 지식인들이 미웠다.

 
그렇게 얼마간 얌전한 길을 룰루랄라 가다보면,
푹~ 꺼지는 가파른 내리막 거기가 좌익문(동문)이다.
동문부터는 아래 사진 저기 꼭대기까지 무진장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우리 가족들~ 저 구간에서 진을 다뺐는지 ㅠㅠ
지화문(남문)부터는 더 이상 전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더라...

 
녀석, 거의 평탄한 수준의 길이 얼마나 좋은지 춤을 추며 숲길을 거닌다.

 
참 절묘하게 산 허리를 감싸 성곽을 축조했다.

 
좌익문(동문)은 최근에 복원을 해서 그런지 사진찍고 싶은 맘이 없었다.
게다가 11번째 암문, 수구문은 무지막지하게 사람들 갈길을 막고 공사중이고 ""

이제 주구장창 아까 본 그 꼭대기로 근 45%의 경사는 되어보이는 길을 오른다.
그리 당도해서 바라보니 멀리 지나온 장경사 지나서 둘레길이 보이는 구나.


 제3남옹성 근처에서 점심 전을 편다.
아들녀석~
여자들 빼고 남자들끼리라도 성곽 한바퀴 휭~ 돌자더니 체력에 한계를 느끼나보다.
점심을 먹으면서 계속 벌레 핑계를 대며 인상을 쓴다.

조금의 내리막을 걸으니 남장대터가 나온다.
동장대터와는 달리 주춫돌이 제법 올곳게 서 있다.

1788년에 수어장대와 같이 이층으로 고쳐세웠다고 한다.
그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한 장대였다 하네.

 
동장대 터 바로 앞에는
제2남옹성이 있다.
다른 곳은 둥근형태인데 여기는 직사각형이다.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 더 둘른 이중 성벽이라고 한다.
이곳은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한다.
- 그런데, 왜 그 모양으로 지고만 말았냐? 소 잃고 외양간 고친건가?-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잇는데, 이 중 3개의 옹성이 산성 남쪽 완만한 지형을 보완한다고 한다.
다른 옹성과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고,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5개 옹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이중으로 덧대어 포대를 설치

 

남문으로 향하는 길 내내 구절초가 싱그럽게 피어있다.
근데, 왜 코스모스는 뿌려두었는지 모르겠다.
저것도 조화로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남쪽으로 도 외성을 복원하는 것 같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게 뭔지 설명이 없다.
성문 밖으로 나서야 뭔 공사인지 푯발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구먼.

 
남문까지 내려가서,
다시 서문쪽으로 올라야하는 오르막이다.
저걸 보니 아들녀석이
맘을 굳힌다.
나 혼자 갈련다.

 

 
남한산성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현재도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다.
지화문이라는 명칭은 정조 때 성곽 보수 때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으로 들어올 때 이문을 통해서 들어왔댄다.

아래 사진은 외국인이 찍은 조선말기의 남문 모습이란다.

 

 
아이들고 헤어져 남문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려니,
큰아이가 "엄마 다른 사람들 보세요~ 다들 가족들 끼리인데..." 우리는 왜 아빠랑 떨어져야 하는거냐고....
미안하다.
세번째만은 꼭 이 구간 완성하고 싶다.

그리고 네가 배신했잖어~ ㅎ

남문을 지나 다시 낑낑거리며 얼마를 올라오니 아득히 지나온 성곽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수어장대 도착
성 안 건물 중 가장 화혀하고 웅장하다. 인조 2년에 지은 것을 

영조 27년에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효종의 원한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라지.
내가 보건데
수어장대는 다른 누각과 달리 좀 낮으막하게 2층을 올려,
2층이지만 안정감 있어보이는 것 같다.


 
북쪽 바위에 '수어장대'라는 글이 세겨져 있는데, 그내력은 설명이 없넹.
뭔 직인까지 세겨놓은 걸 보면 꾀 내력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계속 올라야 한다.
그래도 그 가파름이 덜하니 감당할만하지.
우익문(서문)은 보수공사중이다.

가파른 길에 엉겁결에 지어진 시설물 같아
보잘것 없어 보이기에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 이곳이
물자를 나르는데 어렵지만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란다.

삼전도로 향할 때 지난 문이다.


 

 
서문을 지나 조금더 오르면  자연스런 전망대에 서게 된다.
왼쪽으로는 성남시가지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른쪽으로 북을 향해 보면,
강이 보인다.
치욕의 장소가 저기 어디 쯤

 
이제 땀이 식어 서늘할 정도다.
내리막이 시작되어 마지막 여정을 밟아가는데,
문득 성 밖을 보니 또다른 성벽이 이어진다.



이만큼이나 내려왔는데 올라갈까 말까?
한 20여초 고민을 하다가 내가 언제 또 여길 오겠냐면서 다시 오른다.
암문을 통해 나와 다시 연주봉옹성에 들어선다.

 
최근에 복원되었는지 150여 미터의 성벽이 깔끔하다.



어쩔 수 없이 치욕의 그 장소를 또 본다.

 

 
연주봉 꼭대기에는 3방으로 포를 쏠 수있는 포대를 복원해 놓았다.
아차산 북쪽과 남양주 일대 한강이 보이고, 이성산성과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측히 잘보이는 요충지라고 한다.

 
이제 다 왔다.
앞에 보이는 성곽은 가야할 길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지났던 성곽이다.

 
그렇게 내리막을 가뿐히 내려와 여유롭게 북문 밖에서 한 컷!

 
북문 내부에 호피무늬의 돌이 편마암이라고 한다.
남한산성을 보수할 때 남한산성 인근에서 가져온 돌이라고 한다.
대부분 화강암인데, 녀석들만 특이하게 편마암이란다.
다른 단체 해설사의 말을 엿들어서 적어봄

 
아~ 드디어 남한산성 성곽길 일주 완성!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스런 맘이 든다.
아이들은 행궁에 행차하셨다네...

내려오는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T맵에게 물어보니 녀석이 민자고속도로와 국도만을 안내해준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걸린 시간은 막히는 고속도로와 비슷하다고 해도 막힘없이 달린 것이 어디냐?


연휴의 시작을 의미있게 보냈다.

창피한 것이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고 오늘을 열심히 내일을 튼튼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