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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주한 마음 틈으로 '제주'를 우겨 넣으니 참을 수 없는 평온이 몰려왔다
  • 비로서 허락한 소백산 비로봉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에 그리움까지 숨겨놓고 말았다
산행 이야기

덕유산 종주(육구종주, 육심령~구천동)

by 여.울.목 2016. 10. 29.

덕유산 종주

육십령-남덕유산-삿갓재-무룡산-중봉-향적봉-구천동


 




산행 후기를 끄적거린지도 벌써 2주 째다.

산행 후에 밀린 이런저런 일로 도저히 틈이 안보이더군.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오늘 끝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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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도 아니고 황구도 아니고 육구라~

육구 종주 일정을 통보받고서야 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찾아본다.

사전에서 말하는 뜻을 찾아보니, 종주란 능선(稜線)을 따라 산을 걸어 많은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육심령부터 남덕유에서 향적봉까지 능선과 봉우리를 훑어 구천동까지 내려오는 덕유산 종주다.

 

사무실 일이 자꾸 뒤로 밀린다. 10월 초에 있을 거라는 내년도 예산작업이 하순까지 밀린다. 운 좋게 산행 성수기에 대피소 추첨에는 당첨이 되었건만... 진작 내가 시간이 어찌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산행보다는 밥줄이 우선인데, 종주산행이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라 자꾸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생각보다 일정이 더 밀려서 산행은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일에 음주에 몽뚱아리가 만신창이로 산행 아침을 맞이한다.

 

12일 일정이라고 이라고 며칠 전부터 쌓아놓은 짐을 배낭에 집어 넣다보니,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다. 마눌님께서 이틀 간 집을 비운다고 따듯한 밥으로 도시락을 마련해준다만 코펠에 버너에 평상시 넣지 않던 이런저런 덩어리들까지 밀어 넣으려니 도저히 빈 공간을 찾을 수가 없구나.

 

웬만하면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했건만, 어찌 이럴 때 빠질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마는지... 그래도 내 속을 아는지라 맥주는 안 마시려했는데 기어코 입가심으로 맥주를 꼭 하셔야 한다니 ㅠㅠ


새벽. 정신이 제대로일 리가 만무하지
. 금강다리를 지나자니 신분증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는 것이여, 고속도로를 올라탔는데 어제마신 맥주가 내 장을 심하게 마사지 하니 찌르는 통증에 터질듯한 무거움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첫번째 휴게소에서부터 쉬어가게 된다. 이렇게 출발부터 일행의 일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말았다. ㅠㅠ 
손수 운전대를 잡으신 등반대장님께 다시한번 지송~스런 마음을 전합니다.

 

2016-10-22_육십령-삿갓재.gpx

2016-10-23_삿갓재-구천동.gpx

 




<첫 날 산행 기록>



<둘째 날 기록>



손으로 아랫배를 살살 달래며 어찌어찌하여 당도한 육십령. 
전라도 쪽으로 해서 육십령에 도착을 했는데, 정식 휴게소가 있는 곳은 전라도, 매점이 있는 식당은 생태다리 밑을 지나면 경상도 땅에 있다. 다행히 등반대장님과 1번무전기가 예전에 백두대간 등반을 위해 여기서 식사를 해결한 경험이 있어서 식당 위치를 단번에 찾아 간다. 생태다리를 지나 육십령 휴게소 매점에서 아침 허기를 달래기로 한다.

전라도 쪽 휴게소의 식당은 아침 장사를 하지 않는다.

 

김치찌게 1인분에 7천원이니, 그닥 싼 가격은 아니다. 게다가 훌륭한 서비스와 공간도 아니구... ㅎ 
미리 전화를 해봐서 그런지 찌게는 좀 쫄아 있어서 짠 맛이 앞선다.
벽에 걸어 놓은 빨래줄에는 식당을 다녀간 산악회의 리본이 매달려 있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먼길 떠나기 전에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주렁주렁 달린 리본이 서낭당에 매달린 천조각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것다.
사실 리본이 자연에서는 환경오염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만은, 갈림길에 팔랑팔랑 흔들리는 리본을 보면 길을 제대로 잡을 수 있기에 어찌나 고마운지 모른다. 자기 등산이력의 자랑보다는 서로의 안녕 산행을 위한 최소한의 에티켓이라고 생각을 하고 적정선에서 지켜나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당앞에 서서 의미 있는 기념촬영을 한다. 
이놈의 날씨가 매섭게 차가운 바람을 일으켜 옷깃사이로 파고든다.
온통 하늘과 땅을 뒤덮은 회색 구름인지 안개인지 이것들이 음침하게 웃음지을 무렵 1번무전기와 회장님께서 장갑을 고히 집에다 모셔다 놓고 오셨다고 한다. ㅋ 이런씨에 장갑 없이 얼마도 못 버틸 것 같어~
다행히 매점에서 1켤레에 500원씩 반코팅 빨강 면장갑을 판다.

나이 50에 와서 30년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던 식당 아즈매의 말로는 60십령이라는 이름이 6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여서 너머야 무사히 지날 수 있어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커다란 바위 한켠에 그런 이름에 대한 유래 좀 써 붙여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큼 험준한 지형에 그만큼 지그런 도둑들이 득실거린 곳이라고 이해를 하자. 게다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보니 그 정도도 심했겠지.

다시 전라도로 넘어와서 주차를 곱게 하고는 육십령이라고 커다란 바위에 세겨놓은 기념탑 앞에서 또 다시 한 컷! 우리도 출발 전에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서로의 스틱을 손바닥대신 얽어 놓고 차전놀이 때처럼 스틱을 올려 파이팅을 외친다.





한컷을 찍고 카메라 삼각대의 발을 접고 어쩌는 사이에 다들 휙~ 떠나버렸다.
을씨년스런 휴게소 광장에 덩그러니 혼자 뒹구는 낙엽처럼...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부지런히 꼬랑지에 따라 붙는다.

육십령으로 향하는 들머리는 30미터 가량 되는 방부목 계단이다.
산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파이팅을 외쳐준다. 계단을 지나 맞닥드린 묘 마당에서 갑자기 멈춰선 1번무전기, 얼굴이 하얘진다. 500원짜리 장갑을 잃어버린 것이여~ ㅋ 500원.
어쩐다냐 이런 날씨에 장갑 없으면 한창 고생인데, 녀석이 배낭과 스틱을 집어 던지고 장갑을 찾으러 다시 내려선다.
의리! 녀석을 기다린다. 생각보다 긴 시간~ 다행히 빨강 장갑을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배낭을 집어 메고 하느라 시간이 걸리니 나보고 먼저 가란다.

녀석의 뒤쳐짐은 이 때부터 계속 이어지는구나~

한 동안 능선을 따라 그럭저력 만만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급기야 가파른 길을 만나 봉우리 하나 위에 올라선다. 봉우리 근처는 이곳이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곳이거나 군사요충지였는지 석축이 쌓여 있던군. 아래 사진은 바로 그 석축으로 둘려진 봉우리에서 바라본 할미봉 자락이다.
조망은 포기한 그 봉우리에서 잠시 숨을 돌리려니, 다들 배낭무게를 줄이려고 경쟁적으로(?) 간식을 꺼내 든다. ㅎ
안개인지 구름인지 걷히더니 기온이 조금씩 올라 온 몸의 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한다. 변덕심한 건 날씨만큼이나 사람이다. 겹겹이 껴 입은 옷들을 헌신짝 버리듯 벗어 던진다.



이제 할미봉으로 향하는 진정한 오르막이 시작되려고, 다시 내리막으로 길이 이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미봉에 오르면 기가막히게 버티고 있는 저 가운데가 뻥뚤린 'ㅁ'자 모양의 바위 덩어리들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잠시 가던길을 멈추고 한 컷!
사실 사진보다 더 멋진데, 줌 인을 하면 디지털 줌이라 화질이 별로 아닌 탓에 실제로 보는 것에 비해 감동이 떨어진다.



예비지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 글을 읽으니 밧줄이 나오더니, 정말 밧줄이 나타났다. 얼마나 멋진 경치를 보여주려고 이리도 거칠게 몰아치는지 모르겠다.



할미봉은 흘린 땀만큼이나 배신을 하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암봉이 아까 그 'ㅁ'자 모양의 기암괴석인데,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니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 아까 미리 찍어둔 것이 다행이다.
이제 구름이 거의 다 걷히고, 햇살이 쨍쨍하게 내려 쬔다.
다들 등산하기 최적의 날씨라고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가야할 남덕유산, 왼쪽 봉우리가 서봉이고 사진 가운데 있는 높은 봉우리가 남덕유산이다.
아침 나절 뿌옇게 시야를 가리던 안개와 구름이 거의 사라져 앞에 거슬리는 것이 없이 남덕유의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산세를 가만히 훓어보니, 할미봉을 제법 내려서서 한참을 걷고 올라야 저 능선을 탈 수 있다는 사실 ㅠㅠ, 고되게 올라왔는데 더 쓰디쓴 맛을 느끼며 가야 할 길이 저리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 지나온 육십령 고갯길이 보인다. 산 너머 또 산, 산... 끝이 없이 산이 겹겹이 이어진다.



땀이 식을 즈음 할미봉을 등에 지고 다시 내려서야 하는데, 거칠기가 오를 때보다 더하다. 누군가 재능기부한 철사로 얽어 만든 나무사다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할미봉을 내려서기 전에 잠깐의 능선길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명덕리, 그러니까 한국마사고등학교 쪽으로 400미터 정도 내려가면 대포 바위가 있다는 것이다. 1번무전기가 나보고 내려가보지 않고 뭐하냐고 비아냥 거린다. 녀석 기.승.전.여자 아님 거시기다. ㅋ
대포바위는 임진왜란 때 어찌어찌하여 왜놈들이 의병들을 쫓아 올라오다가 커다란 대포가 있어 놀래 자빠져서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임난 때부터 지금까지 저 자세로 지키고 왔다는 말인가?



'할머니'하면 떠오르는 포근함 아니 푸~근함과 달리 할미봉은 골산의 거침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근데 그 할미봉을 막 내려와 잠시 바위 능선에 올라서 거칠어진 내 심성을 다잡고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니,
봉우리 생긴 모습이 꼬부랑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지팡이라도 하나 들고 계신 할머니.



노고단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데, 노고단이라는 이름에서 노고(老姑)’란 할미’, 곧 국모신인 서술성모를 의미한다지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노고단은 제사를 지내며 국운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로 추앙받는 곳이라는데,
저 할미봉도 제사지내기 딱 좋은 평평한 봉우리 정상과 'ㅁ'모양의 괴암이 제단으로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상상을 하면서, 그 숨은 스토리의 아쉬움을 뒤로 묻고는 다시 서봉으로 향한다.

서봉으로 향하는 길은 얼마 간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의 같은 높이의 등고선을 따라 걷기도 하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적당히 땀 흘리게도 한다.
그래서 할미봉에서 잡아 먹은 시간을 대충 매꿀 수 있게 된다.

아래 사진이 우리가 점심전을 편 자리에서 바라본 중봉과 남덕유산 정상의 모습이다.
서봉 가까이에 와서 그런지 서봉이 남덕유보다 더 높아보인다.
점심.
점심에도 다들 싸 들고온 먹거리를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평상시보다 2배 정도 이상의 무게의 배낭을 짊어지다보니 다들 땀도 더 많이 나고 체력소모도 많다.

짐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ㅎ
철희 선배님께서 여유있게 준비해오신 김치 한 통! 와~ 여기까지 이걸 짊어지고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1번무전기가 그래도 지가 대신 짊어지겠다고 나선다. 대견한 놈. 신선(적양)이 되고 싶은가보다. ㅋ
점심을 먹었는데도 배낭 무게는 그대로다. 이런저런 반찬꺼리를 더 힘차게 앞으로 디밀었어야 했는데 ㅠㅠ



점심 마무리를 하고 잠시 뒤 돌아보니 지나온 길도 만만치 않구나.



아침에 주차장이 있는 전라도 쪽 육십령 휴게소에서 개나리를 보았는데,
원래 그놈이야 아무 때나 피어대니 이름 앞에 '개~'가 붙었다고 치자.
그런데 요놈은 뭐다냐? 코 앞에 보이는 서봉은 겨우살이 준비에 한창인데 녀석은 시절에 안 맞는 봄맞이 준비에 열을 내고 있다. 대체 한 겨울을 어찌 보내려고 그러는지~ 이런 걸 보고 철 없다고 하겠지.



그라데이션~
포토샵도 이런 그라데이션을 그려낼 수가 없다.
사진도 완벽하게 내가 느낀 그라데이션을 재현하지 못하는 구나.
다들 그 섬세함의 집합체를 보느라 한참 동안을 서봉 턱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서봉이 코 앞이다. 한 여름만큼이나 땀을 흘려대느라 다들 지칠대로 지쳤다.
말이 능선이지 능선보다도 계속 잠깐의 내리막과 한참의 오르막이 이어지니 배낭무게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가차없이 적용되니 발걸음이 조금씩 무뎌질 수밖에 없다.





회장님! 대체 어제 저녁에 무얼 드시고 오셨길래 날라다니시는지요~
서봉을 배경으로 한 하늘이 참 곱게 잘 어울립니다.



서봉 정상 이정표



저 아래로 보이는 육십령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그게 더 힘들어 보인다. ㅎ



서봉에서 장수군쪽으로 바라보니 내 지나온 길보다 단풍이 참 곱다.



하긴 내 지나온 길도 저기 우리 길동무들의 붉고 파란 등산복과 어울린 단풍과 암릉이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이름모를 산맥과 함께 어울려 어깨춤을 추는 운치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절경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월성치, 삿갓봉, 무룡산, 백암봉... 갈 길이 멀다.
7.3km 밖에 걷질 않았는데 그만 하산하고 싶어진다.





서봉 정상에 피어난 구절초
바깥쪽 꽃은 바람을 많이 맞아서 그런지 꽃닢이 날아가고 몇 장 남지 않았다. 그런 녀석들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멋지다.




한참을 고민했다.
실제 고민한 것은 3분도 안되는 시간이다. 멀리 월성치와 삿갓봉을 지나 숙소인 삿갓재 대피소까지 가야할 것을 생각하니,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축적해야겠다는 생각,

남덕유산은 첨 와보니 꼭 오르겠다고 남들 쉬는 시간에 먼저 길을 나서는 건수형님을 보니, 나도 정확한 종주의 궤적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나선다.

두 놈이 뒤죽박죽~$%*#@
그래 언제 내가 또 여길 이렇게 지나겠느냐.

정말이지 오르는 길 내내 힘을 뺀 근육이 쉴 틈 없이 다시 남덕유를 향해 가는데, 제발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더만.
서봉 헬기장에서 남덕유로 내려가는 계단길에서는 내 무릎 걱정이 우선 앞선다. 이런 가파른 내리막에서 그 놈의 무릎통증이 다시 도지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내딛는다.
그 조심스러움은 남덕유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에서 씼은듯이 사라진다.
왜냐면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서 느겨지는 근육의 고통이 이제 심장과 폐에 전달이 되서 온 몸이 몸살을 앓는 것 같다. 그냥 이 놈의 봉우리를 지나칠 것을...




해발 1,507m 남덕유산 정상

무척이나 힘들게 오른 봉우리라서 내려올 때도 그만큼 고생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뭔가 밀린 숙제를 하고난 기분이 든다.
오르기를 잘 했다. 파이팅!이다.

멀리 보이는 월성치와 삿갓봉, 무룡산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지나온 서봉, 참 멋지다. 너만 따로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난 겨울 남덕유산 산행때 지독한 칼바람에도 멋진 설경을 보여준 남덕유 골산 능선...
사진 가운데 점박이들은 사진을 확대해보니 산 정상에 사는 벌레들이다.



남덕유를 찍고 내려오는 길 그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란... 긴 산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느낌을 거다.
아랫쪽에서 일행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회로를 지나 휘익~ 지나쳐 갔을 법도 한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
반가운 목소리~



월성치를 지나서 남덕유산과 중봉을 바라본 모습니다.

올 1월에는 눈에 덥힌 녀석들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옷을 입고 있네.

여기를 지나면서 우리 일행들의 물이 거의 바닥나기 시작했다.

삿갓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이번에도 다들 그냥 우회하자는데, 나와 건수형님만 궤적을 그리려 올라가기로 한다.
사실 난 내가 마실 물의 양을 잘 알기도 하고, 가져온 물의 양에 맞춰 그 분배를 잘하는 편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을 많이 가져오기로 소문난 1번 무전기마져 물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내 물병 하나를 뜯어 한 모금씩 돌려마신다. 다행히 삿갓봉만 지나면 바로 대피소...



삿갓봉까지 한참을 갈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봉우리에 올랐다.
지난 1월에는 황점에서 풀린 단체등산객들이 손 쉽게 이 봉우리에 올라 점령하고는 인증샷을 찍는다고 난리를 피느라 자리를 내어주지 않던 그 곳이 지금은 표지석만 혼자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엻은 박무와 어울린 기나긴 산맥의 아리랑 춤사위는 직접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경치를 보는 것이 행복이다. 세상이 재벌이나 권력자들만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순간만은 내가 모든 것을 가진 부자요 군주다.









이제 내일 새벽부터 오를 무룡산을 바라보면서, 숙소인 삿갓재 대피소로 하산~



산속의 밤은 쏜살같이 주변을 덮쳐버린다.
잘 자리만 확인하고 배낭도 그냥 들여놓지 않고 헤드렌턴을 쓰고는 막바로 식사준비를 한다. 우선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황점 쪽으로 몇 십미터를 내려가야 하는데, ㅋㅋ 물 뜨러 가시는 분들, 아이고~ 소리를 달고 올러오신다. 지친 근육이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니 짜증을 낼만도 하지.
하루 종일 매고 다녔던 삼겹살을 꺼내서 코펠 뚜껑에 지글지글~ 맑은 공기에 소주 한 사발씩 쑥쑥 해치울 줄 알았는데, 피곤이 더 앞서는지 다들 몸을 사린다. 회장님께서 푸성귀까지 챙겨오시니 여느 식당 안 부러운 만찬을 즐긴다.



우리가 잘 대피소의 모습이다. 1층은 2층짜리 나무침대로 이루어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지붕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군대 내무반처럼 단층으로 이루어진 잠자리다.
라지에이터가 가동되서 실내는 훈훈하다만 끈적거리는 땀 때문에 잠을 잘 이룰지 걱정이다.
모포를 한 장씩 임대를 했는데, 덥지말고 깔고 자는데 쓸 것을... 딱딱한 바닥 때문에 몇 십번을 뒤척였다. 후회된다. ㅎ



아침이다. 아니 새벽이다. 05:00
이날 일어나려고 맞춰놓은 알람이 11월이 되어서도 계속 울려댄다. ㅋ

웬 바람이 이리도 세차게 부는지 화장실 가러 나왔다가 속살까지 파고드는 한기 때문에 몸서리치다보니 뒷골까지 땡기더군.

누룽지로 아침을 떼우고 다시 향적봉으로 떠날 참이다. 
저녁을 먹느라 찍지 못한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다.



안개 속을 걸어야 한다. 카메라 삼각대를 챙기느라 먼저 떠난 사람들을 이미 블랙홀처럼 안개가 빨아들인 것 같다.
그나마 건수형님이 먼 발치에서 내 이름을 부르기에 번득 정신을 차리고 배낭을 짊어진다.

둘째 날은 계속 이런 안개 뿐이다.

도통 경치를 볼수 없으니, 그래서 산행 속도가 좀 빠른 이유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첫 날보다는 산행의 정도가 수월하니 견딜만하다.

아래의 두 차트를 보면 첫날과 이틑날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첫날 그라데이션은 불안한 증시처럼 널뛰기를 한다만, 둘째날은 중심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고도차이를 보여준다.



얼마간의 능선과 오르막을 지나니 마치 소백산 정상부근처럼 구릉이 펼쳐진다. 그 구릉 위로 데크로 만든 계단길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가면서 이어진다.
등반대장님의 말씀으로는 이곳이 원추리가 자생하는 유명한 **평전이라는데... 금새까먹었다.
야생 원추리의 보호를 위해서 그리 데크로 길을 만든 모양이다.
아무튼, 안개가 끼었어도 육안으로는 평원의 장엄함이 느껴지더만 사진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짙은 안개 때문에 도통 흥이 나질 않는다.
1번무전기는 어쩐일인지 오늘은 계속 우리 일행의 태그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띠 동갑 철희 선배님께서 컨디션을 회복하셔서 오늘은 거꾸로 녀석을 보살펴주신다. ㅋ

아무래도 선배님들께서는 이번 산행을 위해서 틈틈이 준비를 하신 모양이다.
일행에 피해를 주지 않으시려는 마음에서 시간날 때마다 여러 유산소운동을 통해서 잔근육을 키우신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젊은 것들은 그저 젊다는 것만 믿고는 사무실서 죽치다가 여기서 이렇게 고되게 그 댓가를 치르고 있구나.

난 그나마 덕유산 종주 통고를 받고서 2달 전부터 맨몸스쿼트를 시작했다.
하산 때마다 반복되는 그놈의 무릎바깥쪽의 통증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종주를 통보받았을 때 속으로 한참을 망설였기도 했지.
맨몸스쿼드 별것 아닌데 매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힘들던지... 암튼 처음에는 규칙적으로 하다가 종주 몇 주 전부터는 일이 몰려들고 알콜까지 내 몸을 파고드니 걍 포기하고 말았지.
근데 저 녀석은 알짜 그대로 야근에 술에 니코틴에 찌든 몸을 끌고 왔다. 넌 여기서 노폐물 제대로 빼고가는거다. ㅎ

무룡산 정상은 오른만큼 뭔가 보상을 주지 못한다. 안개가 없었어도 둘레에 수북이 올라온 수풀 때문에 그닥 좋은 조망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안위를 삼자.





요거이 뭔 열매인지 모르지만 안개가 얼마나 얼마나 짙은지 지가 열매인듯 나뭇가지에 맺혀서 대롱거린다.



무룡산에서 출발해서 다시 2킬로 미터 이상을 걸었다. 안개인지 구름 때문에 어디를 걸었고 무엇을 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가림봉이다.

누군가 가림봉이라고 정성스레 매직으로 표지석을 만들어 올려놓고 또 누군가가 지나다가 돌덩이를 그 위에 얹어 케언(돌무지)을 만들었다. 글을 쓰며 다시 천천히 들여다 보니 돌무지에 가려졌던 원래 바위의 모양이 참 묘하게 생겼다. ㅎ
자라의 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뱀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좀 짧고... 그래서 사람들이 정성스레 돌덩이를 쌓아서 그나마 자라의 형태를 만들어준 것 같다.





이제 안개는 점점 비로 변하는 것 같다.
아마 이건 안개가 아니라 산봉우리에 걸쳐있는 구름일지도 모르겠다. 배낭이며 자켓이 비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무룡산을 지나면 백암봉까지는 거의 능선길이다. 그리고 키작은 산죽도 거기부터 계속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말 그대로 능선이라 그만큼 산행의 속도도 빨라진다.



동엽령 데크 밑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그런데 도저히 이런 거센 바람에서는 버너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못할 것 같기도 하거니와 바람이 앗아가는 체온 때문에 데크 어디에서 후미를 기다기기 조차도 함들 정도였다.
안성지구로 내려갈듯 훼인트 모션을 취해 데크 맞은편 서쪽으로 10여 미터 옮겨 내려오니, 바람이 제 성질을 다 부릴 수 없는 요새와 같은 안락한 공간이 된다.
땀을 닦으려 수건에 손을 대는데 수건이 안개... 아니 비에 젖어서 흥건하다. 여분의 타월을 꺼내서 머리털이 신나게 빠짐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는 모자를 쓴다. 조금의 체온이라도 날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휴대폰을 넣는 보조가방 듀라팩은 방수라고 자랑하더만 전화기며 개념도의 종이가 물기를 먹어 축축하다.

라면 대신 남은 초코바와 빵부스러기를 몽땅 털어 칼로리를 보충하고 다시 출발~

갑자기 거친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길로 길들여졌는데 암릉길이 시작되니 사람들이 모두 금새 지치는 것 같다. 빨래를 쥐어 짜듯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엄청나게 거칠게 불어닥치는 암반길을 오른 백암봉. 백암봉은 안개만 없었다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백암봉은 송계사로 빠질 수 있어 송계삼거리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안개만, 아니 이 구름만 없었다면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쉽다.

그럼 다음에 한 번 더?
콜!!!



사실 동엽령을 지나 백암봉부터 중봉까지는 어찌나 바람이 매섭던지 스틱을 든 손이 시려워 혼났다. 그런데 하룻밤 잘 자고 500냥짜리 장갑 잃어버리고 나선 1번무전기... 손이 얼마나 시려웠을까? 비싼 레키 스틱 내팽겨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고 하더군.

중봉은 얼떨결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도통 거센 바람에 추위까지 몰려드니 뭐 사진을 찍기도 그렇고 일행을 거기서 기다린 다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그러기에 남은 사진도 없다. ㅋ

중봉에 오르기 전에 넓게 펼쳐진 평전 영남알프스 간월~신불~영축 산행 때 영축산 부근에 평쳐진 고원 같은 기분...

그 때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 비슷한 걸 느낀다.



드디어 향적봉에 거의 다다른 모양이다. 주목군락이 이어진다.
우의를 입은 관광성 등산객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아마 설천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왔으리라. 우리가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처럼 그들은 뭐 이리 어렵게 고생을 하고 다니냐는 듯이 쳐다본다.



자꾸만 어디서 본듯한... 어디서 봤을까?





맞다. 2011년 5월하고도 29일 이다.
가족들을 설천쪽에서 곤도라를 타고 올라오라고 하고는, 나는 열심히 내달려 향적을 거쳐 중봉까지 다녀 온 기억이 이제 난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기억의 회로가 엉켜 꿈처럼 떠다녔나보다.
그 때 찍은 사진 몇 컷을 올려서 장황하게 펼쳐진 멋진 풍경을 못본 쓰라림을 달래보자.


그 때 중봉 언저리에서 남덕유쪽을 바라보면서, '언제 저기까지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올수 있을까~'
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는데, 내가 저기 봉우리 끝 남덕유에서 여기까지 그리도 침흘리며 바라보며 갈망했던 길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걸어온 것이다.



이제 남은 짐을 다 털고 가야한다.
덕유산 대피소에 들러 남은 먹이감을 다 풀어 놓고 다시 집어 넣기로 한다. 배낭에서 입 속으로 ㅋ
혼잡한 취사장에서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몸뚱이와 배낭을 뒤져 코펠과 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인다. 첫날부터 풀어 놓으려 했는데 매도 당했던 고추참치 캔이 이제야 팔린다.
뜨끈한 국물로 허기를 채우기 무섭게 화장지를 꺼내 다 먹은 그릇부터 정신 없이 닦아내기 시작한다. 남은 소주를 힘차게 완샷을 했더니 이런저런 열기로 머리까지 띵~ 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설겆이를 마치고 짐을 챙기는데, 어라~? 코펠 뚜껑이 사라진 것이여. ㅠㅠ


아무래도 옆에 있던 아즈매가 범인인 것 같다고...
그 뚜껑 가져다가 뭘하려고 그랬는지~ 고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에이~ 괜히 코펠 가져와서 뚜껑 잃어버려서 이제 세트로 활용하기도 글렀다고 속으로 푸념도 하고. 그래 그냥 그렇게 쿨하게 잊어버리고 살자고 자포자기도 하고...

남덕유와 삿갓봉과 마찬가지로 일행은 매번 올랐던 향적봉이라고 바라 하산길로 접어드신다.
나와 건수행님 ㅎ
갑자기 또 오르려니 또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향적봉을 여러차례 들렀지만. 오늘 이리도 힘들게 올라왔건만 허탈한 마음으로 내려온 건 처음이다. 안개, 아니 구름보다 사람들이 떼거지로 향적봉을 점령해버렸다. 짜증...



이제 본격적인 내리막이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리도 맨몸스쿼트를 해댔는데... 어떨런지.
온통 그 무릎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새색시처럼... 두 발이 아닌 스틱을 이용한 네발로 하산을 시작한다.

다행히다. 백련사.
백련사 근처 하산길에서는 예전에는 못보던 겨우살이가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서도 온전하게 달려 있더군. 낙엽이 떨어지니 푸릇푸릇한 겨우살이의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이제 다 온것이다. 나머지 거리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잘 버텨준 무릎아 고맙다. 정말로.





탐방지원센터 근처에서 종주 기념 단체 사진

다시 한 번 스틱을 모아 파이팅을 외친다!



종주에 피곤한 몸을 이끄시고 운전까지 하신 대장님과 건수행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뒤풀이는 송가네 갈비집...
그 귀하다는 하수오술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종무 선배님 감사합니다.
들쳐 업고 가기는 힘들었지만 정말 맛나게 먹은 삼겹살... 병찬 선배님 성찬이었습니다.



아~ 그렇게 종주를 마치고 집에 얼큰히 취해 왔다.
내일이 일요일이었으면 좋겠다. 하루 푹~ 쉬고 싶다. 휴가를 내고 싶은데 일 때문에...

코펠 설겆이를 마친 집사람
"여보! 뚜껑 다 있는데?"
이런... 뭐지? 내가 미쳤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이런저런 일로 뇌가 들떠 있었나보다.
최소한 뚜껑크기가 아래 몸체와 같거나 더 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나 보다.
그 때 요녀석을 보고 같이 찾아 주시던 선배님들도 뚜껑이 없어졌다고 요녀석을 보여드렸는데도 이견이 없으셨당. ㅎ

정말 뭐에 홀린듯. 언듯 보면 뚜껑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다.


아무튼 무사히 잘 다녀와서 다행이다.
코펠도 다행이고, 코펠 뚜껑 가져갔다고 욕지거리 해댔던 아주머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근데 카메라 삼각대 놓고 내렸다고? 종탁아 담 산행 때 꼭 챙겨와라~
시작부터 신분증 놓고 와서 되돌아 가더니 마지막도 뭘 흘리고서는 마무리를 하네.
그래도 흘려서 영원히 잃지 않게 그물처럼 챙겨준 우리 일행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솔직히 산행 마치고 며칠 동안은 다시는 절대로 Never 이런 종주는 안 한다고 다짐을 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조금씩 흔들린다.
참 좋은 추억이라고... 담 번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